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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심장마비로 ‘떠난’ 아내 가슴에 묻고 유산 전액 기부한 조용필

“아내 없는 세상을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

■ 기획·최미선 기자(tiger@donga.com) ■ 글·김순희(여성동아 리포터) ■ 사진·최문갑 기자, 동아일보 사진 DB파트

입력 2003.02.03 17:22:00

조용필이 슬픔에 잠겼다. 10년을 한결같이 조용필의 음악과 삶의 동반자였던 아내 고 안진현씨가 지난 1월5일 심장마비로 숨을 거뒀다. 한국에서 공연을 마치고 미국 메릴랜드 포토맥 자택으로 돌아가 단 하루동안 아내와 함께 보낸 조용필.
그는 갑작스런 아내의 죽음 앞에서 참았던 눈물을 펑펑 쏟고 말았다.
심장마비로 ‘떠난’ 아내 가슴에 묻고 유산 전액 기부한 조용필

‘국민가수’ 조용필(53)이 사랑하는 아내를 가슴에 묻었다. 조용필은 아내 고 안진현씨(54)가 자신의 곁을 ‘영영’ 떠나던 날 이른 아침에 주방을 서성거렸다. 아내가 좋아하는 미역국을 끓이기 위해서였다. 남편이 끓인 미역국에 맛있게 밥 한 그릇을 비운 안씨는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조용필은 장모(74)에게 전화를 걸어 “아내가 아침식사를 너무 맛있게 잘했다”고 자랑까지 했다.
그날 오후 3시경 “배가 아프고 속이 답답하다”는 안씨의 호소에 조용필은 처남과 함께 메릴랜드 포토맥 자택에서 D.C 조지 워싱턴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밥을 먹은 게 체한 것 같다는 안씨의 말에 병원에 가면 괜찮겠지 싶었다.
병원에 도착한 안씨가 호흡 곤란을 일으키며 순간 숨이 멎자 응급처치(심폐소생술)를 했고 안씨는 다시 숨을 내쉬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조용필에게 안진현씨는 웃으며 “괜찮다”고 말했고 의사는 안씨를 데리고 엑스레이실로 향했다. 검사를 받기 위함이었다.
“아내와 함께 여행 갈 꿈에 부풀어 있었는데…”
그러나 잠시 후 조용필의 귓전에 “숨이 멎었다”는 의사의 통보가 들려왔다. 지난 1월5일 오후 6시15분(현지시간). 그는 예견치 않은 아내의 죽음 앞에서 오열했다.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안씨는 3년 전부터 심장질환을 앓아왔다. 지난해 12월9일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시의 한 병원에서 두번째 심장수술을 받았던 안씨는 경과가 좋아 퇴원을 했고 이후 자택에서 요양중이었다.
지난 연말연시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콘서트를 연 데 이어 지방공연을 다니느라 아내의 수술을 지켜보지 못했던 조용필은 무대에 설 때를 제외하곤 전화기를 놓지 않았다. 수술 직후 “수술이 잘됐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아내의 밝은 목소리를 듣고 한결 마음이 놓였지만 무대에 선 조용필의 마음은 허전했다. 그간 자신의 공연에 빠짐없이 참석해 관객으로서 조언을 아끼지 않던 아내가 늘 앉아 있던 자리가 비어있었기 때문이다.
공연을 무사히 마친 그는 지난 1월4일, 아내를 한시라도 빨리 만나기 위해 서둘러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아내를 만난 그는 아내와 함께 여행계획을 세우면서 꿈에 부풀어 있었다. 다음날 다가올 ‘영원한 이별’을 눈치채지 못한 채.
“형부는 언니가 그렇게 가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어요. 형부뿐만이 아니라 가족 모두 언니의 죽음을 믿지 않을 정도였으니까요. 언니가 죽기 이틀 전 병원에 검진을 받으러 갔을 때도 별 이상이 없는 상태였거든요. 가족들 모두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는 언니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그러니 형부는 오죽하셨겠어요.”
전 미국연방하원의원 김창준의 아내이자 조용필의 처제인 진영씨는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며 눈물을 훔쳤다. 조용필은 안씨의 가족들과 1월8일 미국에서 간단한 장례식을 치렀다. 화장터에서 조용필은 아내의 관을 붙잡고 통곡을 했다. 관이 불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오열하며 쓰러진 조용필을 안씨의 가족들이 끌어안고 진정시켰다.
장례식 내내 식음을 전폐한 조용필은 장례식을 마친 후 쓰러질 것 같은 몸으로 처제 등을 이끌고 집 근처 노래방을 찾았다. 상중인데도 불구하고 그가 노래방에 간 이유는 아내와 함께 살던 집에 도저히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형부는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노래밖에 없으니 (아내를 위해서) 노래를 부르겠다’고 하더라고요. 언니가 좋아했던 노래라면서 ‘그 겨울의 찻집’ ‘산장의 여인’ ‘상처’ ‘언체인드 멜로디’를 부르면서 형부가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이제 내가 어떻게 사냐’고 울부짖더라고요. 노래를 부르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모두 눈물 바다를 이뤘어요.”(안진영)
‘언체인드 멜로디’는 조용필이 결혼식 당시 5단 높이의 대형 웨딩케이크를 안씨와 나란히 자른 후 결혼식에 참석한 외국 손님들을 위해 선사했던 팝송이라 가족들의 슬픔이 더 컸다.
지난 1월10일 오후 5시44분. 한국에서 공연을 마친 후 아내의 수술경과가 좋다는 소식을 듣고 출국했던 조용필은 화장한 아내의 유골과 함께 엿새 만에 귀국했다. 오후 6시10분쯤 그룹 ‘위대한 탄생’의 멤버인 최희선씨가 고인의 영정을, 이태윤씨가 안씨의 유골함을 앞세우고 조용필과 입국장을 나섰는데, 많은 팬들이 모여 슬픔을 함께했다.
조용필의 팬클럽연합회인 ‘필 21’ 회원 1백여명은 1월10일 오후 3시부터 인천공항에 검은색 상복을 입고 조용필을 기다렸다. 이들은 모두 가슴에 검정 ‘근조’ 리본을 달고 흰 국화꽃 한송이씩 들고서 조용필이 공항을 빠져나갈 때까지 길게 늘어서 함께 오열했다. 30년 동안 한결같이 조용필의 팬이라는 주부 김영남씨(42·경기도 송탄시)는 “오빠가 쉽게 슬픔을 털어버리기 힘들겠지만 방황하지 마시고 아내의 몫까지 열심히 살았으면 좋겠다”며 눈물을 훔쳤다.
귀국 직후 곧바로 빈소가 마련된 서울 강남성모병원으로 향한 조용필은 고인의 유해를 안치한 뒤 기자회견을 갖고 고인을 기렸다.
심경을 묻는 질문에 조용필은 “지금은 뭐라고 할말이 없다. 모레까지 일(장례식)을 끝내놓고 안정을 되찾아야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현실을 인정해야겠다는 마음뿐이다”고 말했다.

심장마비로 ‘떠난’ 아내 가슴에 묻고 유산 전액 기부한 조용필

장례식 내내 식음을 전폐하고 아내의 빈소를 지키던 조용필씨.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면 부부지간이었지만 남들이 질투할 만큼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사랑했습니다. 모든 일을 서로 상의했고, 나는 모든 것을 와이프에게 맡겼습니다. 사실 갑작스럽게 이런 일이 벌어졌지만 나에게는 없으리라 생각했던 일이었습니다. 아내는 고마운 사람이고 내 마음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88년 첫 부인 박지숙씨와 이혼한 조용필은 홀로 지내다 93년 6월 미국 애틀랜틱시티에 공연차 갔다가 친누나의 소개로 재미동포 사업가 안진현씨를 처음 알게 됐다. 이후 두사람은 8개월의 만남 끝에 94년 3월 25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백년가약을 맺었다.
‘쉰넷’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고인은 바깥에서는 능력 있는 사업가였고 안에서는 남편 조용필의 그림자이기를 자청했던 여성이다. 36년 전 가족과 함께 미국 워싱턴으로 이민간 안씨는 텍사스 주립대와 조지워싱턴대 대학원을 졸업한 뒤 무역업계(오퍼상)에 투신했다. 쾌활한 성격에 리더십이 뛰어나 사업에서도 남다른 수완을 발휘해 조용필과 결혼할 때 이미 적지 않은 재산을 축적해놓은 것으로 알려졌던 안씨. 워싱턴 정가의 유명 정치인들과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한때 로비스트로도 활동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지난 94년 3월 결혼식 당시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의 직계 인척이 하객으로 참석해 이같은 세간의 궁금증을 부채질하기도 했었다.
안씨는 이처럼 미국에서는 여장부였지만 조용필 옆에서는 내조에만 힘을 기울인 전형적인 주부였다. 결혼한 뒤에는 사업을 거의 정리하고, 음악 외에는 모든 일에 무심한 남편을 대신해 회사(YPC기획)와 가정의 안팎을 조용히 챙겼다.
“형부는 언니가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싫어했어요. 언니도 활달한 비즈니스 우먼이기는 하지만 형부의 뜻에 따라 조용히 숨어서 내조를 했어요. 형부는 개인적인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내비쳐지는 것을 원치 않았어요. 자신의 말이 다른 뜻으로 포장되기도 해 불편해하는 것 같았어요. 가족들과는 많은 대화를 나눴는데 오랫동안 스타 생활을 해서 그런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을 하는 것 같더라고요.”(안진영)
조용필은 기자회견 도중 눈물을 훔치며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결혼상대자라는 것을 서로 느꼈을 만큼 운명적인 만남이었다”고 털어놓았다.
“나와 너무 잘 맞았어요. 내겐 아내 이상의 존재였고요. 올해가 아내와 만난 지 10년째 되는 해입니다.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모르고 아내와의 ‘10년’을 기념하는 노래를 지난해부터 만들려고 했습니다. 세계 유명가수들이 아내를 위해 노래를 불렀던 것처럼 나도 언젠가는 (아내를 위한 노래를) 만들어야겠다고 했는데…. 어떤 식으로 나오게 될지 모르겠지만 아내를 위한 노래는 만들게 될 것입니다.”
조용필은 아내에게 유독 따뜻한 남자였다. 2000년 말 한 공연장에서의 일화. 앞자리에 앉아 남편의 공연을 보던 안씨는 옆자리에 앉아 있는 친구에게 쪽지를 펼쳐보였다. 조용필이 아내에게 보낸 연서였다. ‘사랑하는 진현에게’로 시작하는 이 연애편지에는 ‘사랑한다’는 말이 여러 번 들어있었다. 남편의 사랑이 듬뿍 담긴 연서를 친구에게 보여주는 안씨의 얼굴엔 함박웃음이 묻어났다.
두 사람은 각자의 일 때문에 미국 메릴랜드와 서울 서초동에 집을 마련해놓고 떨어져 지내는 시간도 많았다. 조용필은 공연이 없을 때는 미국 메릴랜드주에 있는 집에서 지냈다. 그는 아내를 따라 장을 보러 다니면서 “이렇게 사는 것이 평범한 한 남자의 삶”이라며 행복해했다.
이들은 결혼식 당시 “아이를 몇이나 낳겠느냐”는 질문에 안씨는 “용필씨와 상의하겠다”고 한 반면 조용필은 “하나만이라도 있었으면 한다”고 대답해 좌중에 웃음이 쏟아졌지만 늦은 나이에 만난 이 부부 사이엔 아이가 없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면서 조용하지만 속 깊은 사랑을 나누며 살아왔다.

심장마비로 ‘떠난’ 아내 가슴에 묻고 유산 전액 기부한 조용필

빈소에는 연예계 선후배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이문세, 신승훈, 봄여름가을겨울 등을 비롯해 박진영, 비, 그룹 god의 박준형 손호영 윤계상 김태우, 그룹 신화, 강타, 장나라, 왁스, 자두 등 국내 가요계에서 내로라 하는 톱스타들이 조문을 했다.
평소 고인과 각별한 친분을 쌓아온 탤런트 김수미는 빈소를 찾아 “7개월 전 그녀를 만난 게 마지막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면서 안타까운 심경을 감추지 않았다.
“같은 동네에 살아서 그이(안진현)와 잘 어울리곤 했어요. 그 날(7개월 전) 만났을 때 안진현씨가 무릎이 많이 저리고 아프다고 하더라고요. ‘침 잘 놓는 곳이 있으면 소개를 시켜달라’고 하면서 ‘다리 아픈 게 심장이 나쁜 것과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어요. 연초에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조용필씨 공연에 갔다가 그녀가 안 보이기에 ‘왜 안 왔냐’고 (조용필에게) 물었더니 ‘그냥’이라며 싱겁게 대답하고 말더라고요. 아파서 수술한 줄도 모르고 ‘혹시 부부싸움한 거 아냐’라고 되물었더니 그저 웃고 말대요.”
김수미는 고인에 대해 “요즘 여자답지 않게 남편에게 순종하고, 남편밖에 모르는 여자였다”면서 “사업가였지만 남편을 위해 내조하는 데 아낌없이 헌신했다”고 회고했다.
“남편을 부를 때마다 ‘여보, 여보’ 하고 얼마나 다정하게 불러댔는지 몰라요. 남편을 정말 하늘처럼 받들고 살더라니까요. 조용필도 ‘내 마누라, 내 마누라’ 하면서 아내를 애틋하게 챙겼어요.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시샘 날 정도였지요. 두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이 보기 좋았는데…. 이제 그렇게 사랑하는 아내를 떠나보내고 어떻게 살지 모르겠네요.”
채 말끝을 잇지 못한 김수미의 눈자위가 붉어졌다. “한국에 있을 때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정성껏 남편의 밥상을 차리는 등 조용필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했던 사람”이었다며 비통해한 김수미는 말없이 조용필의 손을 붙잡고 굵은 눈물을 떨궜다.
빈소에서 만난 코미디언 최병서는 “(조)용필이 형이 고집이 세고 술을 많이 마시는 편이었는데 형수가 ‘술 조금만 드세요. 여보’라고 말하면 그 좋아하던 술잔을 내려놓곤 했다”면서 “용필이 형에게 더없이 좋은 아내이자 친구였다”며 고인의 죽음을 애석해했다.
고인은 지난 1월11일 오후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에 있는 조용필의 선산에 조용히 묻혔다. 한줌의 재가 된 아내가 땅에 묻히는 모습을 차마 곁에서 지켜보지 못한 조용필은 이내 자리를 피했다. 조용필은 “안정을 찾은 뒤 1월 하순경 미국에 가서 정리할 것들을 정리하고 돌아오겠다”고 했다.
“내가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하고 어려워할 때 아내가 저에게 대해줬던 모습들이 모두 기억에 남아요. 음악인이기 때문에 다시 열심히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고인에 대한 보답이 아닐까 합니다.”
이후 조용필은 안진현씨로부터 상속받은 유산 4백만달러(상속세 50% 공제시 실상속액 2백만달러) 전액을 사회사업에 쓰겠다는 뜻을 밝혔다.
사랑하는 아내를 가슴에 묻은 조용필. 그가 큰 슬픔을 딛고 일어나 팬들과 아름다운 노래로 함께 빨리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여성동아 2003년 2월 4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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