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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그후로도 오랫동안

‘듀스’의 김성재 사망 7주기 맞아 ‘의문과 한’ 털어놓은 어머니와 동생

■ 기획·이영래 기자(laely@donga.com) ■ 글·최숙영 ■ 사진·정경택 기자

2003. 01. 14

지난 11월20일로 ‘듀스’의 김성재가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지 정확히 7년이 됐다. 이날 어머니 육영애씨는 김성재와 동생 김성욱의 홈페이지에 죽은 아들을 추모하는 ‘눈물의 편지’를 남겼다. 죽은 아들을 그리워하는 어머니의 애절한 심정, 형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으로 방황하다 두번째 앨범을 내고 가수활동을 하는 동생 김성욱, 두 사람의 가슴에 맺힌 슬픔과 한.

‘듀스’의 김성재 사망 7주기 맞아 ‘의문과 한’ 털어놓은 어머니와 동생

고 김성재의 어머니 육영애씨는 아직도 아들의 홈페이지에 ‘눈물의 일기’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2003년은 ‘듀스’ 데뷔 10년이 되는 해다. 듀스는 죽마고우인 이현도와 김성재가 92년 탄생시킨 국내 최초의 본격 힙합듀오로 앨범 <나를 돌아봐> <우리는> <굴레를 벗어나>에 이르기까지 테크노 사운드와 격렬한 댄스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한창 인기 절정기를 구가하던 듀스는 95년 7월, 이현도가 프로듀서로만 남겠다고 선언, 해체를 맞았다. 넉달 후 김성재는 미국에서 솔로 앨범을 녹음해 귀국, 컴백을 선언했으나 이튿날 밤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됐다. 그의 유작은 당시 50만장이 팔렸고, 팬들은 사후 7년이 되는 지금까지 추모의 념을 이어오고 있다.
그리고 김성재가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지 7년째 되던 지난 11월20일, 어머니 육영애씨(56)는 김성재와 동생 김성욱(28)의 홈페이지에 이 세상에 없는 아들 김성재에게 편지를 썼다.
지금도 죽은 아들 이야기만 나오면 눈시울이 붉어지는 어머니
“어제가 30년 만에 떨어지는 유성들의 밤이었다. 또 30년을 기다려야 그 유성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그중 하나를 너라고 믿는 엄마였다. 그 유성의 성질처럼 넌 한순간에 모든 걸 있는 대로 보여주고 사그라지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듯싶다. 그렇게 짧게 내 곁에서 모든 걸 다 해주고 훌쩍 가버렸잖아. 내가 좀더 깊이 생각해서 널 잘 간수했어야 했다는 후회가 든다. 하늘이 널 데려가려고 벼르고 있었음을 눈치채지 못한 내 불찰이 컸다(후략).”
김성재를 죽인 범인이 누구인지는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은 상태. 때문인 듯 어머니 육씨는 편지에서 김성재를 죽인 범인에 대해 여러가지 상념들을 털어놓고 있기도 하다.
“선녀가 나무꾼의 아내로 별수없이 살다가 기회가 오니…. 그 얘기가 맞는 거였어. 널 내게 떨어뜨려 오매불망 데려가려던 그 누구가 그만. … 꾸며낸 얘기가 아닌 현실이었는데, 꿈도 아니었는데 정말 모를 일이 많아. … 그 백댄서(흑인) 둘이 한국이 처음이라 무서워 잠도 못 자서 리더인 네가 같이 있어줘야 한다며 너는 갔다. 그 약속을 지키겠다는 마음이 네 목숨을…. 그 애가 거기에 매일 오는 줄 몰랐던 게….”
‘그 애’는 누구를 지칭하는 것일까? 아마도 당시 용의자 김모양을 가리키는 듯싶다. 당시 김성재의 애인으로 알려졌던 김양은 96년 법원으로부터 “사망시각을 단정할 수 없고 살해 동기가 뚜렷하지 않은 점, 살해 방법으로 피해자에게 투여된 것으로 주장하는 황산마그네슘 3.5g과 졸레틸 1병이 신체 건강한 청년을 사망에 이르게 할 정도의 분량이라고 볼 수 없는 점, 사고사나 제3자의 범행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검찰 주장의 살해 장소나 살해 방법 등도 부자연스럽다는 점 등에 비추어, 합리적 의심이 들 만한 충분한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로부터 7년, 김성재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듀스’의 김성재 사망 7주기 맞아 ‘의문과 한’ 털어놓은 어머니와 동생

고 김성재와 동생 김성욱은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우애를 보였다. 어머니 육씨는 “두 형제가 전생에 부부였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부모가 죽으면 땅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했던가. 김성재의 어머니 육영애씨는 아직도 아들 얘기만 나오면 금세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녀는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또 눈물이 나오네요.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낮게 웅얼거리며 거푸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냈다. 그러나 김성재의 어머니와 동생은 김성재의 죽음에 얽힌 의문에 대해서는 더 언급하지 않았다. 이제 남은 사람이 꿋꿋이 잘 살며 그를 보내줘야 한다고 믿는 듯했다.
7년 전 아들의 장례식을 치르면서 어머니 육씨는 경북 문경새재에다 유골을 뿌리고 왔다. 언젠가 김성재가 살아 있을 때, 그곳으로 촬영을 갔다 와서는 “엄마, 경치가 예술이야. 우리도 성욱이랑 같이 셋이서 갔다 오자”고 말해놓고선 못 갔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잊힐 것 같았는데 더 사소한 것까지 생각나는 거 있죠. 문경새재에 가서 성재의 유골을 뿌렸던 날에도 밤하늘에 별들이 가득했어요. 성재가 살아 있었을 때 그렇게 별을 좋아하더니, 그래서 티셔츠도 별 그림이 그려진 티셔츠만 입더니, 저 세상으로 가는 날에도 별들이 많더라고요. 저는 언덕에 올라가 밤하늘의 별빛 아래서 성재의 유골을 뿌리며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그녀의 목소리가 흐려졌다. 생각하면, 어머니 육씨에게 그는 딸처럼 살갑던 아들이었다. 어렸을 때도 안아주면 “엄마, 꼭 안아줘. 꼭꼭꼭!” 하고 애교를 부렸고, 밖에 나갔다가 집에 들어오면 “엄마! 나 왔어” 하고 온 집안을 떠들썩하게 만들며 밖에서 일어난 일을 재잘재잘 이야기하던 아들. 그런 아들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아픈 것은 세월로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안타까움은 동생 김성욱도 예외는 아니다. 97년 1집 <너와 함께>로 가수로 데뷔, 2002년 9월 2집 를 내는 등, 형의 뒤를 이어 가수로 활동하고 있는 두살 터울의 동생 김성욱은 형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성장했다.
“이젠 살해범이 누구냐에 연연하지 않을 것”
“어릴 때였을 거예요. 성재는 넘어지면 ‘왕∼’ 하고 울음을 터뜨리는데 성욱이는 절대 울지 않았어요. 누가 지 형을 때리면 ‘왜 우리 형 때리냐’면서 끝까지 쫓아가서는 때려주고 왔죠. 커서는 반대로 성재가 성욱이를 끔찍이 생각해서 누가 성욱이를 건드리면 가만히 놔두지를 않았어요. 공연을 하고 밤늦게 들어와도 자기 전에는 꼭 성욱이 방에 들어가서 잠자는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며 ‘음, 이 자식은 내가 봐도 잘생겼단 말야’하고 대견해했어요. 가끔씩은 성욱이 몰래 지갑을 열어보고 ‘돈도 없잖아’하며 슬그머니 용돈을 넣어주기도 했고요. 그럴 때마다 저는 ‘니네 둘은 전생에 부부였나 보다’라는 말을 했어요. 누가 봐도 부러워할 정도로 형제애가 좋았거든요.”
그래서였을까, 김성욱은 형이 어느날 갑자기 의문의 죽음을 당하자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때로는 아버지 같고 때로는 친구 같았던 형이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그동안 자신을 단단하게 지켜주었던 울타리 하나가 없어진 것 같은 헛헛함에 사로잡혔다.
“제가 97년에 <너와 함께>라는 1집 앨범을 내고 가수활동을 하면서 형의 빈자리를 많이 느꼈어요. 형은 어떻게 이렇게 힘든 일을 해냈을까, 옆에서 볼 때는 몰랐는데 내가 직접 해보니까 가수라는 직업이 참 힘든 직업이더라고요. ‘형은 일이 술술 잘 풀렸던 것 같은데 왜 난 하는 일마다 꼬일까…’라는 생각이 들면 더 괴로웠어요. 그때는 술도 많이 마셨어요. 요즘은 술보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인데 형이 살아 있었다면 아마 많은 힘이 됐겠죠.”

‘듀스’의 김성재 사망 7주기 맞아 ‘의문과 한’ 털어놓은 어머니와 동생

김성재가 사망한 후 두 모자는 3~4년을 넋놓고 멍하니 살았다.


후회되는 것이 있다면, 형에게 사랑한다는 고백을 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한다. 당시 군대에 입대해서 군 생활을 하고 있었던 그는, 김성재가 ‘듀스’ 해체 이후 솔로로 데뷔할 무렵, 첫 무대를 갖기 며칠 전에 군대에서 형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동안 틱틱거리기만 하고 살갑게 잘해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려서 미안하다’는 내용의 편지였다. 그러나 김성재는 그것을 읽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받아보긴 했지만 공연 준비로 바빠서 미처 읽어볼 새가 없었던 것이다.
“형이 제 편지를 못 읽고 갔다는 게 마음이 아파요. 군대에서 그 편지를 쓸 때 형이 보고 얼마나 좋아할까, 내심 기대를 했었거든요. 매년 팬들이 추모제를 열 때마다 제사상에 그 편지를 올려놓는데 어머니는 지금까지 읽어보지 않으셨어요. 마음이 아프시다고요. 솔직히 형이 세상을 떠난 뒤로는 저 자신도 많이 변한 것 같아요. 점점 형을 닮아간다고 할까요. 게다가 새롭게 깨달은 것은 상대방이 싫든 좋든, 내 감정을 먼저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방도 내 마음을 몰라준다는 거예요. 형이 살아 있을 때, 내가 형을 싫어했던 게 아니었는데 형은 내가 자기를 싫어한다고 오해했던 것 같아요. 술만 마시면 내 방으로 와서는 ‘너, 나 싫어하지?’하면서 울었어요. 아마 형이 ‘어디 같이 가자’고 하면 내가 ‘싫다’고 하고, 무슨 말을 하려고 하면 ‘시끄럽다’고 면박을 줘서 그렇게 생각한 모양이에요. 실은 내가 속으로 얼마나 형을 좋아했는지 모르고서 말이에요.”
남은 자의 회한일까. 살아 있을 때 잘 못해준 것만 새록새록 기억이 난다고 한다. 어머니 육씨도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다. 아들 김성재가 그토록 오토바이를 갖고 싶어했는데 사주지 않았던 것, 그것이 후회가 된다면서 그는 다시 눈물을 글썽거렸다.
“성재가 (저 세상으로) 가고 난 뒤 몇년간을 넋놓고 멍하게 살았어요. 한 3∼4년을 그렇게 살았던 것 같아요. 2000년이 되면서 조금씩 정신을 차리게 됐어요. 털어버릴 건 털어버리고, 간직할 건 간직하면서 이제부턴 똑똑하게 인생을 살자고 나 스스로 다짐했지요. 죽은 성재만 그리워할 것이 아니라 이승에서 남은 날들을 잘 살아야 한다고. 그래야 나중에 죽어서 성재를 만나도 떳떳할 것 아니에요.”
어머니 육씨처럼, 김성욱도 이제는 형의 죽음으로 인해 방황하지 않기로 했다. 가족이 아니니까 세월이 가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히는 것은 인지상정. 끊임없이 죽은 형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면 사람들이 ‘못났다’고 할 게 뻔하므로 형을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결심했다. 김성욱은 지난 9월 라는 2집 앨범을 발표하고 가수로 활동하면서 현재 단편영화에도 출연중이다.
어머니 육씨는 “아들 성재는 세상에 없지만 두 아들한테 그동안 받은 사랑은 컸다. 자식들한테 그토록 ‘사랑한다’는 말을 들은 어머니는 이 세상에서 아마 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빙그레 웃어보였다.
“참 신기한 게 성재 생일 때는 날씨가 맑은데 추모제 때는 비 아니면 눈이 와요. 성재도 우리와 떨어져서 사는 것이 슬픈가 봐요. 나는 성재가 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왜냐구요, 보고 싶을 때마다 하늘을 쳐다보면 되잖아요.”
어머니 육영애씨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날따라 날이 잔뜩 흐린 것이 금방이라도 눈이 올 것만 같았다. 그녀는 낮게 혼자말처럼 이렇게 말했다.
“이승에서는 성욱이하고 열심히 살다 보면 언젠가는 저 세상에서 성재를 만날 수 있겠지요. 두 아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모자는 말없이 두손을 꼭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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