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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가슴 뭉클한 사연

<아침마당> 시청자 감동시켜 팬사이트까지 생긴 박성탄군의 효성

“아빠는 전과자, 엄마는 정신지체… 그래도 함께 있어 행복해요”

■ 기획·최호열 기자(honeypapa@donga.com) ■ 글·박진숙 ■ 사진·정경택 기자

입력 2003.01.14 15:19:00

KBS <아침마당>의 ‘가족노래자랑’에서 화려한 춤과 노래를 선보여 장안에 화제를 일으킨 박성탄 부자. 그런데 이들 부자에게 남다른 아픔과 이를 극복한 가족사랑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져 진한 감동을 주고 있다. 25년간 감옥을 제 집처럼 드나든 전과자 아버지와 정신지체 장애인 어머니, 그리고 열세살난 성탄이 가족의 가슴 뭉클한 사연.
 시청자 감동시켜 팬사이트까지 생긴 박성탄군의 효성

지난해 12월7일 KBS ‘가족노래자랑’ 코너에서 3연승을 한 엿장수 부자 박영종씨(56)와 성탄군(13). 그동안 이들 부자는 특이한 춤과 노래를 선보여 시청자들로부터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이렇게 서로 장단이 착착 들어맞고 밝게만 보이는 성탄이 부자에겐 남다른 아픔과 이를 극복한 가족사랑이 있었다. 25년간 감옥을 들락거린 아빠와 정신지체 엄마, 단칸방에서 근근이 끼니를 이어갈 정도로 어려운 집안 형편 속에서도 착하게만 자란 성탄이의 사연이 알려지며 시청자들은 가슴 찡한 감동을 느꼈다.
성탄이 가족을 만나기 위해 그들의 집으로 향했다. 시장길 한 귀퉁이 어두운 골목 안으로 한참을 들어가 허름한 문을 열자 바로 방문이 나오는 단칸방이 나왔다.그들의 보금자리였다. 그나마 오래된 텔레비전과 냉장고, 옷장 등이 안 그래도 좁은 방안을 차지하고 있었다.
아버지 박씨는 오늘 선물 받은 겨울 점퍼를 아내 최혜연씨(37)에게 보여주며 누가 주었는지 자세히 설명했다. 그러고 나서 그들 세 가족은 옷가지들을 가운데 모아두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선물로 받은 점퍼에 대한 감사기도였다. 그들은 그렇게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면 꼭 먼저 기도를 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썼다.
“아빠를 도와드릴 수 있어서 즐거워요. 춤을 추다가 길에서 친구들을 가끔 만나기도 하는데 괜찮아요. 아빠 일을 도와드리는 거니까 부끄럽지 않아요. 아빠는 힘드신데도 저랑 엄마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계시잖아요. 하지만 한번은 경찰아저씨가 아빠를 잡아가려고 했던 일이 있었어요. 미성년자를 고용했다면서요. 그래서 제가 매달리면서 아빠 일을 도와드리는 것도 죄냐고 아빠 데려가지 말라고 사정할 때는 조금 슬펐어요.”
아빠 일 도우며 집안 살림도 하는 성탄이
 시청자 감동시켜 팬사이트까지 생긴 박성탄군의 효성

성탄이는 어려운 집안 형편을 잘 알기에 뭘 해달라고 조르는 법이 없다고.

아빠와 함께 일하다 보면 이런 일은 흔했다. 왜냐하면 박씨가 손자를 볼 나이에 아들을 키우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박씨 입장에서 이런 일들은 아들 가슴에 못을 박는 일이었기에 앞으로 성탄이 없이 혼자 일을 할 작정이라고 했다.
“우리가 춤출 때 성탄이 친구나 또래들이 웃으면서 쳐다보는 모습을 보면 눈물이 나요. 아빠 일을 돕는다고 친구들과 놀지도 못하고, 공부는 밤에 하고 그래요. 그런데 아무리 오지 말라고 해도 서울은 말할 것도 없고 성남, 여주, 이천 할 것 없이 엄마랑 같이 찾아와요. 너무 대견해요. 하지만 아이에게 못할 짓 시키는 것 같아서 언제나 미안하죠.”
성탄이와 아빠는 개업식이나 회갑연과 같은 특별한 이벤트가 필요한 곳이면 어디라도 찾아가는 엿장수다. 성탄이가 탬버린과 북을 챙기고, 아빠가 각설이 복장을 하고 나면 준비 끝. 신나게 엿장수 가위질을 해대며 손님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면서 성탄이와 아빠는 노래와 현란한 춤을 선보이는 것이다.
성탄이는 방과후에 틈틈이 아빠 일을 돕는데, 이 외에도 성탄이가 할 일은 또 있다. 집안 살림을 도맡아하는 것이다. 정신지체 장애인 엄마를 대신해서 이미 일곱살 때부터 해온 손에 익은 솜씨였다.
“된장찌개, 김치찌개, 계란찜, 두부조림을 잘해요. 다른 사람들이 하는 거 보고 따라하다 보니까 잘하게 되었어요. 아빠 일을 돕지 않는 날에는 학교 끝나면 집에 와서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엄마랑 산책도 나가고 그래요.”
열세살 아이가 하기에는 힘든 일 투성인데도 힘들지 않다고 말하는 성탄이는 정말 보통 아이들과는 달랐다. 언제나 아빠, 엄마가 먼저였다. 그리고 어려운 살림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한번도 뭘 해달라고 조르는 법이 없었다. 사실 월 1백만원도 안되는 수입으로 방세, 악기 임대료, 전기세, 수도세, 생활비까지 충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 이런 사정을 아이는 너무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전에 성탄이가 학교에서 수학여행을 가는데 자기는 가기 싫다며 학교에 낼 수학여행 안가는 사유서를 써달래요. 가라고 해도 고집을 꺾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사유서를 쓰긴 썼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안되겠다 싶어 다음날 아침에 ‘성탄아, 너 여행 보내줄 돈은 있으니까 가라’고 했더니 아이가 펑펑 울더군요. ‘아빠, 우리한테 그런 돈이 어디 있어요’ 하면서 말이죠.”

 시청자 감동시켜 팬사이트까지 생긴 박성탄군의 효성

박영종씨 부부의 결혼식 사진(왼쪽). 박씨가 마지막으로 교도소에 들어가기 전 무렵에 찍은 가족사진(오른쪽).


결국 박씨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성탄이의 어른스러움이 부모의 가난 때문이라고 여겨져 박씨의 마음은 항상 미어졌다. 용돈 쓰라고 5백원을 주면 “아빠, 노래부르느라 힘드실 텐데 음료수라도 사드세요”하며 한쪽으로 밀쳐놓는 아이였다. 어디 그뿐인가. 맹장이 터졌을 때도 그 고통을 이기며 아프다는 소리 한마디 없이 혼자 참기만 하던 아이였다. 그런 성탄이를 박씨는 “예수님이 성탄절에 태어나면서 보내준 은총”이라고 했다.
방 한쪽에서 성탄이 엄마는 사탕, 귤을 꺼내 먹으며 아이가 뺏어먹는다고 투덜대고 있었다. 성탄이는 빙그레 웃더니 엄마에게 뽀뽀를 하고 대신 귤 껍질을 벗겨 입에 넣어준다.
“우리 엄마는 먹는 것하고 텔레비전을 제일 좋아해요. 엄마는 싸움하는 드라마는 모두 ‘팡팡’이라고 말해요(웃음). 다른 엄마들과는 다르지만 그래도 전 우리 엄마가 좋아요. 혼자서 못하는 것이 많지만 엄마가 웃을 때 제일 행복해요. 제가 춤추고 노래하면 많이 웃으세요. 저를 낳다가 엄마가 아프게 된 거라서 엄마한테 미안하고 더 잘해드리고 싶어요.”
밝게 웃고 씩씩한 성탄이지만 엄마 이야기가 나오자 울음을 터뜨렸다. 자기를 낳은 후 받은 여러가지 쇼크로 엄마가 영원히 5세 아이의 지능으로 살아가게 되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탄이는 엄마를 돌봐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엄마의 머리를 감겨주고, 밥상을 차려주고, 함께 텔레비전을 보며 재미난 이야기도 나누면서 말이다.
전과 10범과 19세 연하 처녀의 가난한 사랑과 비극
언제가 제일 예쁘냐는 질문에 “성탄이가 노래 부를 때 너무 예뻐요”라고 말하는 성탄이 엄마는 “지금처럼만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한쪽 구석에 놓여진 쌀 한 자루 덕분에 성탄이 엄마는 지금 무척 행복하다.
아직 부모 품에서 어리광을 부릴 나이인 성탄이는 어른도 경험하지 못할 너무 많은 일들을 겪으며 살아왔다. 가끔 배고프다고 짜증내는 엄마 때문에 속이 상하면 키우는 강아지 ‘달구’에게 발길질을 하며 화풀이를 대신한다고.
성탄이네의 우여곡절 많은 삶의 시작은 아빠 박씨의 인생에서 출발한다. 젊은 시절 미8군에서 노래를 부르며 가수 생활을 한 박씨는 대마초를 피워 감옥살이를 하면서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 감옥에서 조폭들과 어울리다가 감옥을 나와서 본격적으로 그 길에 들어선 것. 많은 어깨들과 ‘형님’ ‘동생’하면서 그는 천호동 일대를 주름잡는 주먹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25년 동안 감옥을 제집처럼 들락거리며 어느덧 전과 10범이 되었다. 그사이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형제들은 그와의 인연을 끊었다.
“감옥에서는 먹는 것이 참 귀한데 어느날 위문온 사람들이 먹을 것을 주더라고요. 어찌나 맛있던지 먹으면서 너무 고맙게 느껴지더군요. 그때부터 누군가에게 고마워하는 마음을 가지면서 신앙을 갖게 되었어요.”
그는 신앙의 힘으로 과거를 청산할 수 있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몸 담아왔던 주먹세계의 일을 하루아침에 버릴 수 있었던 것이 마치 기적처럼 느껴진다는 그는 감옥에서 나와 한 기도원에서 숙식을 하며 노동을 했다. 한달간 묵묵히 자기 자신과 싸움을 하면서 솟아오르는 유혹을 물리친 그는 ‘이젠 어딜 가도 바르게 살아갈 수 있겠다’는 목사의 허락을 받고 다시 천호동으로 돌아와 포장마차를 시작했다. 같이 일하자는 동생들의 권유를 이를 악물고 뿌리쳤다.
그 무렵 박씨는 같은 교회에 다니는 25세의 꽃다운 처녀인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되었다. 최씨가 박씨의 어려운 처지를 알고 간간이 집에 들러 집안 청소를 해주거나 밥을 해주면서 정이 들었다. 어느 날 최씨는 19년이나 나이차이가 났지만 “아저씨가 바른 길로 간다면 결혼하겠다”며 사랑고백을 했고, 두 사람은 최씨 집안의 거센 반대를 물리치고 결혼했다.

 시청자 감동시켜 팬사이트까지 생긴 박성탄군의 효성

박영종씨는 시장에서 손님을 끄는 호객행위를 위해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처갓집에서 아내 머리를 깎으면서까지 반대를 했어요. 당연했죠. 그래도 아내는 집에서 도망나와 저와 결혼했어요. 곱게만 자란 아내는 결혼 후 고생을 참 많이 했어요. 밤에 포장마차에서 일을 하니까 동상에 걸려 아내 발이 빨갛게 얼었던 날, 둘이 부둥켜안고 울기도 참 많이 울었어요. 어느날은 아침에 일어나 보니 먹을 게 하나도 없더라고요. 그때 아내는 임신중이어서 잘 먹어야 하는데. 그래서 시장으로 무작정 나갔더니 우동 한 그릇이 고스란히 버려진 채 얼어 있더군요. 그것을 주워 깨끗하게 씻고 끓여서 먹였던 일도 있고, 족발집에서 찌꺼기로 남은 고기를 모아달라고 부탁해서 받아다가 먹이기도 했어요.”
박씨가 지방으로 일하러 간 사이 아내는 아이를 낳았다. 성탄절이었다. 그가 돌아왔을 때 근 열흘을 병원에서 혼자 지낸 아내는 이미 정신지체 상태가 되어 있었다.
“그때까지도 아내 집에서는 저와의 결혼을 인정하지 않고 아이를 지우라고 다그치곤 했어요. 그래도 안되니까 아이를 낳으면 데려가겠다고 했어요.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에서 혼자 아기를 낳았는데 아기가 신생아실로 보내져 엄마와 떨어지게 되니까 친정에서 데려간 줄 알고 쇼크를 받았나봐요. 기가 막힐 노릇이었죠.”
그때부터 아내는 다섯살 지능을 지닌 어른이 되어버렸고 박씨 가족의 고난은 시작되었다.
“구청단속으로 포장마차 일을 못하게 되어 구두닦이, 커피 장사 등 안 해본 일이 없어요. 자기 몸도 돌보지 못하는 아내와 갓난아기를 항상 데리고 다니면서 일을 했죠. 그러다 시장으로 손님을 불러들이는 호객행위 일을 하게 되었어요. 비록 일당 만원을 받았지만 좋아하는 노래를 부를 수 있어 만족스러웠어요.”
젊어서는 가수, 늙어서는 목사가 되는 게 꿈인 성탄이
기타와 하모니카를 메고 카우보이 복장을 한 채 손님을 시장으로 불러들이는 아빠의 모습을 보고 자란 성탄이는 자연스럽게 노래와 춤을 익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안정된 생활도 잠깐, 속초로 친구를 만나러 간 박씨가 뜻밖에 교통사고를 내고 말았다. 운명의 장난인지 사고는 뺑소니로 처리되고 어렵게 마련한 합의금을 친구가 가지고 달아나버려 그는 또다시 교도소에 들어가야 했다. 성탄이가 7세 때의 일이다.
“아내와 아이 걱정에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어요. 그런데 이 먼 속초까지 어떻게 찾아왔는지 어린 성탄이가 엄마를 데리고 왔더라고요. 아내는 울면서 자기도 감옥에 들어가겠다며 매달렸어요. 둘은 그곳에서 매일 아침 절 면회하고 점심은 교도관들이나 면회온 사람들이 사주는 걸로 떼우고, 오후에 다시 한번 면회하고, 저녁이 되면 대기실에서 쭈그리고 잤어요. 나중엔 저와 같이 감옥에 있는 사람의 친척이 데려다가 잠을 재워주었죠.”
그렇게 며칠을 보내고 박씨는 대구교도소로 보내졌다. 그가 이감되던 날을 성탄이는 잊지 않고 있다.
“눈이 많이 오던 날이었는데 엄마랑 같이 아빠가 탄 버스를 쫓아가다가 미끄러져 넘어졌어요. 그리곤 버스가 너무 빨라서 더는 따라갈 수가 없었어요. 아빠랑 헤어진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슬퍼서 엄마랑 주저앉아 막 울었어요.”
성탄이는 이때부터 엄마를 돌보며 홀로 사는 법을 익혔다. 다행히 이들 모자를 지켜보던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지만 일곱살짜리 아이에게는 버거운 일이었을 것이다.
“아내가 불러준 대로 성탄이가 쓴 편지에는 ‘배고파요, 교도소 갈 거예요, 면회가게 돈 보내주세요’라는 내용뿐이었어요. 정말 피눈물이 났죠. 제가 하도 마음 아파하고 울면서 지내니까 교도관들이 집에 보내주라고 돈을 걷어주기도 했어요. 2년10개월 만에 모범수로 출소해서 집에 가보니까 라면 딱 두개 있고, 거지처럼 살고 있더군요. 그래서 당장 돈을 벌려고 전국노래자랑에 성탄이랑 나갔어요. 인기상을 탔는데 상금이 20만원이었지요. 그날 맛있는 것 실컷 먹고 다시 서울로 올라왔죠.”
다시 새출발을 한 박씨는 8개월간 엿장수 가위질을 연습해 지금에 이르렀다. 이들 가족은 이제 다시는 헤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거리를 떠돌며 살아온 인생이었지만 앞으로 열심히 살아갈 것이라는 박씨는 “성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성탄 아빠가 교도소에 안가는 것”이 소원인 엄마와 “그저 먹고 살만큼만 일거리가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아빠, 그리고 “젊을 때는 돈도 벌고 유명해질 수 있는 가수가 되었다가 나이 들면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목사가 되고 싶다”는 성탄이. 이 세 식구가 저녁이면 벌어온 돈을 꺼내들고 감사의 기도를 하며 먹고 싶은 것 실컷 먹는 알콩달콩 살아가는 그런 날이 날마다 계속되었으면 한다.

여성동아 2003년 1월 4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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