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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부모와 12명의 형제 홀로 부양한 라이동진의 역경을 이긴 삶

■ 기획·이지은 기자(smiley@donga.com) ■ 글·최희정 ■ 사진·이루파출판사 제공

입력 2003.01.14 14:39:00

핵가족 사회가 되면서 가족의 의미가 점점 빛을 바래가는 요즘, 나이 어린 소년이 장애인 부모와 12명이나 되는 자신의 형제들을 부둥켜안으면서 헌신적으로 살아온 이야기가 있어 잔잔한 감동을 준다. 요즘 서점가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책 <가족>의 저자 라이동진이 바로 그 주인공. 보통 사람들은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의 쓰라린 아픔으로 점철된 삶이었지만 그는 한번도 희망을 잃은 적이 없었다.
장애인 부모와 12명의 형제 홀로 부양한 라이동진의 역경을 이긴 삶

중국의 한 영화사는 그의 삶을 영화로 제작할 예정이라고 한다. 사진은 99년 국제청년상공회로부터 ‘10대 걸출상’을 받는 모습.


눈먼 아버지와 중증의 지각장애인 어머니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나 구걸을 하면서 가족을 먹여 살린 대만의 라이동진(43). 그는 자신의 환경을 탓하며 주저앉기보다는 오뚝이처럼 일어나 결국 보통 사람도 일구어내기 힘든 결실을 맺었다. ‘역경은 강한 자를 만든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사람이다.
요즘 서점가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책 은 그가 살아온 날들을 담담하고 솔직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미 대만과 중국, 일본에서는 베스트셀러가 됐고 중국의 한 영화사는 그의 삶을 영화로 제작할 예정이라고 한다. 99년 국제청년상공회가 대만 각계에서 눈부시게 활약한 사람 10명을 선정해 수여하는 ‘10대 걸출상’을 수상하기도 한 라이동진. 그가 살아온 날들은 그야말로 영화 속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다.
“죽고 사는 것은 하늘에 달려 있지만 운명은 자신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요. 눈먼 아버지와 중증 지각장애인인 어머니와 남동생, 그리고 가족을 위해 사창가에 팔려간 큰누나가 없었다면 지금의 저도 없습니다. 비록 온전치 못한 가족이었지만 이들이 있어 저는 더 열심히 살았고 지금 아주 행복합니다.”
“나의 40년 삶은 보통 사람들의 80년만큼이나 길고 느렸고 너무나 고달팠다”는 그의 말처럼 그가 살아온 생애는 보통 사람들은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로 쓰라린 생채기투성이었다.
그는 59년 3월20일 ‘백성공묘’에서 태어났다. 백성공묘란 죽은 사람들을 모셔두는 공동묘지로 그곳은 그의 가족이 둥지를 튼 삶의 보금자리이기도 했다. 엉금엉금 걸음마를 한창 배울 한살 무렵부터 그는 월금(지금의 비파 같은 악기)을 타면서 장님 아버지, 큰누나와 함께 구걸을 하러 돌아다녔다. 중증 지각장애인데다 간질병까지 앓고 있는 어머니는 그들이 돌아올 때까지 늘 기둥에 묶여 있어야만 했다.
두살이 되던 해부터는 40km나 되는 거리를 걸으며 구걸을 한 탓에 보송보송해야 할 그의 발가락에는 늘 물집이 생겼고 발바닥에는 깨진 병 조각을 밟아도 베이지 않을 정도로 단단하게 굳은살이 박혀갔다.
공동묘지에서 태어난 후 두살 때부터 구걸 다녀
장애인 부모와 12명의 형제 홀로 부양한 라이동진의 역경을 이긴 삶

중학교 시절 체육대회에서 상을 받은 후 장제스 동상 앞에서 찍은 사진.

“제가 다섯살이 되던 해부터 어머니가 잇달아 열명의 동생들을 낳았어요. 피임할 줄 몰랐기 때문에 생기면 생긴 대로 낳은 거죠. 그 가운데는 2백일을 채 못 넘기고 죽은 여동생도 있고, 어머니와 같은 중증 지각장애를 앓고 있는 남동생도 있어요. 이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에 하루도 빠짐없이 구걸하러 다녔죠.”
구걸을 하면서 경찰을 피해 도망가던 일, 너무 배고파 남의 집 개밥을 훔쳐먹은 일, 쉬어빠진 음식찌꺼기 사이에서 생선가시를 발라내 동생들의 입 속으로 넣어주는 일은 어린 시절 그의 자연스런 일상이었다. 개한테 물리거나 몸에 상처가 생기면 종종 돼지 똥을 발랐고 배가 고프면 진흙까지 쑤셔 먹었다. 어느 때는 그의 어머니와 남동생이 어린 동생이 싸놓은 똥을 서로 먹겠다고 싸우기도 했다. 여느 아이처럼 한창 사탕이나 빨고 있어야 할 어린 나이에 그가 짊어진 짐은 너무 무거웠다. 그가 하루라도 구걸을 해서 음식을 가져오지 않으면 그의 가족들은 세끼 모두 굶어야 했다. 때문에 그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빈 깡통을 들고 거리에 나가 구걸을 해야만 했다.
그가 일곱살이 되던 어느 여름날, 거리에 가로수가 쓰러질 정도로 태풍이 심하게 몰아쳤다. 어린 몸 하나쯤은 거뜬히 삼켜버릴 정도로 무시무시한 태풍이었지만 그는 구걸을 나가야만 했다. 자신이 구해온 음식만을 목을 빼고 기다리는 가족들을 생각하니 빈 깡통을 들고 집으로 그냥 돌아갈 수도 없었다. 모진 태풍 속을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얻은 것은 고작 사탕수수 2개뿐. 그런 날은 아버지의 사나운 매가 어김없이 그의 등을 내리쳤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한눈을 팔고 구걸을 제대로 하지 않거나 동냥한 게 적으면 지팡이로 있는 힘을 다해 그를 때렸다. 어느 날은 아버지의 매가 무서워 옷 속에 솜을 넣고 매서운 매를 견뎌보려고 했으나 오히려 아버지한테 들켜 발가벗겨진 상태에서 매를 맞아야 했다. 이유도 모른 채 매를 맞다가 오줌을 싸기도 했고 어느 날은 기절해서 깨어나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래도 아버지의 매는 견딜만했어요. 가족을 위한 사랑의 매라고 생각했죠. 아버지한테 매를 맞으면 맞을수록 이를 악물고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이 고통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성공하는 일뿐이라고 생각했죠. 정작 아버지 매보다 저를 더 아프게 했던 일은 저를 학교에 보내기 위해 누나가 사창가에 팔려갔다는 사실이에요.”
어린 시절부터 그와 함께 구걸을 다니며 가족들을 거둬 먹였던 큰누나는 열세살이 되던 해 사창가로 팔려갔다. 그 사실을 안 그는 아버지를 붙잡고 “자신이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며 큰누나를 다시 데려오라고 했지만 이미 선금을 받고 팔려간 큰누나를 데려 온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큰누나가 없자 그가 처리해야 할 집안일이 두배로 늘어났다. 부모님과 동생들 씻기기와 밥 짓기, 대소변 받아내기, 빨래하기 등 초등학생이 감당하기 힘든 집안 일을 모두 해야 했고, 동냥도 큰누나 몫까지 해야 했다.
그중 어머니의 생리를 처리해주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지능지수가 58밖에 안되는 그의 어머니는 생리가 뭔지도 몰랐고 깨끗이 처리할 줄도 몰랐다. 피 묻은 어머니의 속옷을 냇가에서 빨다가 살인범으로 몰려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한 적도 있었다.

장애인 부모와 12명의 형제 홀로 부양한 라이동진의 역경을 이긴 삶

라이동진, 3명의 자녀와 리샤 그리고 앞줄은 백치 동생과 어머니.

“그나마 학교 공부가 저를 버티게 해줬어요. 공부를 하면서 구걸하는 제 자신을 잊고 행복한 미래를 떠올렸죠. 지치면 지칠수록 더욱 공부에 매달렸어요. 구걸하면서 책을 읽고 숙제를 했어요. 하루에 고작 2~3시간 자면서 악착같이 공부한 결과 초등학교 6년 내내 1등을 놓친 적이 없었고 늘 반장을 했죠.”
중등학교를 거쳐 고등직업학교에 진학해서도 그의 주경야독은 계속됐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가 공장을 다니면서 버는 수입으로 더는 구걸하지 않아도 됐다는 것.
고등학교 3학년 때에는 소화기를 생산하는 ‘종메이 회사’에 들어갔고 그곳에서 고지식하게 일만 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한 덕분에 사장에게 인정받아 30세의 어린 나이에 공장장이라는 직함까지 얻었다.
모진 고통을 이겨내며 결국 사회적인 성공을 거둔 그에게 아내 리샤는 하늘이 내려준 천사였다. 리샤를 만나기 전 여러 여자를 만났지만 모두들 그의 성장과정과 지금의 상황을 듣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도망치기에 바빴다고 한다.
“리샤를 만나지 못했으면 지금 제 행복도 절반으로 줄어들었을 거예요. 뼈대 있는 집안에서 외동딸로 자란 리샤는 좋은 조건을 가진 남자들을 마다하고 저를 선택해줬죠.”
그는 지금 아내 리샤와 세 자녀, 어머니, 남동생과 함께 정원이 딸린 예쁜 3층 집에서 살고 있다. 아내 리샤가 늘 어머니를 돌보고 있기에 이제 어머니와 남동생은 쇠사슬에 묶이지 않아도 됐고 자유로이 두발로 걸어 다닐 수 있다. 큰누나도 자신의 집 근처에서 살면서 서로 돕고 보살핀다. 이런 일들이 아직까지 그에게는 꿈만 같다.
지난 40여년 동안 온갖 시련에 굴복하지 않고 꼿꼿하게 일어서 자신의 삶을 개척해온 라이동진. 지금 그의 당당한 모습은 고통 속에서 이룩한 결실이기에 더욱 값지고 소중하다.


여성동아 2003년 1월 4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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