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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이 여자의 선택

40대 미혼모 민들레씨의 감동수기

“스스로 선택한 임신과 출산…, 세상에서 축복받지 못했지만 행복합니다”

■ 글·민들레 ■ 정리·최호열 기자(honeypapa@donga.com)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입력 2002.12.20 10:28:00

올해 신동아 1천만원 고료 논픽션 공모에서 우수상에 당선된 <어느 미혼모의 육아일기>는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2세를 낳아 키우고 있는 한 여인의 고백이다.
미혼모에 대한 온갖 편견과 냉대 속에서도 짓밟혀도 다시 일어서는 민들레처럼 살고 있는 그의 이야기는 진한 감동과 함께 우리들에게 미혼모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저자의 허락을 받아 당선작을 축약해 게재한다. 그의 뜻에 따라 본명 등 구체적인 신상명세는 밝히지 않았다.
40대 미혼모 민들레씨의 감동수기

산부인과 진찰대 위에 조금 떨리는 마음으로 누웠다. 의사는 초음파 진단기에 연결된 마우스를 내 배 위에 얹었다. 마우스의 움직임에 따라 모니터에 아기집 내부가 나타났다. 검은 화면엔 짧게 끊긴 하얀 실선들이 흐물흐물 움직이고 그 한가운데 좀더 뚜렷한 하얀 점이 있었다. 의사는 그 점을 가리키며 말했다. “임신입니다. 축하합니다.”
그 모습은 그대로 한장의 작은 사진으로 출력돼 내게 주어졌다. 나는 그 사진을 수첩 비닐 커버 안쪽에 넣고 다니며 보고 또 보았다. 알 수 없는 감정으로 나는 내내 상기되었다. 이 느낌은 무엇일까. 이것이 바로 충만함일까.
보름 후 다시 병원에 갔을 때 그 점은 작지만 사람의 모습을 온전히 갖추었다. 작은 몸을 웅크리고 내 몸 가장 깊고 은밀한 곳, 그 한없는 고요 속에 홀로 생겨나 오로지 나만을 의지하고 있는 가냘픈 생명.
그러나 나의 임신은 주위로부터 전혀 축복받지 못했다. 내가 결혼하지 않은 독신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이 생명에게 가난과 뿌리가 너무 깊어 헤어나기 힘든 인습의 멍에를 물려주게 될지도 모른다. 이미 병원에서부터 어둠의 한 자락이 너풀댔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현재 임신 3주이므로 수술을 한다면 보름 이내에 해야 합니다.”
은밀히 다가와 건네는 간호사의 말투는 내게 모종의 선택을 재촉했다. 새 생명의 탄성이 들리지 않는 곳, 날카로운 금속성 메스의 냄새가 지배하는 곳. 그것은 살면서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두려움이었다. 그 느낌이 두려워 나는 병원을 바꾸었다.
그토록 원한 임신이었지만 막상 그 꿈이 이뤄지고 대신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현실에 부딪히게 되자 나는 많이 흔들렸다. 우선 배가 불러오기 전에 회사를 그만두어야 할 것이고 당장 경제적으로 어려워질 것이다. 가족은 또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서양에서도 나다니엘 호손이 쓴 소설에선 미혼모인 주인공이 일생동안 가슴에 주홍색 ‘A’자를 달고 형벌의 일생을 살아간다. 이제 내 앞엔 어떤 삶이 놓일 것인가. 또 태어날 아기의 삶은….
마흔을 앞둔 서른아홉살 때쯤부터 나는 생리 날짜에 조바심쳤다. 조금만 늦어져도, 양이 줄어도 ‘폐경기가 되는 게 아닌가’ 걱정했다. 폐경기는 곧 생식능력의 상실을 뜻하고 그것은 2세를 영영 가질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게 아닌가. 마흔이 넘으면서 나는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결혼과 상관없이 생식기능이 살아있을 때 나의 2세를 얻자’는 나의 간절한 소망이 이 사회에서 용인되지 않는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딜레마에 빠졌다. 그러나 나는 내 갈망이 절도나 사기, 유기처럼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는 게 아니라면 규범을 지키기보다는 다시는 기회가 없을 나의 소망이 더 중요하다고 결론내렸다. 배고플 때 밥을 먹어야 하고 목마를 때 물을 마셔야 하는 것처럼 성욕을 포함하는 사랑이 인간의 본능이라면, 그 본능은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채워져야 한다고. 그리고 성행위의 결과로 생겨나는 2세를 원하고 어미의 사랑으로 키워보려는 의지가 있다면 낳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나는 사전 정지작업이라도 하듯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난생 처음 산부인과에 가 임신 가능성을 알아보기도 했다. 의사는 당연히 나를 결혼했으며 불임으로 고통받는 사람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의사는 나팔관도 정상이고 자궁에 특별한 이상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나이 사십이 넘으면 난자와 정자가 결합해 자궁에 착상할 가능성이 그만큼 떨어진다며 왜 진작 병원에 오지 않았냐고 했다.
시험관 아기, 정자은행…, 내 머릿속에는 여러가지 단어가 오갔다.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2세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영화 에서처럼 낯선 도시에서 전혀 모르는 남자를 유혹해 하룻밤 정사를 벌이고 사라지는 방법도 문제다.
적어도 세파에 시달려 고달프고 외로운 마음에 위안을 줄 수 있는 지극히 인간적인 심성의 소유자와 따뜻한 체온을 나누며 사랑으로 2세를 얻을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쁠까. 다들 그런 사람을 만났으니까 결혼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나는 생식기능이 사그라질 위기에 닥치도록 그런 상대를 만나지 못했다. 그렇게 짝을 못 만나 영영 스러져갈 처지에 놓여 있던 내 유전자가 벼랑 끝에서 한 유전자와 결합해 내 안에 새 생명체를 안겨주었다.

산부인과에서 임신했다고 한 순간 기쁨은 잠시, 나는 나의 임신을 정당화하는 논리부터 생각해야 했다. 그것은 앞으로 맞닥뜨릴 수많은 난관에서 나와 아기를 지켜줄 힘이 될 것이다.
태교는 꿈도 못 꾸었다. 내 머릿속은 돈 계산으로 바빴다. 사직서는 언제 내야 적당할까, 퇴직금을 어떻게 활용해야 오래도록 생활에 도움이 될까…. 한편으로 나는 여러가지 상황설정을 해보았다. 만약 결혼하지 않은 내가 만삭이 되도록 회사에 출퇴근하고 출산휴가를 신청한다면 어떻게 될까. 산전휴가 조항엔 결혼 여부를 밝히지 않은 채 임신중의 여자조합원에게 시간외 수당을 제외한 월급여 전액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이 조항에 결혼 여부를 밝히지 않은 것을 미혼의 임신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해석한다면 아전인수식 해석일까. 모자보건법은 꼭 결혼한 경우에만 적용 대상이 될까. 모성은 결혼한 경우에만 인정되는 것일까. 미혼에 출산휴가를 쓴 선례는 없을까.
그러나 내겐 그럴 만한 용기가 없었다. 특별히 모아놓은 재산도 없고 남다른 기술도 갖지 못한 내가 직장을 그만둔다는 것은 ‘밥줄’을 놓는 것이나 다름없다. 더군다나 출산 후엔 혼잣몸이 아니지 않은가. 그럼에도 남이 알아채기 전에 사직서를 냈다. 현실적으로 아무 대안이 없었다. 사직서를 낸 날 서러움을 주체할 수 없어 집으로 오는 좌석버스에서 소리 없이 울었다.
그로부터 출산 때까지 꼬박 다섯달 동안 나는 석양이 지기 전에는 한번도 외출하지 않았다. 하루 종일 집안에서 지내다 어스름 저녁 무렵 헐렁한 점퍼를 걸치고 동네 인근을 산책하는 것으로 운동을 대신했다. 느릿느릿 걸으며 뱃속 아기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밤하늘에 떠있는 달을 보고 건강하고 심지 곧으며 어여쁜 아가를 달라고 빌고, 반짝이는 별을 보고 총명하고 반듯한 아가를 달라고 빌었다.
아기는 의사가 말한 예정일보다 20여일 빨리 세상에 나왔다. 병원 분만실에서도 나의 수난은 계속됐다. 아기는 자궁 속에 머리를 위로 한 채 반듯한 자세로 앉아 있어 제왕절개 수술을 받아야 했는데 수술에는 반드시 보호자의 동의가 있어야 하고, 보호자 자격은 남편이나 시부모 등 시가 쪽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남편도 없고 시가가 있을 리 없는 나로서는 예상밖의 사태에 진통이 심한 상태에서 당직의사와 잠시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수술 전 분만대기실에서의 실랑이로 온 병원에 내가 미혼모라는 소문이 났던지 입원 기간 내내 내게 따가운 시선이 쏟아졌다. 6인용 병실의 다른 환자 보호자들이 소곤소곤 키득거리고 회진하는 의사와 간호사도 신기하다는 듯 나를 한번씩 더 바라보곤 했다.
아기를 본 것은 수술을 한 지 이틀이 지나서다. 링거 줄을 주렁주렁 매단 채 신생아실로 갔다. 메모지에 산모인 내 이름을 써서 유리창에 대자 간호사가 아기를 안고 나왔다. 아기는 잠이 든 듯 두 눈을 꽉 감고 있었다. 눈자위가 퉁퉁 부어오르고 빨간 피부는 조글조글 쭈그러져 있었지만 도톰한 입술 윤곽이며 부드럽게 선 콧대, 둥그스름한 얼굴형이 어디선가 많이 본 듯 낯이 익다.
나는 아가의 얼굴을 한참동안 들여다보았다. 아가는 내가 엄마인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한쪽 눈을 겨우 떠 나를 바라보았다. 누굴까. 저 얼굴은… 신생아실 창문 유리 너머 간호사 품에 안겨있는 아가의 얼굴은, 바로 나였다. 복제라도 한 듯 나를 빼닮은 아기.
입원 엿새째, 마침내 퇴원하게 되었다. 병원 건물 밖으로 나오자 어느새 봄기운이 완연해 훈훈한 바람이 맞아준다. 크레졸 냄새로 꽉 찬, 그보다 더 지독한 사갈(蛇蝎, 뱀과 전갈)의 눈초리로 가득한 병실 밖으로 나온 게 흡사 탈출한 느낌이다. 나는 엿새 만에 맞는 햇살이고 아가에겐 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 맞는 햇살과 바람이다. 나는 심호흡을 하며 이 바람이 아가와 나를 옭아매는 관습과 제도의 올가미를 훌훌 걷어내줄 자유의 바람이었으면 하고 바랐다.

40대 미혼모 민들레씨의 감동수기

미혼모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드라마 ‘고독’ 의 한장면.

아기가 태어난 지 한달이 되었다. 출생신고는 출생 후 한달 이내에 하게 되어 있다. 처음부터 아기를 내 앞으로 올릴 생각이었으며 이를 위해 이미 지난 겨울에 분가, 단독 호적을 취득해놓았다. 팔순을 바라보는 어머니는 “아기의 앞날을 생각해 결혼한 오빠 호적에 올리는 것이 좋겠다”며 출생신고를 잠시 늦춰보라고 했다.
나는 ‘사생아’란 말을 꿈에서도 입에 올리고 싶지 않지만 우리 호적법이란 게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남녀가 2세를 낳았을 경우 남자 호적에 올리면 상대 여성이 생모로 등재되지만, 여자 호적에 올리면 아버지가 없는 사생아로 등재된다. 현행법으로는 내 호적에 올리면 아기는 사생아가 된다. 하지만 엄연히 내 유전자를 이어받은 아기를 남의 호적에 올려 내가 법적으로 엄마가 될 수 없다는 것, 또 아기가 생모를 두고도 다른 사람을 엄마라고 불러야 한다는 것도 문제가 아닌가.
나는 단독호적을 취득해놓은 주소지 구청에 가 출생신고를 했다. 아기는 비로소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가진 인격체로서 이 세상에 실재하게 되었다. 이로써 마흔두해 내가 살아온 여정의 업은 고스란히 아기에게 돌아갔다. 나는 내 삶에 대해 전적으로 내가 책임지고 모든 짐을 내가 지고 가려 했으나 결과적으로 가장 무거운 짐을 아기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구청 문을 나서는데 갑자기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결혼하지 않은 사람도 원하면 자신의 2세를 낳아 잘 기를 수 있어야 하며 이에 법적으로 불이익이 없는 사회라야 진정한 복지국가라고 나는 생각한다. 새삼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가 자문해본다. 나의 아기가 사회의 주역이 되는 시기엔 인습의 굴레가 없는 사회, 사생활의 자유가 보장되고 편견이 없는 사회, 본능의 억제를 강요하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백일을 앞두고 아기는 눈에 띄게 성장했다. 목에 힘이 생겨 완전치는 않지만 목을 가누고, 무언가 자기 의사표시를 하려 애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집 밖으로 산책을 나서면 집에서와 사뭇 다르게 의젓하니 보채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엄마를 알아보는 것이 역력해 눈으로 계속 나를 좇는다. 내가 보이지 않으면 잘 놀다가도 보챈다. 그 간절한 눈빛에 눈물이 난다. “아가야, 아무 걱정하지 말아라. 네가 필요로 하는 한 엄마는 언제나 네 곁에 있을 것이다.”
아기를 키우는 데엔 생각보다 돈이 훨씬 더 많이 든다. 우선 분유 값이 만만찮다. 아기 의류를 비롯해 용품도 가격이 꽤 비싸다. 대부분 저가품을 구입하지만 유모차는 안전을 생각해 20만원의 돈을 들였다. 친지와 담을 쌓고 살다보니 아이 다 키운 가정에서 쓰던 용품을 얻을 수도 없어 대부분의 물품을 구입해야 했다. 한번은 아파트단지 내 재활용품 버리는 곳에 가보았는데, 제법 쓸만한 딸랑이며 소꿉놀이 봉제 인형이 나와 있었다. 그러나 차마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러잖아도 딱한 아가에게 남이 버린 물건을 쓰게 하려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아기는 가끔 자면서 흐느낀다. 어떤 때는 한 맺힌 여인의 흐느낌같이 처절한 소리를 낸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잠든 아기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전생에 대해 어떤 확신 같은 것을 느낀다. 아기가 자면서, 무의식중에 내지르는 흐느낌은 전생과 연결된 전생의 실마리인 것만 같다. 어쩌면 아기는 전생에 이미 나와 연이 맺어져 이승에서 이렇게 만났는지도 모른다. 이번 생에선 저토록 섧게 울 일이 없도록 세심하게 보살피고 아기가 이 사회에서 홀로 설 수 있을 때까지 뒷받침해주어야 한다.
훗날 아기가 자라 ‘나는 누구인가’로 고뇌할 때 나는 무엇으로 그 짐을 덜어줄 수 있을까. 결코 성행위의 부산물이 아니며 내 삶의 목적이었음을, 오랫동안 간절히 기원했음을 어떻게 얘기해줘야 할까. 아이가 자랄 때까지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안정돼야 할 텐데…. 마음이 무겁다. 가진 돈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무언가 길을 강구해야겠다.

그런데 나는 왜 결혼하지 않아 수많은 문제와 곤경에 빠지게 되었을까. 나는 결혼을 안한 것일 수도 있고 못한 것일 수도 있다. 돌이켜보면 20대 초반에 나를 좋아한다며 사귀고자 한 남자도 서넛은 된다. 그러나 내 기억에 정식으로 청혼한 사람은 없다. 나는 결혼시장에서 그다지 환영받는 상품이 못되었던 셈이다. 물론 누군가와 좀 오래 사귀면 내심 결혼하자고 할까봐 상대를 멀리했다. 그러니까 말로는 결혼해야 한다고 했지만 마음으론 결혼을 거부한 셈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결혼을 안한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좀더 파고 들어가 보면 나는 결혼이란 통과의례를 거치는 데 진입 장벽을 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읜 탓에 나는 자라면서 부(父)의 존재 자체를 알지 못했다. 풍요롭지는 않았지만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부의 부재로 인한 결핍의 느낌은 한번도 받아본 적이 없었다.
내가 처음으로 ‘부(父)’의 부재를 실감한 것은 결혼 시장에서다. 이른바 적령기에 두어 번 본 중매에서 상대방은 누구랄 것 없이 한결같이 내게 물었다. “아버지는 무엇을 하시나.” 만약 그들이 내게 ‘어머니는 어떤 분이신가’를 물었다면 나는 헌신적으로 열심히 살아오신 나의 어머니를 자랑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어머니를 묻지 않았다. 다만 부(父)의 부재를 확인하고 실망할 뿐.
그리고 내겐 이성간의 사랑이란 감정보다 더욱 소중한 핏줄의 사랑이 있었다. 동생들 뒷바라지에 결혼은 꿈도 못 꿔보고 속절없이 늙은 큰언니와 젊디젊은 나이에 지아비를 잃고 홀로 오남매를 키우느라 늙고 지칠대로 지친 어머니. 나는 외견상 독신이었지만 실질적으로 두 사람을 부양하는 가장이었으며 가족 경제의 축이었다.
결혼으로 사랑하는 한 사람이 기존 가족공동체에 편입되는 형태가 아니라 가족공동체로부터 분리되는 것인 한 나의 결혼은 불가능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른바 하자 없는 잘난 사람끼리 만나 울타리를 치는 배타적인 결혼이 아닌, 상처받고 능력 없는 가족을 어루만지고 감싸안을 수 있다면 비록 그것이 결혼이란 외관을 갖추지 않았더라도 훨씬 바람직한 제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독신에 2세를 갖기로 감히 마음먹었던 것이다. 내 식대로 사랑의 울타리를 치고 오순도순 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사회의 장벽과 편견은 생각보다 견고한 것이었다. 결혼을 거부한 죄로 나는 철저히 내몰렸다. 남과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결과적으로 직장에서 밀려나고 이웃은 나와 아이를 동물원 원숭이 보듯 한다. 친지는 나로 하여 주변에 얼굴을 들 수 없게 됐다며 발길을 끊었다.
내가 택할 수 있는 길은 단 하나. 인연을 끊고 그들의 눈앞에서 사라져주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사라져달라는 것은 죽으라는 얘기 아닌가. 타인에게 죽음을 강요하는 것은 살인이나 진배없다. 한 사회의 보편적 인식은 여간해선 바뀌지 않는 것인가 보다. 사람은 자신과 다른 것에 대해 잔인할 만큼 인정하기 싫어한다. 왜일까. 다수에 대한 건방진 도전을 용납할 수 없다는 심리일까.
아기가 돌이 지나고 걷게 되면서부터 점점 바깥 나들이도 많아졌다. 엄마가 죄인이라고 해서 아기까지 집안에 갇혀 지낼 수는 없는 일이다. 적당한 햇볕과 바람은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의 성장에 꼭 필요하니까. 아기가 걸음마를 하면서부터 나는 동네사람의 수군덕거림과 따가운 시선을 감수하고 아기와 자주 산책했다.
처음 병원에서 퇴원해 아기를 집으로 데려올 때는 경비도 우릴 보지 못했다. 아기가 처음 동네사람 눈에 띈 것은 간염 2차 예방주사를 맞으러 갈 때였다. 경비 아저씨와 옆집 할머니, ○○○호 아줌마와 그 아들이 1층 엘리베이터 앞에 있었다. 경비 아저씨와 옆집 할머니는 눈이 휘둥그레져 ‘아니 웬 아기냐’고 합창을 했다. 나는 그저 ‘네에’ 하고 말꼬리를 흘리며 택시에 올라탔다.

가족 중 누군가는 이웃의 눈을 미리부터 예상했는지 ‘배불러 있을 때 아무도 본 사람이 없으니 남들이 물으면 고아원에서 입양했다고 말하라’고 시키기도 했다. 내 뱃속에서 낳은 아가를 고아원에서 데려왔다고 하라니…. 아무리 남의 눈과 입이 무섭다 해도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닌가. 미혼모라는 어미의 딱지를 떼려고 아기에게 고아라는 또다른 멍에를 씌우라는 말인가. 그건 비겁하다 못해 잔인한 짓이다.
소문은 그날로 온 아파트에 다 돌았다. 세상살이 산전수전 다 겪은 옆집 할머니는 대뜸 ‘산욕기가 아직 안 풀렸나봐’ 하고 운을 떼었다. 나와 인사 한번 한 적 없는 이웃 아주머니도 다가와 ‘딸이냐 아들이냐’고 물었다. ○○○호 여자는 복도 끝에서 뛰다시피 다가와 ‘어머, 미슨줄 알았는데 결혼했어요?’ 하고 물었다.
그날 이후 이웃으로부터 내게 전해지는 야릇한 분위기는 적절한 표현을 찾기가 힘들다. 우선 드나들 때마다 안 해도 될 말을 늘어놓으며 인사를 하고 무거운 짐을 들었을 땐 얼른 받아주던 경비 아저씨는 인사 한번 하지 않았다. 몇차례 우리 집에 잠깐씩 아이를 맡겼던 적이 있는 옆집 아기 엄마는 나를 아예 외면했다.
나는 아기를 데리고 동네 아주머니와 아이들이 많이 모이는 놀이터는 가능한 한 피하고 주로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한 공원에 갔다. 아기는 외출을 참 좋아했다. 공원에 풀어놓으면 뒤뚱뒤뚱 넘어지면서도 꽃잎을 따고 모래 만지기를 좋아했다. 참 이상하게도 작고 힘 없는 아기인데 내게 큰 힘을 주었다. 때때로 내가 아기의 보호자가 아니라 아기가 나의 보호자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 동네는 주변에 작은 공원이 많아 공원을 끼고 산책하기 좋고 마을버스가 지나다닐 뿐인 비교적 조용한 곳이다. 걸어다닐 만한 곳에 초중고교가 다 있어 아이 교육에도 그만인 곳이다. 그러나 아기가 말을 알아듣게 되면서 나는 이사를 서둘러야 했다. 아이가 동네사람의 수군거림을 들으면서 자라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동네사람은 삼삼오오 모여 내 얘기를 하다가 쓰레기 버리러 나간 나와 마주치기라도 하면 외면하며 하던 이야기를 뚝 끊는 기색이 역력했다. 어떤 때는 그들이 미처 끊지 못한 말꼬리를 내 귀로 듣기도 했다. “글쎄, 처녀래. 결혼을 안 했대.” 심지어 놀이터에서 자주 본 초등학교 5학년 남자애는 집에서 어른들이 하는 말을 들은 듯 내 딸을 가리키며 “얘네 아빠는 왜 한번도 안 보여요?” 하고 물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를 기를 수는 없다. 아이는 마음의 상처를 입을 게 뻔하지 않은가. 사람은 색다른 것에 관심이 많은가 보다.
일주일여 복덕방을 돌아다닌 끝에 한번도 가본 적 없는 수도권 서남쪽 소도시에 집을 얻었다. 이곳을 택한 까닭은 무엇보다 연고자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처음부터 아기와 함께 살면 홀어미로 알면 알았지 미혼모라 손가락질하지는 않을 것이다. 홀어미는 미혼모보다 수적으로 많고 일단 결혼식을 올리고 혼인신고해 살다가 혼자 되었으므로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이유도 없고 별관심의 대상도 아니니까.
이사 과정도 단순치만은 않았다. 주민등록 전출입이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주소지 전출입시 서류가 동사무소에 비치될 뿐만 아니라 동네별로 구성된 통반장에도 전출입 사실이 전달된다는 것. 아무리 낯선 곳으로 이사를 해도 통반장을 통해 내가 미혼모이고 내 딸이 사생아란 사적인 사실들이 온 동네에 공개되는 것이다. 궁리 끝에 살던 집으로 이사오는 사람에게 양해를 구해 나는 주소지를 옮기지 않고 그대로 남고 이사갈 새집은 큰언니 이름으로 계약해 아이만 주소지 전출입 신고를 했다.
왜 이리도 구차스럽게 살아야 하는지 내 자신에게 화가 난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정말 큰 죄라도 지은 죄인이 되고 있다. 따지고 보면 나는 타인에게 눈곱만큼의 해도 끼치지 않았다. 내가 죄를 지었다면 그건 지금 나를 비난하는 타인들이 아니라 오로지 내 딸에 대한 죄일 뿐이다. 단죄는 훗날 내 딸이 할 것이다.



40대 미혼모 민들레씨의 감동수기

미혼모의 아픔을 그린 ‘미워도 다시한번 2002’ 의 한 장면.

가진 돈이 점점 줄어들면서 나는 좀 초조했다. 급한 마음에 아이를 들쳐업고 면접을 보러갔다가 거절당한 적도 있다. 그 참담함이란 뭐라 표현하기가 어렵다. 돈의 힘이 이렇게 위대한 것인 줄 진작 알았다면 돈을 주고 사람을 사서라도 위장 결혼식을 올리고 회사에 계속 다니는 것인데 잘못했다는 후회도 했다.
다행히 아이는 낙천적인 성격을 타고난 듯하다. 아직까지는 여느 아이와 마찬가지로 구김살 없이 밝다. 어린이날 2천원짜리 줄넘기 선물을 받고 좋아서 팔딱팔딱 뛰고 조그만 일에도 깔깔깔 웃는 그 웃음소리는 온갖 시름을 날려보낸다. 김치부침개만 해줘도 좋아하고 인스턴트 자장면을 맛있다고 뚝딱 해치우지만 그렇게 먹고 싶어하는 피자 한번, 중국집 자장면 한번 못 사주는 어미로서 그 모습은 애처롭기만 하다.
아이가 자라면서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아버지의 존재를 어떻게 인식시켜줄 거냐였다. 애초부터 아버지 없이 살지만 아버지의 개념은 알아야 하니까 나는 의식적으로 다양한 그림과 비디오 자료들을 가지고 남자, 아저씨, 아버지에 대한 인식을 심어주려 시도했다. 아이의 마음속에 아버지가 어떻게 그려져 있는지 나로서는 알 길 없다. 아이는 지금 고유명사가 아닌 보통명사로 ‘아빠’를 자연스레 구사한다. 마치 내가 어렸을 때 그랬던 것처럼.
내 딸이 언젠가 엄마의 선택을 이해할 만한 나이가 되면 아버지에 대해 사실대로 알려주겠다. 딸은 이 엄마를 용서할 수 있을까. 이 문제에 부닥치면 나는 한편으로 내 선택을 후회한다. 내 외로움을 덜겠다고 아이의 고통스런 삶은 생각지 않고 내 욕심만 차렸다는….
무슨 말이든 구차한 변명이 되겠지만 아기는 내 삶의 구원의 빛이었다. 아기가 생기기 전 나는 삶의 의욕을 잃은 상태였다. 아기가 없었다면 아마 지금쯤 나도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내가 사십대에 접어들며 아무 의욕 없이 허탈에 빠져있을 때 한 사건이 있었다.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독신의 오십대 여교사가 어머니가 세상을 뜬 지 얼마 되지 않아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기증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사건이다. 그가 아무도 없는 전셋방에서 불을 끄고 누워 전세금 얼마, 퇴직금 얼마, 연금 얼마… 하고 목록을 정리해 나갔을 모습이 떠올라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 사건 이후 나는 더욱 아기에게 집착했다. 결혼하지 않았지만 나도 2세를 기르며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고 강변하면서.

바로 그때 길고 긴 터널의 끝에서 빛이 나타나듯 긴 독신생활 끝에 기적처럼 생의 반려를 만난 것이다. 따스한 체온을 가진 살과 비벼대고 새끼의 입속에 모이를 집어 넣어주는 어미새처럼 그를 위해 어디든 날아가 먹이를 물어다 주고픈 모성을 마침내 쏟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지금 나는 경제적으론 고통받고 있지만 나름대로 꿈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무엇이든 가르치면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흡수하고 엄마를 걱정해주는, 기분 좋을 땐 엄마를 껴안아주고 뺨에 뽀뽀를 퍼붓는 내 딸이 있다. 내가 일하고 돌아오면 ‘힘들었지’ 하며 팔다리를 주물러주는 기특한 내 딸이 있어 나는 행복하다. 어린 딸의 마음씀에 나는 힘을 얻어 ‘내가 진창에서 구르더라도 너만은 지켜주마’ 다짐한다.
그간 나는 참으로 많은 종류의 일을 했다. 일당 3만원에 김밥집서 김밥 말기도 해보았고 제본소에서 책 묶는 일도 해보았다. 정부서 벌이는 공공근로 사업에 신청해 도심 곳곳에 있는 녹지의 쓰레기를 줍고 잡풀을 뽑아낸 뒤 꽃을 심는 작업을 하기도 했다. 아파트를 돌며 집집마다 현관문짝에 홍보 전단을 붙이는 일도 해보았다. 아이가 자라 어느 정도 시간이 생기고 나서부터 닥치는 대로 무슨 일이든 하려 기를 썼다. 그러나 대개 한시적인 일인데다 그 보수는 아르바이트 수준이어서 쌀값과 관리비를 충당하기에도 모자란다.
신생회사에 가서 일해주고 임금을 떼인 적이 두번 있었다. 우는 아이를 떼놓고 가서 한 일에 대한 보수를 고스란히 떼인 그 심정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공공근로는 정부가 저소득 계층의 생계를 지원하려고 벌이는 취로사업이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에게 고루 기회를 줘야 해서 석달밖에 할 수 없었다.
한번은 어느 회사에 자리가 났는데 공채하지 않고 내부 추천으로 이력서를 받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침 예전 동료가 그 회사에서 일하고 있어 이력서를 들고 갔다가 크게 무안을 당했다. 내 처지는 이해하나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내 일을 봐주었다가 아이 아버지로 오해받기 싫다는 의미로 나는 해석했다. 그 일이라면 나는 눈을 감고도 할 수 있는데….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뒤 나는 취업이고 뭐고 간에 누구에게도 일절 부탁하지 않고 혼자 힘으로 살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나는 가슴에 주홍글씨를 단 사람 아닌가.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면 고개 숙이고 돌팔매질을 하면 맞고 침을 뱉으면 뒤집어써야 한다.
사실 이력서 호주란에 본인이라 기재할 때마다 당혹스러움을 떨칠 수 없었다. 내 이력서를 받아보는 쪽에서 미혼모인 여성호주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품행이 방정치 않다거나 결격사유로 여기지는 않을까. 그렇다면 나의 이력서는 낼 이유가 없는 휴지조각일 뿐이다. 취직도 못하면서 내가 미혼모임을 광고하는 효과밖에 없으니까.
그간 알고 지내던 모든 사람과 연락을 일절 끊은 상태라 나의 재취업은 더욱 힘들었다. 젊은이도 일자리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때에 주민등록 등본에 여성 호주로 기재된 이 40대 아줌마가 일자리 잡기는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누가 뭐라 하든 나는 내가 호주인 게 자랑스럽다. 내 딸에게 나의 성씨(姓氏)를 이어준 것도 자랑스럽다. 그렇다고 해서 모계사회를 주장하는 건 아니다. 다만 모계 호적에 오를 수도 있고 모계 성씨를 이을 수도 있다는 걸 사람들이 인정해줬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을 뿐이다.
인생살이에 정답이 따로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혼해서 한 남자의 호적에 올라 그의 성씨를 갖는 아이를 낳고 사는 것만이 여자 인생의 정답일까. 그것은 다수의 선택일 뿐 진리는 아닐 것이다. 설사 그것이 정답이라 할지라도 정답대로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인정하고 제발 색안경을 끼고 불필요한 관심을 갖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현재 내 월 수입은 평균 50만원 정도다. 비정기 파트타임 일자리를 겨우 잡았는데 그나마 언제 해고될 지도 모를 일이다. 50만원으로 식비와 관리비 공과금을 내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낼 꿈도 꾸지 못한다. 다른 아이들이 모두 학원이나 유치원에 가고 없는 텅 빈 놀이터에서 혼자 노는 내 아이를 보면 마음이 아프다. 이렇게 키우려고 낳은 건 아닌데….
아이는 교육방송(EBS)을 비롯해 여러 방송사 프로그램 중 교육적인 것을 골라 녹화한 테이프를 보며 한글도 깨치고 영어도 익히고 있다. 동네사람이 ‘너 유치원 다니?’하고 물으면 ‘EBS유치원 다녀요’하고 대답하는 딸을 보면 못난 어미의 가슴은 미어지는 것만 같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수십번 되뇌지만 지금 겪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아이가 곧 취학 연령이 되어 학교에 갔을 때 겪어야 할 고통에 비하면. 더구나 그 고통은 내가 겪어줄 수도 없는 것이다. 결혼하지 않은 나의 죄를 아이가 고스란히 덮어쓰고 겪어야 하지 않는가. 그 생각을 하면 눈앞이 캄캄해진다.
딸과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이 꿈같은 시간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미혼모와 사생아란 딱지는 사회관계에서 붙는 것이므로 은둔하면 아무 문제될 게 없다. 그러나 나는 먹고 살려고 사회에서 사람과 부대껴야 하고 아이는 사회에서 교육을 받아야 한다. 딸이 취학하면 우리에 대한 편견과 멸시는 본격적으로 그 비수를 들이댈 것이다.
요즘 여성계가 주축이 되어 벌이는 호주제 폐지 운동에 나도 관심이 많다. 완전 폐지된다면 내 딸이 받을 사회적 편견의 고통이 조금이라도 해소될 수 있을까. 언젠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호주제 폐지론을 놓고 토론을 벌이는 것을 보았다.
찬성론자들은 여성학자, 여성계 활동가였는데 주로 이혼 후 재혼한 가정의 자녀 성(姓)이 문제가 되었다. 이혼 후 엄마가 자녀를 키우다 재혼한 경우 아이들의 호주는 여전히 전 남편이고 아이들은 세대주인 현 남편(새 아빠)의 자(子)가 아닌 동거자로 새아빠와 성이 다르게 오르는데, 학교에 제출하는 서류에 이 사실이 그대로 드러나 학교에서 이른바 ‘왕따’당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을 본 뒤로 늘 꿈자리가 뒤숭숭하다. 내 딸이 엄마 때문에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면 어쩌나. 요즘 학교에선 아이들간에 뭔가 조금만 달라도 왕따의 대상이 된다는데 내 딸은 출생부터 남과 다르니 왕따 대상 0순위 아닌가. 왕따의 충격으로 자살하는 학생 사건을 심심찮게 보도하는 현실에서 나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기가 두렵다.
누구는 내게 말한다. 지금이라도 한 남자와 결혼식을 올리고 혼인신고를 하면 모든 문제가 일거에 해결된다고. 물론 나도 그걸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누구와도 결혼하고 싶지 않다. 이건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을 내 개인의 취향이고 내 자유의지라는 게 중요하다. 이 사회가, 사람이 이런 개인의 자유를 인정하고 비난하지 않는 깊이와 폭을 가졌으면 하는 게 나의 간절한 바람이다.
내 딸은 이제 일곱 살이다. 내년이면 취학 통지서가 날아오고 초등학교에 입학해야 한다. 사회와의 접촉을 시작한다. 지금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서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다. 일말의 편법이라도 있다면 가진 돈을 다 털어서라도 남과 같은 모양의 서류를 만들고 싶은 것이 내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나 이 무슨 자가당착이란 말인가. 스스로 떳떳치 못할 이유가 없다면 서류를 위조해서라도 남자의 호적에 올리려 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솔직히 나는 떳떳하다. 나로서는 미혼모가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러나 끊임없는 모욕과 이 사회의 무언의 압력에 주눅 들어 나는 점점 나약해지고 있다.
법적으로도 세금을 내지 않거나 병역을 기피하면 감옥에 가두는데 반해 결혼하지 않았다고 해서, 독신모라고 해서 감옥에 가두지 않는 것을 보면 그것이 범죄는 아닌 것이 분명하다. 결혼, 못할 수도 있다. 하기 싫어서 안할 수도 있다. 하고 싶지만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을 수도 있다. 이 사회에는 못생겨서, 가난해서, 농촌에 살아서 결혼 못하는 사람이 엄연히 존재한다. 결혼이 누구나 할 수 있고 누구나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결혼 못한(안한) 사람에 대한 인권침해는 이제 없었으면 좋겠다.

우리 속담에 ‘처녀가 애를 배도 할 말이 있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애를 밴 처녀는 할 말이 있을 수 없다는 뜻의 반어적 표현이다. 여기서 처녀라 함은 성관계를 한번도 갖지 않은 여성을 뜻하는 게 아니라 결혼하지 않은 여성을 뜻한다고 보인다. 나는 할 말이 많다. 그리고 내 딸이 살아갈 미래를 위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내 딸이 엄마 때문에 결혼하지 못하고 엄마와 같은 길을 걷게 될지라도 엄마처럼 질곡에서 고통받지 않고, 다양한 사고와 다채로운 문화가 꽃피고 다수가 소수를 끌어안는 포용성을 갖춘 평화의 공동체에서 살아가길 꿈꿔본다. 언젠가 이 땅에도 자유롭고 다양한 삶이 공존하는 사회, 다르다는 이유로 소수라는 이유로 차별하지 않는 합리성이 자리잡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영화 은 저 멀리 바다 건너 네덜란드에서만, 영화에서만 가능한 것일까. 북구의 어느 나라에선 미혼기간에 어머니가 된 여성이 나라를 다스린다. 우리나라를 방문한 그 여성대통령은 자리에 걸맞은 능력과 자질을 갖춘 여성이기에 아무 문제될 게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가 사는 사회의 포용성이 크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일까.
미혼모는 사회적 약자며 소수다. 결혼을 거부한, 남성으로부터 버림받은 미혼모들은 많은 어려움을 무릅쓰고 어머니의 길을 택한 사람들이다. 한 생명이 자립할 때까지 홀로 뒷바라지하는 길을 택한 이상 그들도 어머니다. 어머니에 기혼모와 미혼모의 구별이 있을 수 없으리라. 어머니는 어머니일 뿐이다.
이제 내게 새생명 잉태의 기쁨을 준 사람에 대해 밝히면서 이 글을 맺어야겠다. 잠깐 동안 만나보았지만 그는 심성 곱고 유머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내 나이로는 감히 넘볼 수도 없는 순수한 청년이었다. 교통사고 진정 건에서 목격자 진술을 하며 우연히 알게 되었으며 내가 진정서 작성을 도왔다. 영화에서처럼 작심하고 그를 유혹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내가 아이를 간절히 원하는지 꿈에도 생각 못했을 것이다. 그 밤의 일은 나의 기원이 간절하여 신이 내리신 은총이라고 생각한다.


여성동아 2002년 12월 4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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