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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일기> 농촌 총각 ‘응삼이’로 살아온 탤런트 박윤배

“저조차도 드라마 속 응삼이가 나인지, 현실의 박윤배가 나인지 헛갈릴 때가 많아요”

■ 글·이지은 기자(smiley@donga.com) ■ 사진·정경택, 박해윤 기자

입력 2002.12.18 13:18:00

최장수 드라마 <전원일기>가 올해말 종영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를 누구보다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있다. 드라마 속에서 22년간 농촌 총각 ‘응삼이’로 살아온 탤런트 박윤배. “이젠 내 이름 석자보다도 응삼이가 더욱 친숙하다”는 그에게서 <전원일기> 촬영 뒷얘기와 이혼 후 홀로 남매를 키워낸 지난 삶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농촌 총각 ‘응삼이’로 살아온 탤런트 박윤배
탤런트 박윤배(50). 이름은 낯설지만 의 응삼이라고 하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 자신조차도 “이젠 드라마 속 응삼이가 나인지 현실의 박윤배가 나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며 허허 웃는다. 올해 말 가 종영된다는 사실에 그는 “오랫동안 살던 정든 둥지에서 쫓겨나는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털어놓았다.
그동안 그는 사람들의 뇌리 속에 응삼이라는 이름을 강하게 남겼다. 하지만 연기자로서 보면 득보다 실이 많았다. 그가 어떤 작품에 출연하더라도 시청자들은 박윤배가 아닌 응삼이로만 기억했던 것. 실제 응삼이와 비슷한 캐릭터로만 출연 섭외가 들어왔고, 다양한 프로그램에 모습을 보였지만 그가 에만 출연하는 것으로 아는 사람들도 많다. 그래서인지 이번 종영 소식을 듣고 ‘밥줄이 끊어져 어떻게 하냐’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고. 하지만 막상 가 종영된다고 하니 시원하기는커녕 섭섭함과 안타까움이 더욱 크게 느껴진다는 그다.
지난 80년 첫 방송부터 에 출연한 그는 제 짝을 찾지 못하는 우리 농촌 총각의 모습을 대변해왔다. 세월이 흘러 당시 31세였던 젊은이는 이제 50줄에 들어섰다.
“양촌리 회장 최불암 선배님이 분장을 따로 하지 않아도 되고, 젊었던 동료들이 노안으로 안경을 쓰고 대본 읽는 것을 보면 ‘세월이 많이 흘렀구나’ 하고 느껴요. 저도 나이가 쉰인데 아직도 총각으로 알고 있는 시청자들도 많잖아요(웃음). 한번은 구청에 서류를 떼러 갔는데 어떤 할머니가 제게 ‘무엇 때문에 장가를 못 가느냐. 내 손녀가 노처녀인데 당장 데리고 가라’고 말씀하신 적도 있었죠. 실제로 중매도 많이 들어왔어요.”
사실 응삼이라는 캐릭터는 박윤배 자신이 만들었다. 처음 그에게 주어진 역할은 단순히 ‘장가 못 가는 농촌 총각’. 별다른 특징도 없었고 비중 또한 작았다. 하지만 그는 주변에서 응삼이의 모델을 찾으며 응삼이를 절절히 표현하려고 노력했고 이런 노력 덕분에 그는 의 한 축을 당당히 지킬 수 있었다.
주변에서 ‘응삼이’ 모델 찾으며 절절히 표현하려 노력
그는 오랫동안 ‘장가 가지’ 못한 가장 큰 이유가 실제의 농촌 총각들 때문이라고 말한다. 촬영을 나갈 때마다 그들이 ‘결혼 못한 당신의 모습을 보면서 위안을 삼아왔기 때문에 당신은 장가 가면 안된다’고 농담조로 말했다는 것. 돼지 6백 마리를 키운다는 어떤 사람은 “당신이 결혼하면 돼지를 모두 팔아 부조하겠지만, 내가 결혼하기 전까지는 절대 안된다”는 ‘협박’까지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대한민국 노총각들이 다 장가 가기 전까지는 장가 가지 않을 것”이라는 ‘원칙’마저 세웠다고.
그런 그도 최근 동네 청상과부 ‘쌍봉댁’과 결혼식을 올렸다. 나이가 50인데 계속 청년 역할을 하는 것도 민망했고 어떻게 보면 자신의 결혼이 오히려 농촌 총각들에게 희망을 줄 거라고 생각했다. 또 ‘부인’의 내조를 받는 다른 연기자들의 모습이 부러웠기 때문이기도 하다.
“20년 넘게 함께 살았잖아요. 부부로 나온 연기자들은 상대방의 성격은 물론 어떤 음식을 좋아하고 어떤 잠버릇이 있는지도 알 정도예요(웃음). 눈빛만 봐도 통한다고 할까. 종종 촬영장으로 ‘부인’들이 ‘남편’의 도시락을 싸오곤 했는데 전 도시락 싸줄 ‘부인’이 없는 게 참 서럽더라고요. 그래서 드디어 저도 결혼했는데, 서로 제대로 알기도 전에 방송이 끝나버리대요.”
그동안 에 출연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97년 당시 를 전격 개편하면서 이른바 ‘물갈이’ 대상에 응삼이도 속해 있었던 것. 아무런 사전 통보 없이 ‘이젠 그만 나와도 된다’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고 한다.

 농촌 총각 ‘응삼이’로 살아온 탤런트 박윤배

아들 지만씨와 딸 혜미씨는 아버지 박윤배에게 하루 빨리 좋은 여자친구가 생기길 바란다고 한다.

“전화 한통으로 너무나 간단히 ‘정리해고’를 하더군요. 하도 속이 상해 소주를 마시며 밤을 지새고 분한 마음에 울기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 방송국은 ‘응삼이’를 버렸지만 시청자들은 그렇지 않았죠. 저처럼 ‘물갈이 대상’이 됐던 ‘구관’들을 그리워했던 거예요. 6개월쯤 지나자 슬그머니 방송국에서 ‘다시 출연을 해달라’고 하더군요.”
그는 지난해 8월 ‘이 노인’ 역할을 맡았던 탤런트 정태섭이 직장암으로 숨졌을 때도 너무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아끼는 후배였기에 더욱 슬픔이 컸다고.
“극중 저는 동네 총각이고 태섭이는 노인이라 제가 깍듯이 대해야 했지만 실제로는 저보다 나이도 어리고 후배였어요. 그래서 함께 나오는 장면을 찍고 난 후에는 항상 ‘야, 이 노인, 물 좀 가지고 와봐’라고 하며 웃곤 했는데, 그렇게 세상을 떠날 줄은 정말 몰랐어요.”
오랜 세월 극중 노총각이었지만 그는 93년 이혼한 후 아들 지만씨(23)과 딸 혜미씨(21)를 홀로 키워낸 아버지다. 이혼 당시 아이들은 한참 예민한 사춘기였기에 그는 아빠인 동시에 자상한 엄마가 되어야 했고 설상가상으로 노모가 치매로 쓰러져 노모의 병간호까지 도맡아야 했다.
“어머니의 대소변을 제가 다 받아냈어요. 사실 어머니도 여자시니까 제가 대소변을 받으려고 하면 너무 부끄러워하셨죠.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촬영 때문에 임종을 지키지도 못했죠. 너무 서러워서 돌아가신 노인네를 때리며 울었어요. 어머니의 마지막 소원이 며느리가 해준 밥 한술 먹는 거였는데 지켜드리지도 못했고.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픕니다.”
그는 비뚤어지지 않고 잘 커준 아이들이 무척이나 고맙다고 한다. 이젠 아이들도 그에게 ‘좋은 여자 있으면 재혼하라’고 말한다고.
촬영 때문에 그동안 장기간 여행 한번 떠나본 적이 없다는 박윤배. 이제 그는 섬 등지로 여행을 떠나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계획이다. 그런 후 드라마 와 같은 시대극에 출연하거나 멜로 드라마의 주인공을 하는 것이 연기 인생 제 2라운드의 목표다. 또 아이들 이야기처럼 이젠 말이 통하는 좋은 여자도 만나고 싶다고. 함께 인사동을 거닐고 술 한잔 함께하며 문화에 대해 논할 수 있는 여자라면 더욱 좋겠다고 한다.
“예전에는 일과 가족을 위해서만 살았어요. 인간 박윤배가 아닌 응삼이, 그리고 두 아이의 아버지이기만 했던 거죠. 이젠 저 자신만을 위해 살고 싶어요. 사랑도 다시 한번 진하게 해보고 싶고요. 그럴 만한 멋진 여자 어디 없을까요?(웃음)”

여성동아 2002년 12월 4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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