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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사건 그후

‘ 어머니 구속’ 충격 딛고 사태 해결 나선 월드컵스타 안정환

■ 글·최호열 기자(honeypapa@donga.com) ■ 사진·박해윤 기자

2002. 12. 18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한 모양이다. 사채 빚과 관련해 사기혐의로 지명수배를 받아오다 특수공무집행 방해혐의로 어머니 안씨가 구속되자 그동안 의절하다시피 했던 축구스타 안정환이 사태해결에 나섰다. 안씨의 가족들을 통해 확인한 안정환의 입장과 어머니 안씨의 근황 & 이들 모자의 얽히고 설킨 애증관계 밀착 취재.

‘ 어머니 구속’  충격 딛고 사태 해결 나선 월드컵스타 안정환

안정환은 어머니가 구속되자 소속 기획사를 통해 변호사를 선임하고 갚아야할 돈은 해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사진은 11월17일 귀국 모습.

지난 11월20일 상암구장에서 국가대표 축구팀의 브라질 평가전이 열렸다. 여기에 출전하기 위해 안정환 선수(26·시미즈 S펄스)가 사흘 전인 11월17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했을 때 언론의 관심은 그가 영등포구치소에 수감중인 어머니 안씨(44)를 면회할 것인가에 쏠렸다. 그동안 사기·절도·협박 등의 혐의로 지명수배중이던 안씨가 10월15일 붙잡혀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구속되었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어머니 안씨와 안정환은 남다른 모자관계다. 안씨가 미혼모의 몸으로 갖은 고생을 하면서 아들을 훌륭히 키웠고, 안정환도 그런 어머니를 끔찍이 생각했다. 하지만 안씨가 진 사채 빚을 안정환이 몇차례에 걸쳐 갚아주었음에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사채 빚에서 헤어나지 못하는데다, 급기야 99년 12월 안씨가 안정환의 대리인 행세를 하며 모 업체와 초상권 계약을 해 법적 분쟁을 일으키자 사이가 극도로 악화되었다.
그래도 끊을 수 없는 게 혈육의 정. 일본 프로축구리그인 J리그에서 활약중인 안정환에게 어머니의 구속 소식은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안씨가 구속된 이후 처음으로 한국에 온 그가 곧바로 어머니를 면회할 것인지에 관심이 쏠렸다.
이날 입국하는 안정환의 얼굴은 비교적 평온해 보였다. 처음엔 잇따른 기자들의 질문공세를 외면한 채 발걸음을 재촉했지만 전날 일본 J리그에서 1골 1도움으로 맹활약을 한 것을 화제에 올리자 얼굴이 조금 밝아지며 입을 열기 시작했고, 브라질과의 평가전에 대한 자신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하지만 어머니에 대한 질문을 던지자 이내 표정이 굳어지며 “사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고 입을 닫았다. “어머니를 뵈러 갈 것인가”라고 재차 물었지만 안정환은 어머니와 관련한 질문에 대해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공항을 떠났다. 이후 영등포구치소에서도 그의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사실 어머니 문제는 그로서는 견디기 힘든 고통이다. 더구나 안정환은 일본에서도 경기가 끝난 후 인터뷰를 하던 중 서울에서 파견된 어느 방송기자가 어머니 구속문제를 꺼내자 얼굴을 붉히며 기자회견장을 뛰쳐나갈 정도로 마음이 여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기에 말은 안해도 그동안 마음고생이 무척 심했을 것이다.
다음날인 11월18일 기자는 영등포구치소로 향했다. 어머니 안씨의 큰오빠(65)와 만나기로 했고, 국가대표팀 소집시간이 이날 낮 12시였으므로 오전에 안정환이 어머니를 면회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정환은 오지 않았고, 큰오빠와 큰언니, 사촌언니가 안씨를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일부 언론에서 정환이가 어머니에 대해 화가 나 있고, 이 사건에 대해 외면하고 있는 것처럼 보도되기도 했지만 그건 사실과 달라요. 동생(안정환 어머니)이 구속되던 날 정환이가 소속된 에이전트(이플레이어)에서 곧바로 변호사를 선임해주었어요. 그리고 정환이가 ‘어머니의 사채 빚을 정리해주겠다’는 뜻도 전해왔고요. 변호사가 사채 빚을 정밀 분석해 갚아야 할 빚은 갚고 안 갚아도 되는 악덕채무는 법을 통해 해결할 것으로 알고 있어요.”
큰오빠는 며칠전 안정환과도 직접 전화통화를 했다고 한다. 그때 안정환은 “엄마를 용서하고 포용하기로 했다. 엄마의 심정을 이해한다. 나도 그동안 엄마에게 너무 소홀했던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나도 책임이 있다”며 안타까운 심경을 토로했다고 한다.
“정환이는 무엇보다도 언론에 절도혐의가 크게 보도된 것에 대해 깊은 상처를 받은 것 같아요. 크게 화를 내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절도 부분은 정말 사실이 아니라고. 검찰조사에서도 곧바로 무혐의 처리가 되었어요. 그리고 구속 사유가 된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도 곧 해결이 될 거예요.”
특수집행공무방해 혐의는 지명수배를 받고 도피중이던 안씨가 자동차를 타고 가다 불심검문에 걸리자 운전사를 사주해 검문하던 경찰을 차에 매단 채 10m 가량 달아난 혐의인데, 부상을 입은 경찰과 원만히 합의가 된 상태라고 한다. 결국 남은 것은 사채를 얻어 쓰고 갚지 않는다는 사기혐의만 남은 셈이다.
큰오빠는 사채빚에 대해서도 안씨가 억울한 상황이라고 항변 했다. 채권자들이 주장하는 액수를 합치면 안씨의 채무는 6억원 가까이 되는데, 실제 갚아야 할 돈은 1억5천만원 정도밖에 안된다는 것이다. 그나마 원금은 5천만원 정도밖에 안된다는 게 그의 주장. 앞으로 재판을 통해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했다.

‘ 어머니 구속’  충격 딛고 사태 해결 나선 월드컵스타 안정환

지난 10월16일 구속된 안정환 어머니 안씨.

그는 일부 언론에 안씨가 진 빚이 노름빚인 것처럼 보도됐는데, 그건 사실이 아니라고 강변했다. 대부분 생계를 위해, 그리고 안정환을 키우기 위해 진 빚이라고 했다.
“동생이 잘못한 부분이 있어요. 정환이가 수차례에 걸쳐 갚아준 돈만 해도 3억원이 넘어요. 정환이는 그것으로 다 갚은 줄 알았어요. 그런데 사실은 동생이 미안한 마음에 아들에게 빚을 줄여서 말한 거예요. 그때 못 갚고 조금 남아 있던 빚이 다시 그렇게 커진 거죠. 그러니까 정환이로서도 납득이 안될 수밖에 없고, 도박빚이 아닌가 의심을 할 수밖에 없죠. 동생이 처음에 솔직히 말을 했어야 하는 건데….”
처음 구속될 당시 안씨는 기자들에게 아들에 대한 원망스런 마음을 토로하기도 했었다. “정환이가 도와주었으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뉘우치고 있다고 한다. 오히려 아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자신의 죄를 달게 받겠다며 보석신청도 거부했다.
그런데 안씨가 지명수배를 당해 도피생활을 할 때 안정환이 도와주지 않았던 데는 안정환에게 돈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할머니에게 사준 집까지 안씨가 손을 댄 것에 화가 난 이유도 있었다는 게 안씨 큰언니의 이야기다. 안정환은 세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뜬 후 일하러 다닌 엄마 대신 외할머니의 젖을 빨며 자랐기 때문에 그에게 외할머니는 어머니만큼 각별한 존재였다고 한다.
“정환이는 외할머니에게 정말 극진해요. 매달 외할머니에게 1백만원씩 용돈을 보내드리고, 엄마와 외할머니 편하게 지내라며 37평짜리 아파트를 사주기도 했어요. 그런데 동생(안정환 어머니)이 작은 오빠에게 빌려 쓴 돈이 있었어요. 그걸 갚지 못하게 되자 외할머니를 모시는 조건으로 작은오빠에게 아파트를 넘기려고 했어요. 그걸 정환이가 안 거예요. 왜 외할머니 넓게 쓰시라고 사준 아파트를 그렇게 하느냐며 무척 화를 냈죠.”
가족들에 따르면 안씨는 오랜 도피생활의 긴장과 피곤함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인지 현재 홀가분한 상태로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큰언니에 따르면 안정환의 아버지는 서울에 있는 한 여자고등학교 수학교사였다고 한다. 6·25 때 혼자 남쪽으로 내려온 가난한 실향민이어서 당시 꽤나 부유한 편인 안씨 집안에서 결혼을 반대했다는 것. 하지만 집안의 반대가 두 사람의 사랑을 가로막을 수는 없었고, 안정환이 태어났다고 한다. 결국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뒤늦게 결혼을 허락했는데 기쁨도 잠시 안정환의 아버지가 급작스럽게 폐암으로 사망했다는 것이다.
결국 안씨는 스무살의 어린 나이에 미혼모가 돼 아들을 위해 식당, 다방 등의 종업원 생활을 하면서 어렵게 안정환을 키웠다. 아들이 프로축구선수로 이름을 날리면서 그간의 고생을 보상받는가 싶었지만 오히려 도망자가 되어 아들의 결혼식장에도 참석하지 못하고, 마침내 구속되어 아들의 이름을 안 좋은 일로 신문지상에 오르내리게 하는 비극의 어머니가 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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