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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초콜릿사랑가

국내 최초 초콜릿 아티스트 1호 김성미

“제상에도 초콜릿 경단 올려요”

■ 기획·이지은 기자(smiley@donga.com) ■ 글·조희숙 ■ 사진·정경택 기자

2002. 12. 18

초콜릿 액자, 초콜릿 양초, 초콜릿 인형…. 우리나라에서 ‘초콜릿 작품’이 선보이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년 안팎의 일이다. 4백년 된 서양의 초콜릿 역사를 배우기 위해 10년간 공부한 전공도 바꾼 채 유학까지 다녀온 초콜릿 아티스트 1호 김성미씨. 초콜릿 만큼이나 달콤한 그의 초콜릿 사랑가를 들어보았다.

국내 최초 초콜릿 아티스트 1호 김성미
“엄마, 머리카락 한개만 먹으면 안돼?” 경기도 분당 초콜릿 아티스트 김성미씨(35)의 작업실. 요즘 다섯살짜리 딸아이의 가장 큰 즐거움은 초콜릿 인형 앞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먹는’ 일이다. 덕분에 아이에게 선물한 초콜릿 인형의 머리카락은 하루가 다르게 숱이 줄어들어 걱정이다.
“아이의 얼굴 모양을 본떠 만든 초콜릿 인형인데 곱슬머리라 머리카락이 자주 떨어지거든요. 그때마다 기다렸다는 듯이 먹으면 안되냐고 물어보죠. 어떤 날은 하루종일 인형 앞에서 머리카락 떨어지기만 기다릴 때도 있어요.”
초콜릿을 만드는 엄마 김성미씨. 딸아이의 존경과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그의 직업은 초콜릿 아티스트. 초콜릿으로 사람도 만들고 꽃도 만들고 바구니도 만드는 일종의 초콜릿 공예가인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생소한 직업이지만 초콜릿 역사가 오래된 유럽에서는 이미 보편화된 직업이라고.
우리나라에서는 미개척 분야인 ‘초콜릿의 세계’에 그가 용감하게 뛰어든 것은 순전히 단맛을 좋아하기 때문. 어릴 적부터 케이크나 사탕, 초콜릿 등을 입에 달고 살던 그는 지난 89년 일본 유학시절 원 없이 ‘달콤한 맛’을 찾아다녔다.
“일본에는 케이크와 차를 함께 파는 가게가 많더라고요. 알고 보니 많은 일본인들이 그것으로 간단히 한끼 식사를 대신하는 거예요. 밥과 국에 익숙한 저에게 케이크는 그저 간식 수준이었으니까 일종의 문화적인 충격을 받은 셈이죠. 그뒤 일본에서 맛있다는 케이크 가게들을 찾아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초콜릿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일본에서 돌아온 후 92년 다시 유학을 떠났던 영국에서 그는 운명적인 초콜릿과의 만남을 갖게 된다.
“우연히 런던의 한 골목에서 직접 초콜릿을 만들어 파는 작은 가게를 봤어요. 초콜릿의 맛과 모양이 그렇게 다양하다는 것을 처음 알았죠. 게다가 영국 시내에 그와 같은 수제 초콜릿점이 수천개나 된다는 것도, 가게 주인 중 미대 출신이 많다는 것도 이색적이었어요. 그때부터 맛있는 초콜릿이 있다면 어디든 찾아가 꼭 먹어보고 만드는 것을 봐야 직성이 풀렸죠.”
‘10년 공부 도로아미타불’이란 말처럼, 그날 이후 그는 10년간 공부해온 사회학을 접고 열심히 초콜릿 공부에만 매달렸다. 런던 옥스퍼드가와 해롯 백화점 등에 있는 이름난 초콜릿 전문점들을 부지런히 찾아다니는가 하면 방학이면 벨기에, 네덜란드, 프랑스 등지로 초콜릿 테마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유럽에서는 초콜릿을 ‘쇼콜라’라고 부르고 만드는 사람을 ‘쇼콜라티에’라고 해요. 유럽에서 초콜릿 아티스트는 제과제빵 교육은 물론 미술이나 데코레이션까지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교육을 받아요.”
초콜릿에 대해 공부할수록 그는 이미 4백년 전에 시작된 유럽의 초콜릿 역사를 따라잡는 것이 수월치 않다고 느꼈다. 게다가 유럽에는 크고 작은 초콜릿 공장, 초콜릿 숍, 초콜릿 기술을 배울 수 있는 학원까지 초콜릿에 관련된 업체나 상점이 셀 수 없이 많았다.

국내 최초 초콜릿 아티스트 1호 김성미

김씨가 만든 초콜릿 작품들. 영국에서 초콜릿을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온 그는 현재 수원여대 제과제빵과에서 초콜릿 제조법을 강의하고 있다.

반면 초콜릿이 우리나라에 처음 선보인 것은 겨우 40년 전. 4백년 역사와 전통을 가진 유럽보다 딱 10배 뒤져 있는 셈이다. 한국에 돌아온 후 아쉬운 대로 제과 제빵 학원이나 초콜릿 관련 잡지 등을 통해 초콜릿 공부를 해봤지만 항상 부족할 뿐이었다.
결국 초콜릿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그는 99년 영국으로 두 번째 유학을 떠났다. 이번에는 어깨너머가 아니라 제대로 초콜릿을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프랑스계 세계적인 요리학교로 알려진 르 코르동 블루 제과학교에 입학해 초콜릿의 기초지식부터 각종 기술, 공예법 등을 체계적으로 공부해나갔다. 매일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 하루 15시간을 초콜릿 단내에 파묻혀 제대로 밥을 넘기기가 힘들었지만 그의 초콜릿 사랑을 막지는 못했다.
현재 그는 수원여대 제과제빵과에서 초콜릿 제조법을 강의하고 있다. 지난해 초 귀국한 후 서울 압구정동 갤러리아 명품관에서 초콜릿 작품 전시회를 열면서 ‘초콜릿 아티스트 김성미’라는 이름 석자를 알린 덕이 컸다.
사실 유학에서 돌아온 얼마동안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초콜릿 제조와 공예법을 강의하기도 했지만 이내 그만두고 말았다. 겨우 3개월 과정을 마친 수강생들은 수료증을 받아들기 무섭게 “이거 하면 얼마 벌어요?”라고 물어오기 일쑤였기 때문. 이왕 초콜릿 전도사로 나설 것이라면 한살이라도 젊은 학생들을 교육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 대학 강의를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초콜릿에 대한 인식은 서양과 참 많이 달라요. 기껏해야 발렌타인데이 때 젊은 남녀가 주고받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유럽에서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초콜릿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를 잡았어요. 우리가 김치 싫어하면 이상하게 보는 것처럼 초콜릿을 싫어하면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과 똑같아요.”
젊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다 보면 재미있는 일들도 많다. 알다시피 초콜릿의 재료는 카카오다. 어쩔 수 없는 한국사람이라 두시간 동안 달큰한 맛에 혀를 혹사당한 학생들은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식당으로 달려가 김치를 찾는다고. 그때마다 그는 학생들에게 따끔하게 충고한다. 적어도 초콜릿 아티스트라면 초콜릿 맛을 한동안 입안에 음미하고 있어야 한다고.
아직 작업실이 따로 없는 그는 주방을 작업실로 겸하고 있다. 덕분에 함께 사는 가족들은 그의 중요한 시식단이 된다. 특히, 시아버지와 딸아이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그의 초콜릿 마니아다. 엄마가 만들어준 초콜릿만 먹고, 친구들에게 초콜릿이 아니라 ‘쇼콜라’라고 가르쳐주는 야무진 딸아이의 꿈은 엄마처럼 ‘쇼콜라티에’가 되는 것이라고.
“저희 집에서는 제상에도 초콜릿을 올려요. 경단처럼 둥글게 만들어 녹차가루를 입힌 녹차 초콜릿을 한켠에 놓으라고 하신 분이 바로 시어머니세요. 며느리가 만든 것이니까 당연히 조상님께도 드려야 한다고요.”
이쯤해서 초콜릿 전문가로부터 들어보는, 주부가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초콜릿 만드는 방법 하나. 시중 백화점에서 초콜릿 재료를 구입해 잘게 썬 후 불에 녹인다. 이를 냉동실에 3시간쯤 넣어 살짝 얼린 후 꺼내서 동그랗게 경단 모양을 만든다. 여기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코코아가루나 땅콩가루만 살살 입히면 멋진 ‘엄마손 초콜릿’이 된다고. 여름철에는 초콜릿을 잘게 썰어 녹인후 끓인 우유와 얼음을 넣고 믹서에 갈면 훌륭한 ‘초콜릿 쿨러’를 맛볼 수도 있다.
올봄 그는 초콜릿의 본고장으로 알려진 멕시코로 여행을 다녀왔다. 초콜릿 아티스트라면 본고장에 한번쯤 다녀와야 한다는 생각 때문. 초콜릿 아티스트로 소개되면서 그에게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도 부쩍 늘어났다. 일일이 상담해줄 시간이 여의치 않자 그는 직접 컴퓨터를 배워 얼마전 홈페이지(www.chocolatier.co.kr)를 개설하기도 했다. “초콜릿을 먹으면 살찐다는 말은 근거 없는 이야기다”고 강조하는 초콜릿 전도사 김성미씨. 그의 계획은 “많은 사람들에게 정말 맛있는 초콜릿을 먹게 해주고 싶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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