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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새로운 도전

국내 첫 여성프로복싱 타이틀전 펼친 이인영 & 김주희

“세계 챔피언 되고 권투지도자 되는 게 꿈이에요”

■ 기획·최미선 기자(tiger@donga.com) ■ 글·박진숙 ■ 사진·지재만, 조영철 기자

입력 2002.12.17 12:07:00

지난 11월16일 캐피탈호텔 특설링에서 국내 최초의 여성프로복싱 타이틀전이 열렸다. 얼굴에 바셀린을 잔뜩 바르고 작은 손에는 붕대를 감고 글러브를 낀 여성 복서의 모습이 이채롭긴 했지만 남자선수들 못지않은 파워와 기량을 과시해 사람들을 열광시켰다. 국내 첫 여성챔피언전에 도전한 여성복서 이인영과 김주희 선수를 만나보았다.
국내 첫 여성프로복싱 타이틀전 펼친 이인영 & 김주희

국내 최초로 여성프로복싱 챔피언에 오른 이인영씨.

한국권투위원회에서 지난 9월 수십명의 여성선수가 등록돼 있는 플라이급(50.8㎏ 이하) 챔피언을 뽑기로 결정한 후 예선을 거쳐 올라온 선수들과 준결승전을 치르고 당당히 결승에 오른 이인영(30)과 김주희(18) 선수.
이인영 선수는 준결승전에서 무술 유단자인 상대 선수를 4회 1분50초 만에 KO로 이겼고, 김주희 선수는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을 거둔 ‘무서운 여자’들로 지난 11월16일 캐피탈 호텔 특설링에서 수많은 관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국내 최초로 여성프로복싱 챔피언전을 펼쳤다.
시합을 바로 앞둔 김주희 선수 대기실. 김주희 선수의 소속 체육관인 거인체육관 정문호 관장(47)은 김선수의 손에 붕대를 꼼꼼하게 감아주고 있었다. 긴장한 때문인지 약간 상기된 듯 두 볼이 붉게 물든 김선수는 복싱선수답지 않게 여리게만 보였다. 링에 오르는 소감을 묻자 김선수는 “어제 아무 꿈도 꾸지 않고 잘 잤어요. 좋은 결과 있도록 열심히 할 거예요”라는 단 한마디만 남기고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그는 친구들이 오자 그제야 환하게 웃으며 발랄함을 찾아갔다. 김선수를 응원하기 위해 달려온 체육관 동료들과 친구들은 그와 농담을 하며 긴장을 풀어주었다. 선수 대기실은 금세 왁자지껄해지고 친구의 출전을 응원하는 축제 분위기가 되었다.
“주희 배고플까봐 사온 거예요”라며 꽃보다는 실용적일 것 같아 사왔다는 케이크를 선물로 내민 친구, 권투선수라도 예쁘게 보여야 한다며 김선수의 머리를 예쁘게 땋아 준 친구들이 이전 경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합에서 맞는 모습이 안쓰럽다며 눈물을 글썽이자 김선수는 오히려 씩씩하게 웃어보였다.
그런 김선수를 불러 정관장은 마지막 작전을 짜기 위해 곧 올라갈 링에서의 위치를 열심히 설명해준다.
잠시 후 김선수가 권투복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남자선수와 달리 팬츠에 가슴보호대를 착용한 모습이 이색적이었다. 한창 외모에 관심을 갖는 여고생답게 김선수는 얼굴과 팔뚝에 예쁜 그림을 그려넣은 모습이었다. 그가 입은, 학교에서 만들어주었다는 화려한 선수용 팬츠에는 ‘영등포 여고’와 ‘거인체육관’이 커다랗게 쓰여 있다.
반면 이인영 선수 대기실은 다소 조용한 분위기로 차분하게 시합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어제 목까지 차 오를 정도로 많이 먹고 푹 쉬었어요”라며 여유 있게 농담을 던진다. 시합 직전 인터뷰에서 “열심히 하겠다”는 짤막한 한마디만 남긴 김선수와는 달리 취재진들의 질문에 침착하게 답변해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인영 선수 옆에는 어머니, 언니, 사촌 등 전남 광주에서 올라온 가족들이 빙 둘러싸고 있었다.
“인영이가 맞는 장면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파요. 동생은 한가지에 집중하면 뿌리를 뽑는 성격이에요. 그래서 권투가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집에 있을 때도 온통 권투 생각뿐인걸요”라던 큰언니 용자씨(47)는 “그래도 동생이 맞을 때보다 때릴 때가 더 많아서 다행”이라며 살짝 웃었다.
시합 시간이 다가오자 김주병 관장과 이 선수는 간단한 몸풀기를 시작했다. “라이트 먼저 나가면 안돼. 알았지? 레프트가 나가야 허점이 없어서 맞지 않는 거야. 상체 힘이 너무 들어갔어. 옳지” 하며 김관장은 작전을 일러주기에 바빴다. 몸풀기를 하는 이선수의 표정은 좀전까지 농담하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전문가들은 이인영 선수가 초반에 기선을 제압하면 쉽게 승리할 수 있겠지만 장기전으로 간다면 체력적인 면에서 젊은 김주영 선수가 유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드디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선수들이 입장하고 각 응원단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필승, 전승, 압승, 김주희’라는 피켓을 들고 목청껏 소리를 질러 기선을 제압하려는 김선수 응원단과 양손을 마주하고 안타깝고 초조한 모습으로 바라보는 이선수 응원단의 모습도 사뭇 달랐다.

국내 첫 여성프로복싱 타이틀전 펼친 이인영 & 김주희

여성프로복싱 타이틀전을 홍보하던 포스터.

“홍코너 50킬로그램 이.인.영” “청코너 50킬로 500그램 김.주.희”라는 사회자의 소개가 끝나고 수많은 취재진과 관객들의 호응 속에 공이 울렸다. 공이 울리자마자 탐색전도 없이 예상을 깨고 김선수가 저돌적으로 파고들며 공격을 시작했다. 두 사람은 난투극을 벌이며 한치의 양보도 없이 경기를 펼쳐 나갔다. 1라운드가 끝나고 1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각 선수 진영에서는 발빠른 움직임으로 선수들의 휴식을 도왔다.
2라운드가 시작되면서 김선수는 깊은 심호흡을 하며 링 가운데로 뛰어들었다. 두 선수의 눈에서는 불꽃이 튀었다. 주로 얼굴을 공격하면서 치고 빠지는 김선수의 왼손 주먹이 이선수의 얼굴을 정통으로 때렸는가 싶더니 이 선수의 오른손 주먹이 곧바로 김선수를 강타했다. 그러나 이선수의 코에는 어느새 피가 맺혔다.
관객들은 일제히 일어나 환호성을 지르며 단 한 장면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이선수의 어머니는 결국 보다못해 시합장을 떠났고 양쪽 응원단은 소리를 지르며 더욱 열심히 응원을 했다. 두 사람의 공방이 워낙 빠르고 치열해서 도무지 여자 선수들의 시합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순간 이선수가 크게 한방을 먹이자 김선수가 휘청거리더니 이선수에게 매달렸다. 심판이 두 사람을 떼어놓아 시합은 계속되었지만 좀전의 한방이 컸는지 상대를 얼싸안는 횟수가 많아진 김선수. 이선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공세를 강화했다. 결국 지친 기색이 역력한 상대에게 이선수가 회심의 라이트훅을 날리자 ‘쿵’하고 김선수가 링에 쓰러졌다. 4라운드 1분20초 만에 이선수는 극적으로 KO승을 거뒀다.
이선수에게 챔피언 벨트가 채워졌다. 그리고 패한 선수를 따뜻하게 안아주며 격려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김선수는 고개를 떨구고 정관장의 품에 안겨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를 지켜보던 친구들도 눈물을 흘리며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챔피언이 돼서 너무 기뻐요. 더 열심히 해서 꼭 세계 챔피언이 될 겁니다. 오늘 시합은 가족들의 격려 덕분에 이길 수 있었어요.”
여성챔피언 1호가 된 이선수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조금전 시합을 마쳤음에도 지친 기색 하나 없이 승리의 순간을 즐겼다.
“사실 김주희 선수가 시합 시작하자마자 달려들며 공격을 시작해서 깜짝 놀랐어요. 그럴 줄 몰랐거든요. 어떻든 오늘 좋은 시합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주희는 아직 나이가 어리니까 더 많은 기회가 올 겁니다. 용기를 잃지 말고 열심히 했으면 좋겠어요.”
아이와 함께 경기를 관전하던 한 주부는 “권투가 이렇게 통쾌한 건지 몰랐어요. 여자 선수들이지만 파워가 대단하네요”라며 처음으로 본 권투시합 관전 소감을 말했다. 대학생 이모씨도 “특정하게 누구를 응원했던 건 아니었어요. 여자 선수들이 권투를 한다길래 호기심에 오게 되었는데 정말 재미있었어요. 앞으로 여자권투시합을 자주 보게 되면 좋겠어요”라며 앞으로 이인영 선수의 팬이 될 것 같다고 한다.
전 세계챔피언 변정일씨와 프로모션 계약을 맺은 이인영 선수는 내년 1월 일본의 유미 다카노(9승 5패 1KO) 선수를 국내로 불러들여 경기할 예정이다. 이 경기에서 승리하게 되면 7월께 세계 챔피언이 되겠다는 꿈을 실현할 기회를 얻게 된다. 머지않아 국내에서 첫 여성 세계챔피언의 모습을 보기를 기대한다.





여성동아 2002년 12월 4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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