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EOPLE

궁금한 이 남자

중년의 나이에도 여성팬들의 가슴 설레게 하는 남자 홍요섭

“젊어서 인기 얻겠다고 아등바등하지 않은 덕을 이제 보는 모양이에요”

■ 글·정지연 기자(alimi@donga.com) ■ 사진·조영철 기자, 홍상표

2002. 12. 11

연예계에서 영원한 ‘아웃사이더’로 통하는 미남 탤런트 홍요섭. 그가 2년 6개월여 만에 KBS 드라마 <고독>으로 돌아왔다. 중년의 나이지만 여전히 한창 때의 몸매와 매력을 갖추고 있는 홍요섭. 겹치기 출연은 절대 안하고, 쉴 때면 스킨스쿠버와 다이빙, 여행을 즐기며 산다는 그가 처음으로 털어놓은 가족 이야기 & 연기자로서 사는 법.

중년의 나이에도 여성팬들의 가슴 설레게 하는 남자 홍요섭
열다섯 살 난 딸이 있는 40대의 미혼모와 20대 남성의 사랑을 다루고 있는 KBS 드라마 <고독>. 관록의 여배우 이미숙이 미혼모 ‘경민’을, 그리고 개성 강한 ‘양아치’역으로 스타덤에 오른 류승범이 경민을 사랑하는 ‘영우’역을 맡았다. 그러나 이 드라마에는 두 주인공보다 더 눈에 띄는 조연이 있다. ‘경민’의 옛 애인인 유명 기업가 ‘은석’역을 맡은 홍요섭(47)이 바로 그 주인공.
SBS 드라마 <착한 남자> 이후 2년6개월 만에 드라마에 복귀했다. 한창 잘 나갈 때도 작품이 끝나면 적어도 6개월은 쉬었던 그이지만, 이번 공백은 퍽 길었다.
“사실 3년 정도 더 쉬려고 했어요. 제가 준비하는 다른 일도 있고 해서, 드라마에 얼굴을 비추는 건 좀 미룰 생각이었죠. 좀더 나이 들고 연륜이 쌓여서 멋있는 아버지 역할로 등장해도 좋겠다며 느긋하게 생각했는데 아들 녀석 때문에 복귀를 앞당길 수밖에 없었어요.”
아들 때문에 TV 출연을 결심했다니, 그 내용이 재미있다.
“아들 친구들이 니네 아빠는 탤런트인데 왜 TV에 안 나오냐고 자꾸 물어봤나 봐요. 그래서 ‘인석아, 아빠가 왕년에 아주 잘 나갔던 연기자였어’ 하고 말해줘도 안 믿는 거예요. 그래서 이거 안되겠구나 하고 출연을 서둘렀죠.”
“아빠, 연기자 맞느냐”는 아들 성화 때문에 드라마 복귀 앞당겨
오랜만의 컴백에 대한 부담이었을까. 그는 지난 10월29일 급성 충수염으로 수술을 받았다. 그전부터 맹장이 계속 안 좋았는데 약만 먹고 버티다가, 결국 증세가 심각해져서 수술대 위에 올라야 했던 것. 촬영을 하러 나가려면 병원에서 외출증을 받아야 할 정도로 증세가 심각했지만 그는 전혀 내색을 하지 않았다.
“몸관리를 못한 것도 망신이에요. 촬영 시작되기 전에 알았으면 미리 치료를 받았을 텐데, 제가 고통에 좀 둔감해요. 그래서 약 먹고 무식하게 참은 거예요. 의사가 ‘이 정도면 굉장히 아팠을 텐데 어떻게 견뎠냐’고 놀라더군요. 수술 후유증인지 아직도 몸이 안 좋아요.”
도저히 중년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운동으로 단련된 탄탄한 몸은 수술 때문에 기력을 잃으면서 살이 쫙 내렸다. 덕분에 얼굴선은 샤프해져서 ‘카메라발’이 더 잘 받게 됐다. 사정도 모르는 이들은 “어쩌면 이렇게 하나도 안 변했느냐. 비결이 뭐냐”고 성화지만,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자신도 모르게 허허 웃는다는 그다.
“표민수 PD의 연락을 받고 출연을 결정했어요. 대본이 참 좋아요. ‘은석’이라는 남자는 성공한 남자지만 뭔가 비어있어요. 드라마가 끝날 때쯤이면 그 빈 구석이 채워질 겁니다. 다들 행복해질 거고요. 지금 딸을 데려가려고 소송을 준비중이라 시청자들에게 욕을 많이 먹고 있지만, 끝에는 공감하실 거예요.”
<고독>의 시청률이 낮다고 하지만 언론의 주목은 여전하다. 하긴 드라마 <거짓말> <바보 같은 사랑> <슬픈 유혹>의 콤비 표민수 PD와 노희경 작가의 작품 치고 시청률이 높은 게 있었던가. 그는 “너무 인기가 많으면 작가의 의도대로 작품이 가질 못한다. 때론 이런 드라마도 있어야 한다”고 여유를 보인다.
낮은 시청률보다 부담을 느끼는 건 ‘오랜만의 출연’이라고 호들갑을 떠는 것처럼 비치는 것이다.
“연기자라는 직업이 한번 몰두해서 작품을 끝내면, 6개월 가량 쉴 수 있다는 점에서는 참 좋아요. 그런데 무리하게 욕심을 내서 이것 저것 겹치기로 출연하게 되면, 페이스를 잃기 쉽거든요. 그래서 전 20대부터 이미 인기에 연연하지 말자, 여유를 갖자고 마음을 먹었지요.”
홍요섭은 본래 연기자 지망생이 아니었다. 젊었을 때 그의 희망은 PD나 방송기술직.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했고 스물한살 즈음, KBS 인턴사원으로 방송국에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만 해도 ‘공채’라는 개념이 없었어요. 그냥 뒤치다꺼리하고 심부름 하면서 자연스럽게 일을 익히는 거였어요. 그러다가 금방 군대에 가게 되었고, 제대하고 돌아온 게 81년이었죠. 그때만 해도 시절이 험악하던 때였잖아요. 그때 우연히 연극판에서 소극장 운동하던 친구들을 만났어요. 그 친구들의 자유롭고 거침없이 할 말 다하는 분위기가 좋아서 거기에 합류했지요.”
80년대 후반까지 연극판에 머물던 그에게 주위 사람들은 “탤런트가 되는 게 어떻겠냐”고 종용했다. 그렇게 해서 85년부터 MBC 드라마 <동심초> <소망>, KBS 드라마 <부초> <푸른 해바라기> <옛날의 금잔디> <그대에게 가는 길> 등 다수의 드라마에 출연하며 연기자로서 입지를 굳혔다.
“스타가 되겠다, 유명한 배우가 되겠다 하는 마음으로 연예계를 희망하는 연기자들과는 제가 바탕부터 많이 달랐죠. 아마 그랬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겹치기 출연’을 안하겠다는 제 신조를 잘 지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나 ‘겹치기 출연’을 하지 않겠다는 신조 덕분에 손해도 많이 봤다. ‘같이 하자’고 어느 PD와 약속했으면, 그는 드라마가 몇달이고 촬영이 지연되어도 기다렸다. 중간에 아무리 좋은 작품, 좋은 보수로 유혹해도 거절했다. 한번 거절하면 다시 돌아보지 않았다. 신인 시절에는 ‘건방지다’ ‘뭘 믿고 저러느냐’ 하는 사람도 물론 있었다.

중년의 나이에도 여성팬들의 가슴 설레게 하는 남자 홍요섭

그는 돌아가신 부친의 올곧은 가치관과 청렴한 생활태도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제가 좀 못된 구석이 있기 때문에 남이 뭐라 해도 신경 쓰지 않거든요. 아마도 그래서 87년인가, ‘방송 자유출연 선언’이라는 걸 겁도 없이 주동하지 않았나 싶어요.”
당시 방송국들은 빅 스타가 아니면 전속금도 주지 않고 탤런트들을 묶어두고 있었다. 그러면서 다른 방송국 출연은 원천봉쇄시켰다. 그는 이런 방송국의 횡포에 반발해 “연기자가 원하는 방송국에 출연할 수 있도록 하라. 아니면 배역을 보장해주던가, 전속금을 줘라”고 동료 연기자들과 함께 선언서를 발표했다.
“물론 그 일로 인해 찍혀서 또 2년 가까이 물을 먹어야 했죠(웃음).”
20여년 가까이 그처럼 꼿꼿한 자존심과 신조를 지키며 살아왔기에 그 자신 어딜 가도 떳떳하고, 또 그런 그를 존경하는 방송가 후배들의 신망도 두텁다고 한다.
“전 방송 출연을 쉬고 있는 동안에는 엄청나게 돈이 되는 CF나 출연 제의가 들어와도 절대 응하지 않아요. 당시엔 너무 많은 걸 포기하는 거 아닌가 생각도 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잘한 선택 같아요. 그걸 가지겠다고 아등바등했어도 지금보다 더 잘살진 못했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이른바 ‘잠수 기간’에는 무엇을 했을까. 놀랍게도 그는 정말 ‘잠수’를 했다. 해군 특수부대 출신인 그는 거의 프로급의 스킨 스쿠버 다이버. 스킨 스쿠버 다이빙을 하며 전세계 바다를 돌아다녔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다. 팀을 짜서 오지여행 가이드 등을 하기도 했다.
쉬는 동안 오지 가이드 하고 세미 프로 골퍼 되기 위해 준비
“저, 베테랑이에요. 벌써 10여년을 해왔으니까요. 약 20명 규모로 인솔해서 두달 정도 여행을 가요. 주로 의사, 교수, 변호사 이런 전문직 직종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제 멤버죠. 그 사람들은 정말 바쁜 시간을 쪼개서, 아주 큰 마음을 먹고 가는 거예요. 전 그걸 알기 때문에, 단순히 그들에게 이색체험을 시켜주는 데 머무르지 않아요. 그곳에서의 체험이 이들의 인생에 꼭 필요한 쉼표가 되도록 신경을 쓰죠.”
맨 처음엔 가이드가 연예인이라는 사실에 깜짝 놀라던 사람들은 여행이 끝날 쯤이면 두번 놀란다고 한다. “연예인들은 전부 당신 같으냐. 당신으로 인해 연예인을 다시 보게 되었다”는 말을 들을 때 그는 보람을 느낀다고.
최근 4~5년간 여행과 다이빙을 제쳐두고 주로 ‘골프’에 미쳐 살았다고 한다. 그는 연예계뿐만 아니라 아마추어 골퍼들 사이에서도 소문난 ‘프로급’ 골퍼다. 무려 드라이버샷 거리가 3백 야드를 넘길 정도로 엄청난 장타자. 입문 1년 6개월 만에 ‘싱글’을 따낼 정도로 천부적이다. 2년 전부터는 1년에 2번씩 열리는 세미 프로 테스트에 매번 출전하고 있다. 올해도 출전했는데, 컨디션 난조로 아깝게도 본선에서 미끄러졌다.
“평소 괜찮다가 시합 3, 4일 전이 되면 꼭 몸이 아파요. 링거주사 맞아가며 시합에 나간 적도 많아요. 스트레스 때문인지 모르겠는데, 늘 그러니까 징크스 같아요. 이번 8월에도 세미 프로에 출전했는데, 몸이 안 좋아서 첫날만 치고 둘째날은 포기해야 했어요. 저는 그래도 괜찮은데 주변 사람들이 너무 아쉬워해요.”
그가 골프를 시작한 건 10년 전의 일. 그때만 해도 골프 치는 사람도 얼마 없었고, 그 역시 스킨 스쿠버의 매력에 빠져 골프에는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진지하게 ‘직업’으로 ‘세미 프로 골퍼’를 목표로 삼게 됐다.
“전 그저 놀러 다니느라 골프를 치는 게 아닙니다. 아주 진지해요. 주변 연예인들 보니까 50~60대가 되어 할 일이 없으면 식당을 내거나 밤무대에 서더라고요. 전 그렇게 늙기 싫었어요. 프로골퍼가 되면 건강도 지키면서 돈도 벌고, 또 다른 이들에게 즐거움도 줄 수 있잖아요. 그래서 미국의 유명 골프 스쿨에도 다녀왔어요. 비싼 학비 물며 다녔으니 꽤 투자도 많이 한 셈이죠.”
홍요섭은 교회 후배이자 조카 친구였던 정미경씨와 연애 결혼했다. 음대 강사인 부인에 대해 그는 “멋 부리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여자, 두달 씩 여행하느라 집을 비워도 눈 하나 꿈쩍 않는 배포가 큰 여자”라고 설명한다.
“지나간 얘기지만, 처음에는 장인이 저와의 결혼을 반대하셨어요. 장인이 상당한 재력가셨거든요. 그러니 연예인에게 딸을 준다는 게 내키지 않으셨겠죠. 그런데 우리 아버지 존함을 듣고는 바로 허락하셨어요. ‘그집 아들이라면 배우가 아니라 더한 걸 해도 걱정이 없다’고 하시면서 말이죠.”

중년의 나이에도 여성팬들의 가슴 설레게 하는 남자 홍요섭

중학교 3학년인 큰딸과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 홍요섭은 ‘공부하라’고 닦달하기 보다 느긋하게 아이들의 재능이 무언지 지켜봐주자는 입장이다.

7년전 돌아가신 그의 부친은 전 화곡교회 원로 목사 홍영의씨. 그의 이름이 ‘요섭’(요셉)인 것에서 짐작되듯이 홍씨는 모태신앙인이다. 부친은 물욕은 헛된 것이라 믿는 청렴하고 올곧은 분이었다. 누군가의 애완견이 산책로에 똥을 싸놓고 가면 맨손으로 치울 정도였고, 화장이라는 개념이 보편화되지 않은 당시에 “나, 죽으면 태워서 그냥 뿌려다오” 할 정도로 무욕의 삶을 살았다. 그가 연예계의 ‘아웃사이더’가 된 데는 이런 부친의 영향이 컸다.
“연예인이 되겠다고 했을 때도 반대는 않으셨어요. ‘주변 사람에게 누 안 끼치게 네가 알아서 잘해라’ 이 말씀뿐이셨죠.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 화장터에 몰려온 인파를 보고 인부가 돌아가신 분 성함이 어떻게 되느냐고 물어볼 정도로 신망이 두터우셨어요.”
그는 그런 아버지의 삶을 본받고 싶어한다. 아버지는 그의 삶 곳곳에 너무나 큰 흔적을 남기고 가셨다.
“우리 부부는 이제껏 살면서 소리 한번 질러본 일이 없어요. 서로 예의를 지키기 때문이죠. 부친께서는 늘 그러셨어요. ‘부부 간에는 비록 싸울 때라도 지나간 허물을 들추어내는 법이 아니다’ ‘절대로 배우자 뒷말을 다른 데 가서 하지 말아라.’ 부부가 허물이 없어지면 할말 안 할말 다하게 되잖아요. 그러면 감정적이 돼서 싸움이 커지게 되고요. 하지만 우리 부부는 이 원칙을 지켜왔기 때문에 싸울 일이 드물었어요.”
그러나 살갑거나 자상한 남편은 아니라고 했다. 특별한 날이라고 무슨 선물이나 기억날 만한 이벤트를 준비해본 기억도 없다. 단 둘이 있어도 아내에게 ‘재롱’을 떨지도 못한다. 그는 “천성이라서 어쩔 수 없다”고 그런다.
부인 정씨와의 사이에는 1남1녀를 두고 있다. 큰딸은 중학교 3학년이고 아빠를 많이 닮은 아들은 초등학교 4학년이다. 그는 아이들에게 “공부해라” 닦달하는 아빠는 아니라고 했다. 그저 어릴 때는 공부하는 버릇만 들이는 정도면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 아이들이 좀 늦된 편이에요. 우리 딸이 책을 참 좋아해서 많이 읽는데, 저더러 그래요. 공부를 왜 그렇게 악착같이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그래서 전 담임선생을 만나서도 그랬어요. ‘그냥 애를 이대로 둡시다’ 하고요.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필요성을 못 느끼는 아이에게 ‘학원 뺑뺑이’를 시켜봐야 뭐하겠어요. 전 부모는 자식의 재능이 무엇인지 지켜봐 주고 그걸 발견하면 후원해주면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 딸 재능이 엄마나 절 닮았으면 예체능 쪽이어야 하는데, 지켜보니 그건 아닌 것 같아요. 그런데 적성이 인문계 쪽이라면, 빨리 준비해야 하잖아요. 공부는 너무 늦어지면 따라가기 힘드니까요. 그래서 딸에게 ‘네가 공부할 거면, 고 1 시기만큼은 놓쳐서는 안될 거야’라고 말해줬어요.”
하지만 그는 걱정을 안한다고 했다. 한번 ‘미치면’ 무섭게 하는 딸의 성격을 잘 알기 때문이란다. 한편 그를 브라운관으로 내몬 아들은 어떨까. “요즘 드라마 보고 반응이 어떠냐”는 질문에 그가 소리내어 웃었다.
“이 녀석이 아직 현실과 드라마를 구분을 못해요. 얼마전 이미숙한테 뺨 맞는 장면을 찍었는데, 그걸 보고 ‘누가 감히 울 아빠를 때리냐’고 방방 뜨고 난리가 났어요.(웃음)”
그 동안 그는 부드럽고 착한 남자 역을 주로 맡았다. 주로 여주인공을 드러나지 않는 애정으로 돌보고 지켜주는 남자, 매너 있고 자상한 남자 역할 말이다.
“이른바 터프가이보다 그런 역이 더 표현하기 힘든 법이에요. <야인시대>식의 카리스마? 인상 쓰고, 차갑고 매몰차게 보이는 거? 그런 건 제겐 아주 쉬워요. 그래서 일부러 그런 역은 피해왔어요. 일상적인 모습을 표현하기가 더 어려운 법이거든요. 전 평소에도 후배들에게 그렇게 말해요. 인상 쓰는 게 카리스마가 아니라, 약속 잘 지키고, 맡은 일 칼같이 해치우는 것, 그것이 카리스마라고요.”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 불리는 홍요섭의 별명은 ‘아웃사이더’와 ‘어 뜨거’다. ‘어 뜨거’는 무슨 일에도 호들갑 떨지 않는다고, 예를 들면 펄펄 끓는 물을 부어도 ‘어, 뜨거…’ 하고 만다고 붙여진 별명이다. 그러나 기자는 어느 신문 칼럼에서 그의 이름 앞에 붙인 호칭이 가장 그답다고 여겨졌다. ‘여의도의 명품’이라는 호칭 말이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그 가치가 변하지 않는 명품 같다고 칭찬해주셨는데 참 고맙고, 몸둘 바를 모르겠더군요. 앞으로 소망이 있다면 전 ‘국민배우’는 안해도 좋으니까, 그저 인간 명품으로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고 싶습니다.”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