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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맑고 고운 삶

전주 모악산에서 홀로 산 12년 기록 산문집으로 펴낸 박남준 시인

“철따라 피는 꽃, 개울의 버들치, 산을 넘나드는 바람 모두 제겐 깨달음을 줍니다”

■ 기획·정지연 기자(alimi@donga.com) ■ 글·최경희 ■ 사진·홍상표

입력 2002.12.11 13:44:00

전주 ‘모악산’하면 떠오르는 사람, 시인 박남준. 이미 4권의 시집을 세상에 내놓은 중견 시인이지만
그는 아직도 ‘진달래 총각, 풀여치, 전주의 눈물’ 등으로 불린다. ‘모악산방’이라 이름 지은 흙집에서 12년째 홀로 꽃과 새와 바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시를 쓰며 살아온 그가 자신의 생활을 담아낸 글과 사진을 모아 산문집을 펴냈다. 이제는 ‘모악산 시대’를 접고 새로운 삶터를 찾고 싶다는 그와의 소박하고 정겨운 만남.
전주 모악산에서 홀로 산 12년 기록 산문집으로 펴낸 박남준 시인
“뭐이런 날씨가 다 있답니까? 비바람이 치더니 우박이 내리고….” 자동 응답기에서 들려오는 시인 박남준씨(46)의 목소리. 그는 남들 다 쓰는 휴대전화 하나 없이 전화기에 그렇게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해놓는 것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있었다. 어느 때부터인가 녹음된 내용 자체가 한편의 시라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그의 목소리를 들으러 전화를 거는 애청자(?)도 많고, 동료 작가들이 이를 소재로 글을 쓸 정도라고 한다.
기자가 그를 만나기 위해 갔던 날, 그가 녹음해둔 것처럼 전주의 날씨는 심한 변덕을 부리고 있었다. 전주역에 도착하니 비가 내렸고, 시내에서도 한시간여를 더 달려 모악산 기슭에 다다랐을 때는 우박이 떨어졌다. 그리고 모악산방에 이르렀을 때는 눈보라가 쳤다. 세상이 금세 새하얗게 변했다.
그가 이곳에 살면서 하루에도 몇번씩 해바라기를 했을 툇마루에 나란히 앉아 눈으로 뒤덮인 모악산의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문득 이 세상에 신기루라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세상에서 뚝 떨어져 있는 듯한 느낌.
휴대전화도, 보일러도 없이 자연과 벗삼아 사는 ‘무공해 시인’
“군불을 지펴 놨어요.”
요즘 같은 시절에 보일러도 없다니. 그래도 단풍나뭇잎을 넣어 곱게 바른 한지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밖의 눈보라와는 아랑곳없이 방안이 따뜻하기만 하다. 마치 인사동의 전통 찻집에 들어온 듯한 정겨운 느낌을 주는 흙집. 이곳이 그의 거처다.
글뿐만 아니라 그림 잘 그리고 노래 잘하기로 소문난 그답게 군데군데 뜯겨져 나간 종이 장판에는 직접 그린 호랑이 그림을 붙여놓았다. 한달 생활비의 절반을 음반을 사 모으는 데 쓸 정도라더니, 방 한쪽에는 1천장은 족히 넘어 보이는 CD와 오디오 기기가 빽빽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직접 만들었다는 한지 조명이 방 가운데 다탁과 다기를 은은하게 비춘다. 박시인은 뜰앞의 샘물을 받아 차를 끓였다. 목통차(으름나무차)라고 했는데 그 맛이 은근하고 달았다.
“제가 요새 몸이 안 좋아서 녹차를 못 마신다고 했더니, 한의사 하는 친구가 목통차를 줬어요.”
통풍이란다.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으면 그렇다는데, 다리가 붓고 쿡쿡 찌르는 통증이 이만저만 아니라고 했다. 어느날 갑자기 걸을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와서 이틀 동안 혼자서 끙끙 앓고 있던 중에 마침 찾아온 친한 선배와 함께 병원에 가서야 병명을 알았다고 했다. 다행히 지금은 퇴원한 상태로 목발 신세도 면했지만, 치료를 계속 받아야 한다고 했다. 치료받는 동안 가장 힘든 것은 음식 제한. 고기며 등 푸른 생선, 콩까지도 먹지 말라고 했으니 비린 것 중에 유일하게 즐겨 먹던 고등어도, 명란젓도 피해야만 했다. 심지어 녹차도 몸에 안 좋다니 이렇게 가려야 할 게 많은 병이 있는가 싶다고 그런다. 이러니 술은 당연히 금지품목. 문단에서도 알아주는 애주가인 그가 술의 유혹을 참는 건 그야말로 만만치 않은 ‘고문’일 듯싶었다.
“아무래도 방에 너무 습기가 많아서 병이 든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방에 수맥이 흐르지는 않는다고 그러던데, 산이 너무 가까이 있고 집앞에 나무가 많아서 해가 잘 들지 않거든요. 그동안 이곳의 기운도 다 받았고 해서 될 수 있으면 다른 데로 옮겨가야 할 것 같은데…. 살 만한 데가 잘 안 찾아지네요. 동네에서는 못 살겠고, 경제적으로 감당할 힘도 없고요. 아는 스님이 지리산으로 오라고 하는데, 거기로 가려면 전주를 떠나야 하고…. 아무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요.”
그가 모악산을 떠날 궁리를 하다니 의외였다. 문인들 중에는 ‘모악산’하면 으레 그의 이름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다른 곳에 살고 있는 박시인을 떠올리자니 영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전주 토박이는 아니다. 고향은 전남 법성포. 고등학교 2학년 때 전주로 온 후, 전주를 떠난 적이 드물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곳에 있는데, 형편 때문에 무작정 이곳을 등질 수도 없는 노릇이라 이래저래 고민이 많다는 그다. 이사가 잦은 요즘 사람들의 눈에야 그깟 일 가지고 고민하는 그가 별난 사람으로 보이겠지만 말이다.
전주 모악산에서 홀로 산 12년 기록 산문집으로 펴낸 박남준 시인

모악산과 궁합이 잘맞아 무려 12년을 지냈던 박남준 시인은 새 산문집에서 그가 모악산에서 맺은 인연의 여러 고리들을 풀어놓았다.

“이번 책이 모악산 주변의 이야기를 풀어낸 마지막 산문집이 아닐까 싶어요. 제가 이곳에서 늘 대하던 나무나 풀, 버들치(잉어과의 민물고기)나 새들 같은, 제 주변에 알짱거리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들을 풀어놨거든요. 근데 이제는 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그동안 모악산에 머물며 박시인이 펴낸 산문집은 이번 책까지 모두 4권. 박시인의 말대로라면 글쓰기의 길목에 쉼표를 찍겠다는 것일까? 그는 이번 산문집 에 그가 맺어온 인연의 여러 고리들을 풀어놓았다. 이 집에 들어와 살게 된 인연과 시를 쓰게 된 인연, 시인 안도현과 건축가 곽재환씨 등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소중한 인연, 또 이곳에서 함께 살아가는 꽃과 나무와 버들치와 진박새 같은 숲속 친구들과 함께 나눈 이야기를 그가 직접 찍은 사진과 함께 꾸밈 없이 담아냈다.
재미있는 일화도 소개했다. 이래저래 살림이 늘었지만, 문 잠그는 것도 귀찮게 여기는 시인이 백련꽃을 보러 가느라 며칠 집을 비운 일이 있었다. 마침 도둑이 들어 강연비로 받은 20만원이 고스란히 없어졌는데, 성품 좋은 시인은 이 사건을 도둑에게 20만원을 주고자 백련꽃 향기가 자신을 불러낸 게 아닐까라고 해석한다. 새끼를 낳은 도둑고양이를 미리 살펴 밥을 챙겨주지 못한 것이 미안하고, 반딧불이를 살리기 위해 다슬기를 잡으러 온 아랫마을 사람들과 싸우고, 누군가 꺾어버리고 간 복수초 한 송이를 애처로워하는 마음. 책 속에 담긴 이야기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들을 품고 싶다는 그의 넉넉한 마음으로 읽힌다.

전주 모악산에서 홀로 산 12년 기록 산문집으로 펴낸 박남준 시인

박시인은 자급자족하는 생활이기에 한달 생활비 10여만원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고 말한다.

박시인은 ‘혼자 왜 그렇게 사서 고생하느냐, 이제 그만 좀 산에서 내려와라, 혼자 도를 닦는 거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그도 회사 월급으로 생활하는 평범한 도시의 삶을 꿈꾸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서슬 퍼렇던 군사 독재 시절, 문화운동을 함께 했던 인연으로 만난 선후배들과 카페를 운영해보기도 했다. 미술관 큐레이터는 물론 KBS 제1기 공채 구성작가로 일한 적도 있다. 그러나 그때마다 그의 마음속에는 “너, 왜 시 안 쓰고 그러고 있냐?”는 말이 들렸다고 한다.
84년 스물일곱의 나이에 등단한 시인은 가두 시위 선전문을 시로 쓸 만큼 시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 한달간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유서를 쓰던 대학 시절이, 논산 훈련소에서 만난 친구가 자대 배치를 받아 헤어지면서 건네준 반쪽의 시를 완성해서 다시 돌려주어야 한다는 약속이, 우연히 학보사에서 실시한 작품 공고를 보고 원고료가 탐이 나서 시를 쓰던 날의 풍경이, 갯벌에서 발가벗고 진흙싸움을 하다가 갑자기 찾아온 변성기에 어른이 되는 것이 두려워 자살을 시도하던 그 날의 하늘이, 그런 인연들이 그를 시인의 길로 밀어왔다.
“84년 가을 무렵부터 모악산을 자주 오르내렸어요. 갈 때마다 딴 길을 일부러 찾아다녔는데, 하루는 길을 잃었어요. 밥 짓는 연기 냄새가 나서 찾았더니, 집이 있더라고요. 늙은 무당이 방문을 열길래 물 한잔을 얻어 마셨죠. 그걸 달게 마시면서 속으로는 여기서 한 두어달 세들어 살면 앞으로 글 쓰는데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러고 나서 까마득히 잊어버렸죠. 그러다가 91년 전주 미술관 큐레이터 일을 급하게 맡느라 집을 못 구하고 있는데, 마침 그림 그리는 선배가 작업실을 새로 얻었으니 가보자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가는 길이 어쩐지 낯이 익어요. 도착해보니 바로 이 집이었어요.”
집을 양보해달라고 선배에게 양해를 구했다. 그때부터 이 집에서 살았다. 변변찮은 살림 도구 하나 없이 코펠에 밥을 해 먹고, 나뭇가지들을 주워 군불을 때고 살았다. 모든 것이 날마다 충격으로 느껴질 정도로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자신을 성찰할 시간이 없었던 탓일까, 도시에 살 때는 그렇게 써지지 않던 글이 이곳에서는 그 모습을 갖추어 나왔다.
“전주로 출퇴근한 지 일년이 지나자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푸성귀를 가꿔 먹고, 보고 싶은 사람 덜 만나고, 가고 싶은 데 덜 가고 그러면 돈을 벌지 않아도 글을 쓰면서 살 수 있을 것 같더군요. 아무리 힘들어도 글 쓰면서 단순하게 살자고 결심했죠. 사표를 냈어요. 원래 내일을 계획하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서 모아놓은 돈이 있을 리 있나요? 도둑 맞을까봐 다 써버렸죠. 그래서 봄 되면 쑥, 원추리를 정말 지겹게 뜯어먹었어요.”
5년 동안 시집 2권과 산문집 2권을 잇따라 펴냈으니, 그야말로 앉기만 하면 글이 되던 시절이었다. 김치에 밥 한 그릇과 국 한 그릇을 달게 비우면서 너무 행복해서 부러울 게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저뿐만 아니라 우리 세대, 80년대를 살아온 사람들이라면 어느 자리에 있더라도 마찬가지겠죠. 운명이 됐든, 무능력이 됐든, 시대나 역사에 의해 강요된 것이든, 삶을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데 혼자서만 행복한 것 같아 괜히 죄 지은 생각이 들기도 해요.”
그가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법은 이렇다. 주걱에 묻은 밥풀은 버들치에게 나눠준다. 고기를 먹지 않으니 보통 개울물로 헹구고 개숫물은 개울가와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버린다. 군불은 죽은 나뭇가지만 모아서 땐다. 휴지와 인분은 나눠서 모으고, 인분과 오줌은 거름으로 밭에 뿌린다.
“제가 환경주의자라고요? 오히려 생태 파괴를 하고 있는 셈인걸요. 산 나무가 되었든 죽은 나무가 되었든 나뭇가지와 솔잎을 긁어서 불을 때고 살잖아요. 그 나뭇가지들은 사실 다시 숲으로 돌아가서 풀들의 거름이 되어야 하는데….”
나뭇가지 하나를 군불에 넣으면서도 그는 거름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스스로를 태우는 죽은 나뭇가지에게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말한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는다. 아내 몰래 CD 플레이어를 사다준 후배, 비가 새는 지붕을 양철지붕으로 바꿔준 선배, 새로운 모양의 토기를 구우면 어느 때고 가져다주는 친구, 그리고 그의 글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이곳에 살아도 씨를 뿌리고 풀을 뽑는 적은 노동이나마 하지 않으면 춥고 배고파요. 여기나 도시나 세상 살아가는 건 다 똑같아요. 물론 세상일에 상처 받는 것은 덜하겠죠. 하지만 저 역시 새 한 마리나 풀꽃 하나를 보면서도 스스로 상처도 받고 위안도 받고 그래요. 이렇게 사는 게 뭐 대단한 결심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는 이런 삶의 방식이 저와 비교적 맞는 거라고 생각해요. 세상에서 한발만 빼고 살아가는, 어쩌면 아주 타협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전주 모악산에서 홀로 산 12년 기록 산문집으로 펴낸 박남준 시인

자연속에서 살아가는 박시인은 군불 때느라 주운 나뭇가지들에도 미안해한다.

도둑 이야기를 통해 미루어 짐작하겠지만, 시인의 살림 규모는 한달에 고작해야 십 몇 만원 안팎. 전화비와 전기세를 제외하면 전주와 서울을 오가는 차비와 책 구입비, 그리고 음반 구입하는 데 쓰는 돈이다. 올해는 산문을 쓰지 않아 가난한 살림살이가 더 빠듯했다고.
한달에 두번 시를 강의하러, 또 일주일에 한번 한문 공부하러 나가는 일 외에는 몸을 움직여 이런저런 일을 한다. 가을에는 곶감을 곱게 말리고, 겨울밤이면 밤새도록 첼로 음악을 들으면서 나무를 깎아 목우를 만들어 그동안 고마웠던 지인들에게 나눠주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지 않았느냐. 왜 결혼도 하지 않고 이렇게 사느냐”는 질문에 그는 고통도 혼자서, 기쁨도 혼자서 오래도록 견디다 보니 누가 옆에 있는 게 불편하다고 대답한다.
“한번은 어떤 여자가 혼자 여길 찾아왔죠. 밥을 해서 먹이고 차를 끓여 마신 다음 바로 보냈어요. 길을 내려가다가 이 사람이 문득 뒤를 돌아보며 외치는 거예요. ‘결혼할 거면 꼭 저랑 해야 돼요!’ 방안에 들어와 생각하니 그 말이 어찌나 우습던지….”
그에겐 종종 그런 여자 팬들의 방문이 있다고 한다. 결혼을 하자는 말도 아니고 기다리겠다는 말도 아닌, ‘결혼할 거라면’이란 ‘조건 붙임’이 그에겐 우스웠을지도 모른다. 이렇듯 어떤 조건을 붙여 사는 일은 시인의 생리에 맞지 않는다.
“여기가 원래 새터골이라 새가 많아요. 여기서 산 지 얼마 안 됐을 때 저 밭에 나가서 쑥을 뜯고 있는데, 어떤 새가 ‘허허 허이, 허허 허이’ 이렇게 울더라고요. 처음 듣는 새소리였는데, 그 새가 이렇게 사는 절 비웃는 것처럼 들렸어요. 쑥을 캐다가 서러운 생각이 들어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주저앉아서 막 울었어요.”
자신을 비웃는 새가 어떤 새인지 찾아보았다. 저놈, 날 비웃는 새가 어떤 새일까. 검은등뻐꾸기라는 새였다. 그로 인해 시인은 놓았던 화두를 찾았다.
“그 새와는 화해를 했죠. 늘 비웃는 듯한 새소리만 듣다가 가까운 거리에서 그 새와 눈이 딱 마주친 적이 있었죠. ‘아, 너구나. 몇 년 전에 내가 이렇게 살 때 네가 날 비웃어서 속상했는데, 이제 괜찮아.’ 그렇게 말했더니 그 새가 마치 알아들었다는 듯 한번 울고 떠나는 거예요. 그런데 어느 해 봄인가 손님이 와서 쑥을 캐러 밭에 나갔는데 그 새가 또 울고 있어요. 손님이 ‘저 새 말이야, 홀딱 벗고 홀딱 벗고 우는 저 새가 무슨 새야?’ 그러는데, 그때 무릎을 쳤죠. 아, 저 새소리를 비웃는 소리로 들을 게 아니라,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하는 무겁고 어리석은 삶을 홀딱 벗으라는 소리로 들었다면, 그렇게 홀딱 벗고 이곳에서 살았다면 스스로에게 좀더 여유롭고 편안했을 것 아닌가 해서요.”
그때 그는 자신이 잘못 살아왔다는 생각을 했다. 한마디 새소리에 세상이 놀라고 천지가 진동을 하는 것, 그게 바로 시의 본연이 아니던가. 2년전 지리산 실상사 작은 학교에서 강의할 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스님들은 그 새소리를 ‘빡빡 깎고 빡빡 깎고’로 들었더라는 우스갯소리를 덧붙인다. 이처럼 삶을 일깨우는 건 비단 새소리만이 아니다. 철 따라 뜰 앞에 피어나는 쑥부쟁이꽃, 흰노루귀꽃, 개울물의 버들치, 산을 넘나드는 바람소리도 모두 그에겐 깨달음이다. 그때마다 ‘편안해져야지, 부끄러워져야지’ 속으로 되뇌인다고.
“세상에는 누군가 절망과 좌절 속에 빠져있을 때 ‘힘내라’하면서 어깨를 다독여주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그 자리에 같이 주저앉아서 ‘나도 너 못지않게 좌절의 나날이야’하면서 손길을 내미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후자에 가깝죠. 제 시와 글이 그런 위안의 손길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말할 때 그는 아직도 자신이 흰머리가 검은 머리보다 많은 중년의 사내라는 사실을, 그 세월을 견디고 피어난 꽃이라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것 같았다. 직접 담갔다는 술과 햇볕에 곱게 마른 곶감으로 술상이 차려진 지는 이미 오래. 꽃이 지자마자 눈꽃을 피우는 모악산의 밤은 그렇게 깊고 그윽하게 저물어갔다.

여성동아 2002년 12월 4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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