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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화끈한 여자의 주장

연극 <자기만의 방> 10주년 기념 무대에 선 배우 이영란

■ 글·정지연 기자(alimi@donga.com) ■ 사진·정경택 기자

입력 2002.12.11 13:01:00

“재공연하면서 내용을 대폭 바꿀까 생각했지만 놀랍게도 여성의 삶은 10년간 크게 달라진 게 없더군요”
모노 드라마 <자기만의 방>이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했다. 92년 이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남으려면 ‘자기만의 방’과 ‘경제적 독립’을 갖추라고 강변, ‘페미니즘 논란’에 불을 붙였던 이 연극은 특히 도올 김용옥, 마광수, 김지하 등 내로라 하는 남성 지식인을 맹공격, 화제가 되기도 했다.
10년 전과 마찬가지로 주연을 맡은 이영란 교수를 만나 그 동안 과연 변한 것은 무엇인지 들어 보았다.
연극  10주년 기념 무대에 선 배우 이영란
“장선우 감독은 영화마다 실감나는 강간신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이 분의 최근 영화를 보지는 못했습니다만, 이번에는 한 소녀가 성냥을 팔다가 강간이나 당하지 않았나 걱정됩니다.” (관객들 박장대소)
92년 본격적인 페미니즘 연극을 표방하며, 마초들의 사회에 따끔한 일침을 가했던 연극 이 10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랐다. 무대에 선 이영란 교수(49, 경희대 인문예술학부)는 초연 당시의 짧은 커트 머리를 어깨에 닿을 정도로 길렀고, 날렵했던 몸에 살이 좀 붙은 것만 빼면 여전해 보였다.
버지니아 울프의 6개 연작 에세이를 각색한 1인극 은 극 전체가 ‘여성과 자기만의 방’에 대한 이 교수의 강연으로 이뤄져 있다. 1장에서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편견을 대변하는 인물로 당대의 지식인 남성들이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른다. 2장은 여성의 시각으로 본 역사 속 여성의 이야기인데, 심청이, 춘향이, 어우동, 허난설헌 등을 통해 가부장제 문화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가한다. 3장은 우리 현실 속에서의 이야기로 현대여성들이 느끼는 문제점에 대해 신랄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여성들이 그 문제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방’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92년 당시에 은 그야말로 장안의 화제였죠. 여대생들은 여성학 과제 리포트를 쓰기 위해, 그리고 주부들은 화병을 가라앉히기 위해 이 연극을 보러 모였습니다. 페미니즘이라는 용어가 대중화된 지금은 상상이 안되겠지만, 당시 이 연극은 ‘여성학 개론서’ 역할을 했습니다. 10주년 무대를 준비한 건 과연 그동안 우리 여성의 삶이 얼마나 달라졌는가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였어요.”
성난 여성들의 성토대회를 방불케 했던 10년전
10년 전 ‘관객과의 대화 시간’은 일종의 ‘신앙간증’이나 ‘부흥회’ 혹은 ‘성토대회’를 방불케 했다고 이교수는 말한다. 대부분 여성이었던 관객들은 그야말로 온몸으로 이 연극이 제기하는 문제를 받아 들였고, 폭발 지점을 찾지 못해 그저 고여있기만 했던 울분을 날것 그대로 쏟아놓았다. 그러나 이교수는 지금은 양상이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젊은 대학생 관객부터 40대의 직장인 남성, 그리고 중년 여성들에 이르기까지 관객층이 두터워졌으며, 전반적으로 여성문제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음을 실감하게 됐다고.
“젊은 층의 의식변화는 제가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급진적으로 변했더군요. 얼마전 보도된 레즈비언 부부 이야기를 꺼내며 동성애 부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하는 관객도 있었어요.”
사실 그동안 우리사회는 많은 것이 바뀌었다. 특히 제도적인 면에서는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남녀차별 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99년)이 현재 시행중이며, 정부 수립 이후 최초로 여성부(2001년)가 출범했다. 또한 힘 없는 여성들의 구제와 보호에 도움을 주는 성폭력특별법(94년)이 효력을 발휘하고 있고, 모성보호법(2001년)이 국회를 통과했다. 비록 무산되었지만, 헌정 사상 최초로 여성이 총리의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은 10년전 그대로의 대본으로 관객을 맞이했다. 이교수는 그 까닭을 “아무리 제도가 바뀌었다고 해도, 내부를 들여다보면 여성의 삶은 여전히 변한 게 없다”는 데서 찾는다.
“재공연을 하면서 내용을 대폭 수정 보완하자는 의견도 많았어요. 그래서 우리 여성들의 삶이 좀더 진보적으로 개선된 사례를 찾아보기로 했는데 마땅한 사례담이 없더군요. 남자들은 세상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실제는 달랐던 거예요. 어머니 세대부터 ‘페미니스트 1세대’라 자임하는 우리들, 그리고 딸들 세대에 이르기까지 외연은 달라져도 여성이 겪는 불이익만은 여전한 거죠. 그래서 10년전 무대를 그대로 올리자고 했어요. 어디, 얼마나 변했나 한번 검증해보자는 거였죠.”
변하지 않은 건 관객들의 반응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공연의 클라이맥스인 3장 ‘우리 현실 속 여성들 이야기’ 대목에서는 관객석 모두 숙연해졌고, 남성 중심문화를 야유하는 1, 2장의 패러디를 보면서는 저마다 박수를 치며 호응했다. 그 중에서도 관객들이 흥미로워 하는 것은 연극의 제 1장 ‘남성문화 속의 여성’이다. 김생명(김지하) 김동양(도올 김용옥) 마손톱(마광수) 등 당대의 지식인 남성들이 도마 위에서 난도질 당하는데, 이런 식이다.
“(걸걸한 목소리로) 여자는 내 전공이다! 나는 어머니에게 태어났고 여자인 아내와 살고 있으며 여자인 딸을 기르고 있다. 내가 여자문제를 논의하는 방식은 언어에서 뿌리를 찾는 것이다. 여자는 해산이요 남자는 도끼다? (목소리 바꿔서) 이봐요. 김동양 교수님. 여자란 무엇인가를 설명하기 위해서 왜 이토록 현학적인 표현이 난무하는 겁니까? 제가 하고픈 말은 딱 한가지입니다. 그대, 남자들이여, 입을 닥쳐라!”
재공연을 하면서 변화가 있다면, 새로운 인물들이 거론된다는 점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의 이창동, 의 김기덕, 그리고 의 장선우가 가차없이 그의 독설에 ‘당했다’. 연극 속 대사는 이렇다.
“김기덕 감독은 모든 여성들이 창녀를 꿈꾼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진 감독이죠. 이창동 감독의 라는 영화에서는 지체부자유 여성이 자신을 강간한 남자를 아쉬운 대로 사랑한다면서요? 여성 강간 신화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 충무로, 정말 지긋지긋합니다.”

연극  10주년 기념 무대에 선 배우 이영란

이영란 교수는 10년 전 <자기만의 방> 공연이 여성학 개론서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사실 연극은 일정한 줄거리 없이 국내, 세계,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강의 형식을 띠고 있기 때문에 다소 지루하고 딱딱하다. 아울러 남성 중심사회를 비판하는 시각 역시 지나치게 단선적이고 인신공격적으로 비치기도 한다. 그런 아쉬움에 대해서 이교수는 “일부러 치우쳐서 가하는, 일종의 쇼크요법”이라고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비판할 자유가 있다면, 분노할 자유도 인정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시원스럽게 말을 잇는다.
“이 개론서 역할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에 동감합니다. 하지만 개론이 있어야 각론도 나오지 않겠어요? 10년전 저의 고민이 이런 원론에 머물러 있었다면, 지금은 솔직히 제 고민은 원론에서는 많이 떠나 있는 편이죠.”
초연 당시 그의 처지는 연극을 보며 속 터지는 현실을 대리 투사하던 일반 관객들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미국 브루클린 대학과 뉴욕대 대학원에서 연극 공부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직후였던 그는 일정한 수입도 집도 없이 시간강사로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했다. 자기만의 방? 그건 꿈이요 사치였다.
“미래는 암울하기만 하고, 일은 풀리지 않을 때였어요. 미국에 다시 돌아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죠. 하도 가슴이 답답해서 뉴욕대에서 같이 공부했던 현경(여성 신학자)을 보러 이화여대에 찾아갔는데, 그는 없고 잠긴 학과 사무실 앞에 친구인 류숙렬(문화일보 전문위원)이 웅크리고 앉아 있더군요. 같이 집으로 가는 길에 그가 을 연극으로 무대에 올려보자고 제안을 해왔어요. 그러면서 신혜수(한국여성의전화연합 상임대표)까지 가세해서 여성문화예술기획이 꾸려졌고, 결국 이 무대가 만들어진 거죠.”
그후 10년. 그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자기만의 방’과 교수라는 직함을 얻고 ‘고정 수입’을 갖게 됐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그런데 막상 방을 얻고 나니 다른 문제들이 비집고 나오기 시작했다.
“저만의 방을 마련하기 위해 참 무식하게 싸웠습니다. 그런데 방이 생기고 나니까 이제는 그 방을 지키는 것이 너무나 어렵더군요. 다른 이들의 방과 내 방이 레고 블록처럼 잘 맞물려 있어야 하는데, 제 방과 남의 방이 늘 부딪히는 거예요.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려왔다면 우리 여성들은 이제 방과 방들을 모아 집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연대의 방식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방과 방의 부딪힘, 찌그러지고 흠집이 나는 걸 지켜볼 때마다 울기도 많이 울어야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가 강조하는 것은 ‘내공의 방’이다. 방의 주인이 약하니까 사소한 일에도 바들바들 떨고, 힘들어 하고, 분노하다가 지레 지치는 것이 아닌가 반성하게 되었다고 했다. 텅텅 비어있는 내 속의 방을 먼저 ‘내공’으로 채운 후에야 자기만의 방을 갖든지 혹은 집을 짓든지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 그가 얻은 깨달음이다.
“그동안 ‘여성 투사’로 비치기도 했지만 사실 전 페미니스트이기 전에 아티스트라고 생각해요. 크게는 휴머니스트에 가깝고요. 전 남성들을 미워하지 않아요. 이 살벌한 경쟁시대에 살아 남기 위해 지문이 닳을세라 아부를 하고, 이른바 ‘세’를 불리려고 기를 쓰는 남성들을 보노라면 연민도 느껴집니다. 하지만 제가 그들과 같은 행동을 한다는 건 다른 문제죠.”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불리면 당황스럽다”지만, 그의 말마따나 ‘여성학 전공자’도 아니면서 페미니즘 관련 연극에 적극 출연하고, 이번 행사를 주최한 페미니스트 저널 의 편집진들과도 터놓고 자매애를 나눌 수 있는 건 아마도 그가 ‘이 땅의 여성’으로서 치러낸 혹독하고도 처절한 개인적 ‘전투’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는 연극 말미에 자신의 어머니 얘기를 하며 울먹거리기도 했다. 어머니란 존재처럼 딸들을 한없이 분노하게 만들고 또 한없이 눈물 짓게 만드는 존재가 있을까.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늘 외출할 때면 원피스와 핸드백의 색깔을 꼭 맞춰서 들어야 직성이 풀렸던 어머니. 스물둘의 똑똑하고 영민한 아버지 눈에 들어 열아홉살에 혼례를 올렸던 어머니. 탐정 소설을 탐독하던 지적인 어머니. 그러나 어머니는 와세다 대학과 동 신학대학원 과정을 나온 인텔리 아버지의 바람기와 모진 시집살이까지 떠맡아야 했다. 그뿐인가. 시누이의 시누이, 시조카들까지 모두 가르치고 시집 장가 보내야 했던 착취적 가족관계에 시달렸던 어머니. 그 지긋지긋한 ‘정절 이데올로기’와 ‘조강지처 콤플렉스’ 때문에 결국 신경쇠약에까지 이른 어머니. 그는 그 어머니가 나은 7남매 중 막내딸이다.

연극  10주년 기념 무대에 선 배우 이영란

그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희생당한 전형적인 한국의 어머니 밑에서 나고 자랐다.

다섯살 때부터 무용에 재주를 보였던 그는 본래 이화여대에서 무용을 전공했다. 그러나 대학교 3학년 때 접한 록 뮤지컬 이 그를 연극의 세계로 이끌었다. 78년 도미, 뉴욕의 브루클린 대학에서 연기를 공부하고 뉴욕대 인문대학원 공연학과를 졸업했다. 그리고 대학원 시절 만난 남편과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귀여운 딸도 낳았다. 그러나 결혼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하지만 이혼을 하고서 그는 당당했다. “결혼을 새로운 시작이라고 하면서 왜 이혼은 인생의 실패로 받아들이느냐. 이혼이란 한 사람과의 일생을 살아가는 데 실패했다는 말일 뿐이지, 인생 그 자체를 실패했다는 건 아니다. 괴로운 결혼보다 홀가분한 이혼이 훨씬 낫다”라고 당당하게 주장한 것. 그의 이런 생각은 96년 ‘이혼을 부추기는 게 아니냐’는 비아냥을 감수하면서도 이라는 TV프로그램의 진행자로 나서게 했고 같은 제목의 모노드라마에도 출연하도록 만들었다. 이처럼 당찬 그이지만 어머니만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성격도 예민하고 급한데다가, 막내딸이라서 그랬는지 유난히 엄마한테 대들고 버릇없이 굴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 미안하고 속상해요. 그런데 우리 딸 현빈이는 저와 달라요. 미국에서 공부하느라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금 열여섯인 애가 워낙 속이 깊고 무던해요. 그래서 웬만한 일로는 저와 부딪히는 법이 없죠. 다른 집을 보면 딸과 엄마가 울고 불고 싸우다가 종국엔 ‘꼭 너 같은 딸 하나만 낳아서 키워보라’고 악담으로 끝난다면서요? 우린 그래 본 일이 없어요. 심지어 이번 공연 얘길 듣고는 멋있다고 칭찬해주던걸요. 그런데 우리 딸이 무지하게 싫어하는 게 있어요. 바로 저의 잔소리인데, 그걸 아니까 ‘잔소리하지 말아야지’ 다짐하다가도 막상 아이 얼굴을 보면 습관적으로 ‘체크하는 버릇’이 튀어나와요. 그게 참 문제라니까요.”
멋쟁이였다는 엄마를 닮았는지 선이 뚜렷한 얼굴과 탱탱한 피부가 생물학적 나이를 전혀 짐작도 못하게 만드는 이교수. 자신은 ‘세월의 흐름’을 너무나 선명하게 느낀다고 한다.
“10년전엔 공연 끝나고 매번 뒤풀이 자리에서 술을 마셔도 끄떡 없더니, 요즘은 보약 먹어가면서 공연하고 있어요. 몸에서 저절로 나이가 느껴지는 것 같아요. 그 뿐인가요. 작년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폭식을 하면서 운동을 쉬었더니, 급작스럽게 살이 찌더군요.”
그의 평소 복장은 헐렁헐렁한 니트 혹은 면직 원피스나 청바지 차림. 대체로 느슨하게 몸을 휘감아 신체를 조이지 않는 디자인의 옷을 좋아한다. 주변에서는 교수니까 좀 차려입고 다니라고 성화지만 ‘취향’만큼은 고쳐지지 않는다고.
“전 40~50대 중년여성 특유의 정장차림이 그렇게 답답해 보일 수가 없어요. 게다가 제가 좀 치기 같은 게 있거든요. 일부러 교수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서 자유분방하게 입는 걸 즐기죠. 히피처럼 보이는 치렁치렁한 원피스를 좋아하고, 목에 휘휘 두르는 스카프나 모자를 좋아하고, 때로는 청바지 차림도 마다하지 않아요.”
지난 10월 28일 첫 공연 때 2백50석의 소극장을 꽉 채우고도 남았던 관객들의 뜨거운 열기.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대사 하나하나에 방점을 찍는, 그의 목소리도 한 옥타브씩 올라간다. 그렇지만 연장공연은 하지 않을 생각이다. 기획단계부터 일종의 ‘이벤트’로 무대에 올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예전처럼 이 연극에만 매달리기엔 그의 관심 분야가 너무 넓어졌기 때문이다.
“예전엔 그저 불러주면 하는 식이었죠. 그만큼 소극적이었는데, 이제는 후배나 제자들을 생각해서라도 스스로 적극적으로 판을 만들어야 할 때가 됐어요. 물론 그 전에 할 일은 그동안 너무나 써버리느라 고갈된 내공을 채우는 일이겠지만요.”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던가. 분명 우리 사회에도 변화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변화’가 진정한 변화인지, 아니면 ‘진보’라는 탈을 쓴 답보상태에 불과한 것인지는 좀더 지켜봐야 할 듯싶다. 그 판단을 유보하지 않아도 좋을 그날이 올 때까지는 “여자는 왜 자신의 집을 짓기 위해서 항상 비명횡사를 생각해야 하는 걸까요?”라는 여주인공의 절규는 여전히 유효한 것 아닐까.

여성동아 2002년 12월 4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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