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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아름다운 사람

가톨릭 영성운동 예술단체 젠 베르데 예술단의 메인 보컬 민순신

“세계 순회공연 통해 화해, 용서, 형제애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어요”

■ 기획·이지은 기자(smiley@donga.com) ■ 글·조희숙 ■ 사진·박해윤 기자

2002. 11. 14

전세계에 일치와 화합의 메시지를 전하는 국제적인 영성운동 단체 젠 베르데(Gen Verde) 예술단. 지난 9월24일부터 오는 11월2일까지 전국순회공연을 갖고있는 이 예술단의 메인 보컬을 맡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한국인 민순신씨. 의사의 꿈을 접고 열아홉살에 혈혈단신 이탈리아로 건너가 다국적 예술단원으로 활동해온 그의 남다른 삶과 보람.

가톨릭 영성운동 예술단체 젠 베르데 예술단의 메인 보컬 민순신
“오랜만에 고국 무대에서 사랑과 희망을 줄 수 있는 공연을 할 수 있게 돼 너무 기뻐요. 그동안 우리나라 사람들의 공연관람 수준이 몰라보게 높아진 것 같아요. 공연 도중에 수군거리는 일도 없고 작품을 마음속 깊이 받아들이려는 집중력도 대단해요.”
세계적인 가톨릭 영성운동 예술단체인 젠 베르데(Gen Verde) 예술단의 메인보컬을 맡고 있는 민순신씨(45). 지난 9월24일 부산 KBS홀에서 가진 제 14회 부산 아시아경기대회 개막 전 행사의 초청공연을 성황리에 마치고 전국 순회공연을 하고 있는 그는 오랜만에 고국공연을 하게 된 것이 감격스러운 듯 다소 흥분돼 보였다.
이탈리아의 피렌체 근교 로피아노에 본부를 두고 있는 젠 베르데 예술단은 세계적인 가톨릭 영성운동 단체. 지난 66년 창단된 후 1천회가 넘는 순회공연을 해온 젠 베르데 예술단은 유럽에서는 유명한 뮤지컬 그룹으로 잘 알려져 있다. 전세계 13개국 23명의 여성 단원들로 구성된 다국적 공연단인 젠 베르데 예술단에서 한국인은 민순신씨와 김미숙씨(36) 단 두명뿐. 특히 민순신씨는 젠 베르데 예술단에서 25년간이나 활동해온 베테랑 단원으로 예술단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멤버로 꼽힌다. 10여년 만에 고국에서 공연을 갖게 된 그에게 이번 공연의 의미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경상도 삼랑진 출신인 민씨가 처음으로 젠 베르데 예술단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중학교에 다닐 무렵. 당시 종교에 대해 특별한 관심이 없던 그는 한 신부를 통해 ‘포콜라레 운동(Focolare·일명 마리아사업회)’이라는 것을 처음 접하게 됐다.
“큰언니가 독일에서 유학을 하고 있었어요. 그때 언니와 친분이 있던 한 신부님이 한국에 오시면서 언니 소식을 전해주러 저희 집에 들르셨어요. 그때만 해도 신부님이라면 딱딱하고 재미없는 설교만 하는 분인 줄만 알았는데, 막상 만나보니까 그런 선입관을 가졌던 것이 무색할 만큼 편안하고 자연스러웠어요. 그분을 통해 포콜라레 운동에 대해 처음 들었죠.”
포콜라레 운동이란 젠 베르데 예술단이 추구하는 순수 영성운동으로 종교, 언어, 문화 등 모든 장벽을 넘어 조화와 일치를 실현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고 있다. 포콜라레 운동의 매력에 푹 빠져버린 민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혈혈단신 이탈리아로 건너갔다. 이탈리아가 바로 포콜라레 운동의 근원지였기 때문. 그는 이탈리아에서 2년간 사회학, 신학, 철학 등 이론적 공부를 마치고 몇년 후 젠 베르데 예술단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됐다.
뜻한 바가 있었지만 당시 민씨의 나이는 겨우 스무살 남짓이었다. 다행히 그의 부모님은 이탈리아로 떠나겠다는 그의 말에 아무 말 없이 동의해주었지만 낯선 땅에서 적응하는 것은 온전히 그의 몫이었다.
“그때만 해도 이탈리아는 낯선 나라였어요. 게다가 20년 전에는 지금처럼 국가간의 교류가 잦은 편도 아니었으니까 적응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죠.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음식문제였는 데, 그때마다 주변 친구들이 저를 위해서 동양 음식을 일부러 구해다 주기도 했어요. 또 친구들이 제가 이탈리아어에 서툴다는 것을 알고 일부러 말도 천천히 해주는 등 이런저런 배려를 해줘서 잘 적응할 수 있었죠.”

가톨릭 영성운동 예술단체 젠 베르데 예술단의 메인 보컬 민순신
어릴 적부터 노래를 잘 불렀던 민씨는 중학교 시절 음악선생님으로부터 성악을 본격적으로 공부해보라는 권유를 받았을 만큼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다. 하지만 그의 꿈은 소프라노가 아닌 의사가 되는 것. 비싼 치료비를 낼 수 없는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무료로 진료를 하는 것이 그의 희망이었다. 중학교 때에는 친구들과 용돈을 모아서 고아원이나 양로원도 방문했고,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길거리에서 노래를 하며 모은 돈으로 불쌍한 사람들을 돕기도 했다. 하지만 음악은 왠지 사치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그는 더욱 적극적으로 인류에게 봉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예술단원을 선택했다고 한다.
세계 순회공연을 통해 민족들간의 화해, 용서, 형제애 등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젠 베르데 예술단의 공연은 주로 뮤지컬 형식으로 진행된다. 작사, 작곡, 안무, 연습뿐 아니라 무대설치와 운반까지 일일이 단원들의 손으로 해결한다. 특히 젠 베르데 예술단은 미혼여성들로 구성되었다는 점이 이채롭다. 예전에는 기혼여성들도 예술단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었지만 가정을 떠나 전세계 순회공연을 한다는 것에 어려움이 따르면서 자연스럽게 미혼여성들만 예술단원으로 활동하게 되었다는 것이 예술단측의 설명이다. 여성들만 모여있다는 사실만으로 재미난 에피소드도 많다고 한다.
“공연이 끝나고 연주자들을 소개할 때 모두 여자인 것을 알고 놀라는 분들이 적지 않아요. 워낙 파워풀한 연주를 하기 때문에 남자일 거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죠. 무대 설치를 할 때도 단원들이 무거운 장비를 척척 들어올리는 것을 보고 극장 관계자들이 깜짝 놀란 적도 많았고요.”
1년 중 6개월 이상을 세계 순회공연에 나서는 민씨는 순회공연 중 한국인의 정을 더욱 살갑게 느낀다고 한다. 해외 교포들이 하나같이 친 가족처럼 따뜻하게 대해주기 때문.
“독일에 공연을 갔었는데 생전 처음 보는 분들이 같은 한국사람이라며 김치도 담가다 줬어요. 브라질 공연 때는 교포 한 분이 예술단에 한국인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저희 단원 모두를 식사에 초대해 푸짐하게 대접하기도 했죠. 게다가 그분은 천주교도 아닌 개신교 신자였어요. 덕분에 단원들이 젓가락질을 확실히 배울 수 있었죠.”
오랫동안 고국을 떠나 생활하다 보면 때로는 힘든 일을 겪기도 한다. 그중 가장 안타까운 것은 고향으로부터 슬픈 소식을 듣는 경우. 지난 83년 그녀는 암으로 투병하던 모친이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고 폴란드 공연을 중단하고 부랴부랴 귀국하기도 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저희 단원들이 계속 전화나 전보로 어머니 안부를 물어왔어요. 그걸 보신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내가 딸 하나를 하느님한테 주었는데 세계의 딸들을 모두 얻게 되었다’고 기뻐하셨죠. 그러고 어머니는 한달 후에 평온하게 돌아가셨어요.”
무너진 분단 장벽 앞에서 공연하는 것이 꿈
현재 젠 베르데 예술단은 뮤지컬 <첫 장을 열며(Frist Pages)>로 부산을 거쳐 광주, 전주, 대구, 대전, 서울, 인천 등 전국 7개 도시 순회공연 중에 있다. 그리고 11월2일 부산 공연을 끝으로 젠 베르데 예술단의 뮤지컬 <첫 장을 열며>는 세계 순회공연의 대장정의 막을 내린다.
“이번 아시안 게임 전야공연을 마치고 관객과의 대화의 시간을 가졌어요. 한분은 그동안 친척들간에 사이가 나빴는데 공연을 보고 바로 전화를 걸어 화해를 했다고 하더군요. 이처럼 우리의 마음이 관객에게 전해지는 것을 느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독일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 그곳에서 했던 공연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민씨. 그는 분단된 우리나라의 장벽이 무너지는 날, 고국에서 다시 한번 멋진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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