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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별난 전시회 구경

고정관념 깨는 기발한 전시회로 눈길 모은 임옥상

“예술은 일상에서 쉽게 접하고 감동 줄 수 있는 ‘살아있는 작품’ 이어야 합니다”

■ 글·정지연 기자(alimi@donga.com) ■ 사진·정경택 기자

입력 2002.11.14 12:24:00

주방용품을 이용한 거대한 로봇이 서 있는 ‘테팔 그리고 여성의 자유전’. 매향리의 포탄으로 만든 식탁과 조명기구가 이채로운 개인전 ‘철기시대 이후를 생각한다’. 지난 10월 7일까지 인사동 가나아트 센터 3층엔 임옥상의 이색 전시회가 나란히 열려 눈길을 모았다. 고정관념을 깨는 자유로운 발상으로 우리에게 사회와 예술의 관계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아티스트 임옥상의 기발한 세계.
고정관념 깨는 기발한 전시회로 눈길 모은 임옥상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못 미친 곳에 위치한 대리석 건물 2층. 이곳이 임옥상씨(52)의 작업실이다. 청명한 아침햇살이 채 가시지 않은 오전 10시경 그의 작업실을 찾았다. 햇살이 잘 들어오는 아틀리에에서 임씨는 점토를 가지고 작업이 한창이었다. 천장에는 스푼과 나이프를 이용한 물고기가 매달려 있고, 주변에는 이번 12회 개인전 때 선보인 매향리 폭탄 잔해물을 이용한 테이블이며 조명 기구가 근사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15분쯤 지났을까. 작업을 끝낸 임씨는 찻잔을 가지고 기자 옆으로 다가왔다. “예술가들은 보통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걸로 알고 있다”는 기자의 첫마디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전 주로 아침에 작업합니다. 저녁엔 이런저런 약속이 많으니까 아침 시간만큼은 작업하는 데 할애합니다. 보통 아침 6시쯤 기상해서 수영이나 등산 같은 운동을 가볍게 하고 이곳에 오죠.”
인터뷰 바로 전날, 전시회 작품을 전부 철거한 탓인지 임씨는 조금 피곤해 보였다. 주방 브랜드 테팔이 지원한 ‘테팔 그리고 여성의 자유전(이하 여성의 자유전)’과 그의 12번째 개인전 ‘철기시대 이후를 생각한다(이하 철기시대전)’는 9월 25일부터 10월 7일까지 인사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성황리에 열린 바 있다.
“공교롭게도 두건이 맞물렸어요. ‘여성의 자유전’은 테팔의 기업 메세나(문화예술후원) 활동으로 이루어진 특별 전시입니다. 감사의 뜻을 겸해 테팔의 주방용품을 이용해 작품을 만들었죠. 그리고 ‘철기시대 이후를 생각한다’에는 포성과 포연으로 가득 찬 매향리 방문이 제게 남긴 의미와 반성을 담았습니다.”
두 전시회의 성격은 극과 극을 달린다. 색감만 해도 그렇다. ‘여성의 자유전’은 알록달록 환하고 ‘철기시대’는 어둡다. ‘여성의 자유전’이 설치미술에 말랑말랑한 아이디어를 집어넣었다면, ‘철기시대’는 심각한 메시지를 담았다.
가사노동의 복잡다단함을 익살맞게 표현
고정관념 깨는 기발한 전시회로 눈길 모은 임옥상

냄비 믹서 프라이팬 전기밥솥 등 주방용품으로 만든 작품 ‘만능요리박사’

‘여성의 자유전’ 전시장에서 눈길을 확 잡아끈 것은 마징가 제트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로봇이었다. 한쪽 손으로는 연신 커피를 따르는 이 로봇의 가슴에는 토스터에 구워진 식빵이 매달려 있다. 또한 윙~ 하는 소리와 함께 믹서에서 당근주스가 만들어진다. 찬찬히 보면 이 로봇을 이루는 부속물은 냄비 믹서 프라이팬 전기밥솥 숟가락 등 주방용품 일색. ‘만능 요리박사’로 이름 붙인 이 작품은 가사노동의 복잡다단함을 익살맞게 전달하고 있다. 플라스틱 술을 쥐의 수염처럼 달아놓은 ‘안방쥐 다리미’에는 전자 센서를 부착, 관람객 발치를 요리조리 쫓아다녀 웃음을 안겨준다.
“가사노동이라는 고충에서 잠깐이나마 해방되고 즐거움을 갖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는 그는 “가사노동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겪는 고충이죠. 이걸 여성만의 고충이라 생각하면 안돼요. 요즘 독신가정도 꽤 많은데, 남성들이라고 해서 가사노동에서 자유로운 건 아니거든요. 결국 가사노동에서의 해방은 인간해방과도 다르지 않다는 거죠”라고 의견을 피력했다. 이혼 후 혼자 살고 있는 그는 “식당들도 문을 닫는 공휴일에 끼니 한번 때울 생각을 해보라”면서 “아마 남녀를 막론하고 누구나 가사노동에서 해방되는 건 즐거운 일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동안 심각하고 무거운 사회문제에 천착해왔는데, 이처럼 즐겁게 부담 없이 작업하는 것도 꽤 기분 좋더군요. 무엇보다 아이들이 로봇을 보고 깜짝 놀라고 즐거워하는 걸 보니 기뻤습니다.”
‘여성의 자유전’이 임씨에게 재미있는 여가활동과도 같은 전시회였다면, ‘철기시대전’은 그가 이제껏 우리 사회와 문화에 대해 견지해온 작가적 태도를 집약한 전시회라 볼 수 있다.
왜 하필 철기시대인가. 그가 보기에 인류 문명은 근본적으로 아직도 철기시대를 못 벗어나고 있다. 쇠는 우리 삶 구석구석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고 쇠의 도움으로 받쳐주지 않고는 무엇 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쇠는 문명을 받쳐주는 버팀목인 동시에 반대로 지구를 날려버릴 수 있는 무기이기도 하다. 그걸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곳이 바로 매향리다.
흉측한 고철인간들에게 탄두 남근 붙인 ‘아메리카 남근’ 연작
“매향리의 삶을 보고 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엄청난 폭탄과 포성이 매향리 주민들의 삶을 찢어놓았지만, 또한 그들은 폭탄과 더불어 살고 있더군요. 포탄 잔해를 주워 팔기도 하고, 종으로 만들기도 하고…. 그 이율배반을 보면서 우리의 역사가 오버랩됐어요. 6·25 후 우리는 미군 부대의 찌꺼기로 연명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습니까. 부대찌개가 다 그 소산이잖아요. 우리가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다고는 해도 대한민국은 아직도 커다란 ‘기지촌’이나 다름 없죠. 총알이나 구호물자 대신 이제는 신자유주의가 우리 삶을 옥죄입니다. 이 모든 걸 철의 시대로 본 겁니다.”
그래서 그는 그 쇠와 철의 시대는 청산돼야 한다고 믿는다. 터미네이터를 연상시키는 흉측한 고철인간들에게 거대한 탄두 남근을 붙인 ‘아메리카 남근’ 연작이 이런 생각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면, 길게 반쪽 낸 포탄껍질을 세련되고 단아하게 고급 오디오 기기처럼 연출하고, 박격포탄 껍질 4개를 상단 유리 밑에 받침으로 이용해 티 테이블로 만들고, 반으로 잘라낸 포탄껍질 위로 유리상판을 올린 식탁 등은 ‘총칼을 녹여 보습을 만든다’는 사회주의의 투박함을 극복하면서도 효과적으로 그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러나 이처럼 이질적인 두 가지 전시회가 공존하는 것에 딜레마는 없었을까. 세월이 아무리 변했다고 해도 그는 80년대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누구보다 왕성한 작품을 낸 국내 민중미술계의 1호 작가고, 아무리 기업 메세나 활동이라고는 하나 테팔은 외국 브랜드가 아니던가.
“메세나 활동에는 거부감이 없습니다. 작가도 사회적 존재가 아닙니까. 서로 주고받는 거니까요. 제가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줄창 부르짖어왔지만, 정부차원의 기반이나 지원 한번 받으려면 얼마나 힘든지 아세요? 무슨무슨 단체니 재단이니 하는 곳들에서는 공공기금의 주머니를 꽁꽁 묶어두었어요. 이럴 때 기업이 자신의 이익에 맞으면서도, 공공의 성격을 띤 문화활동을 하는 걸 무작정 배척하는 건 좋은 태도는 아니라고 봐요.”

고정관념 깨는 기발한 전시회로 눈길 모은 임옥상
그는 예술은 작가의 자기 표현에만 머물러서는 안되고, 반드시 사회적 표현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대중과 유리돼, 고답적인 미술관 안에 머물러 있는 ‘죽은 작품’이 아니라 거리에서, 일상에서 쉽게 접하고 느끼고 감동을 줄 수 있는 ‘살아있는 작품’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지난 99년 인사동 거리에서 ‘거리 미술제’를 한 것도, 지하철 7호선을 ‘달리는 미술작품’으로 만든 것도 이런 ‘공공 미술 프로젝트’에서 나온 것이다.
“영화나 문학 같은 장르를 보세요. ‘아, 이건 좋다’ ‘이거 뜰 거다’ 이런 입소문이 살아있어요. 그게 대중의 힘입니다. 그러나 미술만큼은 아직도 입소문 자체를 미술가들이 차단하고 있어요. 우매한 대중은 자신의 예술의지를 이해해주지 못한다는 둥 하면서 외국에서의 승인만을 기대하는 그런 모습을 빨리 버려야 합니다.”
그가 자신의 이름 앞에 ‘화가’라는 말 대신 ‘아트 PD’라는 생소한 명칭을 붙인 것도 이런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전통적인 예술관에서 보면 예술가는 자기 세계가 투철해야 하고 지속성이 있어야 해요. 즉 화가는 그림만 그려야 하는 것이죠. 그러나 전 그 그릇이 불편했어요. 화가 이전에 한 사람으로 세상을 ‘살고’ 싶은 욕망이 강했달까. 그림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내가 할 수 있는 것들로 세상을 바꿔나가고 싶었습니다. 그러기에 PD, 연출가라는 말이 필요했지요.”
이런 사고를 가지고 있기에 임씨는 ‘전공’이라는 개념이 무의미하다. 정확히 말하면 ‘난 전공이 이거니까’하고 자신을 고정화시킨 채 그 외의 것들은 가지 쳐버리듯 싹둑 잘라버리는 성향을 누구보다 싫어한다.
“새만금 갯벌운동과 같은 환경운동, 매향리 문제 등등 하도 일을 많이 벌이고 있으니까 제가 아주 아이디어가 무궁무진한 사람인 줄 아나 봐요. 하지만 아이디어는 관심에서 나온다고 봅니다. 적극적인 생각으로 모든 걸 자기 분야로 끌어들이면, 폭넓은 기획이 나올 수밖에 없어요. 전 의상 디자인을 배우진 않았지만, 옷도 만들어봤고 건축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가지를 쳐버리는 게 아니라 풍성하게 만들어놓으니 이런저런 일들이 되는 겁니다. 관심이 있으니 정보가 눈에 보이는 법이고요.”
‘미술 영재교육’에는 알레르기 반응
‘공공 프로젝트’에 관한 고민과 결부시켜 그는 우리나라 미술 교육에도 관심이 많다. 99년 인사동에서 ‘거리 미술제’를 했을 때도 판에 박힌 그림과 색깔을 쓰려는 아이들을 보고 우려했던 그는 특히 ‘미술 영재 교육’이니 하는 말들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
“아이가 그저 느낀 대로 그리도록 하면 됩니다. 그런데 영재교실이니 미술학원이니 하는 곳들은 그저 그림 잘 그리는 ‘기술’만을 가르쳐요. 총체적으로 아름다움을 느끼고 체험하는 능력을 길러줘야 하는데 그런 데 인색하죠. 예술에서 점수를 매기는 게 말이 되나요? 아이들에게 물과 흙이 어떻게 다른가 체험해보게 하고, 여행 다니면서 자연의 빛깔을 일러주고…. 이런 문화적 교육을 해보고 싶어요. 정말로, 그런 일만 하면서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요.”
그런 그의 아들과 딸은 어떻게 컸을까. 그에게 자녀들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사회의 전위로 서라” “아방가르드하게 살아라”라는 다소 ‘과격한(?)’ 구호가 돌아온다. 그런 아버지를 잘 이해한다는 아들은 지금 군대에 가 있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음악 쪽에 막연한 관심을 보였던 아들은 요즘은 영화 쪽 일에 흥미를 느끼는 것 같다는 귀띔이다. 영화를 전공한 딸은 프랑스에서 유학중이다.
“아이들에 대해서는 전폭적으로 믿어주려고 합니다. 젊었을 때 빨리 한길을 파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자기가 하고픈 일을 제대로 찾는 게 더 중요하죠. 그건 누가 해줄 수 없는 일이고요. 그저 전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아이들과 마치 친구처럼 놀아줄 따름입니다.”
정적인 하얀 종이에 이어, 붉디 붉은 흙을, 그리고 전혀 다른 차가운 성질의 쇠를 가지고 작업했던 다양한 이력과 호기심의 소유자답게 이처럼 ‘통 큰 아버지’다.
“그동안 나이프와 포크의 그 금속성 물질과 기능에 매료되어 쇠라는 물질에 도전해봤고 그 전에도 이것저것 해봤는데, 전부 개별적 작업이었죠. 이제는 그런 경험을 통합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앞으로 준비하는 전시회에서는 그런 게 서로 넘나들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공공 미술 프로젝트는 어떤 방식으로든 지속하고 싶다고 한다. 그게 그의 예술적 신념이기 때문이다.
“전 예술의 역할을 꿰매는 것이라 봅니다. 우리 사회 내에 찢어지고 갈라지고 터진 것들을 통합하고 묶어내고 치유하는 것이지요. 힘든 시대일수록 예술가가 필요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일 겁니다.”
이런 작가와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이 퍽 기쁜 일로 다가왔다. 그가 바라는 꿈처럼 이 사회가 변하는 날까지 계속해서 논밭의 흙더미에서, 혹은 포탄을 분해하는 철공소에서 땀 흘리고 있을 그를 기대해본다.

여성동아 2002년 11월 4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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