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EOPLE

멋진 만남

‘평등가족 만들기’ 홍보대사로 발벗고 나선 탤런트 권해효

“내 딸이 시집가면 본적까지 바뀐다고 생각하니까 가만있을 수 없더군요”

■ 글·최호열 기자(honeypapa@donga.com) ■ 사진·최문갑 기자

2002. 11. 14

한국여성단체연합 ‘평등가족 만들기’ 홍보대사가 된 탤런트 권해효. 그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여준 이미지와는 달리 그동안 연예인으로는 드물게 사회의 예민한 문제들에 대해 자기목소리를 높여왔다. 그가 말하는 ‘내가 평등가족 만들기 홍보대사로 나선 이유’.

‘평등가족 만들기’ 홍보대사로 발벗고 나선 탤런트 권해효
한국여성단체연합에서는 작년에 호주제 폐지를 중점사업으로 벌이며 방송인 백지연을 호주제 폐지 홍보대사로 임명하는 등 해마다 여성운동의 주제를 정해 그에 맞는 홍보대사를 위촉하고 있다. 올해는 ‘평등가족 만들기’를 중점사업으로 펼치며 홍보대사로 탤런트 권해효(37)를 임명했다. 여성단체연합은 권해효에 대해 ‘평등가족을 가장 잘 실천하고 그 의미를 잘 알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위촉 이유를 밝혔다. 실제 그는 지난 3월8일 열린 여성대회 사회를 보면서 여성단체연합 회원들을 깜짝 놀라게 할 만큼 여성문제에 대해 탁월한 식견을 보였다.
그런데 그의 이런 모습은 이전에도 심심찮게 발견되었다. 북한어린이를 위한 의약품보내기 운동, 개혁정당추진운동, 노사모, 안티조선운동, 사학비리척결운동, 양심수 석방 등 진보적인 사회·정치운동마다 그의 이름을 올려왔다. 뿐만 아니라 관련 행사가 있으면 적극 얼굴을 내밀고 있다. 단순히 그가 오지랖이 넓고, 나서기 좋아해서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가 ‘권해온’ 운동들은 그렇게 쉽게 선택할 수 있을 만큼 녹록한 주제들이 아니다. 특히 연예인으로서는 부담을 크게 느낄 만한 내용들이다.
그가 참여하는 사회·정치운동과 지금까지 영화나 드라마, CF에서 보여준 소시민의 삶을 코믹하게 그리던 모습은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다. 연예인 권해효와는 다른 모습을 가진 ‘자연인’ 권해효의 모습이 궁금해 그를 만나 보았다.
약속시간에 늦지 않는 것으로, 간혹 5분만 늦게 되더라도 미리 양해를 구하는 전화를 두세 번씩 하는 것으로 유명한 그가 인터뷰 약속시간이 지나도록 전화 한통화 없이 나타나지 않았다. 20분이 지나서야 초췌한 얼굴로 양복가방을 든 채 헐레벌떡 뛰어왔다.
“정말 죄송합니다. 휴대폰을 잃어버려 연락을 드릴 수가 없었어요.”
그는 2박3일간의 일정으로 금강산에서 열린 ‘6·15공동선언 관철과 민족통일을 위한 남북해외청년학생 통일대회’에 참석하고 어젯밤 속초항에 도착했다고 했다. 그리고 북한 청년들을 만났다는 흥분과 아쉬움을 술로 달래다 오늘 아침에야 서울로 올라와 옷만 갈아입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 와중에 어디선가 휴대폰을 잃어버렸다는 것. 그러고 보니 술기운 때문인지 너무 많이 울어서인지 그의 눈은 벌겋게 부어 있었고, 목소리는 잔뜩 쉬어 있었다.
“어제는 너무 많이 울었어요. 북한 청년들을 직접 만나 보니 정말 제 친동생 같았어요. 구룡포에 장난을 치며 올라갔다 내려와 작별인사를 하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는 거예요. 언제 다시 만날지 기약할 수가 없잖아요. 아무래도 후유증이 오래갈 것 같아요. 지금 그 생각을 하니 다시 눈물이 날 것 같아요.”
다시 그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목소리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잠시 말을 멈추고 마음을 가다듬더니 이번엔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이번 행사는 정말 우리나라 통일운동에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고 생각해요. 과거 전대협 등 수많은 민주인사들이 감옥을 드나들며 노력한 끝에, 분단 57년 만에 정부의 승인을 받고 남북한의 청년들이 한자리에 모인 거예요. 그런데 그런 뜻깊은 행사가 아시안게임에 묻힌 것이 안타까워요. 남한 언론들은 정말 중요한 통일의 의미는 뒤로 한 채 북한 아시안게임에 응원 온 북한 미녀들에게만 관심을 쏟았잖아요.”
그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말을 듣고 있으니 ‘정말 탤런트 권해효 맞아?’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렇다고 그가 대학시절 학생운동을 한 것도 아니다. 최루탄 근처엔 가보지도 않았다. 위계와 권위를 내세우며 책임 못질 말을 늘어놓는 선배들에게 인간적인 실망을 하고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연기만 했어요. 하지만 우리 사회의 불합리한 것에 대해 분노할 줄 알고 관심도 있었어요.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수준이었지만.”
머릿속으로만 분노하는 평범한 소시민이었던 그에게 변화를 준 계기는 97년 양심수 석방을 위한 일일감옥 체험에 참여하면서부터였다. 전부터 알고 지내던 변영주 감독의 꾐에 빠져(?) 하루종일 모의감옥에 앉아 있던 그는 자신을 마치 감옥에 간 자기 자식을 보는 것처럼 속상해하는 민가협 어머니들의 눈물을 보았다. 어머니들의 눈물과 몸짓에서 그는 불합리한 현실에 대해 행동해야 한다는 용기를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제가 하는 일이 거창할 것은 없어요. 소시민의 시각으로 봤을 때 정말 우리를 분노케 하는 일들이 많잖아요. 상식과 이성으로 납득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 사건들에 대해 시민으로서 최소한의 항의를 하는 것뿐이에요.”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 모습이 배우에겐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배우는 시청자에게 극중 인물로만 보여져야 사람들이 몰입하며 볼 수 있다. 그런데 극중 인물과 다른 배우의 모습이 부각되면 그 이미지 때문에 사람들은 극중인물에 몰입하기 힘들어진다.
“그래서 처음엔 그런 일을 하더라도 남에 눈에 안 띄게 하려고 애를 썼어요. 하지만 시민단체 입장에서 보면 반대가 돼요. 제가 이름만 걸어놓아도 사람들이 ‘저게 뭔데 쟤가 이런 일을 하지?’ 하고 한번쯤 눈길을 돌리니까 홍보효과가 있잖아요. 지금은 ‘사람들 눈에 띄면 띄는 거지’ 하고 행동해요.”
그가 평등가족 홍보대사를 맡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평등가족 이야기가 나오자 그는 최근의 경험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는 첫째아이는 아버지가 출생신고를 해서 몰랐는데 5개월 전 둘째를 낳고 직접 출생신고를 하러 갔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다고 했다.

‘평등가족 만들기’ 홍보대사로 발벗고 나선 탤런트 권해효

평등가족만들기 행사에 홍보대사로 참석한 권해효.우먼타임즈 제공

“출생신고서에 아이의 엄마 아빠 본적을 쓰는 난이 있어요. 그래서 아내에게 전화를 해서 본적을 물어보고 가르쳐준 대로 써서 냈어요. 그걸 보고 공무원이 ‘왜 엄마하고 아빠하고 본적이 다르냐’며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거예요. 결혼과 동시에 여자는 원래 본적이 없어지고 남편 본적이 된다는 거예요. 정말 황당했죠. ‘이게 상식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본적이란 게 뭔가?’하는 의문이 생기더군요. 더구나 저는 딸을 낳았어요. 제가 키워서 시집보낸 딸이 그 꼴을 당한다면 아버지로서 어떻겠어요? 이건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의 문제예요.”
올해 여성계의 가장 큰 화두는 부부공동재산제다. 평등가족 홍보대사로 나선 그는 어느 정도 실천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저도 공동등기 이야기를 듣고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공동등기를 하려면 돈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아내에게 ‘생각 좀 해보자’고 하고는 아직까지 못했어요(웃음). 생각해보니까 아내의 이름이 찍힌 카드 외에는 아내의 이름으로 된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그나마 카드값이 빠져나가는 통장도 제 이름으로 되어 있어요. 핸드폰도 제 이름으로 되어 있고….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권해효는 전부터 부부금슬이 좋은 것으로 유명하다. 드라마 촬영중에도 수시로 집에 전화를 하고, 촬영이 끝나면 동료 연예인들과 어울리기보다는 일찍 집에 들어가는 편이다. 심지어 친구들과 술을 먹어도 자기 집으로 불러 먹는 것을 좋아한다. 시간이 나면 아내와 함께 쇼핑을 가는 것이 즐거움이라고 한다.
“우리 부부가 다른 사람들 눈에 평등하다고 비춰진다면, 그건 같이 잘 다니기 때문일 거예요. 보통 부부라고 해도 만나는 사람들이 서로 다르니까 따로 다니잖아요. 반면 우리 부부는 둘 다 연기를 해왔기 때문에 서로의 친구를 잘 알아요. 그래서 되도록 함께 다니려고 하죠. 물론 고교동창들끼리 모인 술자리에 아내를 데리고 가기는 그렇지만, 그래도 한마디는 해요. ‘나올래?’ 하고(웃음).”
물론 그것만이 다는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두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관심사가 같기 때문에 무려 8년간이나 부부싸움 한번 없이 사랑하며 살아온 것이 아닐까. 부부가 함께 만날 수 있는 사람이 많은 것도 서로의 관심사가 같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평등가족 홍보대사가 되었다고 알리자 아내가 “제발 집에서도 그렇게 해라”고 얘기했다며 알 듯 모를 듯한 웃음을 지었다.
“전에는 청소를 잘 했어요. 요즘은 그마저도 바빠서 못 하고 있지만. 그래도 집안일을 최대한 도와주려고 하는데, 아내에게 미안하죠. 집에 개도 두 마리 있고, 애도 두 마리 있어요. 애 관리는 아내가 하는 대신 저는 개 관리를 열심히 해준다든지 하는 정도예요.”
그의 아내 조윤희씨(37)는 현재 모유수유를 하고 있기 때문에 한동안 연극무대에 서지 못하고 있다. 혼자 아이를 전담하는 아내를 위해 옆에서 해줄 것이 없다는 게 그는 가슴 아프다고 한다.
“이번에 통일대회에 가서 부끄러웠던 게 그거예요. 북한 처녀가 묻더군요. ‘남쪽은 아이를 낳으면 어떻게 기릅니까, 우리는 (정부에서) 다 해줍니다’. 할말이 없었어요. 원미경씨 부부는 한쪽이 일을 하는 동안 다른 쪽이 집안일만 한다고 들었어요. 저도 그러고 싶어요. 아내가 혼자 퇴보하는 것 같아 속상해하는 걸 보면 마음이 아파요.”
“앞으로는 후배, 동료 연기자들까지 꼬셔서 함께 ‘사회참여’ 할 생각”
그는 지난 3월 북한어린이를 위한 의약품 보내기 운동 홍보대사를 자청했는데, 북한어린이에 대한 관심 역시 그의 남다른 가족사랑에서 기인했다. 아들에 대한 사랑이 북한어린이에 대한 관심으로 확대된 것. 남자들은 흔히 자식을 키우며 아버지를 떠올린다고 한다.
“아버지는 자식에게 한번도 매를 안 댄 자상한 분이었어요. 또한 어린시절 아버지로부터 애정표현을 많이 받았던 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그래서 저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해요. 아이에게 아빠가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려주려고 스킨십을 자주 하고, 시간이 나는 대로 직접 유치원에 데려다 주고, 데려오고 그래요.”
그래도 자식을 키우는 건 어렵다고 한다. 특히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곤 한다는 것.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명확히 해야 하는데, 그게 솔직히 힘들어요. 예를 들면 장난감을 사주는 문제에 항상 부딪쳐요. 애가 조르면 사주게 되고, 그러면 필요 이상 장난감이 쌓여가고….”
마지막으로 앞으로도 계속 사회참여를 할 생각이냐고 묻자 “그렇다”고 한다.
“이제까지는 저 혼자 참여하는 수준이었어요. 앞으로는 가능하다면 주변의 후배, 동료 연기자들까지 잘 꼬셔서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할 생각이에요. 소위 조직화인 셈이죠(웃음).”
드라마에서 보여준 덜렁거리는 이미지와는 달리 그는 꼼꼼한 편이다. 그리고 쉽게 떠벌리는 스타일도 아니다. 자기가 꼭 할 수 있을 만큼 이야기를 하고 행동으로 옮긴다. 그래서 그의 말에 더욱 신뢰가 간다. 그가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평등가족을 어떻게 홍보해갈지, 그리고 사회의 잘못된 일에 대해 어떻게 올곧은 소리를 낼지 궁금하다.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