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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인물 & 화제 │ 아버지와 아들

아버지는 만들고, 아들은 연주하고 천익창·새빛 부자의 가야금 사랑

“제가 30년간 연구해 만든 개량 가야금으로 경연대회 최우수상 받은 아들이 자랑스럽습니다”

■ 기획·정지연 기자(alimi@donga.com) ■ 글·조희숙 ■ 사진·김형우 기자

입력 2002.10.09 13:51:00

30년 동안 가야금 연구에만 매달려온 개량 가야금 연구가 천익창씨는 요즘 기분이 좋다.
아들 천새빛군이 자신의 개량 가야금으로 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기 때문. “이제 전통 악기를
훼손한다는 곱지 않은 시선을 털어버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천씨 부자의 좌충우돌 가야금 전수기.
아버지는 만들고, 아들은 연주하고 천익창·새빛 부자의 가야금 사랑
“이상장이 새빛이가 얼마전 경연대회에서 받은 최우수상 표창장이에요.” 지난 5월 경기도부천교육청 청소년 예능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아들 새빛(14·부천 덕산중 2년)의 상장을 자랑스레 펼쳐 보이는 천익창씨(51). 개량 가야금 연구가인 그의 17평 좁은 아파트에는 7대의 가야금이 방 하나를 다 차지하고 남은 자리의 틈새를 찾아 아들의 상장들이 걸려 있다.
비좁은 방안에서 30년간 가야금 연구에 빠져 있던 그에게 요즘처럼 기분 좋은 적이 또 있을까. 새빛이의 경연대회 입상도 물론 기쁘지만 그후 언론에서 그의 개량 가야금에 부쩍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니 더욱 그렇다. 처음부터 남들에게 인정받으려고 시작한 일은 아니지만, 자신의 개량 가야금에 대한 관심이 싫을 리가 없다.
천씨는 현재 개량 가야금 연구가로 활동하고 있는, 국내 ‘비주류’ 국악인이다. 비주류라 말하는 이유는 보수적인 국내 전통음악계에서 ‘개량’이라는 말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천씨에게 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좋아서 해오고 있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는 개량 가야금 연구가이지만 악기와의 인연은 바이올린에서 시작되었다. 중학교 1학년 때 그는 등교 길에서 어느 집 담장 사이로 흘러나오는 바이올린 소리에 빠져들고 말았다. 고향인 경북 안동에서 그가 본 최고의 악기는 음악수업 시간에 사용되었던 풍금이 전부였다. 그런 천씨에게 난생 처음 듣는 바이올린 소리는 ‘충격’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듣는 소리였어요. 무슨 악기인지도 모르고 길거리에서 멍하니 서 있었더니 레슨중이던 선생님이 나오시더군요. 배우고 싶냐고 묻길래 당장 그러고 싶다고 했죠. 몇달 신나게 배우고 있는데 선생님이 조용히 부르시더니 악기를 배우려면 레슨비도 줘야 하고 악기도 사야 한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레슨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자기 소유의 변변한 악기도 없었지만 새로운 악기를 배운다는 자체만으로도 행복했다는 천씨. 그러나 레슨비에 대한 부담보다 어린 그를 더 짓누른 것은 그가 악기를 배우는 것을 질색했던 부친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형이 불다 내버린 하모니카를 푸푸거리며 혼자 연습하다가 교내 악기경연대회에서 상을 받았을 만큼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던 천씨.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부친은 아들이 받아오는 상장마다 아궁이 불쏘시개로 처넣고 말았다.
“제가 좋아하는 미술이나 음악은 무조건 나쁜 것인 줄만 알았어요. 학교에서는 가르쳐주는데, 왜 아버지는 자꾸 하지 말라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갔죠. 아버지가 싫어하시니까 음악은 몰래 숨어서 해야겠다는 죄의식까지 들었어요.”
그는 부친이 돌아가신 후에야 비로소 떳떳이 내놓고 악기를 익힐 수 있었다. 바이올린에 이어 기타와 피아노까지, 그는 배우고 싶은 악기가 있으면 반드시 좋은 선생님을 찾아다녔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꼭 개인지도만 고집한 이유는 하모니카에 얽힌 일화 때문이었다. “내 딴에는 잘 분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하모니카를 거꾸로 불고 있었다”는 천씨. 만일 바이올린을 배우지 않았다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갈수록 음이 높아진다는 것도 몰랐을 것이고, 아직도 하모니카를 거꾸로 들고 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가 본격적으로 국악기에 시선을 돌리게 된 것은 대학입시에 낙방하면서부터. 서울대 작곡과에 뜻을 두고 있었던 그는 합격하지 않으면 자살하겠다며 옆에 ‘대검’을 갈아둘 정도로 혹독하게 입시 준비를 했었다. 하지만 결과는 낙방. 그의 학운은 거기서 끝이 났지만 뛰어난 피아노 실력 덕분에 미 8군 무대를 거쳐 밤업소에서 건반연주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천막이 쳐진 가설무대를 지나는데 꿈속에서 들어본 듯한 악기 소리가 나는 거예요. 부랴부랴 연주자를 찾아 악기 이름을 물었더니 ‘아쟁’이라고 알려주더군요. 그때부터 피아노, 바이올린 소리는 귀에 안 들어오더라고요. 아쟁을 배우려고 종로에 있는 국악민속학원에 등록했더니 아쟁을 배우려면 가야금을 먼저 배워야 한다고 했어요. 그때부터 밤에는 돈 벌고 낮에는 가야금을 배웠죠.”
그가 한창 활동하던 10년 전, 밤업소에서 최고의 인기가수는 김세레나, 김부자 등의 민요가수들이었다. 건반과 가야금을 동시에 연주할 수 있는 천씨의 몸값이 높아진 것은 당연한 일. 천씨는 민요가수가 무대 위에 오를 때마다 건반을 내려놓고 가야금을 연주했다. 당시 그가 받은 개런티는 4백만∼5백만원 정도로 연주자들 사이에서 최고액이었다. 하지만 그는 벌어들인 수입 모두를 가야금 배우는 데 쏟아부었다.
“가야금으로 현대적인 곡들을 반주하려니까 표현하기가 너무 불편했어요. 특히 우리나라 전통악기는 서양악기에 비해 저음과 고음의 음폭이 좁아 팝이나 현대음악을 연주할 때 일일이 조현을 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어요. 국악기 중 가장 저음역의 악기가 아쟁인데, 아쟁도 서양악기의 낮은 음역을 따라갈 수가 없거든요. 연주에 맞게 고음과 저음을 보강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악기를 개량하게 된 거죠.”
그가 개량한 가야금은 총 6종. 천씨는 단계적으로 북한의 19, 21, 23현 가야금을 모방해 25, 34현 등 6종류의 개량 가야금을 만들어냈다. 이중 그가 가장 애착을 가지고 있는 것은 바로 ‘창금’이다. 자신의 이름 끝자를 따서 지은 창금은 밧줄로 줄을 묶어놓은 부틀을 없애고 악기 뒤편 머리부분에 조율기를 달아서 연주중 줄이 풀리는 것을 막았다. 창금은 고음, 명주, 저음 등 3대의 가야금을 이용해 총 36현, 4½음역을 갖추고 있다. 또 앉거나 서서 연주할 수 있고 앰프를 부착시켜 전자 시스템화했다는 것도 천씨만의 아이디어다.
그는 개량 가야금뿐 아니라 그에 맞는 이론도 만들어냈다. 창금을 빛내준 3선보 이론이 바로 그것. 3선보 이론이란 서양의 7음계와 동양의 5음계를 총괄할 수 있는 것으로, 가야금의 떨림음을 이용해 1개 현에서 3개 음을 소화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덕분에 현대음악을 연주하더라도 매번 조바꿈을 할 필요가 없게 됐다.
30년 동안 한 우물만 팠을 그의 고충은 어땠을까. 가야금 구입비용도 만만치 않지만 자주 끊어지는 줄이 더 골치였다. 평균 20만원을 오가는 가야금줄이 부담스러울 때는 명주실로 가야금줄을 이어 쓰기도 했다.
돈이 부족한 것은 마음 고생에 비하면 나은 편이다. 개량 가야금이 조금씩 알려지면서 양악도 아니고 국악도 아니라는 곱지 않은 시선이 천씨에게 가장 큰 고충이었다. 그는 서양음악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예 생계수단이었던 밤무대에는 서지 않았다. 그래도 사람들에게 개량 가야금을 제대로 이해시키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창금도 30년간 무대에서 연주해왔지만 아직도 깊이 아는 사람이 적어요. 개량 가야금이 전통악기와 어떻게 달라졌는지 관중에게 직접 확인시켜주는 일이 제일 어려운 것 같아요. 국악계에서는 전통악기는 원형대로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저는 불편한 점만 개선했을 뿐이에요. 85년 북한의 배금옥이란 가야금 연주자가 21현 가야금을 연주할 때만 해도 많은 국악인들이 전통 왜곡이라 평했지만 지금은 잘된 개량 모델로 여기잖아요. 심지어 34현 가야금까지 나오면서 줄이 많아지면 악기가 좋아진다고 생각할 정도고요.”
개량 가야금을 연구해온 자신에 대한 평가에 못내 서운했던 천씨. 이를 보다못해 주변에서는 개량 가야금의 특허를 신청해보라는 권유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도리질을 쳤다. 거기엔 아픈 기억이 있다. 한때 그는 부족한 레슨비라도 벌 요량으로 산에 들어가 발명에 몰두한 적도 있었다. 물걸레와 빗자루 역할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자동 청소기, 라디오가 내장된 핸드백 등 10가지의 특허를 신청했지만 모두 출원을 거부당했다. 그후 천씨가 깨달은 것은 “특허는 욕심을 채워주는 작업이므로 예술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는 것이었다.
요즘 그는 고민이 많다. 그의 개량 가야금 연주법을 전수받을 새빛이 때문이다. 새빛이는 천씨가 개량한 개량 가야금의 연주법을 전수받을 외아들이자 유일한 후계자다. 하지만 새빛이가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연습할 시간은커녕 얼굴 마주치기도 힘들어졌다.
그때마다 천씨는 답답할 뿐이다. 그동안 천씨가 연습하고 작곡한 곡들만 해도 10개의 파일은 족히 넘는 분량. 아직 23현 가야금도 제대로 익히지 못했고, 창금은 아예 들어가지도 못한 새빛에게 언제 그 많은 것들을 전수해야 할지 까마득하기만 하다.

“솔직히 말하면 학교나 학원이 원수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이 쉰이 넘으니까 지금까지 제가 해온 것이 허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대학에서 제 이론을 교재로 택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문화재가 될 것도 아니니까요. 유일한 전수 통로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인데 할 일은 많고 시간은 없으니 안타깝죠. 요즘 같아선 가능하다면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싶지 않아요.”
새빛이가 가야금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일곱살 무렵. 뱃속에 있을 때부터 아버지의 뚱땅거리는 가야금소리를 듣고 자란 탓일까. 새빛이는 악기를 장난감 삼아 가지고 노는 게 싫증났는지 아예 가야금을 가르쳐 달라고 천씨를 졸라댔다. 그때부터 천씨는 본격적으로 어린 아들 앞에 악보를 놓고 정식으로 후계자 양성에 들어갔다. 그는 하루 세끼 밥 먹는 시간만 빼고 어린 아들의 손에서 피가 나도록 독한 하드트레이닝을 실시했다.
“하루 5시간씩 아이가 녹초가 될 때까지 연습을 시켰어요. 새빛이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연습하다 지쳐서 졸도를 한 적도 있었어요. 그때 처음으로 혹시 내가 아이를 불행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죠. 아이한테 미안하고 걱정스럽기도 하고요. 그 시절 새빛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아빠는 악마 같다’는 거였어요.”
요즘도 그렇게 혹독하게 연습하느냐고 묻자 천씨는 “나는 창피해서 대답 못 한다”며 아들에게 떠넘긴다. 새빛이는 국립민속박물관, 방송국, 각종 예술제의 초청 연주회에 참가하는 등 무대경력도 적지 않다. 하지만 천씨 눈에 새빛이는 아직 모자라기만 한데 하루 1∼2시간 연습이 고작이니 아들이 당연히 못마땅할 수밖에.
“한 신문기사를 보니까 제가 새빛이는 재주가 넘친다고 했다는 내용이 있던데 그건 아니에요. 재주가 있지만 인내심이 부족하다는 게 맞는 표현이에요. 특출한 재주를 타고난 사람이 연주를 잘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중요한 것은 인내와 고통을 감내하는 연습만이 성공의 열쇠죠.”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서 제외된 사람은 바로 아내 김수여씨(47)다. 천씨는 그런 아내에게 “늘 죄인처럼 산다”고 말할 뿐이다. 작은 분식집을 운영하고 있는 김씨는 남편이 두문불출 가야금 연구에만 몰두하고 있을 때 집안을 꾸려 나간 실질적인 가장이었다. 가야금 연구 자금이 부족해지면 그때서야 잠깐 연주자로 나섰다가 돈이 모아지면 고스란히 가야금에 쏟아붓는 남편이 원망스러울 때도 많았다. 하지만 남편이 작곡한 곡 중에서 를 제일 좋아한다는 김씨는 천씨 부자의 가려진 후원자다.
“새빛이가 가야금을 한다고 했을 때 많이 말렸어요. 그런데 피는 못 속이는지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이왕 시작했으니까 끝까지 잘하길 바랄 뿐이죠.”
그동안 천씨가 하는 일에 대해 대단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는 새빛이도 “아빠가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을 하고 있는지 이제 알게 됐다”고 한다. 아버지를 따라 더 좋은 개량 가야금을 만들어볼 생각이 없냐고 묻자 “악기 개량은 아빠가 하실 일이고 저는 훌륭한 연주자가 되고 싶어요”라고 제법 어른스러운 대답을 내놓는다.
유일한 후계자이지만 아직도 악기를 만질 때마다 “만지지 말라”라는 호통을 치는 아버지와 연습하기는 싫어도 창금 소리는 듣기 좋다는 아들. 아직은 삐걱거리는 전수자와 후계자의 모습이 유쾌하기만 하다.

여성동아 2002년 10월 4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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