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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놀이 대가 아버지 김덕수 힙합의 대가 꿈꾸는 아들 김용훈

■ 글·최숙영 ■사진·최문갑 기자

입력 2002.10.08 14:06:00

사물놀이의 대가 김덕수의 아들 김용훈이 ‘래퍼’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케이블 음악채널 ‘MTV 코리아’에서 VJ로도 인기를 얻고 있다.
아버지하고는 다르게 힙합음악을 하면서 ‘래퍼’의 꿈을 키우고 있는 그를 만났다.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음악세계를 걷고 있는 그가 말하는 나의 음악, 나의 아버지 김덕수에 대한 이야기.
사물놀이 대가 아버지 김덕수 힙합의 대가 꿈꾸는 아들 김용훈
어쩌면 저렇게 닮을 수가 있을까. 케이블 음악채널 ‘MTV 코리아’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VJ 김용훈(21)을 만나는 순간 입이 딱 벌어졌다. 닮은 꼴을 보고 흔히 ‘붕어빵’이라고 하지만 그의 얼굴은 아버지 김덕수를 정말이지 ‘붕어빵’처럼 빼박았다. 힙합전문레이블 ‘마스터 플랜’에서 래퍼로 활동하는 김용훈은 사물놀이로 한국문화를 세계에 알린 김덕수(50)의 장남이다. ‘부전자전’이라고 그 역시 음악을 하고 있지만 아버지하고는 전혀 다른 힙합음악을 하고 있다.
“제가 아직 사물놀이나 힙합음악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아요. 모두 ‘한’에서 출발하는 걸 보면 정신이 비슷한 것 같아요. 저는 원래 이것저것 관심이 많았어요. 그러던 어느날 친구가 홍콩에 갔다가 외국의 랩 CD를 사왔어요. 그 랩 CD를 듣고 ‘아, 이거구나’ 싶었죠. 그뒤로는 힙합음악을 찾아서 듣곤 하다가 컴퓨터 통신을 통해 흑인 음악 동호회에 들었어요. 그때가 중학교 3학년에서 고등학교 1학년으로 올라가는 시점이었을 거예요.”
그는 점점 힙합음악에 빠져들고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 김덕수는 아들이 힙합음악에 빠져서 ‘래퍼’가 되는 게 꿈인 줄은 몰랐다. 그해 크리스마스 때였던가, 급기야 그는 아버지에게 폭탄선언을 했다. 자신은 무슨 일이 있어도 힙합음악을 하겠다고 말이다. 아버지 김덕수는 “무슨 소리냐?”라며 불같이 화를 내며 반대를 했다고 한다.
“아버지 눈엔 제가 같잖게 보였을 거예요. ‘네가 무슨 음악을 하냐’면서 야단을 치셨어요. 그때 맞지는 않았지만 4∼5시간 동안 연설을 들었던 기억이 나요. 솔직히 저는 어렸을 때 아버지한테 많이 맞고 자랐어요. 제가 반항심이 많아서 아버지가 뭐라고 야단을 치시면 저도 모르게 말 대꾸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럴 때마다 장구채, 북채로 숱하게 맞았죠.”
그는 아버지의 말을 들으면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을까 싶어 아버지의 뜻대로 고등학교 2학년 때 스위스의 고등학교로 유학을 갔다. 그곳에서의 유학생활은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었다. 한국처럼 공부에 매달릴 필요도 없었을 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온 친구들을 통해 다양한 문화 체험도 할 수 있었다.
“제가 2년여간 유학생활을 할 때 아버지가 세번 정도 다녀가셨어요. 한번은 우리 학교에서 공연이 있어서 오셨고 두번째는 프랑스에 공연차 오셨을 때 제가 아버지를 찾아가 뵈었지요. 공연장에서 아버지를 볼 때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참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버지의 공연을 보고 외국인들이 즐거워서 춤을 추거나 감동해서 우는 걸 보면, 난 언제 아버지처럼 훌륭한 공연을 할 수 있을까, 한편으로는 존경스럽기도 하구요, 저 사람이 진짜 내 아버지일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아버지에 대해 뮤지션으로선 100점, 가장으로선 낙제 점수를 주는 아들
하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버지를 둔 것이 그에게는 짐이 될 때도 있었다. ‘제가 누구 아들입니다’라고 말하고 다닌 적이 한번도 없는데 사람들이 어떻게 알아보고는 아버지 김덕수와 그를 많이 비교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였던가요? 아직도 기억나는 것이, 하루는 선생님이 저보고 단소를 불어보라고 하는 거예요. 아버지가 사물놀이 대가이긴 하지만 제가 뭘 아나요? 그래서 저는 단소를 못 분다고 했더니 선생님이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는 거예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니네 아빠가 유명한 국악인인데 넌 왜 단소도 못 부냐’는 거예요.”
그 말이 상처가 되었을까. “그런 일이 참 많았다”면서 “어디를 가나 내 등 뒤에 항상 아빠가 따라다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말하는 그의 표정이 조금은 씁쓸해보였다.

사물놀이 대가 아버지 김덕수 힙합의 대가 꿈꾸는 아들 김용훈

겉모습만 봐도 ‘핏줄은 속일수 없다’는 게 느껴지는 아버지 김덕수(왼쪽)와 아들 김용훈.

사실 이 때문에 처음에 그는 한사코 인터뷰를 거부했다. 인터뷰를 해도 기사의 내용이 늘 그 자신보다는 ‘김덕수의 아들’로 맞춰져 실리는데다 친구들도 “니네 아빠 빽 써서 기사 낸 거지?”라며 오해를 하기에 아예 하기가 싫다고 했다. 그의 고충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아버지 김덕수에 대한 질문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집에서는 어떤 아버지냐?”는 질문에 그는 아주 솔직하게 대답했다.
“제가 생각하기에 아버지는 뮤지션으로선 100점 만점인데 가장으로서는 30∼40점밖에 안 돼요. 아버지도 나름대로 노력을 많이 하시겠지만 공연 때문에 집을 비우는 날이 잦으니까 가정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모르실 때가 많은 것 같아요. 저희 집은 솔직히 다른 평범한 집들하고는 분위기가 달라요. 어머니도 한국무용을 하시고 글을 쓰시는 분이라서 바쁘세요. 남들처럼 가족끼리 여행 간 적이 한번도 없구요, 어떤 때는 일주일 내내 아버지 얼굴을 못 보고 지냈던 적도 있어요.”
언젠가 책에서 아버지에 대한 인터뷰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고 한다. 당시 기자가 “만약에 사물놀이와 가족이 동시에 바다에 빠졌다고 치자, 누구를 먼저 구하겠느냐?”라고 물었을 때 김덕수가 “사물놀이를 구하겠다”고 말했다는 기사였는데, 그 기사를 보고서도 느낀 것이지만 “역시 아버지는 가족보다는 일을 더 좋아하는 분인 것 같다”는 게 그의 말이다.
“그게 좀 불만인데요, 하지만 아버지를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도 음악을 더 좋아하거든요. 제가 아버지께 고맙게 생각하는 것은 아버지가 국악을 하라고 강요를 했던 적이 한번도 없다는 점이에요. 항상 네가 하고 싶은 일, 원하는 일을 하라고 하셨죠. 공부 때문에 야단을 치신 적도 없으셨어요. 공부는 나중에 어떤 일을 하건 필요한 거니까 하기 싫어도 필요한 만큼은 해야 된다는 말씀만 하셨죠.”
집안 분위기가 너무 자유로운 탓에 어떤 때는 스스로 통제가 안 될 때도 있었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집을 자주 비우는 아버지 대신에 어머니가 타일렀다고 하는데 그 말 끝에 그는 또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집은 절대로 평범한 가정이 아니예요. 하지만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우리집과 같이 자유로운 분위기인 집에서 태어나고 싶어요. 저는 보수적인 집에서는 못 살 것 같아요(웃음).”
듣고 보니 그럴 것도 같았다. 아닌게아니라 그는 말하는 것이나 옷차림새나 자유스러워보였다. 귀도 세 군데나 뚫은데다 수염도 기르고 있었다. “귀는 왜 뚫었냐?”고 물으니까 “그냥 뚫은 것”이라며 씩 웃는다.
“유학생활할 때 뚫은 거예요. 당시 여름방학 때마다 집에 왔는데 제가 나올 때마다 아버지가 공항으로 마중을 나오셨죠. 처음에는 귀를 하나만 뚫고 나왔는데 저를 보시고는 아버지께서 “귀에다 뭘 달았네” 하시더라구요. 그 이듬해 나왔을 때는 머리도 노랗게 염색하고 수염도 길렀더니 “웬 똥털을 길렀냐”며 웃으셨어요. 그런 점에서 저희 아버지는 탁 트이신 분인 것 같아요.”
스위스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지난해 여름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탬플대 커뮤니케이션학과에 원서를 제출, 입학 허가를 받은 상태에서 휴학계를 낸 상태. 힙합음악 때문이다. 스위스에 있는 동안 힙합음악을 접하지 못했지만 결국 그는 힙합음악에 대한 열정을 버릴 수가 없어 미국행을 접고 한국으로 나왔다.
아버지한테 미국 유학을 1년만 미루게 해달라고 통사정을 한 끝에 아버지 김덕수도 이를 반승낙했다고 한다. 아들인 그가 힙합음악을 하는 것에 대해서 인정을 하게 된 걸까. “아버지한테 이에 대한 얘기를 확실히 듣지 못했지만 저는 아버지한테 인정을 받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독립해서 부모와 따로 살고 있다.
“아버지한테 용돈을받지 않은 것이 꽤 오래전부터예요. 요즘도 제가 일해서 번 돈으로 살지, 집에다 일절 손을 안 내밀어요. 유학생활을 하면서 혼자 살아봤기 때문에 외롭다는 생각은 안 드는데, 음악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힘든 점이 많아요. 내공이 부족해서…(웃음) 더 많이 배우고 수련을 더 해야 될 것 같아요.”
그동안은 주로 언더그라운드 활동을 해왔지만 앞으로는 자기 이름을 내건 음반을 만들고 싶은 것이 꿈이란다. 그런 후에 음악적으로 성숙해져서 아버지 김덕수와 함께 같은 무대에 서서 공연을 하고 싶다고 했다.
“아버지하고 저하고 닮은 점이 딱 하나 있어요. 고집센 거요. 아버지도 그렇지만 저 역시 제가 하는 일에 대해서 간섭받기 싫어하고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경향이 있어요. 그 점은 닮았지만 글쎄요, 그외에는 아버지하고 닮은 데가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그 말과 함께 큰 소리로 장난스럽게 웃던 그는 “좀전에 나의 바람을 말했지만 진짜 소원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하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며 더 큰 웃음을 짓는 모습이 참 순수해보였다.

여성동아 2002년 10월 4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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