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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인물 & 화제 | 유인경 아줌마는 요즘 …

에세이집 <유인경의 해피 먼데이> 펴낸 아줌마 기자 유인경

“행복은 비온 후 맑게 개인 하늘을 보았을 때 느껴지는 기쁨 같은 거예요”

■ 글·이지은 기자(smiley@donga.com) ■ 사진·조영철 기자

2002. 10. 08

‘유인경 아줌마의 속~시원한 수다’로 여성동아 독자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아온 아줌마 기자 유인경씨가 지난 3년간 연재했던 글들을 모아 책으로 펴냈다. 그의 책 <유인경의 해피 먼데이>에는 뱃살이 손잡이처럼 나온 40대 아줌마, 성희롱보다는 성묵살이 더 불쾌한 최고참 여기자, 사춘기 딸의 엄마이자 치매 엄마의 딸, 오촌 당숙처럼 무뚝뚝한 남편의 아내로서 열심히 살고 있는 유인경씨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에세이집  펴낸 아줌마 기자 유인경

“처음에는 ‘버티면 산다’로 하려고 했어요(웃음). 그런데 너무 비장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21세기의 밝은 컨셉트와는 맞지 않는 것 같아서 ‘해피 먼데이’로 제목을 정했죠. 월요병에 대한 역설적인 표현이기도 하고요. 월요일만 되면 가슴이 갑갑해지는 사람들 많잖아요. 하지만 월요일만 잘 보내면 1주일이 행복해질 수 있죠. 모든 사람들이 항상 행복한 월요일을 보냈으면 하는 바람으로 지은 제목이에요.”
경향신문사 대중문화부 차장이자 칼럼리스트로 맹활약중인 유인경씨(44). 특히 그는 여성동아 독자들에게 고정 칼럼 ‘유인경 아줌마의 속~시원한 수다’로 더욱 친숙하다. 99년 첫 연재를 시작한 이래 그는 한 세기가 넘는(?) 오랜 기간 동안 정다운 이웃사촌처럼 독자들에게 자신의 삶을 진솔하게 털어놓았다. 이렇게 연재한 글들을 모아 지난 9월 에세이집 <유인경의 해피 먼데이>를 펴냈다. 전체의 3분의 2 정도가 여성동아에 연재했던 칼럼들이고 나머지 3분의 1은 선배 직장여성으로서 그가 후배들을 위해 남긴 도움글들이다.
“원고 마감은 항상 고통스러운데 이번 에세이 같은 경우는 한번도 힘들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사실 20~30분 만에 후다닥 썼던 글이거든요. 어제 누구를 만났는지, 어떤 일을 했는지 바로 그 순간을 잡아서 쓴 일기와도 같은 글이에요. 항상 기자로서 객관적인 기사밖에 쓸 수 없었는데 1인칭으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서 좋았고 독자들에게 편안하게 말을 건다는 것 자체도 너무 즐거웠어요. 그리고 제 글을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많아서 참 감사했습니다.”
사실 그의 에세이가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은 유용한 정보나 특별한 재미를 줬기 때문은 아니다. 주변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이야기,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희로애락의 감정을 담백하면서도 솔직하게 보여줘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던 것. 물론 여기에 유인경씨 특유의 구수한 입담과 재치도 한몫을 했다.
“전에 중학교 3학년인 딸 유라가 ‘집에서 매우 지저분하다’고 글을 쓴 적이 있어요. 그런데 딸아이의 친구 엄마가 제 글을 보고 ‘유라가 그렇게 지저분하다며’라고 말했다고 해요. 딸이 어찌나 민망해 하던지 미안해서 원고료로 옷을 사준 적이 있죠(웃음). 이렇게 제 글은 엄마 이야기, 딸 이야기, 남편 이야기, 일하면서 느꼈던 감정 등 모두 실제로 체험했던 일들을 쓴 거예요. 또 기자라는 직업이 전문 구경꾼이잖아요. 여기저기서 직간접 경험을 하면서 겪은, 입이 간질간질해질 정도로 수다 떨고 싶었던 일들을 그냥 풀어낸 거죠.”
에세이에서 그는 외국 출장을 많이 다니고 패션쇼에 나온 듯한 명품 스카프를 한 고상한 여기자이자 칼럼리스트가 아니다. 뱃살이 손잡이처럼 나온 40대 아줌마이고 성희롱보다는 성묵살이 더 불쾌한 최고참 여기자이며, 사춘기 딸의 철 없는 엄마이자 치매 엄마를 보살피는 속 깊은 딸, 오촌 당숙처럼 무뚝뚝한 남편의 애교 없는 아내일 뿐이다. 특히 치매에 걸린 어머니의 이야기를 할 때 글 속에서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절절히 느껴지게 하는 효녀다.
“어머니는 9년 전 갑자기 치매 증상을 보이셨어요. 딸인 제게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만치 엄격하고 자식들을 위해서 1백% 헌신하시는 어머니였는데…. 처음에는 ‘그 똑똑한 분이 왜 이렇게 됐을까’ 마음이 참 아팠고 제 현실이 불만스럽기도 했어요. 하지만 전체 인구중 30만명이 치매라는데 어머니가 그중 한명인 거고, 저는 그 가족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막내인 제가 어머니를 모실 수 있다는 것도 너무 고맙고요.”
매일 밤 어머니를 목욕시키고 노인용 기저귀를 갈아주며, 안아주고 뽀뽀해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너무도 소중하다는 유인경씨. 그는 한번도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원망한 적이 없다고 한다. 오히려 바쁜 직장생활 때문에 하루종일 함께 있어주지 못하는 것이 죄송할 뿐이라고.

“어머니를 모신다는 것 자체가 든든한 배경이죠. 어머니 모신다고 하면 다들 ‘생긴 것은 사나워보이는데 이렇게 착한 사람인 줄 몰랐다’고 하거든요(웃음). 막내지만 어머니를 모신다는 것 자체가 너무 고맙고 행복해요. 또 중학교 3학년인 딸 유라도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싫어하지 않고 잘 챙겨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고맙고요.”
품종개량(?)이 되어서 긴 팔 다리와 조그마한 얼굴을 가진 딸 유라는 그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행복의 원천이다. “요즘 가수 비에게 필이 꽂혀 그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는 그는 자신에게 힘든 일이 닥치거나 마음이 너무 괴로울 때 유라의 뽀뽀를 받으면 힘이 솟는다고. 아직 어린데도 아기가 되어버린 할머니를 귀찮아하거나 싫어하지 않고 잘 보살펴주는 것이 너무도 고맙다.
“이번 추석 때 제가 외국 출장을 가게 됐어요. 어머니를 맡길 곳이 없어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딸아이가 시험 때문에 큰집에 가지 않으니까 즉석식품만 많이 사다주면 자기가 할머니를 돌보겠다고 하더군요.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고마웠죠.”
어머니와 딸에게 모든 신경을 쏟느라 항상 3순위로 떨어진다는 남편. 70번 넘게 선을 본 후, 그는 가장 부담 없이(?) 생긴 남편과 선본 지 두달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고 한다. 전형적인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인데다 유인경씨 또한 아양이나 애교와는 담을 쌓고 사는 무심한 ‘마누라’인지라 마치 사촌끼리 한집에서 사는 것 같다고.
“한번은 남편이 못 보던 팬티를 입고 있었어요. 아니 이 양반이 누구에게 팬티를 선물 받았나 싶어 순간적으로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죠. 그런데 유라가 ‘아빠 팬티가 다 낡았는데 엄마가 사주지 않아서 아빠가 사가지고 왔다’고 하더군요. ‘왜 팬티만 사? 양말까지 사지’라고 말했지만 정말 미안하더라고요. 그런 것도 잘 챙겨주지 못하는 마누라랑 사는 걸 보면 우리 남편도 참 무던한 사람이기는 해요(웃음).”
대한민국 여성으로서 40여년, 기자생활 17년, 주부생활 16년을 살아온 그는 40이라는 나이가 두번째 인생을 시작하는 분수령 같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나와 다른 것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를 진심으로 사랑하며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된다는 것. 젊었을 적 친구들의 성공에 배가 아픈 적도 많았고 다른 사람들의 불행에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내쉰 적도 있었지만 마흔을 넘기면서 주변 사람들의 행복에 기쁨을 느끼고 불행에 함께 눈물을 흘리게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유씨가 말하는 진짜 행복은 무엇일까.
“늘 행복할 수는 없어요. 또 가슴이 터질 듯한 행복이라는 것도 그 여진이 오래 남지는 않죠. 항상 밝으면 그 밝음의 소중함을 몰라요. 행복도 비슷하죠. 구질구질 흐리고 비온 후 맑게 개인 하늘을 보았을 때 느껴지는 기쁨, 자잘한 일상에서 가끔 느껴지는 가슴 따뜻한 감동이 진짜 행복인 것 같아요.”
인터뷰 내내 밝고 화통한 웃음을 지으면서도 치매에 걸린 어머니 이야기를 할 때는 살짝 눈물을 보이기도 한 유인경씨. 그의 ‘속 시원한 수다’들은 우리의 가슴속에 작은 감동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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