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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인물 & 화제 | 서주연 주부의 캐나다 체험기 ④

미국적이지만 미국과는 또다른 캐나다의 대중문화1

“아버지가 성년이 된 아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스트립 쇼 보러 가는 나라예요”

■ 기획·최호열 기자(honeypapa@donga.com) ■ 글&사진·서주연(maririsa@hanmail.net)

입력 2002.10.08 10:21:00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이민 가고 싶어하는 나라 캐나다. 하지만 막상 가서 생활하다 보면 그들의 낯선 생활 모습에 당혹감을 느끼기도 한다. 캐나다에 살고 있는 주부유학생 서주연씨가 체험한 우리와는 다른 그들만의 문화를 소개한다. 이 달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비롯한 그들의 대중문화를 살펴보았다.
미국적이지만 미국과는 또다른 캐나다의 대중문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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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명의 남자 중에서 누가 제 아이의 아빠일까요? DNA 검사를 요청합니다.’
우리 정서로는 말만 들어도 당장 하늘이 두쪽 날 만큼 황당한 일이지만 캐나다에서는 아침방송 토크쇼의 일상적인 주제다. 이런 황당하고 엽기적인 주제의 토크쇼를 보고 있노라면 말 그대로 동서양 문화의 차이, 의식의 차이를 확연히 느끼게 된다.
‘남자 친구가 결혼을 빙자해 나를 우롱했다면’ ‘내가 그 아이의 진짜 아빠다’ ‘엄마와 딸이 동시에 한 남자를 사랑한다면’ ‘재혼한 남편이 내 딸을 성적으로 괴롭히는데’ 등등을 주제로 한 토크쇼를 보노라면 정이 뚝 떨어질 만큼 이 사회의 비뚤어진 단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밖에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람들에겐 거대한 팬터지를 안겨주는 물건값 맞추기 프로그램, 바퀴벌레와 구더기를 손으로 집어 먹고 쥐와 뱀이 우글거리는 유리상자 안에서 끝까지 남는 사람이 거액의 상금을 받는 프로그램, 생면부지의 남녀들이 상상을 뛰어넘어 해괴망측한 만남을 갖는 프로그램 등이 캐나다 공중파 방송의 인기 프로그램이다.
게다가 1백여개 채널에 이르는 케이블TV에서는 우리처럼 방송심의위원회가 있다면 즉각 경고조치를 받아 마땅한 무삭제 성인영화 등을 여과 없이 내보낸다. 하지만 이곳에선 모든 게 허용된다. 대중들의 자유의사와 선택권을 침해해선 안 된다는 ‘기본’에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필요하다면 ‘기본’을 지키기 위한 보조장치를 찾을 뿐이다. 불합리한 규제는 이미 정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대중들이 먼저 아는 까닭이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이런 엽기적인 프로그램들은 캐나다 상표가 아니다. 이곳에서 보는 텔레비전과 라디오 채널은 미국 방송이 대부분이고 케이블 채널까지 미국과 공유하고 있는 형태이다 보니 자연 미국의 문화와 관습, 미국적인 사회 정서의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좀더 찬찬히 그 속을 들여다보면 미국과는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캐나다의 대중문화는 ‘미국적이지만 미국과는 다르다’고 해야 할까?
캐나다에서 자체 제작하는 프로그램들은 훨씬 점잖고 정적이며 자극적이기보다 복고적이어서 미국적인 방송에 푹 빠진 사람들이라면 너무 심심하고 재미없다고 느낄 정도다. 캐나다 사람들이 가장 관심 있어 하는 대상은 가족과 아이스하키와 페스티벌 정도인데,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그런 분위기를 반영한다. 그러니 캐나다의 고전이랄 수 있는 ‘빨강머리 앤’을 TV용으로 제작한 시리즈와 국민 스포츠인 아이스하키를 비롯한 스포츠 중계, 그날그날의 뉴스, 기상 캐스터의 현란한 말솜씨와 몸짓이 돋보이는 날씨 정보, 그리고 지역사회의 시장 소식이나 특별 행사와 도네이션 방법 등을 전해주는 아침 교양물 정도가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다. 그러다 보니 정보는 신문을 통해서 얻으면 되고 너무나 자극적인 미국 방송은 보기 싫어서 아예 텔레비전을 없앴다는 캐나디안도 흔히 보게 된다.
캐나다에는 3개의 공중파와 1백여개의 지역 케이블TV가 있는데 영어 방송 외에 불어 방송도 있다. 그런데 이 두 채널은 확실한 차이를 드러낸다. 불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성향이 더 개방적이고 창의적이라 느껴질 정도로 불어방송이 훨씬 더 자유스럽고 자극적이다.
한가지 더, 대중 매체를 말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너무도 심심한’ 신문에 대해서다. 신문 1면의 톱뉴스가 ‘15년간 키운 잃어버린 말을 찾는다’ ‘개와 고양이가 사이좋게 어울려 사는 모습’ ‘3중 추돌, 끔찍한 교통사고’ ‘복권 당첨, 행운의 인물’ 등이 대부분이다. 우리나라처럼 병풍이다, 북풍이다 해서 연일 신문의 1면을 떠나지 않는 정치권의 이전투구는 찾아볼 수도 없다. 그야말로 까맣게 잊고 살다가 되새기게 되는 토네이도의 재해 이외엔 인재라 부를 만한 대형참사도 벌어지지 않는다. 말하자면 미국의 9·11 테러 사건 등 세계적인 이슈를 빼고 나면 ‘사건사고가 없는 평화로운 나라’인 셈이다. 그러니 보통 40쪽에 이르는 방대한 지면이 건강하고 질 좋은 삶을 만들어가기 위한 정보나 예술, 스포츠, 물건을 사고 파는 광고, 갑남을녀들의 기념일과 부고로 채워지는 것을 보면서 새삼 ‘참 많이 다른 세상’임을 느낀다.

그렇다면 캐나다의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것으로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 우리처럼 유행이란 단어를 떠올릴 만한 것도 없고, 토론토나 밴쿠버를 제외하면 현란한 네온사인이 불야성을 이루는 번화가도 보기 어렵다. 필자가 살고 있는 에드먼튼만 하더라도 오후 5시 이후의 다운타운은 일찌감치 깊은 잠에 떨어져버린 도시 같다. 대부분의 상점들은 문을 닫고 몇몇 음식점과 대형마트, 몇 군데의 술집과 커피숍만이 저녁 불을 밝힌다. 정시에 일손을 놓고 하루를 마감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 단란한 저녁을 즐기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으며 간혹 함께 할 가족이 없는 사람들이나 혼자 사는 이들만이 말할 상대를 얻기 위해 술집을 찾거나, 젊은 남녀들이 늦게까지 데이트를 즐긴다.
그러니 가족 중심의 문화를 즐기는 것이 곧 캐나다 사람들의 대중문화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가족끼리 저녁식사 후 공원에서 놀이를 즐기고, 휴일이면 피크닉과 산책을 즐기고, 때때로 크고 작은 페스티벌에 참여하며 야외 콘서트장이나 스키장을 찾는 것, 아이들을 줄줄이 유모차에 태우고 쇼핑을 즐기는 것이 이곳의 대중문화다. 이처럼 가족끼리 똘똘 뭉쳐 여가를 즐기는 캐나다 사람들로서는 온 가족이 제각기 흩어져 노는 우리네 문화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되고 만다. 그러니 이민 온 중년의 남자들이 캐나다를 ‘세상에서 가장 재미없는 천국’이라고들 하는 게 아닐까?
우리의 눈으로 보면 밋밋하고 재미없는 수준이지만 여기도 물론 성인들을 위한 놀이 문화가 있다. 이곳의 대중적인 술집에서는 통기타를 둘러메고 노래를 불러대는 아마추어 가수들의 모습이나 컨트리 음악에 맞추어 몸을 흔드는 아줌마, 아저씨,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는 일이 흔하다. 뿐만 아니라 가라오케 시설을 갖춘 곳도 많아서 서로 어설픈 노래 실력(이곳 사람들의 노래 실력에 비하면 한국인들은 모두 진짜 가수다!)을 격려해주며 즐겁게 어울리는 풍경도 본다.
흥미로운 점은, 술집에선 나이가 어려보이는 젊은이들에겐 꼭 신분증 제시를 요구한다는 사실. 특히 이들 눈으로는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동양인들에겐 대개 신분증을 요구한다. 그것도 학생증 정도로 넘어가는 법이 없다. 반드시 국가가 승인한 신분 증명서, 즉 여권이나 면허증에 나와 있는 법적 나이만을 인정한다. 우리나라보다 더 엄격하게 청소년들의 술집 출입을 통제한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지만 미성년자 출입이 적발될 경우 캐나다 달러로 4천달러(3백만원이 넘는 돈)의 벌금이 부과된다는 사실에 또 한번 놀랐다. 그러니 술집마다 과민반응을 보일 정도로 미성년자의 출입을 통제하는 이유가 이해된다.
하지만 이미 양성화한 성인 문화를 즐기는 일도 지극히 자연스럽다. 스트립바나 게이바에 대한 인식도 뭇 술집을 보는 것과 다르지 않고, 심지어 갓 성인이 된 아들과 나란히 앉아서 쇼를 구경하는 아버지들도 많다. 또 성인 비디오만을 대여하는 어덜트비디오숍과 핍쇼(peep show, 성인 비디오를 틀어주는 곳), 성인전용극장 등도 거리낌없이 간판을 내걸고 있다. 성인들만을 위한 이 가게들은 보통 밖에서는 안을 들여다볼 수 없게 해놓았지만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 어떤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드나들 수 있는 나라가 바로 캐나다다.

여성동아 2002년 10월 4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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