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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성의 정사신 공개로 화제 몰고 온 영화 <로드무비>의 김인식감독

■ 기획·정지연 기자(alimi@donga.com) ■ 글·함영주 ■ 사진·박해윤 기자

입력 2002.10.07 14:08:00

동성간의 적나라한 정사장면으로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으고 있는 영화 <로드무비>. 밴쿠버 영화제와 런던 영화제의 초청작으로 선정되는 등 해외에서 먼저 주목받고 있는 이 영화는 등급심의를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18세 상영가’로 판정받았다. <로드무비>의 감독 김인식씨를 만나 굳이 동성애 영화를 만든 이유를 들어보았다.
두 남성의 정사신 공개로 화제 몰고 온 영화 의 김인식감독
“나,너… 사랑해도 되냐?” 죽어가는 한 남자가 또 한 남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영화 의 엔딩에서 동성애자인 대식이 이성애자인 석원에게 던지는 마지막 대사다. 이 장면에서 함축적으로 보여지듯이 이 영화는 동성애자 남성과 이성애자인 남성, 그리고 동성애자 남성을 사랑하는 여자의 황량한 여정을 다루고 있다.
‘동성애자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파격적이지만, 이 영화가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으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영화 첫 도입부에 보여지는 적나라한 섹스신 때문이다. ‘남자의 허리를 바짝 끌어안은 또다른 남자’의 허벅지는 보는 사람들 모두를 경악에 빠뜨렸다.
“30초 정도 될까요. 그런데 그 30초가 30분은 되는 것 같아요. 보는 사람들 모두 진땀이 난다고 하더군요. 모니터 시사회 때 이 장면에서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어요.”
영화제작사 사이더스의 홍보 담당 김지연씨의 말대로라면 ‘꽤 강도 높은 영화’일 듯하다. 게다가 이런 ‘센’ 동성간의 정사신이 무려 네번이나 등장한다. 특히 주인공이 화장실에서 낯선 남자와 관계하는 장면에 대해서는 시사회 때 참석한 남자들의 대부분이 심한 거부감을 보였다고 한다.
“주인공 대식이 동성애자라는 걸 확실하게 보여주는 장면이죠. 굳이 그렇게까지 보여주어야 하냐고 하지만, 전 동성애자들을 낭만적으로 윤색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들의 삶을 정말로 이해하려면 섹스하는 모습까지 봐야 하지 않겠어요?”
이 영화로 첫 데뷔를 하는 김인식 감독(43)은 영화사나 다른 사람들이 우려하는 지점을 알지만, 그걸 피해가고 싶지는 않았다고 했다. 문제는 등급심의. 영화를 시사한 관계자들은 등급심의를 과연 통과할 수 있을까 걱정했다. 이미 앞서 노인들의 성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룬 영화 가 재심에서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은 상황이었다. 역시 그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했으나 다행히 ‘18세 상영가’를 판정받았다. 여기에는 아마도, 외국인 평론가의 호평을 받고 밴쿠버 영화제와 런던 영화제의 초청작으로 선정됐다는 사실이 주효했던 듯싶다.
동성간의 노골적인 섹스신에 영화 관계자들마저 충격받아
이 영화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동성애자인 대식(황정민 분)이 길에서 비틀거리는 석원을 발견한다. 잘 나가는 펀드매니저였던 석원(정찬 분)은 주가폭락으로 하루아침에 노숙자로 거리를 떠도는 신세. 그러다가 대식을 만나고 함께 여행길에 오른다. 바닷가에 이르러 다방 레지 일주(서린 분)를 알게 되고, 그녀 역시 이들과 동행한다. 이렇게 시작된 세 사람의 여정은 대식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삐걱거리게 된다.
“이 영화가 우리 사회의 예민한 부분을 건드리고 있는 건 사실이에요. 다만 그걸 제가 정확히 짚어냈다면 많은 이들이 영화관을 찾아줄 테고, 반면에 ‘아직은 이런 얘기를 할 때가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더 많다면 철저하게 외면당하겠지요.”
10월18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김감독은 이처럼 ‘기대 반 걱정 반’의 심정인 듯했다. 김감독 스스로가 생각하는 는 ‘동성애자를 주인공으로 해서 보편적인 사랑의 문제를 다루는 영화’다. 단지 ‘동성애자’라는 호기심 끌만한 소재를 다뤘다는 데 주목받을 게 아니라, 서로 사랑을 하지만 교감할 수 없는 소통 부재와 인간의 근원적 외로움을 그려내고 싶었다는 것. 아마도 이 영화에 홈리스가 등장하는 까닭도 홈리스나 동성애자나 이 사회가 가차없이 내버린 소외된 존재라는 뜻인 듯싶었다.

2년여간 시나리오를 매만진 끝에 데뷔영화로 ‘동성애 영화’를 택한 과감함에서 엿보이듯, 김감독은 동성애에 대해 상당히 열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파리 유학 시절, 그는 에이즈에 걸린 동성애자 친구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려 차도 마실 정도였다고 한다. 어떤 편견이나 선입관을 가지고 ‘동성애자’라는 존재를 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동성애자’라는 존재를 사회적으로 인정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가 용인하는 일반적인 성적 양태, 즉 이성애를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을 단죄하는 건 안 된다고 봐요. 성적 소수자의 성생활 역시 존중받아야죠. 물론 우리 사회도 예전에 비해서 동성애나 동성애자에 대해 많이 너그러워진 추세라는 걸 인정해요. 하지만 아직은 과도기죠. 이런 때 제 영화가 동성애자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각을 좀더 누그러뜨릴 수 있다면 좋겠어요.”
영화 의 주인공들은 이성애자 석원을 연기한 탤런트 정찬을 제외하고 모두 신인이다. 대식 역은 영화 에서 순진한 드러머 역할을 맡았던 황정민, 그리고 여주인공 일주 역은 서린이라는 신인이 맡았다.
김감독이 대식과 석원 역으로 원래 점찍어둔 배우는 설경구와 최민식. “아마도 당사자에게 시나리오가 전달되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그는 웃음을 터뜨린다.
“동성간에 정사신을 찍는 것부터가 문제잖아요. 그래서 캐스팅 단계부터 그림 콘티를 그려서 보여줬어요. 이런 장면들은 필수적으로 찍어야 한다고 설명하고, 하겠다고 사전동의하는 사람들만 캐스팅했죠. 하지만 카메라와 많은 스태프들 앞에서 옷을 벗고 연기한다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잖아요. 당연히 정사신을 찍을 땐 다들 신경이 날카로워 있었죠.”
동성간의 섹스신 말고도 는 어려운 촬영이 많았다. 그중 하나가 세명의 여자가 단란주점에서 옷을 벗고 춤추는 신. 소위 대기업 사원들이 노는 술집이라는 곳엘 가보고, 그대로 재현한 것이라는데 김감독이 보기에도 상당히 ‘세다’고 한다.
“처음엔 다들 보호대(음모가 보이지 않도록 가리는 것)를 차고 촬영을 했는데, 춤 동작을 취하면 카메라에 걸려 자꾸 NG가 나는 거예요. 그래서 ‘차라리 보호대 떼내고, 우리 한방에 끝내자’고 합의를 했죠. 그래서 화끈하게 끝낼 수 있었어요. 우리 배우들, 그 장면에서 정말 열심히 해줬어요. “
무엇보다 다행이었던 것은 동성과의 거친 섹스신을 여러 차례 찍어야 했던 황정민이 스스로의 난처함을 누른 채 경쾌하게 촬영장 분위기를 리드했다는 점.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음엔 어떤 체위예요?” 묻기도 하면서 경쾌하게 현장을 유도하는 바람에 얼굴 붉힐 상황이 없었다고 했다. 또한 첫 영화 출연인 정찬 역시 ‘위험한 장면’들의 대부분을 거의 대역없이 연기하는 등 열연을 펼쳤다.
하지만 작년 12월, 정찬은 대마초 사건에 연루돼 김감독을 안타깝게 했다. 당시 는 이미 촬영을 마친 상태였고, 정찬은 다른 영화 에 출연중인 상태였다.
“새벽 6시경에 조간신문을 보다가 TV를 켰는데 화면 아래에 자막이 흐르면서 정찬이 촬영감독과 함께 대마초혐의로 걸렸다는 거에요. 알고 보니 의 촬영감독이었고, 내 현장에서 일어난 거라 문제가 심각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영화는 다 찍고 후반작업에 들어간 상황인데,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더군요. 이러다가 영화를 못 거는 건 아닌가, 나도 불려가서 참고인 조사를 받게 되나… 그야말로 속이 탔죠. 그런데 다행히 조용히 끝났어요.”
산 너머 산이라고, 이렇게 영화의 후반작업을 무사히 마치자마자 또다른 고비가 기다리고 있었다. 등급심의 논란이 그것. 영화계에서조차 “너무 앞서가는 것이 아니냐”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으니 그럴 법도 했다.
“전 문제없다고 생각했어요. 섹스장면에서 음모가 노출되면 안 된다는 규정도 지켰고, 성기 노출신도 섹스와 무관한 장면에서 슬쩍 보이는 것으로 처리했으니까요. 문제는 동성간의 섹스장면인데, 전 관객들이 영화 속 동성애자인 주인공을 이해하자면, 그의 성생활을 반드시 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남들이 우려하는데도, 그 장면은 그냥 가야 한다고 우겼죠. 성적 소수자의 성생활도 존중받아야 마땅하지 않나요?”

는 거의 모든 신을 야외에서 작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하보도에서, 거리에서, 바닷가에서, 태백에서… 그러다 보니 어려움도 많았다. 특히 첫 촬영지인 서울역 지하보도에서는 노숙자들 때문에 진행이 순조롭지 못했다. 자발적으로 사회를 등지거나 혹은 버림받은 노숙자들이 카메라에 자신의 모습이 노출되기를 꺼렸던 탓이다.
“살벌한 분위기에서 촬영했어요. ‘야, 개××들아’라는 욕은 보통으로 얻어먹었어요. 그나마 호의적인 사람들은 ‘에이, 이거 아냐. 감독, 네가 잘못하니까 이렇게 NG가 나잖아’ 하고 간섭하질 않나, 또 스태프 중에는 돈 내놓으라는 협박을 받은 이들도 있었고요.”
여주인공 인주가 바다에 빠지는 장면도 유난히 고생했던 촬영 장면으로 꼽힌다. 거센 동해 파도의 위력을 얕잡아본 탓에 서린이 파도에 밀려 그대로 올라갔다가 밑바닥에 ‘쿵’ 하고 떨어지면서 돌들에 온몸이 찍혀 상처투성이가 된 것.
“그땐 촬영이고 뭐고 다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과실치사로 감방에 가는 건 아닌가 걱정할 정도로 상황이 안 좋았으니까. 온몸이 찍혀 상처투성이라서 다시 찍자고 하기도 미안한데, 서린씨가 먼저 안전장치를 좀더 신경 써주면 한번 더 하겠다고 당차게 나오더군요. 그래서 두번째엔 스킨스쿠버를 한 정찬씨와 수영선수 출신의 스태프가 도와줘 그럴 듯하게 찍었는데, 촬영감독이 더 욕심을 내는 거예요.”
위험하니까 그만 찍자는 김감독과 한번 더 찍자는 촬영감독이 다투는 걸 들은 서린은 “안 찍혔으면 다시 찍어!” 하며 악에 바쳐 소리를 지르더란다. 그 기억을 떠올리며 김감독은 어려운 장면일수록 배우들의 자존심을 생각해서라도 완벽하게 찍어야 한다고 말했다.
소금창고 신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소금더미 위에서 죽어가는 대식과 그런 대식을 위해 석원이 그동안 밀쳐냈던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중요한 장면. 문제는 ‘소금’이었다.
“소금이 전기가 굉장히 잘 통하는 ‘전해질’이잖아요. 그런데 젖은 몸으로 소금더미에 누워 있는데, 거기에 전선 깔고, 조명 치면 감전사할 위험이 대단히 높죠. 거의 불가능한 신이라 ‘세트로 갈까, 리얼리티를 살리려면 여기가 좋은데…’하며 고민하고 있는데 두 배우 모두 ‘그냥 찍자’며 선뜻 동의해줬기에 최대한 주의하면서 촬영을 강행, 무사히 좋은 장면을 건질 수 있었죠.”
제도교육에 견디지 못했던 학창시절에 ‘왕따’ 당해
김감독은 학창시절 초등학교 때부터 ‘열등아’였고 ‘왕따’였다고 했다. 그에게 학창시절이란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지옥’이다. 경직된 틀과 개인의 창의성의 싹을 잘라버리는 비합리적인 조직생활에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고등학교 때는 수면제 2백알을 집어삼키기도 했다. 그 영향으로 대학교 때도 일체의 동아리 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사회가 규정해놓은 테두리 밖에서 살아왔기에, 아마도 사회가 소외시키는 ‘동성애자’라는 존재에 눈길이 간 게 아닌가 싶었다.
김감독은 이미 다음 작품에 대한 구상을 끝내놓은 상태. 사랑 때문에 자기 파멸에 이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한다. 서울과 홍콩이라는 두 공간을 배경으로 깔고 유기적으로 전개되는 사랑 이야기이다.
그에게 “좋은 영화는 어떤 것이냐”고 물었더니 “대중들에게 새로운 비전을 던져주면서 다양한 경험과 시야를 열어주는 영화”라고 답한다. 그리고 자신의 영화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좋은 책 한권을 읽은 듯한 감상을 전해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올가을 극장가를 뜨겁게 달굴 . 김인식 감독의 기대만큼 관객들은 ‘이 특별한 러브 스토리’에서 그의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을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여성동아 2002년 10월 4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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