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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interview #podcast

김생민 씨, 영수증 좀 봐주세요

editor 정희순

2017. 08. 16

스뜌삣! 청취자들이 보낸 영수증을 보고 일침을 날리지만 듣는 이들은 폭소를 터뜨린다. 돈이 들 것 같아 팬클럽의 탄생도 반기지 않는다는 <김생민의 영수증> 진행자 김생민과 나눈 머니 토크.

“그 돈을 주고 대형 텔레비전을 샀다고요? 스뜌삣(Stupid)! TV는 작은 걸로 볼 때 더 집중할 수 있어요. 아주 잘못된 소비예요.”

“저는 이달의 ‘베스트 바이(Best Buy)’로 고속버스터미널 역에서 사 먹은 1천원짜리 어묵을 꼽고 싶네요. 혼자 다니니까 1천원으로 끝난 거예요. 다른 사람과 같이 다니면 지출이 커집니다. 혼자 다니세요.”

26년 차 개그맨 김생민(44)이 일을 냈다. 인기 팟캐스트 채널 〈김생민의 영수증〉을 통해서다. 그는 청취자들이 보낸 영수증을 보고 깨알같이 재테크 조언을 한다. 불필요한 지출이라고 생각되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스뜌삣’을 외치곤 하는데, 방송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이 말은 지난 26년간 유행어 하나 없이 살았던 김생민의 설움을 단박에 날려버렸다. 지난 6월 19일 첫 방송을 시작한 〈김생민의 영수증〉은 수만 개의 팟캐스트 중 인기 순위 10위권, 코미디 카테고리 안에서는 톱 3를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뜨거운 관심은 데뷔 26년 만에 처음이에요. 리포터 활동을 오래해 스타에게 질문을 하는 건 익숙한데 받는 입장이 되는 건 제겐 꽤 낯선 일이죠.”  

김생민은 어쩌다 성실의 아이콘이 됐을까
1992년 KBS 특채 개그맨으로 방송국에 발을 디뎠지만 그는 대중에게 개그맨보다는 전문 리포터로 알려져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지상파 3사의 대표 장수 프로그램 KBS 〈연예가 중계〉, MBC 〈출발! 비디오 여행〉, SBS 〈TV 동물농장〉에서 각각 21년, 20년, 17년째 리포터로 활동하고 있다. 큰 한 방은 없었지만 성실함 하나만큼은 그를 따라올 자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7월 17일 오전 10시께 그를 방송국 앞에서 만났는데, 그날도 그는 오전 5시 30분부터 시작한 아침 방송 프로그램의 촬영을 지금 막 끝내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운 좋게 개그맨이 되긴 했는데 개그 프로그램에 출연해도 줄곧 편집을 당하더라고요. 그러다 작가의 추천으로 아침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할 기회를 얻었죠. 큰 웃음을 주진 못하더라도 성실함만큼은 자신이 있었어요. 이후 공개 오디션을 통해 리포터 일을 시작하게 됐고 벌써 20년이 흘렀네요.”

방송 활동을 통해 드러난 성실함은 재테크에 있어서도 그를 빛나게 했다. 한푼 두푼 구두쇠처럼 아껴가며 출연료를 모아 14년 만에 그가 10억원을 저축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법 없이 통장에 차곡차곡 모았다고 해 그에게 붙여진 별명이 ‘통장 요정’이다.

“서점에 가보면 ‘돈 버는 법’에 관한 재테크 서적들이 참 많잖아요. 그게 무슨 의미겠어요. 모두가 궁금해하고, 모두가 매진하지만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한 게 재테크라는 거죠. 재테크에 왕도는 없다고 봐요. 저는 한 달 수입이 28만원이던 1992년부터 적금을 붓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적은 액수를 붓다가 수입이 늘어났을 땐 액수를 늘렸죠. 생각해보세요. 한 달에 1백66만원씩 6개월 저축하면 1천만원이에요. 1년이면 2천만원이고요. 재테크의 기본은 저축이에요.”

‘김생민=재테크’라는 소문이 방송가에 알음알음 퍼지자 재테크 관련 프로그램에서 섭외가 들어왔다. 그렇게 출연한 것이 KBS2에서 방영됐던 〈경제 비타민〉. 당시 김생민은 “슈트를 10년 이상 입으려면 유행을 타지 않는 투 버튼을 사야 한다” “구두가 딱 세 켤레 있는데 하나는 야외 촬영용, 다른 하나는 스튜디오용, 나머지 하나는 상 받을 때 신으려고 고이 모셔놓기만 했다”며 자신이 실천하는 깨알 같은 절약 노하우를 공개해 화제를 모았다. 여기서 말한 김생민식 절약법은 2008년 〈만만한 재테크〉라는 책으로 나왔다.

“할머니가 굉장히 절약 정신이 투철하셨는데 아마 그 DNA가 제게 전달된 것 같아요. 집안 형편이 어려운 편이었는데 그래서인지 가족 모두가 아껴 쓰는 것에 익숙했죠. 하긴 가족들 중에서 제가 좀 유별났던 것 같긴 해요. 용돈을 받아도 쓰지 않고 모아서 늘 현금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누나들이 학교 준비물을 사야 하는데 돈이 부족하다며 제게 꿔 갈 때가 많았어요.”

인터뷰 도중 그가 문자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옅은 미소를 띤다. 잠시 양해를 구하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 부동산 투자와 관련해 나름대로 ‘현실적인’ 조언을 시작한다. 내용이 꽤 디테일하다.

“방송국의 친한 PD가 문자를 보낸 거예요. ‘외람된 질문입니다만’ 하면서 청약을 넣은 게 당첨이 됐는데 이걸 유지할 것인지 포기할 것인지를 두고 고민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대략적인 조언을 해줬죠. 사실 제 독특한 취미 중 하나가 서울 권역별로 주요 아파트 가격의 동향을 살피는 거예요. 저는 살 생각이 없지만, 그걸 날마다 체크하는 게 묘하게 재밌더라고요. 요즘엔 시중 은행 홈페이지나 국토교통부 사이트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어서 편해졌어요. 제가 이렇게 쓸데없이 남 일에 관심이 많은가 봐요(웃음).”

생각해보면 팟캐스트 〈김생민의 영수증〉은 줄곧 다른 사람에게 재테크 비법을 조언하곤 하는 그의 평소 생활이 십분 반영된 방송이다. 김생민이 아니면 누구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에게 한번 팟캐스트를 해보지 않겠냐고 권유한 사람은 데뷔 이후 줄곧 재테크 팁을 주고받곤 하던 동료 개그우먼 송은이와 김숙이다. 이들은 〈김생민의 영수증〉에서도 보조 MC 역할을 맡고 있다.

“송은이 누나는 제 조언을 곧잘 참고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김숙 씨는 ‘선지출 후인기’라고 생각한대요. 저와는 완전 생각이 반대죠. 도깨비 시장이며 동대문 시장에서 좀 특이하다 싶은 소품이 있으면 그걸 그렇게 사더라고요. 그러고는 ‘돈을 다 써버려서 하나도 없네’ 하고 깔깔 웃으면서 자신의 주머니 사정을 개그 소재로 활용하곤 하죠.”





그가 팟캐스트를 시작한 이유
〈김생민의 영수증〉은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이라는 팟캐스트의 스핀오프 개념으로 출발했다. 코미디언들 중에서도 비교적 일찍 팟캐스트를 시작한 송은이와 김숙은 자신들의 인맥을 총동원하며 방송을 시작했다. 유재석에게 ‘자기 관리 전문가’, 이영자에게는 ‘먹거리 전문가’, 김수용에겐 ‘29금 전문가’, 그보다 더한 안영미에겐 ‘39금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주고선 전화 연결을 해 동료 개그맨들과 입담을 펼쳤다. 이때 김생민에게 부여한 타이틀이 ‘경제 재테크 전문가’였다.

“3년 전쯤 두 사람이 팟캐스트를 시작했다고 하더라고요. ‘연구소’랍시고 홍대 쪽에 2평짜리 사무실을 잡아놓고 그곳에서 휴대전화로 방송을 녹음하는 열악한 환경이었죠. 이런 걸 대체 왜 하냐고 물었더니 ‘개그 프로그램이 사라져가는 현실에서 방송국만 탓할 게 아니라 우리의 무대를 스스로 만들어보자. 그게 선배들이 후배들을 위해 길을 터줄 수 있는 방법 아니겠냐’고 하더라고요.”

40분에서 1시간가량 되는 방송에 대본이나 리허설은 없다. 녹음에 들어가기 전 1시간가량 청취자가 보낸 영수증을 살피는 게 전부다. 광고가 많이 붙어 큰돈을 벌거나 출연료가 있는 것도 아니다. 팟캐스트는 김생민의 인생에서 또 다른 도전이자 “스스로 무대를 찾겠다”는 개그맨들의 도전이었다. 〈김생민의 영수증〉의 웃음 포인트는 뭐니 뭐니 해도 김생민이 영수증을 보며 ‘스뜌삣’을 외칠 때다. 잘못된 소비라고 지적하며 그렇게 판단한 이유를 말하곤 하는데, 목소리 톤에서부터 그가 얼마나 ‘정색’을 하고 있는지가 느껴진다.

“15년 전쯤이었나. 미국에서 자란 꼬마 조카들을 만나서 웃겨주려고 갖은 노력을 했는데 애들이 별 반응이 없더라고요. 그러다 우연히 미국식으로 발음을 엄청 굴려 ‘스뜌삣!’ 하고 소리를 질렀더니 애들이 꺄르르 웃는 거예요. 언젠가 쓸 날이 오겠지, 하면서 마음속에 간직해놨던 말이 스뜌삣이에요.”

대중가요를 개사해 ‘절약송’을 직접 부르기도 한다. 귀에 익은 멜로디에 ‘이천원 사천원 육천원 팔천원 만원 만이천원 이만원, 모두 저축해’ 하는 우스꽝스러운 가사를 붙이는 식이다. 김생민이 이렇게나 크리에이티브한 사람이었는지 새삼 느끼게 되는 대목이다.

“요즘 너무 살기가 팍팍하잖아요. 방송에선 ‘자신의 소비 생활이 얼마나 철없었는지 깨닫길  바란다’고 하지만, 사실 그게 〈김생민의 영수증〉의 주목적은 아니에요. ‘껌은 남이 줄 때만 먹는 거다’ ‘은행 커피를 테이크 아웃하라’고 하지만 어떻게 매번 그렇게 살아요(웃음). 힘든 현실을 잊고 편안하게 웃을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드리고 싶은 마음이 제일 크죠. 깔깔거리며 웃고 난 후 저와 작은 약속 하나만 하시면 돼요. 과소비하는 습관을 조금이라도 고쳐보겠다고요. 기억하세요. 결혼하면 진짜 달라져요. 그때를 위해 저축해야 해요.”

김생민은 지난 2006년 일곱 살 연하의 유지희 씨와 결혼했다. 결혼 생활 11년 차. 소문난 절약 왕이긴 하지만 아내의 지출과 저축까지 일일이 챙기진 않는단다. 혹시 가계부를 쓰냐고 묻자 “책상에 어떤 책이 꽂혀 있는지 전부 기억하는 사람처럼 어디에 돈을 썼는지 전부 머릿속에 들어 있다”며 웃는다. 그러면서 전부 기억하지 못한다면 딱 6개월만 가계부를 써보라고 권한다. 그러면 어디로 돈이 새고 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을 거라면서.

“첫째 태린이가 열한 살이 되고, 둘째 규하가 일곱 살이 되니 저도 고민이 생기더라고요. 학원을 보내자니 사교육비가 어마어마한데, 그렇다고 남들 다 하는 걸 안 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요. 아내와 주로 하는 얘기도 아이들 교육비 문제예요.”

김생민은 요즘 트렌드 중 하나인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를 줄인 말로 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고 소비하는 태도를 의미)’에 대해서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현재 자신의 행복을 우선순위에 두는 건 좋은 일이지만 그게 소비로 이어지는 건 김생민 입장에선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란다. 그러면서 “욜로까진 가지 말고 ‘현재를 즐겨라’라는 뜻의 카르페 디엠을 생활 신조로 삼으세요” 하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김생민의 영수증〉 6번째 방송을 들었다. 송은이와 김숙이 “요즘 김생민 씨 팬들이 많이 생겼다”며 축하 인사를 전하자 그는 팬클럽은 사절이라고 정중히 말한다. 그러고는 이렇게 답했다.

“저는 건조함의 아름다움이 좋아요. 팬클럽이 생겨서 팬들을 만나면 커피를 사야 하니까. 제 철학 중 하나가 ‘세상에 공짜는 없다’ ‘나에게 수익을 주는 것은 항상 의심해봐라’ ‘1년에 수익률 30%가 넘는다고 나를 꼬드기는 자는 따귀를 때려라’예요. 저는 한 번도 유명해진 적이 없기 때문에 팬클럽이 만들어진다는 것 자체가 의심스러워요(웃음). 건강한 의심이죠. 돈 안 드는 큰 사랑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사진
지호영 기자 디자인 최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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