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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실제 대치동 맘들은 제이미맘보다 정은에 가까워요”

대치동 제이미맘 실사판’ 드라마 ‘라이딩 인생’ 김철규 PD

김명희 기자

2025. 04. 04

드라마 ‘셀러브리티’로 인플루언서들의 세계를 조명한 김철규 PD가 이번에는 대치동 유아 사교육 현장을 드라마로 소환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대한민국 모든 부모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요즘 대한민국은 ‘K-조기 사교육’의 민낯을 보여주는 몇 가지 이슈들로 뜨겁다. 지난 2월 중순 방영된 KBS ‘추적 60분’에선 일곱 살 아이들이 강남 대치동 유명 어학원에 입학하기 위해 수능 영어에 가까운 시험을 치르는 일명 ‘7세 고시’가 다뤄졌다. 시험문제를 검토한 전문가들은 “지적 학대 수준”이라며 혀를 내둘렀지만 정작 강남에선 “일곱 살이면 늦다. 더 일찍 시작해야 한다”는 분위기다. 유아 사교육에 집착하는 강남 대치동 엄마를 풍자한 개그우먼 이수지의 유튜브 영상 ‘제이미맘 시리즈’는 공개 일주일 만에 800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영상 속 제이미맘은 실제로 강남 엄마들의 교복이라 불리는 명품 패딩과 보석을 휘감고, 외제 차로 아이를 학원에 실어 나른다. ‘쎄쎄쎄’ 놀이를 하면서 아이에게서 중국어의 ‘영재적 모먼트’를 발견했다며 학원에 등록하고, 미래에 있을지도 모를 수행평가에 대비한다며 제기차기 명인을 수소문해 과외 교사 면접을 본다.

3월 3일부터 ENA를 통해 방영되고 있는 지니TV 오리지널 드라마 ‘라이딩 인생’은 ‘7세 고시’, 제이미맘 영상과 높은 싱크로율을 보이며 화제가 되고 있다. A·B·C반으로 엄격하게 레벨이 나눠져 있는 영어학원, 명문 초등학교에 진학시키기 위해 사교육에 목숨 건 부모의 모습 등은 ‘대치동 실사판’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 드라마는 고선미 작가의 소설 ‘대치동으로 간 클레어할머니’를 원작으로 성윤아, 조원동 작가의 꼼꼼한 현실 고증을 통해 디테일을 입혔다. 작가들은 대치동, 압구정동, 반포동을 오가며 학원 관계자, 학부모, 심리치료사 등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여기에 ‘드라마의 장인’이라 불리는 김철규 PD의 연출로 완성도를 높였다. 김철규 PD는 서울대 영문과 출신으로 1994년 KBS에 공채 PD로 입사해 KBS 드라마 ‘황진이’ ‘꽃보다 아름다워’ ‘공항 가는 길’, tvN 드라마 ‘시카고 타자기’ ‘마더’ ‘자백’ ‘악의 꽃’ 등 다양한 장르와 주제를 다루며 작품마다 깊이 있는 스토리텔링을 보여줬다. 넷플릭스 드라마 ‘셀러브리티’를 통해서는 팔로어 수에 목숨 거는 신흥 귀족, 인플루언서들의 화려한 삶과 그 이면을 다뤄 주목받았다. ‘라이딩 인생’은 ‘셀러브리티’를 잇는 김철규 PD의 현실 연작이라고도 볼 수 있다. 김 PD를 만나 ‘라이딩 인생’의 연출 스토리와 드라마가 비추는 현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대치동 사교육 모르는 사람은 “충격”, 아는 사람은 “리얼하다” 반응

‘라이딩 인생’ 대본을 처음 봤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나. ‘이 작품의 연출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가 있나.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의 유치원생들이 토플 문제집을 막힘없이 풀고, 영국의 왕 조지 6세의 연설문을 낭독하고, 니체의 철학을 원어민과 영어로 토론하는 모습에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됐다. 어느 일류 대학의 강의실에서나 볼 법한 장면을 강남의 유치원생을 대상으로 하는 학원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 ‘우리 사회의 이런 현실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 이 드라마의 출발점이다.

드라마 방영 이후 주변의 반응은 어떤가.

대치동 사교육 현실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충격적”이라는 반응이 대세고, 대치동에 사는 사람들로부터는 “리얼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직접 대치동의 학원들을 다니면서 현장 취재를 했다고 들었다.

영어 수업을 참관해봤다. 학원 안에선 우리말을 못 쓰게 돼 있어서 아이들이 전부 영어로만 소통을 하더라. 일반 영어유치원에서는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말할 때 또박또박, 다독여가면서 얘기를 하는데 영어학원에선 그런 게 없었다. 원어민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어른과 대화하듯 거침없이 유창하게 이야기하고, 아이들이 그걸 또 다 알아듣고 손들고 질문하고 하는 데 정말 놀랐다. 아이들 레벨을 나눠 수준별로 수업을 하고, 각 반의 수업 분위기가 다른 점도 흥미로웠다.

PD님도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는데, 대치동의 영어 학습법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우리 세대는 중학교에 입학해서야 알파벳을 배웠고, 원어민과 말을 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대치동에서 촬영하면서 보니 거리에서도 영어로 대화하는 꼬마들이 꽤 많았다. 나는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아이들의 스피킹 수준만 놓고 보면 그 당시 대학생들 이상인 것 같다.

드라마에서 대치동을 배경으로 수많은 인물과 풍경이 그려지는데, 연출할 때 가장 중점을 둔 점이 있다면.

가능하면 현실 상황을 왜곡이나 과장 없이 있는 그대로 담아내고자 했다. 우리 주변에서 실제로 매일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로 느껴질 수 있게끔 현실감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메인 공간인 학원가를 세트에 의존하지 않고 거의 실제 대치동 학원과 그 인근 장소에서 현장 로케이션으로 소화했다.

그동안 연출한 작품들과 ‘라이딩 인생’의 차별점은 무엇인가.

‘라이딩 인생’은 장르나 소재상의 차별점보다는 전체 이야기의 호흡이 기존 작품들보다 상대적으로 짧다. 그래서 내러티브와 감정의 발단, 상승, 전환, 마무리의 과정을 빠른 템포로 진행해야 하는 점이 가장 큰 어려움이자 차이점이었다. 강렬한 사건 중심의 드라마가 아니고 인물들의 감정이 쌓이고 충돌하고, 그 감정들이 서로 감응하는 힘으로 이끌어가는 이야기를 8가지의 에피소드에 담아내기에는 아무래도 촉박하고 급한 느낌이 드는 게 사실이다. 때문에 인물들의 감정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이야기의 템포를 유연하게 조절하는 데 특히 신경을 썼다.

드라마는 지난 2023년 남편 이선균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후 활동을 중단했던 배우 전혜진의 컴백작이라는 점에서도 화제를 모았다. 극 중 전혜진이 연기하는 이정은은 아이 성적순으로 엄마들의 서열이 매겨지는 교육 판에서 시간에 쫓기고 정보도 달리지만 어떻게든 아이가 빅파커학원 A반-명성초 코스에 올라타게 하려는 워킹맘이다. 갑자기 그만둔 시터를 대신해 학원 라이딩까지 해야 하는 처지지만 바쁜 시간을 쪼개 스피치 대회 족보를 구하고, 명성초 입학에 필요한 책을 구매하기 위해 오픈런을 마다하지 않는다. 사립초등학교 입학 추첨을 앞두고 점집을 찾는가 하면 무속인의 조언에 따라 ‘기도 산행’을 하고, 추첨 당일에는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빨간색 아이템을 장착한 채 학교에 간다. 극을 위해 창조한 인물이라 극단적으로 표현된 부분이 있긴 하지만 아이 교육 문제를 두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갈등하는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드라마를 집필한 성윤아 작가는 “실제로 마주한 대치동 엄마들은 제이미맘보다는 정은의 모습에 더 가까웠다”고 말했다. 실제 맘 카페에도 “정은 캐릭터에 공감이 간다”는 이야기가 많다.

라이딩 인생’은 사교육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워킹맘과 가족의 이야기를 현실감 있게 다뤄 호평 받고 있다.

라이딩 인생’은 사교육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워킹맘과 가족의 이야기를 현실감 있게 다뤄 호평 받고 있다.

“전혜진은 카리스마와 유연함 모두 갖춘 보기 드문 배우”

1회에서 전혜진 배우가 학원에 늦지 않으려고 딸을 안고 대치동 언덕길을 달려가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하이힐을 벗고 차에 싣고 다니던 운동화로 갈아 신는 디테일에도 공감이 갔다.

우리 드라마의 많은 부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 연출적으로도 고민을 많이 했던 신이다. 드라마를 보면 전혜진 배우가 달리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고군분투하는 워킹맘의 모습을 그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많이 뛰게 했다. 다행스럽게도 배우가 체력이 좋아서 많이 힘들어하진 않았다(웃음).

정은 역은 처음부터 전혜진 배우를 염두에 두고 캐스팅을 진행한 건가.

그렇다. 다른 배우는 아예 접촉하지 않았다. 대부분 배우 본인의 색깔이 너무 강하면 생활감이 부족하고, 반대로 생활감에 충실하다 보면 본인만의 존재감이나 색깔이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전혜진 씨는 그런 2가지 측면을 모두 가진 배우다. 힘과 유연성이라고 달리 말할 수 있을 텐데, 중요한 고비마다 힘으로 이야기의 흐름을 단번에 전환하기도 하고, 때로는 유연함으로 답답한 정체 상황에서 숨통을 열어주기도 한다. 전혜진 배우로선 컴백을 결정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전작인 ‘남남’을 함께했던 제작사와의 신뢰 관계 덕분에 캐스팅이 성사됐다.

아역 배우들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아이들이 처한 교육 현실이 더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역 배우들을 캐스팅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 아이가 정말 ‘아이 같은가?’이다. 아역 배우들은 너무 어린 나이에 연기를 배우다 보니 본인도 모르게 인위적인 몸짓과 억양, 말투를 만들어내는 걸 연기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습관이 굳어지면 잘 고쳐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번에도 연기 경험은 없지만 가능성이 보이는 친구들을 캐스팅했다. 서윤 역할을 맡은 김사랑은 그런 면에서 단연 돋보이는 배우다. 아역 오디션을 할 때 사랑이를 발견하고서 안도감이 들었다. 사랑이는 연기 경험은 전혀 없지만 각각의 상황에 대한 판단력과 이해력이 뛰어나다. 그에 기반한 표현력 또한 탁월해 어떤 장면도 훌륭하게 소화해줘서 같이 작업한 모든 배우와 스태프가 감탄할 정도였다.

아역 배우도 실제로 영어를 잘하는 아이들을 뽑은 건가.

드라마 속 아이들과 실제 우리 배우들은 많이 다르다. 특히 사랑이와 태린(극 중 배역도 태린)이는 알파벳도 모르는 친구들이다. 영어 대사 분량이 많고, 특히 4회에는 스피치 대회 장면도 있는데 사실은 모두 한글로 써 외워서 연기했다. 의미를 모르고 대사를 외우는 건 알고 외우는 것보다 10배는 어려운데 아이들이 그 어려운 걸 해낸 거다.

교육 위해 고군분투하는 가족들의 ‘회복’ 이야기

‘라이딩 인생’은 과거와는 달라진 가족의 모습을 그리는 점에서 여느 드라마들보다 한발 앞서 있다. 정은의 남편 홍재만(전석호)은 아내와 딸이 인생의 1순위인 가장이다. 제삿날에는 반차 내고 본가로 가 아내 몫까지 일하고, 시어머니의 잔소리로부터 든든한 바람막이가 돼준다. 끼니를 놓친 아내에겐 “김밥 같은 걸로 대충 때우지 말고 제일 비싸고 좋은 걸 먹으라”며 감동을 안긴다. 그런가 하면 배우 조민수가 연기하는 정은의 엄마 윤지아는 자녀도 중요하지만 아동미술치료사라는 자신의 일도 중시하는 커리어 우먼이다. 정은의 부탁으로 마지못해 라이딩 세계에 뛰어든 지아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서윤을 케어하며 대치동 엄마들 사이에서 새로운 분위기를 형성한다.

드라마 ‘라이딩 인생’은 사교육이 옳고 그른가에 관한 정답을 제공하진 않는다. ‘추적 60분’의 사회 고발과 제이미맘의 풍자 사이 절묘한 지점에서 공감과 생각할 거리를 준다. 김철규 PD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살벌한 사교육 현장에 던져진 천진무구한 아이와 자녀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돼 있는 부모, 두 세대를 키워낸 조부모가 그 고단하고 요란한 과정을 거치면서 그동안 잊고 있던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고, 보는 이들을 빙긋이 미소 짓게 만드는 따뜻함과 소박한 유머가 넘치는 드라마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극 중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엄마 아빠 놀이를 하는데, 아빠가 엄마에게 매일 혼나는 장면이 나온다. 격하게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더라. 예전 남편들이 가부장적이었던 데 반해 요즘 남편들은 굉장히 가정적인데, 그런 점들이 드라마에 잘 반영됐다.

재만을 보면서 ‘나도 젊을 때 좀 더 잘할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변명 같지만 우리 세대는 너무 바빠서 가족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나만 해도 드라마를 만들다 보면 한 달씩 집에 들어가지 못할 때도 있었다. 아내가 옷을 회사로 싸 가지고 왔다. 대부분의 PD가 그랬다.

30년간 많은 드라마를 만들었는데, 특히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

2006년 방영됐던 ‘황진이’다. 고생을 많이 한 작품이라 오래 기억에 남는 것 같다. 한겨울이었던 데다 제작 일정이 빠듯했고 몹(군중) 신도 많았다. 보조 출연자 수백 명을 동원해 대규모 연회 장면을 촬영해야 하는데 사전 준비가 하나도 안 돼 있었던 적도 있다. 하루에 20시간 가까이 촬영하느라 황진이 역을 맡은 하지원 씨는 거의 가채를 쓰고 지내야 했을 정도로 고생했다. 지금은 이 세상에 안 계신 김영애, 전미선 배우와 함께했던 작품이라 더 애틋하다.

‘셀러브리티’나 ‘라이딩 인생’은 한국의 현실을 반영한 트렌디한 드라마다. 젊은 감각을 유지하는 비결은.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웃음). 드라마를 만드는 현장의 분위기, 제작 시스템뿐 아니라 작품을 받아들이는 대중의 감수성도 시시각각 달라지기 때문에 잠깐 한눈팔면 금방 올드해진다. 조금 게으름 피우고 하던 대로 하다 보면 꼰대가 되기 십상이다. 내 경우엔 새로 나오는 작품들을 계속 보고 젊은 친구들은 뭘 좋아하는지, 어떻게 생각하는지 주의 깊게 살핀다. 새로운 문화나 트렌드, 기술에 대해 좋고 나쁘고 가치 판단을 하기보다 일단 받아들이고 시도해보는 편이다.

‘추적 60분’의 ‘7세 고시’ 편에 나온 한 학부모가 “우리도 불안하기 때문에 학원이라는 기둥을 잡고 있는 상황이긴 한데, 다들 너무 달리는 분위기다 보니까 겁이 난다”라는 인터뷰를 했다. 대한민국 학부모들이 모두 비슷한 마음일 텐데, ‘라이딩 인생’을 통해 전하고자 한 메시지가 있다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치열한 강남 사교육을 보면서 착잡하기도 하고 여러 생각이 많이 들었다. 우리 사회가 이 문제에 대해 한 번쯤 다 같이 고민해봐야 할 시기가 온 것 같다.

#라이딩인생 #제이미맘 #전혜진 #여성동아

‌사진 조영철 기자 사진제공 스튜디오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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