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렉스 퍼거슨 경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 시절 남긴 명언이다. 2011년 당시 소속 팀 공격수 웨인 루니가 X(옛 트위터)에서 팬과 논쟁을 벌이자 퍼거슨 전 감독은 기자회견을 통해 “SNS는 시간 낭비다. 살면서 할 수 있는 일이 수백만 가지다. 차라리 책을 읽어라”라고 충고했다. 그로부터 10년이 훌쩍 넘게 흐른 지금, 자라나는 새싹들의 인생 낭비를 막기 위한 바람이 전 세계적으로 거세다. 호주는 지난해 11월 부모의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16세 미만 아동·청소년의 SNS 이용을 전면 금지하는 법을 세계 최초로 통과시켰다. 1월부터 시범 운영에 들어갔고 11월부터 정식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노르웨이와 프랑스, 독일은 각각 13세, 15세, 16세 미만을 대상으로 부모 동의가 없으면 SNS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미국 플로리다주에서는 14세 미만의 SNS 사용 금지 법안을 추진 중이다.
‘좋아요’ 숫자 때문에 우울해하는 아이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아동·청소년들의 SNS로 인한 문제들이 불거지고 있다. 올 1월에는 중고등학교 여자 동창들의 SNS 사진으로 딥페이크 성 착취물을 제작한 10대가 검찰에 넘겨졌다. SNS를 통해 집단적으로 괴롭히는 ‘카카오톡 감옥’과 사이버불링도 여전히 문제다. 그럼에도 SNS 이용 제한 관련 법안들이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오히려 이용 시간이나 가입 연령에 제한을 두는 규제가 아동·청소년들의 권리를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반대 의견도 나오는 상황.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씹어야 한다. 조현섭 총신대 중독상담학과 교수에게 가정에서 SNS에 과의존하는 아이를 도울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물었다. 35년간 다양한 중독 분야를 파고든 조현섭 교수는 “IT 강국인 한국의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스마트폰을 가지고 논다. 어릴수록 스마트폰에 더 빠져들기 쉽다. 지금이라도 강력한 규제에 들어가야 한다”며 “외국처럼 큰 사건이 드러나지 않았을 뿐 SNS로 인생을 망쳐가는 아이들이 생기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일단 스마트폰과 SNS는 중독이 아닌 ‘과의존’으로 명명하는데, 그 이유가 있나요.
세계적인 진단 정신과 단체 기준에 따라 현재는 알코올과 마약, 도박만 중독으로 분류해요. 그 외는 개념적으로 정의 내릴 근거가 매뉴얼에 없어요. 인터넷과 스마트폰, SNS를 과의존으로 부르는 건 우리나라에서 정한 거예요. 일부에서는 과의존이 아닌 중독으로 불러야 한다고도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반대해요. 스마트폰이나 게임, 인터넷은 진행 과정이 알코올이나 마약과 달라요. 알코올과 마약은 평생 간다고 봐도 지나치지 않은데 그 외는 학창 시절에 빠져 지내더라도 어른이 되어 덜하거나 안 하는 게 가능하거든요.
그나마 희망적으로 들리네요.
특히 인터넷이나 게임, 스마트폰 위험군은 지금 청소년 비율이 굉장히 높아요. 40%가 넘는 이 아이들을 전부 중독자라고 명명해버리면, 나중에 성인이 되어 안 할 수도 있는데 주홍 글씨가 새겨지게 되잖아요. 그리고 중독으로 진단을 받으면 정신병원에 입원해 약을 복용하고 치료를 받습니다. 현재 스마트폰 과의존을 받아줄 병원도 없고 쓸 약물도 없어요. 중요한 건 아이들이 왜 빠져들었는지 그 원인을 파악해 일상생활을 잘할 수 있게 방안을 강구하는 거죠.
그럼 과의존이란 어느 정도를 말하는 건가요.
일상에서 눈만 뜨면 하고 싶어 하는 상태죠. 스스로 통제해보려고 했으나 잘 되지 않고, 일상생활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를 말해요. 예를 들어 밤새 스마트폰을 하다가 늦게 일어나 학교에 지각하고, 부모와의 갈등이 생기고요. 거북 목이나 팔목 통증 같은 신체적 문제, 우울증·불안장애 등의 정신적 문제도 보입니다. 특히 청소년은 지능 발달이 안 되고 또래 관계에도 문제가 발생해요.
요즘은 특히 SNS 과의존이 세계적으로 문제예요. 왜일까요.
일단 대부분의 사람이 SNS를 하잖아요. 그런 곳에 자신의 생활을 공개할 때는 보통 가장 자랑하고 싶은 부분만 골라 올려요. 전시된 남의 사생활을 부러워하다 보면 자기도 멋진 사진을 올리기 위해 무리를 하게 돼요. 여행도 가고 맛집도 찾아다니고 좋은 옷도 사 입어요. 그렇게 해서 받은 ‘좋아요’ 수에 따라 자신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 수가 줄어들면 ‘나는 인기가 없나 봐’ 하면서 우울해지기도 하고요. 이게 다 시간과 비용 낭비예요.
하긴 반응을 실시간으로 체크해야 하니까, 하다 보면 시간이 ‘순삭’됩니다.
내 SNS도 살펴야 하지만 나도 다른 사람에게 피드백을 바로바로 해줘야 하잖아요. 그러다 보면 아이들이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어요. 이 비생산적인 일에 아이들의 기분이 오락가락하고 때로는 상처를 받는 걸 보면 안타까워요. 저는 SNS에 제 생활을 공개하지 않아요. 딸들에게도 일상을 다 공개하지 말고 다른 친구들 생활을 궁금해하지도 말라고 조언합니다.
유튜브나 틱톡 등에서 알고리즘을 타고 유해 콘텐츠로 빠질 수도 있잖아요.
아이들이 실제로 SNS를 통해 유해 콘텐츠를 많이 접합니다. 심지어 유해 콘텐츠를 친구들에게 퍼 나르기도 해요. 그런데 더 큰 문제는 SNS의 특성상 내가 어떤 관심 있는 주제를 자주 검색하면 AI가 성향 분석을 해 일종의 토끼 굴을 형성한다는 점이에요. 숏폼을 한번 보기 시작하면, 내가 보고 싶고 듣고 싶은 정보들이 끝도 없이 이어져요. 다른 걸 선택할 여지가 없으니 결국 사고의 편협성으로도 이어집니다.
가짜 뉴스를 믿는 사람이 그렇게 생기는 거군요.
그게 일종의 가스라이팅이에요. 어떤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으면 거기에 대한 확신이 생겨요. 그 정보를 의심하지 않는 건 굉장히 위험합니다. 저는 학생들이 과제를 해올 때 유튜브를 볼 거면 아무나 만든 콘텐츠 말고 전문가로 인정받은 사람이 제작한 영상만 참고하라고 규칙을 정해줬어요. 검증되지 않은 자극적인 영상들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 문제가 심각해요.
방에서 고립된 아이, 거실에서 SNS 하도록

SNS 청소년 사용 제한, 학교 내 사용 금지 조치 등이 세계적인 추세인 가운데 인스타그램이 10대 계정을 비공개로 전환했다.
실제로 요즘 아이들은 대면보다 비대면에 익숙하다. ‘전화 포비아’를 겪는 경우도 늘고 있다. 실시간으로 대화를 주고받는 게 힘든 정도를 넘어 전화가 오는 것 자체에 두려움을 느낀다. 그렇게 문자메시지로 대화하는 게 더 편한 아이들은 나중에는 온라인 세상을 벗어나질 못하게 된다. 조금씩이라도 가족 및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함께 오프라인 활동을 하는 시간을 갖도록 도와줘야 한다.
왜 청소년들이 SNS에 더 빠져드는 걸까요.
일단 스마트폰을 가장 잘 작동할 줄 알잖아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콘텐츠가 많고요. 무엇보다 아이들은 의사소통을 직접 대면해서 하는 것보다 카카오톡이나 인스타그램 DM으로 주고받는 걸 더 선호해요. 또래 관계가 잘 유지되지 않는 아이들은 더하죠. 그러다 보면 또 관계 형성을 안 하게 되고, 결국 대인관계를 맺을 줄 모르는 성인이 되는 거예요. 지난해 고립된 이들을 위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진행한 ‘문화로 사회연대’ 사업에 참여하면서 “사람을 만나면 처음에 무슨 얘기를 해야 하느냐”고 묻는 청년들을 많이 만났어요. 방에만 있으면 우울증 같은 정신과적 문제가 생깁니다. 판단력도 흐려져요.
하지만 SNS를 하지 못하게 하면 대부분의 아이가 “나만 안 할 수가 없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오히려 SNS를 해야 친구들이랑 잘 지낸다는 거예요.
상담을 하다 보면, 아이가 친구랑 약속했기 때문에 게임을 하고 화상 대화를 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럼 전 그 친구들과 상의해서 몇 시부터 몇 시까지만 하라고 일러줘요. 일단 할 일을 한 후 다시 약속 시간에 만나 카톡을 주고받든 게임을 하든 하라고요. 부모들도 이 정도는 이해해줘야 해요. 또 친한 친구들과 오프라인에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고, 노는 방법도 알려주세요. 아이도 스트레스는 풀어야죠.
아이가 과의존이 심하다고 느껴진다면 무엇부터 도와줘야 할까요.
바구니를 거실에 놓고 부모부터 스마트폰을 거기에 넣으세요. 스마트폰을 하려면 바구니에서 꺼내 거실에서 하는 거예요. 대신 부모가 생각하기에 너무 긴 시간을 하더라도 바로 통제하지 마세요. 그러면 불만을 가진 아이가 아예 방에 들어가겠다고 합니다. 이게 잘 지켜지면 주중에는 하지 않고 주말에 하루 날 잡아 몰아서 하는 패턴으로 나아가면 더 좋아요. 매일 1시간씩 7일을 하는 게 토요일에 7시간을 몰아서 하는 것보다 중독성이 더 높거든요. 그런데 주말에 연달아 7시간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줘도 아이가 그렇게는 못 해요(웃음).
SNS 과의존을 막는 데 부모의 역할이 꽤 중요하네요.
부모가 아이에 대해 확신이 있으면 아이가 스마트폰 좀 더 해도 화가 나지 않고 아이와 싸울 일이 없어요. 오히려 아이가 하는 걸 보여달라고 해서 같이 웃고 즐길 수 있죠. 부모가 아이와 친밀한 게 정말 중요해요. 한편에는 스마트폰 자체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또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해 혼자 게임하고 SNS를 할 수밖에 없는 아이도 있어요. 아이의 발달 과정에서 사회성이 부족했는데 부모가 미처 몰랐던 거죠.
그런데 집에서 이런 노력을 해봤자 아이는 밖에서 스마트폰을 하잖아요. 학교, 학원, 플랫폼이 다 참여해야 할 문제 같아요.
그러면 더 효과가 확실해지죠. 적어도 학교에서는 스마트폰을 못 하게 해야 합니다. 이번에 인스타그램에서 청소년 계정을 비공개로 운영하기로 했잖아요. 제가 예전부터 적극적으로 주장한 부분이에요. 저는 모든 권한을 아이에게 다 주는 게 아니라, 제한을 두더라도 아이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렇게 하는 편이 진짜 인권을 보호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나와 가족 모두를 괴롭히는 중독

조현섭 교수 연구실에는 전국 알코올상담센터 기술지원단장, 국제중독기구인 콜롬보플랜 ICCE 이사, 시립 강서인터넷중독예방상담센터장 등을 거치며 받은 표창장들이 가득하다.
일하면서, 가족 중에 중독자가 있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자주 받아요. 왜냐면 중독이 다소 험악할 수 있는 분야인데 제가 오랫동안 하니 필히 사연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웃음). 제가 대학원 졸업 후 상담 전문가로 들어간 병원에 중독자가 많았어요. 그런데 알코올 중독자나 마약 중독자는 입원해서 며칠 지나면 좀 대화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상담을 할 수 있겠다 싶어 시작하게 됐어요.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다면요.
중독은 알면 알수록 무서워요. 가족한테 미치는 영향도 정말 큽니다. 예전에 어떤 아주머니가 귀에 붕대를 감고 상담을 하러 온 거예요. 알고 보니 알코올 중독자 남편이 던진 칼에 다친 거라고 해서 그때 정말 충격을 받았어요. 그래도 다행인 건, 중독자의 가족들은 제가 이야기를 들어만 줘도 위로를 받아요. 그런 부분에서 보람을 느끼고 ‘내가 꼭 해야 할 일이구나’ 생각해서 하다 보니까 여기까지 온 거예요.
이력을 보니 정말 다양한 국가의 중독 예방 및 치료 사업에 참여해오셨는데요.
초반에는 지구촌 전 지역의 알코올 상담 센터 만드는 일을 했어요. 사행성 도박 게임 ‘바다 이야기’가 사회 문제로 떠오른 당시에는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1대 센터장으로서 도박 중독 관련 일을 했죠. 그 이후로 미디어 중독과 마약 문제가 심각해져 이에 도움이 되고자 관련 활동을 하고 있어요. 중독은 정말 만성적인 문제예요. 애초에 중독이 되지 않을 선까지만 하는 게 좋아요.
SNS도 그렇잖아요. 사용해보면 정보 공유, 인맥 확장 등 긍정적인 부분도 분명 있는데 ‘적당히’의 균형을 잡기가 쉽지 않아요.
청소년 아이들은 발달상 균형 잡기가 특히 어려워요. 부모가 아이와 충분히 대화해 의견을 제시해주고 조율해주는 역할을 곁에서 해야 해요. 한번은 어느 분이 아들과 여행 가는 게 소원이라 하더라고요. 제가 아들을 데리고 가되, 가는 동안 게임을 해도 놔두고 방에 있겠다고 하면 나머지 가족만 놀다 오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아이가 다음 날은 따라나서더래요. 아이를 변화시키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무조건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에요(웃음).
#중독 #SNS #조현섭 #여성동아
사진 지호영 기자 게티이미지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