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클라라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에르메스 히말라야 악어가죽 ’버킨 백’을 공개했다.
악어가죽을 비롯해 파이톤(뱀 가죽), 타조 가죽 등 특수 피혁(exotic leather)은 오래전부터 하이엔드의 하이엔드로 불려왔다. ‘expectional piece’ ‘precious skin’ ‘special leather’ 등 표현은 제각각이지만 공통적으로 특수 피혁을 가리킨다. ‘가죽 사전(leather dictionary)’에 따르면 특수 피혁은 육류 및 유제품 소비를 위해 사육되는 동물이 아닌 동물에서 나온 가죽을 일컫는다. 부산물로 만들어지는 가죽이 아니라 오로지 가죽만을 위해 길러지거나 사냥된 동물의 것을 뜻한다. 에르메스는 2020년 11월 호주 북부 다윈 지역에 최대 5만 마리의 악어를 사육할 수 있는 대규모 악어 농장을 조성했다.
에르메스뿐만 아니라 루이비통, 셀린느 등 초고가 하이엔드 브랜드는 특수 피혁 제품을 제품군의 최상위급으로 선보인다. 물왕도마뱀 가죽으로 만든 셀린느의 ‘틴 트리옹프 백’은 공식 홈페이지에서 1180만 원에 판매되고 있다. 루이비통은 ‘진귀한 크로커다일 가죽’이라는 설명과 함께 카퓌신 미니 백의 가격을 3110만 원으로 산정했다. 특수 피혁은 뻔한(!) 소가죽과는 달리 독특한 촉감과 제각기 다른 패턴, 형태로 럭셔리 소비자들을 매혹했다. 개중 대다수는 돈만 있다고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브랜드의 충성고객임을 입증해야 웨이팅 리스트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것은 물론, 수년을 기다려야만 구매할 수 있다. 실제 하이엔드 브랜드의 공식 홈페이지에서도 특수 피혁 가방은 여타 제품들과 달리 클라이언트 서비스 문의를 통해서만 구매 가능하다고 안내하고 있다.
패션업계에서 퇴출되는 특수 피혁
동물보호 단체 페타 아시아지부가 공개한 악어 도살 과정.
국내에서도 한국동물보호연합이 2024년 8월 서울 강남구 신사동 에르메스 매장 앞에서 악어 도축 과정에 관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당시 한국동물보호연합 측은 “살아 있는 악어의 코를 잡아 누른 후, 머리 뒤통수 부분을 자르고 칼을 집어넣어 척추를 꼬리 밑부분까지 쭉 밀어 내린 다음, 생가죽을 벗긴다”며 “최상의 가죽을 얻기 위해 피부가 손상되지 않도록 움직임을 극도로 제한하며, 악어는 앞뒤로 몸의 방향을 바꾸는 것조차 힘든 좁은 철창 속 감금 틀에 갇힌 채 사육된다”고 밝혔다.
패션업계 내부에서도 자정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샤넬은 2018년 명품 업계 최초로 뱀·악어·도마뱀 등 파충류의 가죽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브루노 파블로프스키 샤넬 패션부문 사장은 당시 “(우리의) 윤리에 부합하는 동물 가죽의 수급이 어려워 추후 제품에 더 이상 희귀 동물의 가죽을 쓰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질샌더, 멀버리, 비비안웨스트우드에 이어 2024년 5월 마크제이콥스도 이 행렬에 합류했다.
나아가 코펜하겐패션위크는 지속 가능한 패션을 위해 2022년 모피를 금지한 데 이어 2024년 3월부터 특수 피혁 및 깃털 사용을 제재했다. 최종적으로 2025년부터 가죽이나 모피가 포함된 컬렉션을 코펜하겐패션위크 런웨이에서 볼 수 없을 예정이다. 런던패션위크도 2018년 세계 4대 패션위크 가운데 최초로 모피 사용을 제한했으며 2025년부터 특수 피혁 사용도 금지한다. 장기적으로는 야생동물 깃털 사용 금지도 검토할 계획이다.
악어 대신 버섯, 선인장, 대마
발렌시아가의 ‘루나홈 맥시 베스로만 코트’.
구찌, 발렌시아가, 보테가베네타, 생로랑 등 최고급 브랜드를 거느린 프랑스 명품 패션 그룹 케링은 지난 2022년 대체 가죽 제조 스타트업 ‘비트로랩스’에 대한 대규모 투자에 참여했다. 회사 측에 따르면 세계 최초로 동물 가죽 조직을 복제해 세포배양 가죽 시험 생산에 들어갔으며, 샘플링된 동물의 세포는 단 몇 주 만에 동물 가죽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케링그룹 산하 명품 브랜드들도 자체적으로 신소재 개발에 힘쓰고 있다. 구찌는 2021년 럭셔리 신소재 ‘데메트라’를 선보였다. 이는 동물성 원료를 사용하지 않고 재생 가능한 바이오 자원에서 유래한 소재다. 초기에는 이를 스니커즈 등에만 활용했지만 2023년 하우스의 상징인 ‘홀스빗 1955’ 가방에도 적용했다. 발렌시아가는 바이오 소재 전문 스타트업 ‘고젠’과의 협업을 통해 지속 가능한 신소재 ‘루나폼’을 개발했다. 전체 생산 과정에 동물성이 포함되지 않은 비건 소재다. 발렌시아가는 2024년 여름 컬렉션으로 루나폼 레더를 활용한 ‘루나폼 맥시 배스로브 코트’를 처음으로 선보였다. 보통의 동물 가죽과 유사한 질감을 구사하는 가운데 두께 등을 맞춤으로 설정할 수 있으며, 내구성이 보다 뛰어난 편이다. 샤넬은 2019년부터 액세서리 부문에 파인애플 잎으로 만든 가죽 대체재 ‘피나텍스’를 활용하고 있다. 에르메스 역시 2021년 미국 바이오테크 기업 마이코웍스와 협업해 버섯 균사체를 가죽처럼 가공한 소재 ‘실바니아’를 선보였다.
데메트라 소재로 만든 구찌 ‘홀스빗 1955’ 가방.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물 가죽, 특히 특수 피혁에 대한 지속 가능한 대안 마련 목소리는 점차 높아지고 있다. 패션업계뿐만 아니라 럭셔리 자동차업계 역시 대체 가죽을 개발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벤틀리는 콘셉트 카 EXP 100의 내장재로 와인 생산 과정에서 폐기되는 포도 껍질을 이용한 비건 가죽을 선택했다. 폭스바겐은 지난해 9월 독일 스타트업 리볼텍과 협업해 산업용 대마를 이용한 비건 가죽을 자체 개발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대체 가죽 시장 또한 빠르게 성장할 전망이다. 영국 시장조사 기업 아이디테크엑스는 지난해 9월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비건 바이오 기반 가죽 시장의 2024∼2034년 연평균 성장률을 37.4%로 내다봤다. ‘레자’로 불리며 천대받던 인조가죽이 럭셔리 업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특수피혁 #비건레더 #여성동아
사진출처 에르메스 셀린 구찌 클라라 인스타그램 PETA 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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