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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로봇 경구 갑상선 수술 1800례 돌파, 김훈엽 고려대 안암병원 교수

“흉터·통증·목소리 변화·재발 우려 적은 혁신적 수술법”

김명희 기자

2024. 11. 25

로봇 팔을 입안으로 넣어 암 조직을 떼어내는 경구 로봇 갑상선 수술은 흉터와 부작용이 적고 치료 기간도 짧은 혁신적인 수술법이다.
이 수술의 창안자이자 집도 2000건을 앞두고 있는 김훈엽 고려대 안암병원 유방내분비외과 교수를 만났다. 

보건복지부와 중앙암등록본부가 발표한 암 등록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2021년 암 진단을 받은 환자는 27만7523명이다. 가장 많은 환자가 발생한 암 종류는 갑상선암으로, 전체 암 환자의 12.7%(3만5303명)나 된다. 남성 환자(8771명)에 비해 여성 환자(2만6532명)가 3배가량 많은 점도 눈에 띈다.

갑상선에 생긴 결절(혹)은 양성과 악성으로 나뉘는데, 전체의 5~10%에 해당하는 악성 결절이 암이다. 증상을 느껴 병원을 찾는 사람은 많지 않고 대부분 건강검진을 통해 암을 발견한다. 갑상선암은 진행이 느리고 예후가 좋아 흔히 ‘거북이 암’ ‘착한 암’ 등으로 불린다. 암 등록 통계에 의하면 2017~2021년 사이 조사된 갑상선암의 5년 상대생존율(해당 암을 치료받은 지 5년 이내 생존 확률)은 암이 갑상선에 국한되어 있고 림프절을 침범하지 않았을 경우 100.7%로, 생명에 거의 지장이 없다. 하지만 암이 원발 부위인 갑상선에서 멀리 떨어진 뼈와 주요 장기로 원격 전이 됐을 경우 5년 상대생존율은 61.4%까지 떨어진다. 지난해 방영된 드라마 ‘닥터 차정숙’에선 시어머니 곽애심(박준금)이 갑상선암에 걸리자 가족들이 “가장 치료가 쉽고 간단한 수술이다” “별거 아니다. 입원도 3~4일 하나?”라고 가볍게 넘겼다가 시청자들의 비난 여론에 맞닥뜨리기도 했다. 지난 5월 갑상선암 수술을 받은 배우 장근석은 얼마 전 유튜브에서 “갑상선암을 착한 암, 가벼운 암이라고 하는데 맞는 말일 수도 있고 틀린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당사자에게는 ‘암’이라는 단어가 주는 공포감이 상당하다. 못 받아들인다”고 말하기도 했다.

갑상선암 ‘거북이 암’ 맞지만 고령 환자는 위험

김훈엽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유방내분비외과 교수는 “우리나라 갑상선암 환자의 97~98%(갑상선 유두암 95%, 갑상선 여포암 2~3%)는 진행이 느린 분화 갑상선암이고, 그런 의미에서 ‘착한 암’이 맞다. 하지만 갑상선 유두암이나 갑상선 여포암이 아니라 갑상선 수질암, 갑상선에 생기는 림프종 또는 혈액암도 있을 수 있다. 또 갑상선 유두암이나 갑상선 여포암도 아주 오래되다 보면 분화도가 어느 순간 갑자기 나빠지는 경우(역행성 변화)도 생긴다. 역행성 변화는 주로 고령의 면역력이 떨어지는 환자에게서 발생하는데, 이 경우는 예후가 좋지 않아 환자에게는 사망 선고와 다름없다”고 말한다. 고(故) 윌리엄 렌퀴스트 미국 연방대법원장도 갑상선 유두암 진단을 받았으나 수술을 미루다가 70대 후반에 역행성 변화가 진행돼 1년 만에 갑자기 사망한 케이스다.

김 교수는 오랫동안 갑상선암 환자를 치료해온 경험에 비추어 크기가 작아도 위치가 안 좋거나 주변에 다른 안 좋은 소견이 있는 경우, 기대여명이 긴 젊은 환자의 경우 수술을 추천한다. 암이 작고 전이도 없을 때 반절제 수술을 하면 따로 항암 치료를 할 필요가 없고, 갑상선 호르몬제도 초반에만 복용하면 된다. 갑상선 주변에는 식도, 기도, 림프절, 후두 신경 등 중요한 구조물이 많은데, 암을 키울 경우 이런 주변 기관들을 침범할 우려도 있다. 김 교수는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사실은 초기에 수술하는 게 맞다. 괜히 암을 키워서 나중에 힘들 필요가 없다”고 조언한다.

갑상선암 수술법은 전통적인 절개 수술과 내시경 절제술, 로봇 수술이 대표적이다. 과거에는 목 아랫부분을 5~8cm가량 자르는 절개술을 시행했다. 이러한 수술법은 암 제거라는 목적은 달성하지만 흉터가 남는 데다 절개로 인한 출혈, 감염, 흉터 조직 비대화 등의 부작용을 낳을 우려가 있다. 내시경이나 일반 로봇 수술 역시 겨드랑이나 유방 주변 등 갑상선과 떨어진 부위를 절개해 접근하다 보니 절개 부위가 커 수술과 회복 시간이 길고 환자가 겪는 통증도 심하다. 김훈엽 교수가 창안한 경구 로봇 갑상선 수술(TORT: Trans-Oral Robotic Thyroidectomy)은 이러한 기존 갑상선암 수술의 문제점을 개선한 혁신적인 수술로 평가받는다.

경구 로봇 갑상선 수술은 기존의 갑상선암 수술과 달리 입안으로 로봇 팔을 삽입해 수술하는 방식으로, 외부 흉터를 남기지 않을 뿐 아니라 절개를 하지 않아 출혈, 감염, 흉터 조직의 비대화 같은 부작용도 거의 없다. 특히 이 수술법은 배우 박소담 씨가 2021년 갑상선 유두암 진단을 받은 후, 김훈엽 교수의 집도로 수술받은 사례로 잘 알려져 있다.

경구 로봇 갑상선 수술을 받은 환자들이 가장 만족하는 부분 중 하나는 목소리 변화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흔히 갑상선암 수술 후 쉰 목소리가 난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이는 갑상선 뒤에 있는 후두 신경이 손상됐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이 후두 신경을 살리는 데 일인자라는 평을 얻고 있다. 그에게 유독 가수, 성악가, 성우 등 목을 쓰는 직업을 가진 환자들이 몰리는 이유다. 김 교수는 갑상선암 수술 시 성대를 움직이는 신경 손상을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신경 모니터링을 도입해 활용하고 있다. 수술 중 신경 손상이 발생해도 약 85%는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는데, 김 교수는 전기적 신호를 이용한 신경 모니터링을 활용해 목소리 손상을 방지한다. 김 교수는 “후두 신경 손상률은 1%도 되지 않으며, 영구적인 손상은 지금까지 환자의 0.1%에도 미치지 않는다. 일시적인 손상도 처음에는 0.5% 이내였지만, 이제는 0.1% 가깝게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암 치료 측면에서도 경구 로봇 갑상선 수술은 재발률이 0%에 가깝다. 이 수술은 흉터를 남기지 않고 기존 수술에 비해 통증과 후두 신경 손상을 크게 줄였다는 점 외에, 환자의 회복 기능과 삶의 질 측면에서 지금까지 나온 어떤 수술법보다 가장 경과가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훈엽 교수의 경구 로봇 수술법은 대부분의 환자에게 적용이 가능하다. 수술이 어려운 경우는 갑상선기능항진증으로 염증이 심해 과대하게 부어 있는 환자다. 결절 지름이 7~8cm 정도는 문제없이 가능하지만, 간혹 턱과의 경계가 안 보일 정도로 목에 큰 갑상선 이상이 생긴 경우는 수술할 공간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또 하나는 갑상선암이 심해 전이된 경우다. 경정맥 바깥쪽에서 전이가 일어나 턱 밑까지 림프절 전이가 심하게 올라오면 접근이 어렵다. 이런 경우는 경구 로봇 수술보다는 기존 수술법으로 치료가 가능하다.

하루 3~4건 수술, 건강해진 환자 만날 때 가장 보람

김 교수의 스케줄을 보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 3~4건씩 수술이 잡혀 있다. 이 가운데 80% 이상이 경구 로봇 수술이다. 지금까지 1800여 건의 경구 로봇 수술을 집도했는데 재발 사례는 단 1건에 불과하다. 그의 혁신적인 수술법은 전 세계 의료진의 주목을 받아 미국의 존스홉킨스대학병원과 클리블랜드클리닉 그리고 이탈리아, 홍콩, 대만, 인도, 터키 등 여러 해외 유명 병원과 의사들이 이 기술을 배우기 위해 고려대 안암병원을 방문하거나 김 교수를 초청했다. 특히 김훈엽 교수는 2019년 10월부터 미국 툴레인대학교 의과대학의 겸임 조교수로 임명돼 국내외를 오가며 후학 양성에 힘썼다. 덕분에 국내 최초로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의과대학 교수로 활동한 외과의사로 기록되기도 했다.

경구 로봇 갑상선 수술은 결과만 놓고 보면 타 수술보다 탁월하지만, 좁은 절개 부위로 기구를 넣어 주변 조직 손상을 최소화하며 수술해야 하기 때문에 고도의 숙련된 테크닉이 필요하다. 김 교수에게 수술법을 배워간 의사들이 막상 자신의 의료 현장에서 적용하기가 쉽지 않은 이유다. 그럼에도 계명대학교 동산병원, 조선대학교병원, 경희대학교병원 등 경구 로봇 수술을 도입해 환자들의 선택권을 늘리는 병원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김훈엽 교수는 서울대 의대를 나와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부친은 우리나라 마취과 분야의 태두이자 중앙대의료원장을 역임한 김성덕 현대병원 의료원장이다. 김훈엽 교수의 동생도 정형외과 의사로 일하고 있다. 2대째 인술을 실천하고 있는 김 교수 집안의 가훈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다. 환자의 생명을 지키고, 병 때문에 고통받지 않도록 의사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하늘의 결과를 기다린다는 것이다. 이런 진심은 환자들에게도 통하는 법. 갑상선암 환자들이 정보를 나누는 인터넷 카페에서 김훈엽 교수에 대한 평은 실력과 품성, 수술 결과에 대한 칭찬과 찬사, 만족 일색이다. 김 교수는 “저만 잘해서 된 게 아니다. 함께 경구 로봇 갑상선 수술 선구자의 길을 걸어온 우리 팀이 굉장히 잘한다. 이제는 말하지 않아도 호흡이 척척 맞는다”고 말했다.

의사로서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을 묻자 김 교수는 “매 순간이 보람 있고, 기억에 남는 환자들도 많다”고 답했다.

“성악가, 가수, 성우 등 목을 많이 쓰는 분들은 수술 전 특히 스트레스가 큰데, 그분들이 수술 후 목소리가 잘 나온다고 안도할 때 저도 기분이 좋습니다. 얼마 전 수술한 성우는 ‘수술 일주일 만에 녹음을 했는데 예전보다 목소리가 더 잘 나온다’고 기뻐하셨어요. 어린 환자들이 수술 후 건강해지는 모습을 보는 것도 보람 있죠. 얼마 전에는 고등학교 때 수술받은 친구가 항공사 스튜어디스 채용에 최종 합격했다며 소견서를 받으러 왔더군요. 갑상선암 수술 흉터가 있었다면 쉽지 않았을 텐데, 그만큼 수술이 잘됐다는 얘기 같아 뿌듯했습니다. 아내의 직업이 판사인데, 제가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판사라는 직업도 보람 있지만 의사라는 직업은 고마워하는 사람이 참 많은 좋은 직업 같다’고 하더군요.”

갑상선암 환자들에게 꼭 하고 싶은 이야기를 묻자 김 교수는 “갑상선암은 진단을 받고도 지켜보자며 몇 년간 병원을 찾지 않다가 갑자기 (악화된 상태로) 나타나 놀래키는 분들이 있다”며 “우리나라처럼 전문의를 쉽게 만날 수 있는 의료 시스템을 갖춘 국가가 많지 않다. 암이 의심된다면 반드시 전문의를 찾아 조언을 듣고 적절한 치료를 받으시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김훈엽교수 #경구로봇갑상선수술 #여성동아

사진 지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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