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옷도 안 갈아입었어?” “채환아, 앉아봐. 오늘 부시가 말야….” “부시는 내가 해결할 테니까 빨리 옷 갈아입고 와!”
지난 3월18일 SBS 탄현 스튜디오. 드라마 리허설이 끝나고 기자와 마주 앉은 손현주(38)가 뜬금없이 미국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최후통첩에 대해 열변을 토한다. 그 사이 ‘흐트러졌던’ 머리를 정돈하고 나온 송채환(35)이 녹화시간에 늦는다며 여전히 트레이닝 바지에 슬리퍼 차림인 손현주를 타박한다.
그녀의 말을 들은 손현주는 그제야 어슬렁거리며 분장실로 사라졌고 송채환은 그의 뒤통수에 대고 “(손)현주형 때문에 못살아!”라며 기어이 한마디를 보태고야 만다. 방금 전까지 세트장에서 살가운 부부였던 두 사람은 어느새 아웅다웅하는 오누이 사이로 돌아온 듯했다.
지난 3월3일부터 방영을 시작한 SBS 새 아침드라마 ‘당신 곁으로‘에서 주연을 맡은 탤런트 손현주와 송채환. 평소에도 허물없이 절친하게 지낸다는 두 사람은 이번 드라마에서 또다시 부부로 출연한다. 지금까지 네번이나 극중 결혼식을 치렀다는 두 사람. 정말 특별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현주형이 파트너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요? ‘편하게 일하겠구나’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어요. 서로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식구 같은 느낌이거든요. 아까 보셨죠? 친오빠라기보다 오히려 친동생 같아요. 호호.”
“부부는 아니지만 소탈한 성격은 꼭 닮았어요”
다시 ‘부부’가 된 감회에 대해 손현주도 송채환과 다르지 않다. 두 사람은 2년전 방영한 SBS 오픈 드라마 ‘남과 여-우리가 어쩌자고 사랑했을까‘에서 부부로 출연한 이후 다시 커플로 호흡을 맞추게 됐다. 서로 알고 지낸 지 10년이 넘었으니 연기호흡은 더 보탤 것도 없이 ‘찰떡궁합’일 터. 이제는 상대의 눈빛만 봐도 그날의 기분까지 맞출 수 있다는 손현주는 자신이 주연을 맡아서가 아니라 상대역이 송채환이라는 사실 때문에 드라마에 거는 기대가 크다고 한다.
“채환씨랑 만나면 항상 장난치고 농담해요. 아마 실제 부부보다 장난을 더 많이 칠 거예요. 서로 장단점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내숭도 없어요.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서로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편이거든요. 그래도 별로 기분 상하는 일이 없고요.”
두 사람에게 96년 KBS 드라마 ‘첫사랑‘은 잊을 수 없는 작품이다. 그 드라마를 통해 두 사람은 처음으로 부부 역할로 호흡을 맞추었고, 시청자들에게 ‘연기 잘하는 배우’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해 최고 인기 드라마였던 ‘첫사랑‘은 최수종 이승연 배용준 최지우 등 인기 스타들의 출연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능청스럽게 기타를 치며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이라는 사랑가를 불러댔던 손현주와 송채환 커플의 인기도 그에 뒤지지 않았다.
‘첫사랑‘ 이후 SBS 일요드라마 ‘달콤한 신부‘와 오픈드라마 ‘남과 여-우리가 어쩌자고 사랑했을까‘편에서 또 한번 호흡을 맞춘 두 사람. 덕분에 “실제 부부가 아니냐”는 오해 아닌 오해를 받기도 했다.
“첫사랑을 촬영할 때 그런 오해를 많이 받았어요. 특히 지방에 내려가면 진짜 부부 맞냐고 자주 물어봐요. 제 결혼식 때도 채환씨가 ‘오빠 가지마’라고 해서 한바탕 웃은 적도 있고요.”
부부는 닮는다고 했던가. 실제 부부는 아니지만 두 사람은 여러 가지 점에서 공통점이 많다. 무엇보다 두 사람 모두 연기경력 10년이 넘는 베테랑 연기자라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90년대 초 탤런트로 데뷔한 두 사람은 지금까지 탄탄한 주·조연급 연기자로 활동해오고 있다.
그동안 KBS 드라마 ‘형‘ ‘바람은 불어도‘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등에서 친숙하고 서민적인 연기를 보여준 손현주는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출신. 91년 KBS 공채 탤런트로 데뷔해 이병헌 김호진 김정난 등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동기들과 달리 차근차근 실력을 인정받아온 대기만성형 연기자다. 서울예대 연극과를 졸업한 송채환은 91년 임권택 감독의 영화 ‘장군의 아들2‘로 데뷔했고 이듬해 TV 드라마에 얼굴을 내밀면서 ‘예쁜 탤런트’보다 ‘연기자’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또한 두 사람 모두 연극무대에서 연기생활을 시작했고, 가리지 않고 뭐든지 잘 먹으며 털털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도 있다.
“현주형이랑 저의 가장 비슷한 점은 소탈하고 서민적인 성격일 거예요. 가라오케보다 포장마차 가는 걸 더 좋아하고 비싼 양주보다 텁텁한 막걸리 마시며 이야기하는 것을 훨씬 좋아하거든요.”
손현주와 송채환은 집안 식구들끼리도 각별하다고 한다. 송채환의 시아주버니로 영화 ‘죽어도 좋아‘를 만든 박진표 감독은 손현주의 대학 1년 후배. 또한 유명 영화주간지의 사진기자인 손현주의 친형 손홍주씨도 감독과 배우가 세명씩이나 있는 송채환의 집안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사이다. 그래서 두 사람은 부부동반으로 만나 식사를 하면서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채환씨 남편하고 따로 술도 한잔 했어요. 박감독이 한국에 잠깐 나왔을 때였는데 함께 있는 2시간 동안 딱 세 마디 들었던 것 같아요.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우리 아내 잘 부탁합니다’가 전부였죠. 말이 없는 것만 빼면 참 진중하고 사려 깊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송채환과 손현주는 집안 식구들끼리도 각별하다고 한다.
연예계에서 모범적인 가정생활을 꾸려오기로 유명한 두 사람은 가족사랑도 각별하다. 특히 송채환은 결혼 5년차임에도 남편과 3천통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애정을 쌓아가고 있다. 그녀의 남편 박진오씨는 같은 대학 영화과 2년 후배. 뉴욕대 영화과 대학원을 마친 박씨는 지난해 칸영화제에 그가 만든 단편영화가 초대되기도 한 실력 있는 신예 감독이기도 하다. 현재 세계 젊은 감독을 지원해주는 프랑스 칸 레지던스 과정 중에 있는 박씨는 유럽에서 장편영화를 준비중이다.
“세계에서 6명만 뽑는 칸 레지던스에 남편이 뽑혀서 너무 자랑스러워요. 부부가 너무 오래 떨어져 있는 거 아니냐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 애틋한 것 같아요. 결혼한 지 5년이나 됐지만 아직도 매일 아침 전화로 깨워주고 저녁에 재워주거든요. 두살 연하지만 남편은 결혼 첫날부터 ‘여보’라고 불렀을 만큼 어른스러워요. 한마디로 하늘 같은 남자죠.”
손현주 역시 모범 가장이기는 마찬가지다. 호주의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한 아내와 7년전 결혼한 그는 여섯살짜리 딸 하나를 두고 있는데 3개월 후면 둘째가 태어날 예정이다. 가정적인 편인 그의 주요 행동반경은 집과 방송국, 헬스클럽이 전부. 그나마 요즘엔 산악자전거에 빠져 야외에서 보내는 일이 많아졌다고.
“드라마 촬영이 없으면 거의 집에서 보내요. 때로 집사람 친구들한테 미안한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집으로 걸려오는 전화를 대부분 제가 받는데, 전화 걸 때마다 친구 남편이 집에 있으면 불편하게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요.”
송채환도 ‘가장 손현주’에 대해 후한 점수를 준다. 송채환은 “솔직히 현주형이 남자로서의 매력은 없어요(웃음). 하지만 인간미 있고 주변 사람들한테 항상 칭찬받는 사람이죠. 특히 성실하고 가정적인 남편이라는 점은 인정해요. 우리나라 남자들 그러기 힘들잖아요”라고 말하며 손현주의 부인과 가끔 전화로 안부를 주고받기도 한다고 털어놓았다.
손현주는 송채환의 남편에 대한 넘치는 애정을 ‘타박’하기도 하지만 그런 송채환이 부러울 때가 많다고 고백한다.
“채환씨는 남편과의 사랑이 각별해요. 수시로 남편과 통화하고 시간 날 때마다 남편 자랑이죠. 가끔 너무 ‘닭살스러울’ 때는 혼자만 결혼한 거 아니라고 핀잔을 주기도 하는데 솔직히 보기 좋아요. 집사람은 애교가 없는 편인데 채환씨는 남편에 대한 사랑 표현에 인색하지 않은 게 부럽기도 하고요.”
아침 드라마 ‘당신 곁으로‘에서 두 사람은 탤런트 김유석과 삼각관계를 이룬다. 극중에서 송채환은 사귀던 손현주를 버리고 첫사랑의 남자 김유석의 아이를 낳아 키우는 정아 역할을 맡았다. 반면 손현주가 맡은 원준은 불행에 빠진 정아와 결혼까지 하면서 끝까지 보살펴주는 매력적인 캐릭터다.
“한 여자를 곁에서 지켜보는 역할이에요. 항상 그 자리에 있는 산 같은 남자라고 할 수 있죠. 실제는 어떠냐고요? 한 여자를 끝까지 사랑하는 남자라는 점에서는 비슷한 거 같아요.”
만족스러운 캐릭터를 맡은 손현주에 비해 송채환은 정아 역할이 솔직히 탐탁지 않다고 털어놓는다.
“개인적으로 사랑스러운 캐릭터라고 말하기 어려워요. 제 상식으로 첫사랑의 남자를 만났다고 해서 금방 감정이 흔들린다는 것이 납득하기 어렵거든요.”
손현주는 여러 편의 드라마를 병행하는 송채환을 보면 건강이 염려된다고.
연기경력 10년이 넘은 두 사람은 연기 스타일이 사뭇 다르다. 손현주가 촬영 전까지 꼼꼼히 대본을 들여다보는 편이라면 송채환은 ‘슛’ 들어가기 전까지 다른 연기자나 스태프들과 장난치고 수다를 떠는 쪽이다. 때문에 손현주는 송채환을 “여우 같은 배우”라고 부른다.
송채환은 현재 6개의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 SBS ‘당신 곁으로‘ ‘올인‘, KBS ‘아내‘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외에 CBS ‘새롭게 하소서‘와 경인방송 ‘기분 좋은 아침‘ 진행까지 맡고 있다. MBC ‘러브레터‘와 SBS ‘당신 곁으로‘에만 출연중인 손현주가 보기에는 슈퍼우먼이 따로 없다고 한다. 게다가 함께 일하는 스태프들과 오가는 방송국 직원까지 챙기고 촬영장 분위기 메이커 역할까지 하는 송채환을 보면 무엇보다 건강이 염려스럽다고.
“저는 드라마를 여러 편 하면 우울해져요. 한때 다섯편의 드라마에 출연한 적도 있었는데 집에도 못 들어가고 피곤하니까 일에 대한 회의까지 들더라고요. 채환씨는 제가 아는 것만 해도 6개가 넘는데 녹화 때 NG 한번 안내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 기분 풀어주려고 노력하는 것을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많은 일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송채환은 “순전히 거절 못하는 성격 탓”이라며 “한때 일을 하고 싶어도 없어서 못한 때가 있었어요. 그때에 비하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지금이 참 감사해요”라고 덧붙인다. 요즘 과로로 자주 붓는다는 송채환은 그 탓인지 얼마전 “보톡스 주사 맞았냐”는 소리까지 들었다며 까르르 웃었다.
손현주는 스스로 여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자평했다. 그동안 상대역이었던 여자 연기자들만 봐도 오연수 김혜선 유하영 이자영 남주희 김지영 등 하나같이 미모와 연기력을 고루 갖춘 배우들이었다고. 게다가 송채환과 이자영은 손현주와 함께 출연한 KBS 드라마 ‘첫사랑‘과 KBS ‘당신 옆이 좋아‘로 그해 여자 조연상을 수상하기도 해 상대배우를 ‘확실하게 키워주는’ 선배가 되기도 했다.
드라마 속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막강 콤비 손현주와 송채환. 그들은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을까.
“저는 장동건처럼 외모가 뛰어난 배우가 아니잖아요. 지금까지 운좋게 꾸준히 드라마에 출연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편안하고 거부감 없는 연기를 보여드리고 싶을 뿐이에요. 나이 들어 채환씨랑 최불암 김혜자 선배님처럼 다시 한번 멋진 커플로 만날 수 있으면 더 좋고요.”(손현주)
“항상 열심히 하는 연기자가 되고 싶어요. 돈이나 명예에 대한 욕심은 없지만 요즘 들어 바르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빨리 아기를 갖고 싶은데 남편 얼굴 보기가 너무 힘드네요.”(송채환)
인터뷰가 끝나고 사진 촬영이 이어지자 두 사람은 언제 진지했냐는 듯 “이제 네번째니까 열번 채우려면 여섯번이나 남았다” “나랑 또 결혼하려고? 다른 남자랑 해보자!” 하며 또다시 티격태격 장난을 쳤다. 언제 봐도 질리지 않는 두 배우의 연기처럼 그들의 우정도 더욱 곰삭고 깊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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