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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그는 가수다

‘꼴찌’ 정엽의 아름다운 반란

야성적 외모와 감미로운 목소리로 인기 급상승

글·이지은 사진·산타뮤직 제공

2011. 05. 17

MBC 서바이벌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가 화제다. 김건모의 재도전과 자진 하차, 총괄PD 교체 등 설왕설래했지만, 가수들의 진지한 노래 대결은 대중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더욱이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리더 정엽은 길들여지지 않은 야성미와 여심을 녹이는 감미로운 목소리로 많은 여성 팬을 확보하며 최대 수혜자로 꼽히고 있다.

‘꼴찌’ 정엽의 아름다운 반란


가수 겸 작곡가 정엽(34·본명 안정엽)을 인터뷰한다고 하자, 기자의 지인들이 술렁였다. “2003년 1집 음반 ‘Soul Free’를 발표했을 때부터 그룹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팬(정엽은 이 그룹의 리더다)”이라는 친구부터 “‘나는 가수다’를 통해 정엽을 좋아하기 시작했다”는 동료, 반면 “정엽의 무대가 가장 별로였다”는 직장 선배까지 다양했다.
어쨌든 정엽이 최근 이슈 인물인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3월5일 저녁 서울 논현동 작업실에서 만난 그는 강렬한 원색 니트 상의에 중절모를 쓴 차림이었다. TV에서보다 훨씬 마르고 수척해 보였다. 그동안 인터뷰 요청과 각종 프로그램 출연 섭외가 무척 많았다고 했다. 사방이 꽉 막힌 어두운 녹음실에서 탁자를 두고 마주 앉아 마치 수다를 떨듯 인터뷰를 진행했다. 방음 시설이 갖춰진 녹음실에서 그의 목소리가 맑게 공명했다.

첫 번째 탈락 후 홀가분한 마음
MBC ‘우리들의 일밤’ 속 코너인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에 출연하면서 유명세를 얻기 전에도 정엽은 20~30대, 특히 여성 팬들 사이에서 ‘아이돌’ 이상의 스타였다. 특히 ‘사랑하는 당신이 내 곁에 있어주면 더 이상 좋을 게 없다’는 내용의 대표곡 ‘Nothing Better’는 최고의 프러포즈 노래로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나가수’는 그를 전 세대를 아우르는 가수로 만들었다. 쟁쟁한 선배들 사이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당당히 무대에 나섰고, 3월27일 방송에서 7명의 가수 중 7위를 했지만 재도전하지 않고 ‘쿨’하게 물러서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나가수’의 최대 수혜자로 꼽히는 정엽은 “지금의 상황이 무척 신기하면서도 기쁘고 행복하다”고 했다.
“예전에 식당을 가면 젊은 친구들만 저를 알아보곤 했지만, 지금은 다 알아보세요. ‘나가수’를 하면서 공중파, 특히 ‘프라임 타임’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달았죠. 한번은 길을 걷는데 나이 지긋한 신사 분이 ‘정엽씨, 노래 잘 들었어요’라며 악수를 청하셨어요. 제 블로그에 50~60대 분들도 글을 남겨주시고요. 회사로 응원 전화가 많이 왔어요. 아마 제 미션곡이 ‘짝사랑’이어서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 더욱 좋아해주시는 것 같아요. 무척 감사하죠.”
정엽은 ‘나가수’ 출연 요청이 왔을 때 흔쾌히 응했다. 다방면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녹화 첫날 다른 출연진의 면면을 보고는 깜짝 놀랐고, 그만큼 기뻤다. 특히 그가 매우 좋아하는 목소리를 가진 가수 김건모와 함께 출연한다는 것 자체가 무척 영광이었다. 부담이 없었기에 무대에 올라서도 전혀 떨리지 않았고, 7위를 했을 때도 낙담하지 않았다.
“솔직히 한 번도 긴장한 적이 없어요. 오히려 탈락하니 조금씩 조여오던 부담감에서 해방돼 마음이 무척 편했어요. 제가 물러나면 다른 가수가 와서 좋은 무대를 보여줄 수 있잖아요. 방송에서 ‘아쉽다’고 말한 장면이 있는데, 실은 제 매니저를 맡은 개그우먼 김신영씨에게 ‘너랑 헤어지는 게 아쉽다’고 했던 건데 앞부분이 잘렸더라고요(웃음). 신영씨나 저나 낯가림이 있어 서먹하다가 마지막 녹화 하는 날 겨우 친해지기 시작했거든요.”
그는 ‘나가수’ 첫 경연에서 7위를 한 김건모의 재도전에 대해 이처럼 논란이 뜨거울지 전혀 몰랐다고 했다. 우선 녹화할 때는 가수들 간의 경쟁 구도가 방송처럼 강렬하지 않았다. 하지만 편집된 방송을 보니 느낌이 많이 달랐다는 것. 정엽은 “결과를 알고 방송을 봐도 긴장이 됐는데, 시청자들은 더 그랬을 것”이라며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컸기에 논란이 커진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하지만 김건모 선배의 재도전은 또 다른 용기였다고 생각해요. 그만큼 부담감을 가지고 가는 것이고, 연륜과 경험이 없으면 그런 선택을 할 수 없거든요. 개인적으로는 김건모 선배가 부른 ‘You’re my lady’를 들을 수 있어 행복했고요. 솔직히 제가 부른 것보다 좋은 것 같아요.”

터프한 외모와 달리 패션, 인테리어에 관심 많아

‘꼴찌’ 정엽의 아름다운 반란




프로그램이 잠정 중단되는 등 ‘나가수’ 논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오히려 정엽은 탈락함으로써 논란의 중심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여기에 더해 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나가수’를 통해 새로 알게 된 가수 1위에 꼽힐 정도로 인지도도 높아졌다. 하지만 TV에서 모습을 보기 힘들었을 뿐, 정엽은 ‘브라운 아이드 소울’ 앨범 3장, 솔로 앨범 1장을 냈고 수많은 공연을 한 데뷔 8년 차 베테랑이다. 그는 언제부터 가수를 꿈꿨을까.
“초등학교 4학년 때 팝을 듣기 시작하면서 어렴풋이 음악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대중가수만 꿈꾼 건 아니고, 그저 음악인이 되고 싶었어요. 대학도 국악과에 진학하려고 했었죠. 고3 때 경기민요를 체계적으로 배웠는데, 참 좋았거든요. 집안에 문제가 생겨 그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요. 대학 진학 후 다양하게 가수가 되는 길을 모색했지만 쉽지는 않았어요. 그러다가 영장이 나왔고 군 복무 중에도 음악을 할 수 있는 해군 홍보단을 지원했죠.”
그는 해군 홍보단 시절이 무척 행복했다. 특히 낙도를 찾아다니면서 공연했는데, 자신의 노래에 덩실덩실 춤을 추는 어르신들을 보면 마음이 뿌듯했다. 주요 레퍼토리는 ‘봉선화 연정’ ‘섬마을 선생님’ ‘홍콩 아가씨’ 등. 정엽은 “당시 어떤 상황에서도 부를 수 있도록 트로트 10곡을 ‘장전’하고 다녔다”며 “지금도 구성지게 트로트 한 곡 뽑아낼 자신이 있다”며 웃었다. 군 복무를 하면서 음악 동지도 많이 만났다. ‘나가수’에서 ‘짝사랑’과 ‘잊을게’를 R·B 스타일로 편곡한 에코브릿지도 그때 인연을 맺었다.
정엽은 전역 후 브라운 아이드 소울로 데뷔했다. ‘브라운 아이즈’로 유명해진 멤버 나얼 덕분에 데뷔와 함께 주목을 받았지만, 이후 공연을 주로 했을 뿐 TV 활동은 거의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TV를 피한 건 아니다”라며 손사래를 쳤다.
“사람들은 저를 포함해 우리 멤버들을 베일에 싸여 있는 독특한 음악인이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저는 아주 평범한 대한민국 남자일 뿐이에요. 술과 담배를 좋아하고, 남자들끼리 우르르 몰려가 당구 치는 것도 즐기죠. 패션과 인테리어에도 관심이 많고 쇼핑하는 것도 좋아해요. 특히 아이돌 그룹의 팬입니다(웃음). 멋있잖아요. 사실 무대에서 그렇게 화려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아이돌 위주의 가요계에 대해서 비판해달라는 분들이 많은데, 솔직히 저는 대중이 아이돌을 원하면 그게 맞다고 봐요. 대신 저 같은 뮤지션들이 대중에게 선택받을 수 있게 더 열심히 해야겠죠.”
앞으로는 방송에서 정엽을 자주 볼 수 있을 듯하다. 오디션 심사위원 등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출연 요청이 들어오고 있기 때문. 그는 ‘열린 마음’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또 그가 DJ를 맡고 있는 MBC 라디오 ‘푸른밤, 정엽입니다’(이하 ‘푸른밤’)는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이기에 방송사가 ‘자르지’ 않는 한 계속하고 싶다고 한다.

타고난 가성, 팬들 사로잡는 가장 큰 무기
“라디오 DJ는 정말 하고 싶었어요. 저 또한 라디오를 들으며 자랐거든요. ‘푸른밤’이 자정부터 새벽 2시까지 하기 때문에, 청취자들은 주로 혼자서 방송을 들어요. 그래서 마치 청취자가 저와 단둘이 자분자분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라디오는 마치 책을 읽듯 상상력을 불러일으켜서 좋아요. 따뜻하고 낭만적이죠.”
특히 매주 수요일에 진행되는 ‘푸른밤’의 ‘여배우들’ 코너가 화제다. 이 코너는 ‘여배우가 사랑하는 라디오’라는 타이틀로 여배우들을 초대하는데 지금까지 김정은, 한지혜, 이민정, 윤진서 등이 방문했다. “아름다운 여배우들과 꽉 막힌 공간에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니, 무척 행복할 것 같다”고 하자 정엽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강조했다.

‘꼴찌’ 정엽의 아름다운 반란


“제가 질문을 해야 하잖아요. 이게 무척 어렵더라고요. 여배우들의 속내를 끌어내야 하고, 종종 곤혹스러운 질문도 해야 하니까요. 매주 엄청난 부담을 느껴요. 물론 여배우들이 털털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면 정말 감사하고요. 가장 편하게 진행했던 사람은 이민정씨예요. 종종 맥주를 마시면서 무척 친해졌거든요(웃음).”
정엽은 오는 9월 솔로 2집 앨범을 발표하고, 10월 단독 콘서트를 열 예정이다. 2집은 R·B, 솔뿐 아니라 포크, 모던 록, 댄스까지 다양한 장르를 실을 계획이다. 그는 자신이 R·B 또는 솔 가수로 불리는 걸 원치 않는다고 했다. 특정 장르가 아닌 음악을 좋아하는 작곡자이자 가수일 뿐이라는 것.
또 작곡과 작사를 모두 하는 그에게 “둘 중 어느 쪽이 더 어렵냐”고 물었더니, 단 1초도 고민하지 않고 “작사”라고 답했다. 작곡은 문득 멜로디가 떠오를 때도 많지만, 작사는 10시간 넘게 책상에 앉아 고민해야 간신히 좋은 노랫말이 나온다고. 정엽은 “몇 년 전부터 새해 계획이 항상 독서였다”라며 웃었다(기자는 그에게 “잡지를 많이 읽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거들었다).
팬들은 그를 ‘숨소리마저 듣게 만드는 가수’라 부른다. 진성과 가성을 넘나드는 음색과 작은 것 하나 놓치지 않는 섬세한 감성은 사랑과 이별, 그로 인한 기쁨과 슬픔을 때로는 감미롭고 때로는 처연하게 표현한다. 술과 담배를 즐긴다는데 그런 목소리가 나오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정엽은 “타고난 것 같다”면서도 “내 목소리가 좋다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했다.
그의 음악을 들어보면 거의 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내 인생의 목표이자 음악을 하는 이유도 사랑”이라고 강조했다. 사랑하는 여자에게서 좋은 감성을 받아 음악으로 표현하고, 이것이 물질적인 혜택을 가져다주고, 이를 통해 다시 사랑하는 여자와 ‘맛있는 것’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면, 그야말로 행복한 인생이라는 것.
“사실 고3 때 이후로 연애를 쉰 적이 없어요. 딱 최근 2년만 솔로가 됐네요. 처음엔 혼자인 게, 주말이 널널한 게 어색했는데 지금은 너무 바빠서 괜찮아졌어요. 하지만 항상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고 싶어요. 외롭기도 하고요. 연애는 하고 싶은데, 요즘 결혼은 하고 싶지 않아요. 결혼하더라도 아이 없이 아내와 둘이서 평생 행복하게 지내고 싶은데, 좋은 아빠 되기가 꿈이죠. 참 어려운 게 사랑이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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