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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다시 꿈꾸는 행복

‘주원 엄마’ 박준금 구름 위를 걷는 요즘

“이혼 후 다시 시작한 연기 인생, ‘중고신인’의 설움 문분홍 여사가 한 번에 날려줬어요”

글·김유림 기자 사진·지호영 기자

2011. 02. 16

인기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아들 주원을 향한 ‘독한 모정’을 연기한 박준금. 2006년 드라마 ‘사랑과 야망’으로 12년 만에 연기활동을 재개한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연기자의 자존심을 되찾은 기분이라고 말한다. 또한 이혼이란 아픈 선택이 헛되지 않았음을, 대중의 품이 이토록 따뜻한지를 새삼 깨닫고 있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주원 엄마’ 박준금 구름 위를 걷는 요즘


표독스런 표정으로 가슴을 후비는 독설을 내뱉다가, 예상치 못한 반격에 결국 뒷목 잡고 쓰러지는 문분홍 여사. 과장된 헤어스타일과 명품으로 도배한 옷차림은 허세기 다분한 재벌 사모님 캐릭터를 극대화시켰다. 화제의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주원 엄마’로 활약한 박준금(49)은 이렇듯 개성 강한 캐릭터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빡빡한 촬영 스케줄로 며칠째 밤샘 촬영 중이라는 그를 강남에 있는 한 미용실에서 만났다. “방금 대본이 나와 정신이 없다”면서도 그의 표정은 소녀처럼 해맑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연기자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건 무려 17년 만의 일. 경희대 무용과 재학 중이던 1982년, 우연히 KBS PD의 눈에 띄어 연속극 ‘순애’의 여주인공으로 발탁돼 단숨에 주연급 연기자로 발돋움한 그는 94년 결혼과 함께 연기생활을 접었다.
그러나 2006년 김수현 작가의 ‘사랑과 야망’으로 12년 만에 연기활동을 재개한 이후 5년 가까이 ‘신인 아닌 신인’으로 살면서 전성기 시절을 그리워한 날이 많았다고 한다. 그렇기에 ‘시크릿 가든’으로 인기몰이 중인 요즘 그는 “마치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다.
“물론 ‘시크릿 가든’ 인기에 편승하는 거지만 이번 드라마로 많은 분들이 제게 관심을 가져주셨다는 게 정말 기뻐요. 조만간 촬영을 마치면 제가 문분홍 캐릭터를 잘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신 분들과 함께 샴페인 파티라도 열 생각이에요. 값비싼 의상과 보석을 기꺼이 빌려주신 분, 헤어·메이크업을 담당해주신 분, 지쳐 있을 때 늘 용기를 불어넣어준 식구 등 손으로 다 꼽기가 힘들죠. 연기하느라 애쓴 저 자신에게 주고 싶은 선물이기도 하고요(웃음).”

방송 첫날 이혼 전 살던 집 주위 돌며 눈물 흘려
그는 드라마가 방영되기 전부터 왠지 모를 기대감에 휩싸였다고 한다. 신우철 PD·김은숙 작가가 콤비를 이룬 작품에 출연하는 것만으로도 뭔가를 해낸 기분이 들었다고. 자신이 처음 등장하는 4회가 방영되던 날, 기대 반 조바심 반으로 TV 앞에 앉아 있던 그는 드라마가 시작되기 직전 갑자기 마음을 바꿔 차를 몰고 밖으로 나갔다. 그가 향한 곳은 12년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은 예전 집. 차로 집 주위를 돌면서 그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고백한다. 이미 알려졌듯 박준금은 결혼 후 아이를 갖기 위해 12번이나 시험관 아기 시술을 하는 등 부단히 노력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끝내 결혼생활을 접었다.
“많은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어요. 아팠던 시간을 떠올리며 많이 울었고, 한편으로 ‘(이혼과 관련해)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죠. 결국 제가 돌아와야 할 곳은 연기였다는 확신이 강하게 들었어요.”
집으로 돌아오자 그의 휴대전화는 바빠지기 시작했다. 그의 연기를 본 지인들의 전화가 빗발친 것. 회가 거듭될수록 드라마의 인기가 높아지자 그는 지난날의 마음고생을 보상받는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사실 ‘사랑과 야망’에서 홍조(전노민) 엄마 역으로 복귀에 성공했지만 오랜 공백기를 단번에 뛰어넘지는 못했다. 그는 “처음부터 주인공으로 연기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에 다시 돌아왔을 때 조연급에 대한 대우를 견디기 힘들었다. 젊어서도 경험하지 못한 무명의 설움을 겪는다는 생각에 혼자 눈물 흘린 날도 많다”고 털어놓았다. 오래 쉬면서 연기 감을 잃은 것도 사실이었다.
“‘사랑과 야망’의 대본 리딩 첫날, 후배들 앞에서 김수현 작가님한테 엄청 야단을 맞았어요. 대본 두 번 읽고 펑펑 울었다니까요. 괜히 돌아온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내가 연기 감을 잃었구나 싶은 게 정말 암담했어요. 그리고 며칠 뒤 드라마 제작발표회에 참석했는데, 단 한 명의 기자도 제게 질문을 하지 않는 거예요. 그때 받은 충격은 말로 다 하기 힘들어요(웃음). 그래도 그 덕분에 오기가 생겨서 더 열심히 연기를 할 수 있었지요.”

라임에게 독설 내뱉고 세트장 뒤에서 하염없이 눈물 흘려

‘주원 엄마’ 박준금 구름 위를 걷는 요즘




‘시크릿 가든’에서 그가 돋보일 수 있었던 건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 연기 덕분이다. 극중 그는 세상에 둘도 없는 아들, 주원(현빈)이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스턴트우먼 길라임(하지원)과 사랑에 빠지자 온갖 독한 방법으로 둘의 사랑을 떼어놓으려 한다. 강렬한 눈빛은 촬영장 밖에서도 여전했는데, 인터뷰 중에도 그가 눈을 치켜뜰 때마다 매서운 기운이 느껴졌다.
“캐릭터에 빠져 살다보니까 평소 저도 모르게 문분홍처럼 행동하게 돼요. 얼마 전에는 별 생각 없이 뾰족한 목소리로 스태프에게 ‘물 가져와’ 했다가 눈총을 받기도 했어요(웃음). 사실 문분홍의 화법이 매우 딱딱하고 명령조잖아요. 연기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도 위엄 있는 말투였어요. 또 김은숙 작가는 ‘대사에서 토시 하나 틀리면 안 된다’는 주의이기 때문에 정확하게 발음하려고 애썼죠. 더군다나 주옥 같은 대사가 워낙 많아서 연기자로서 욕심도 났지요. 물론 저 듣기 좋으라고 한 소리겠지만, 며칠 전에는 친하게 지내는 PD가 전화해서 ‘문분홍 여사는 누나 아니면 안 돼’라고 얘기해줘서 기분이 참 좋았어요.”
라임 앞에서 무릎을 꿇으며 눈물로 호소하는 장면을 연기할 때, 아무리 연기라지만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다고 한다. 라임에게 독설을 퍼붓고 돌아선 뒤 하지원이 펑펑 우는 모습을 세트장 뒤에서 지켜보며 그도 함께 울었다고. 그 장면이 방영되고 난 뒤 박준금은 ‘시크릿 가든’ 시청자 게시판에 극에 몰입하고 있는 자신의 근황을 전하며 ‘주원-라임, 난 너희들이 정말 사랑스럽다. 사랑한다. 엄마를 꼭 이겨줘’ 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실제로 박준금은 하지원의 오랜 팬으로 함께 연기할 수 있어서 더욱 행복했다고 한다.
“하지원이란 친구의 연기는 물론이고 눈빛, 외모까지 참 좋아해요. 촬영장에서도 얼마나 씩씩하게 잘하는지 몰라요. 며칠 밤을 새면 분명 힘들 텐데도 그런 내색을 전혀 안 하기에 ‘지원아, 너 외계인이지?’ 하고 농담을 했을 정도예요. 우리 아들 (현)빈이는 말할 것도 없이 사랑스럽죠. 정말 진짜 자식이 있다면 그런 기분일 것 같아요.”
극중 재벌 사모님을 연기한 그는 실제로도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것으로 알려졌다. 또 최근에는 그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 상당하다고 밝혀져 화제를 모았는데, 그는 “드라마에서처럼 재벌은 아니었지만 시골에서 ‘어느 집’ 하면 알 정도는 됐다”며 쑥스러운 듯 웃었다. 유산으로 물려받은 피트니스센터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한동안 그가 직접 운영하다 몇 년 전 처분했고, 그 밖에 다수의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원 엄마’ 박준금 구름 위를 걷는 요즘

강한 카리스마 뒤에 숨겨진 눈물로 연기 호평을 받은 박준금.



“강원도 춘천이 고향인데 저희 어릴 때는 다들 힘들게 살 때였으니까요, 2층 양옥집에 피아노와 자동차가 있으면 어느 정도 형편이 좋다고 볼 수 있었죠. 딸만 셋인데 언니와 동생이 다 성악을 전공했어요. 덕분에 어려서부터 집안에 음악 소리가 끊이지 않았죠.”
그는 단란한 가정에서 부모의 사랑을 마음껏 받고 자랐지만 유년시절이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어린 나이였지만 가슴 속에 응어리져 있는 뭔지 모를 슬픔 때문에 강가에 서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 날도 많았을 정도로 감수성이 예민하고 고독한 아이였다고. 그러다 무용을 시작하면서 울적한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 그는 “무용을 한 것도, 연기를 한 것도 다 숙명인 것 같다”고 말했다.
“여덟 살 때 처음 무용을 접했어요. 학교 갔다 집으로 오는 길에 우연히 음악을 듣고 홀린 듯 건물 안으로 들어갔는데 무용학원이었어요. 언니들의 춤사위에 완전히 매료돼 그날부터 무용을 하겠다고 했죠. 엄마는 심하게 반대하셨지만 결국 제가 이겼어요. 중학교 때까지 발레를 했고, 대학에서는 한국무용을 전공했어요. 과거 춤으로 내안의 고독을 해소했다면 지금은 연기가 그 역할을 대신하는 거라 생각해요.”

‘주원 엄마’ 박준금 구름 위를 걷는 요즘


이혼·유산… 마음의 상처는 평생 짊어지고 가야할 짐
현재 그는 혼자 살고 있다. 촬영을 마치고 어두컴컴한 집안으로 들어설 때는, 막 이별한 순간처럼 진한 외로움과 허탈감이 밀려온다고 한다.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에 몰입한 뒤에는 더욱 더. 때로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달리나’ 싶은 마음에 회의감에 빠지기도 한다고. 그는 “연기로도 치유하지 못하는 상처가 있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연기는 삶의 이유, 행복해지기 위한 수단일 뿐이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과는 무관한 것 같아요. 어차피 상처는 제 스스로 평생 안고 가야할 짐이라고 생각해요. 언젠가는 그 상처가 아픔으로만이 아니라 항상 곁에 있는 오랜 친구처럼 편안하게 느껴질 때가 오겠죠. 중요한 건 지금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게 행복하고, 그 기쁨을 죽을 때까지 평생 누리고 싶다는 거예요.”
그는 문분홍이란 캐릭터가 호평을 받은 이유 또한 강한 카리스마 뒤에 숨겨진 눈물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재벌이라는 신분과 무관하게 오직 아들을 위한, 비록 그것이 잘못된 모성이라 하더라도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문분홍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그는 “대본을 읽으면서도 울컥할 때가 많았다. 누구나 각자의 아픔과 삶의 무게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때 사업가와 교제 중인 것으로 알려진 그에게 조심스레 재혼 계획을 물었다. 그는 찡긋 눈웃음을 짓더니 “사랑은 인생에 있어 가장 ‘핫’한 문제이고, 남녀 사이가 인력으로 되는 건 아니다. 좋으면 만났다가 싫으면 안 만날 수도 있고, 또 헤어져서도 편하게 친구로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당장 재혼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또 모르죠. 주원과 라임처럼 길을 걸을 때도, 책을 읽을 때도 옆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사람이 생긴다면요(웃음).”
젊은 시절 남의 옷을 걸친 듯 운 좋게 배우의 길로 접어들었지만, 앞으로는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배우라는 타이틀을 지켜나가겠다고 다짐하는 박준금. 그 전에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가 하나 있는 듯 보인다. 마음 깊숙이 자리 잡은 ‘시크릿 가든’, ‘문분홍 여사’를 고이 보내주는 일 말이다.

헤어·메이크업·티아라 바이 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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