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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은 행복

갑상선암 진단으로 찾아온 시련 극복하고 건강 되찾은 박정수

기획·김명희 기자 / 글·오진영‘자유기고가’ / 사진·지호영 기자

입력 2008.03.21 16:09:00

중년의 나이에도 고운 외모를 간직하고 있는 탤런트 박정수. 지난해 남몰래 갑상선암 수술을 받고 투병생활을 했던 그가 건강을 회복하기까지의 과정과 첫 손녀를 얻은 즐거움, 남자친구 이야기까지 속속들이 들려주었다.
갑상선암 진단으로 찾아온 시련 극복하고 건강 되찾은 박정수

탤런트 박정수(55)는 50대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고운 외모를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박정수 자신은 “요즘은 예전 같지 않다”며 웃었다.
“제 별명이 ‘짐승’이었어요. 그렇게 건강했다는 얘기죠. 여배우들 중에 여운계 선배하고 저, 둘이 ‘짐승’이라고 불렸는데 우연히 둘 다 지난해 큰 병을 앓으며 혼쭐이 났어요.”
그는 지난해 4월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알린 채 조용히 갑상선암으로 수술을 받았다. 몇 년 전 갑상선에 생긴 종양을 방치해둔 것이 화근이 됐다고.
“형제들을 비롯해 식구 가운데 의사가 많은데 처음 진단을 받았을 때만 해도 다들 염려하지 말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더라고요. 저 역시 건강을 자신했던 만큼 ‘별일이야 있겠냐’며 크게 신경 쓰지 않았어요. 그러다 지난해 조직검사를 했더니 임파선 쪽에도 혹이 보인다고 하기에 놀라서 얼른 수술을 받았죠.”

“지난해 암 투병 힘들었지만 손녀라는 큰 선물 얻었어요”
그는 겨드랑이와 젖가슴 아래를 잘라내고 내시경을 넣어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보통은 두 시간 정도 걸리는 수술인데 그렇게 하다 보니 여섯 시간이 넘게 길어졌다고.
“수술 후 굉장히 지쳐 회복하는 데 힘이 많이 들었어요. 수술 전보다 수술을 받고 난 뒤 더 아프고 기력이 떨어지더라고요. 처음에는 수술 후유증인 줄만 알았는데 여기저기서 검사를 받아본 결과 한 병원에서 “여성호르몬이 제로”라고 이야기하더라고요. 정말 수치가 제로라는 건지 그만큼 상태가 나빴다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렇게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런 상태에서 항암치료까지 받다 보니 면역체계가 완전히 무너져 계속 잔병치레를 했던 거죠. 그동안 아파서 고생한 적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에 방심하고 있었는데 이번 일을 겪으며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알게 됐어요.”
수술 한 달 후 병마와 싸워 이긴 그에게 커다란 선물이 주어졌다. 그는 슬하에 두 딸을 두고 있는데 큰딸 주현씨(33)가 지난해 6월 사랑스럽고 예쁜 첫 손녀를 안겨준 것이다.

갑상선암 진단으로 찾아온 시련 극복하고 건강 되찾은 박정수

“워낙 아이들을 좋아하는데다 처음 본 손녀라 그런지 예뻐 어쩔 줄 모르겠어요. ‘얘가 내 눈에만 이렇게 예쁜 거냐’고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볼 정도라니까요.”
그는 손녀를 아예 자신의 집에 데려다놓고 봐주고 싶지만 딸이 모유 수유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없는 형편이라고 한다. 손녀가 집에 오면 몸 아픈 것도 잊어버린 채 하루 종일 놀아주고 안아주는 바람에 다음 날이면 온몸이 두들겨 맞은 듯이 아파 앓아눕는데도 언제 그랬냐는 듯 만날 때마다 또다시 열심히 놀아주게 된다고.
“인생이라는 게 참 재미있어요. 이제 나이 들어 한가해지고 늙어 병드는 일만 남았나 싶을 때 손녀라는 큰 선물을 주시니까요.”
박씨는 자신이 입원해 있는 동안 만삭의 몸으로 병상 옆을 지키며 간호해준 큰딸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해주고 싶다고 했다.
두 딸은 인생에서 어려운 고비가 닥칠 때마다 그를 다시 일어서게 하는 원동력이었다고 한다. 지난 72년 MBC 공채 탤런트로 선발돼 방송활동을 시작했다가 73년 결혼과 함께 활동을 접고 전업 주부의 길을 선택했던 그는 큰딸이 열네 살이던 89년 다시 방송 일을 시작했다. 브라운관을 떠난 지 16년 만이었다.
“저는 탤런트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어요. 그런데 희망했던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편입시험마저 떨어지고 나니 오기가 났어요. 탤런트 시험도 떨어지나 한번 보자는 심정으로 갔다가 붙은 거였거든요.”
MBC 5기 공채 탤런트로 들어가 동기 중에 가장 빨리 주연을 맡았지만 당시는 “원래 연기 지망생이 아니어서 그랬는지” 성취감도 못 느꼈고 직업의식도 약했다고 한다.
“그때는 선배들도 후배들을 막 굴리고 PD들이 신인 연기자를 함부로 대할 때였어요. 지금같이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서 연속극 녹화하다가 NG가 나면 처음부터 다시 다 찍어야 했거든요. 한 번 실수한 배우는 별별 험한 욕을 다 들었죠.”
그는 그런 대접을 받으면서 굳이 배우를 계속해야 하나, 회의가 들었다고 한다. 그랬더라도 연기하는 것이 정말 좋았다면 죽기 살기로 덤볐겠지만 당시는 배우생활을 오래 하고 싶다는 욕심이 없었다고. 그럴 즈음 딸이 탤런트가 된 것을 마땅찮아하던 그의 부모도 ‘빨리 탤런트를 그만두고 결혼하라’고 다그쳤다고 한다. 결국 그는 1년 만에 연기생활을 접고 결혼해 전업주부로 살게 됐다.
“제가 단순한 성격이라 두 가지 일을 한 번에 못해요. 살림하는 동안에는 집안 곱게 꾸미고 영양가 있는 음식 맛있게 차려서 식구들 먹이는 일만 열심히 하고 살았죠.”
그러다 87년 남편의 사업이 부도를 맞으면서 하루아침에 그의 가족은 글자 그대로 ‘길거리로 나앉는’ 신세가 됐다. 당장 생활비가 아쉬웠던 그는 다시 방송국을 찾았다.
“나이 마흔이 다 된 아줌마가 16년 만에 뻔뻔스럽게 방송국에 찾아가 ‘나 다시 일 좀 하게 해달라’고 한 거예요. 옛날 담당 PD가 국장이 돼 있기에 찾아가 부탁했죠.”
이후 그는 연기에만 집중했고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어느새 인기 탤런트 대열에 합류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스무 살 때는 몰랐던 연기의 즐거움을 차츰 깨닫게 됐다고.
그는 연기활동 재개 후 연기자로서는 승승장구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또 한번의 아픔을 겪었다. 97년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은 것.
“아이들 아빠가 사업으로 재기하겠다고 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자꾸 무리수를 뒀는데 처음에는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나중에는 미워지더라고요.”

갑상선암 진단으로 찾아온 시련 극복하고 건강 되찾은 박정수

박정수는 지난해 암수술을 받은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밝고 건강해 보였다.


정신없이 달려가는 도중에는 몰랐는데 지금 그 시절을 돌아보면 어떻게 그 어려운 세월을 헤쳐왔을까, 다시 돌아간다면 그럴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고 했다. 밖에서는 웃고 내색을 안 해도 집에 돌아와 혼자 있는 시간에 울다가 “이제 더 내려갈 데도 없으니 곧 좋은 날이 올 것”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한 적이 많았다고 한다.
“아이들이 없었다면 다 포기하고 적당히 살았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엄마였기에 자식을 먹이고 가르치기 위해서는 못할 게 없었어요. 지금 다시 어떤 위기가 온다 해도 자식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어요.”
그는 자신의 성격을 “세게 던지면 강하게 튀어오르는 공 같다”고 말했다. 힘들고 어려울수록 탄력을 받아 힘을 발휘하는 강인함이 자신의 장점이라는 것이다. 더불어 나쁜 일은 금방 잊고 좋았던 일, 즐거운 일만 기억하는 ‘단순한’ 성격이어서 스스로도 다행이라 생각한다고.
“아이들 아빠와의 결혼생활에서도 좋았던 기억만 나요. 참 착한 사람이었다고. 내가 조금 더 참을걸 그랬나 하다가도, 아니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상황이었지, 그런다니까요.”
그래서 그는 “어쩜 그렇게 안 늙고 고운 모습 그대로냐”고 감탄하는 질문을 받을 때면 “단순한 성격이 안 늙는 비결”이라고 대답한다고 했다.

지금 사귀는 남자친구와는 결혼하지 않고 좋은 친구로 남을 생각
박정수는 경제적으로 풍족했던 시기에 학창시절을 보낸 큰딸과 달리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어려운 시기에 학교를 다녔던 둘째 딸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한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둘째는 언니만큼 공부를 못했는데 그는 먹고살기 바빠 첫째처럼 밤마다 옆에 앉아 책을 읽어주지 못한 자신의 탓인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고.
“집에 혼자 두고 나오는 게 안쓰러워서 지점토를 쥐어주고 일 갔다 돌아오면 예쁜 신발이니 당근이니 앙증맞게 만들어놓기에 그럼 미술을 시키자, 그랬는데 성적이 안 좋아서 예술중학교도 떨어졌어요.”
중학교에 들어간 딸은 학교에서 아이들끼리 따돌리는 게 싫다면서 유학을 보내달라고 했다고 한다.
“유학을 보내달라고 조르는 아이에게 ‘공부 못해서 유학 보낸다는 소리는 듣기 싫다’며 ‘1등 세 번 하면 보내주겠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정말 1등을 세 번 하더라고요.”
그렇게 중학교 2학년 때 미국으로 유학을 갔던 둘째 딸 승현씨(27)는 현재 컬럼비아 의대에서 병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녀, 자랑스러운 둘째딸과 함께 요즘 그에게 가장 기쁨을 주는 존재는 바로 남자친구라고 한다. 좀처럼 감출 줄 모르는 성격의 박정수는 남자친구에 대해서도 시원시원하게 말했다.
“내가 이 나이에 남자친구 있는 게 흠 잡힐 일인가요? 친구 겸 사랑하는 사람 겸 좋은 남자친구가 있습니다, 네.”
남자친구는 방송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일하면서 만났다고 한다. 그러나 결혼은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재혼은 쉽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잖아요. 자식들도 있고 수용해야 할 복잡한 문제가 여럿이고. 다행인 것은 그 사람이나 저나 둘 다 재혼 생각이 없다는 거예요. 한 사람은 하고 싶은데 한 사람은 안 하고 싶으면 얼마나 속상하겠어요.”
그는 언제부턴가 여자들이 자신을 예쁘게 봐주는 건 좋지만 남자들이 여자로 보는 건 부담스러워졌다고 말했다. 한 가수와 사귄다는 소문이 돌았을 때 상처를 워낙 많이 받아 그렇게 된 것 같다고 했다.
“남자친구와는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라서 서로 고충을 이해해주고 어려울 때 ‘힘내라’고 한마디라도 건넬 수 있는 좋은 관계예요. 둘 다 틀에 묶이는 걸 싫어하고 간섭하지 않는 성격이라는 면도 잘 맞아요. 좋은 친구로 오래 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결혼 생각은 없다”면서도 “사람 앞일은 알 수 없는 것이라 ‘절대 결혼 안 한다’는 말은 못하겠다”는 박정수. 그는 “앞으로 10년쯤 지나 65세 정도 돼서 일도 줄고 외로워지는데 지금 남자친구보다 더 좋은 남자가 나타나서 살자고 한다면? 그럼 혹시 모르겠다”고 웃으며 말을 맺었다.
여성동아 2008년 3월 5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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