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칡냉면의 검은 속을 파헤치다

김진 기자의 먹거리 XX파일

글 · 김진 채널A ‘먹거리 X파일’ 진행자 | 사진 · 채널A

작성일 | 2015.10.14

지금 이 글을 읽으면서 ‘여름도 아닌데 웬 냉면 이야기?’냐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시는가?
냉면은 원래 겨울 음식이란 것을. 메밀과 밀가루를 주원료로 하는 일반 냉면과 달리 칡을 넣어 만든 칡냉면을 즐겨 찾는 이들도 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칡냉면에서 칡의 맛을 느낄 수 있었던가?
칡냉면의 검은 속을 파헤치다


1장. 니들이 칡 맛을 알아?

칡냉면의 가장 큰 특징은 까만 면이다. 칡차를 연상하며 ‘칡이 함유돼 있어 까맣겠군’ 하고 미루어 짐작만 할 뿐 칡냉면이 왜 까만지, 정확한 제조 방법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해답을 얻기 위해 칡냉면을 만드는 제조 공장을 찾았다. 공장 배합실에는 여러 포대들이 잔뜩 쌓여 있었고 대부분이 밀가루와 전분 포대였다. 물론 한쪽에는 칡가루도 놓여 있었다. 그들은 우선 칡냉면의 주재료 밀가루 20kg을 커다란 용기에 부었다. 그러곤 전분도 밀가루와 같은 양인 20kg을 부어준다. 이어서 까만색의 볶은 메밀가루를 붓고, 반죽을 원활하게 할 소맥 전분을 첨가하더니 여기에 면 소다 일정량, 색을 더 진하게 해줄 소량의 코코아 가루까지 붓는다. 마지막으로 흰색에 가까운 연갈색 가루를 살짝 뿌리면 배합 끝. 그런데 아무리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칡가루를 넣는 과정이 보이지 않았다. 알고 보니 코코아 가루보다도 더 적게 들어가는 마지막 연갈색 가루가 칡가루였다. 칡냉면에서 칡 맛이 안 났던 것은 애초에 칡이 거의 안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칡가루는 결코 까맣지 않았다. 칡냉면이 까만 것은 볶은 메밀가루와 코코아 가루 때문이었다.

그럼 그동안 우리가 식당에서 먹었던, 그리고 마트에서 사 먹었던 시판용 칡냉면에는 도대체 칡이 몇 %나 들어 있는 걸까. 칡냉면 제조 공장에서 확인한 칡 함유량은 0.75%. 혹시 하는 마음에 식자재 마트에서 판매되는 칡냉면들을 살펴봤더니 1.15~3%.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칡냉면 22종류의 칡 함유량은 각각 3%도 안 됐다. 이 정도면 냉면 이름에 ‘칡’ 자를 붙이기 민망할 수준이다. 그리고 이들 칡냉면에는 빠짐없이 코코아 가루, 볶은 보릿가루, 캐러멜 등이 첨가돼 있다. 칡은 거의 안 넣고 색깔만 까맣게 보이게 하려는 꼼수인 셈이다. 진짜 칡가루를 제대로 첨가했다면 오히려 냉면의 색깔은 까맣지 않고 연한 갈색이 돌아야 한다. 은은한 칡 향이 나야하는 것도 물론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칡냉면에 칡을 많이 안 넣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내에선 자연 칡을 구하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들뿐더러 가격이 비싸기 때문이다. 또한 칡의 함유량이 높아질수록 면의 탄성은 떨어져 반죽하기가 쉽지 않다는 기술적인 어려움도 있다. 따라서 칡이 많이 함유된 면은 삶으면 금방 풀어지거나 불어버리기 때문에 업자들은 만들기 까다로운 진짜 칡 면 대신 겉으로 보기에 비슷한 ‘까만 면’을 택해왔던 것이다.

2장. 고기 고명이 없는 이유

경기도의 한 칡냉면 맛집은 여름, 겨울 할 것 없이 사계절 붐빈다. 세숫대야만 한 큰 스테인리스 그릇에 면 사리를 듬뿍 담아 시원한 살얼음 육수를 붓고 깻가루와 오이, 토마토, 삶은 달걀까지 올라가니 정말 먹음직스런 비주얼이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평양냉면에는 고기 고명이 한두 점 올라가는데 왜 칡냉면에는 고기가 없는 걸까? 전국의 칡냉면 집을 돌아다녀봐도 고기 고명이 나오는 집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평양냉면에 올린 고기 고명은 육수를 내느라 삶고 삶은 살코기를 썰어서 내놓은 것이다. 칡냉면도 분명 육수를 낼 때 쓰인 어마어마한 고기가 있을 텐데, 그 살코기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칡냉면 맛집을 경영했던 자칭 ‘칡냉면 장인’에게서 육수 레시피를 전수받기로 했다. 육수 레시피 전수 비용은 80만원부터 무려 3천만원까지 거래되기도 한다. 취재진은 칡냉면 창업자로 위장해 과거 칡냉면 대박 집을 운영하고 이제는 은퇴를 한 업자 한 명을 은밀히 소개받을 수 있었다. 본인이 3백만원을 주고 전수받은 육수 레시피를 우리에게 특별히 80만원에 전수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 같은 ‘제자’ 십수 명에게 레시피를 전수해줬다고 밝혔다. 과연 레시피는 얼마나 특별할까.

칡냉면의 검은 속을 파헤치다

왼쪽 사진은 칡함유량이 30%나 되는 착한 식당표 칡냉면. 시판 칡냉면(오른쪽)과 비교해 색깔이 오히려 더 연하다.

칡냉면 식당에서 육수 내는 법

① 큰 육수 통에 물을 40L 붓는다.

② 설탕을 370g 부어준다.

③ 쇠고기 맛 다시다를 800g 붓는다.

④ 거품이 날 때까지 한번 끓였다가 거품을 걷고 불을 줄여준다. (이러면 다시다 비린내가 날아간다.)

⑤ 양조 식초 아무거나 700ml를 붓는다.

⑥ 사이다 1.5L를 붓는다.

이게 육수 레시피의 전부였다. 실제로 수많은 식당에서 쇠고기 단 한 점 없이 쇠고기 맛 다시다를 이용해 육수를 만들고 있다. 그리고 이 중에는 대박 집으로 성공한 식당도 꽤 많다고 한다. 칡냉면을 먹을 때 물냉면을 시켰는데도 빨간 양념장이 들어가는 이유 역시 다시다의 비린 맛을 감추기 위해서라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칡냉면을 시켰는데 고기가 얹혀 있지 않다면 일단 육수의 정체성부터 의심하면 된다. ‘이 육수, 정말 고기로 낸 육수인가, 아니면 다시다를 끓여 만든 육수인가.’ 거기에 새빨간 양념장까지 듬뿍 들어 있다면 다시다 육수일 가능성이 크다. 화학 조미료에 대한 여러 가지 논란은 차치하자. 감칠맛을 내기 위해 조금 넣는 수준도 아니고, 본래 식재료를 통째로 빼고 어마어마한 양의 다시다를 넣고 끓여대는 수준이라면 누가 보더라도 심각한 문제인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싼값에 대충 육수를 만들어놓고, 정작 식당엔 ‘정성껏 쇠고기를 우려낸 육수’라고 선전해놓은 곳을 여럿 목격했다. 이렇게 3백만원에 거래되는 칡냉면 육수 레시피를 ‘여성동아’에 공개하는 것은 불법 거래도 막아야 하고 독자들이 알아야 이런 양심 불량 얌체 수법이 근절될 거란 생각 때문이다.

3장. 착한 칡냉면 집, 인천시 계양구에 위치한 ‘조선옥’

칡냉면의 검은 속을 파헤치다

‘먹거리 X파일 착한 식당’으로 선정된 ‘조선옥’ 칡냉면.

이쯤 되면 칡냉면을 믿고 먹어도 될지 의문이 든다. 그래서 어렵사리 찾은 착한 칡냉면 집을 소개한다. 인천시 계양구에 위치한 아주 작은 동네 맛집, 조선옥이다. 화려한 기왓장도, 넓은 주차 시설도 없다. 동네 상가 건물 1층에 테이블 5개를 놓고 장사하는 소박한 식당이다. 주방은 훤히 보이게 오픈돼 있고 식당 사장이 직접 면을 뽑고 육수를 낸다. 이 집의 가장 큰 매력은 면. 칡이 3%도 안 들어가 있는 시판 면과 차원이 다르다. 무려 30%의 칡 함유량을 자랑하는 진짜 칡 면을 쓴다. 그래서일까. 냉면을 한 젓가락 입안에 넣는 순간 칡 특유의 향과 기분 좋은 쓴맛이 개운하게 느껴진다. 고소하기까지 하다. 물론 칡 면의 색깔은 연한 갈색, 제대로다. 주문하면 즉시 칡 반죽을 기계에 넣고 면을 뽑는다. 칡 함유량이 30%나 되기 때문에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면이 풀어져 죽사발이 되기 때문에 주문 즉시 면을 뽑아서 제공한다. 따라서 포장이 힘들다. 꼭 매장에 와서만 맛볼 수 있다.

그다음으로 특이한 점은 고기 고명이 두툼하게 여러 장 올라간다는 것. 국내산 육우, 그중에서도 ‘설깃’이란 부위를 쓴다. 이 집의 고기 고명은 웬만한 냉면 집 수육보다도 더 고소하고 부드럽다. 식당 사장이 오랫동안 고기 삶는 법과 누린내 잡는 노하우를 연구해서인지 그 어떤 집에서도 맛보지 못했던 수육의 고소함을 느낄 수 있다. 양념장도 함께 제공되지만 육수의 깊은 맛을 느끼고 싶다면 주문 시 꼭 “양념장은 빼주세요”라고 주문하길 바란다. 국내산 설깃살을 무려 35kg 넣고 여기에 깊은 맛을 내준다는 닭발까지 넣어 구수하면서 깊은 맛이 나는 육수를 우려낸다. 무엇보다 이 육수를 ‘특별한 육수’로 만들어주는 또 다른 재료는 ‘생칡’이다. 육수를 우려내는 마지막 과정에 생칡을 넣어 개운함을 더한다. 이 집 육수의 특급 비밀이다. 유사 음식점이 있을지 모르므로 꼭 ‘먹거리 X파일 착한 식당 명패’를 확인하시길.

※ 조선옥 주소 인천시 계양구 동양동 605-4 문의 032-546-1182

디자인 · 김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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