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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power_woman4 #interview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

#농구선수근성 #비주류인생 #청년과여성편에서

editor 김지영 기자

작성일 | 2018.02.08

일자리는 삶의 질과 직결된다. 지난해 8월 취임한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의 한마디, 한걸음에 큰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농구 선수 시절 다진 근성과 체력으로 노동 환경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김 장관을 파워 우먼 릴레이 인터뷰의 네 번째 주자로 만났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
김영주(63)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해 8월 21일 문재인 정부의 1기 내각에 마지막으로 합류한 여성 수장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로써 “장관 30%를 여성으로 채우겠다”고 했던 대선 공약을 지켰다. 고용노동부는 정부의 최우선 과제인 일자리 창출과 공공 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근로시간 단축 등 산적한 노동문제를 풀어야 하는 주무 부처다. 그럼에도 이번 정권에서 신설된 중소벤처기업부를 제외하면 가장 마지막에 장관을 맞은 셈이다. 

이를 두고 정치권 일각에서는 고용노동부가 가장 중요한 업무를 담당하는 만큼 적임자를 고르고 골랐다는 얘기가 나온다. 장관 후보 청문회를 앞두고 청와대와 노동계에서는 김 장관의 남다른 이력을 근거로 “현장 경험과 전문성을 두루 갖춘, 노동 현안을 책임 있게 이끌어갈 적임자”라고 입을 모았다. 

1955년 서울 태생인 김 장관은 1974년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서울신탁은행(한국신탁은행의 후신) 농구단에 들어갔다. 이후 3년 만에 팀을 나와 은행원으로 새 출발을 시작한다. 1985년 서울신탁은행 노동조합 여성부장을 맡으며 노동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그는 1988년 전국금융노동조합연맹(금융노련) 교육홍보국 부국장을 맡은 데 이어, 1995년 11월부터 1999년 2월까지 금융노련 최초의 여성 상임부위원장으로 활약했다. 같은 기간 금융노련 여성복지·교육홍보국장도 겸직하며 남녀고용평등법 제정 등의 성과를 냈다. 

1999년 새천년민주당의 창당 발기인으로 정치에 입문한 그는 이듬해 치러진 16대 총선에선 고배를 마셨지만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비례대표로 원내 진입에 성공한다. 2012년 19대, 2016년 20대 총선에서도 승리해 3선 국회의원인 그는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과 시울시당 위원장 등을 지냈고,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취임 5개월째를 맞은 김 장관을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내에 마련된 장관실에서 만났다.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대통령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서울시당총괄책임자 역할을 맡아 활동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어떤 인연이 있는지요. 

대선 후보 시절 문 대통령이 유세를 다니면서 지역 시도 위원장 가운데 어깨에 손을 올려준 사람은 저밖에 없다고 하시더군요(웃음). 지난 대선 당시 저는 촛불 집회에서 드러난 민심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정권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했어요. 

그 절박한 바람이 서울 지역 내 49개 전 선거구 모두 승리로 이어진 듯해요. 서울 지역 내 모든 선거구에서 이긴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거든요. 제가 노동운동을 하던 시절 워낙 현장을 누비고 다녀 별명이 ‘영등포의 주먹’이었는데, 서울시당 위원장 시절에는 ‘서주(서울의 주먹)’으로 바뀌었어요. 지금은 노동계 주먹이라며 ‘노주’로 불리고 있죠. 

가까이서 지켜본 문 대통령은 어떤 분인가요. 

널리 알려진 대로 따뜻하고 인간적이세요. 여성의 시각으로 보면 정말 자상한 남편에 따뜻한 아빠,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오빠 같은 이미지랄까요. 여성 문제에 대한 관심이 각별하시죠. 장관 임명식 날 사령장을 주시며 “여성들이 출산, 육아로 인해 경력 단절이 없도록 해달라. 그리고 여성의 승진을 꼭 챙기라”고 당부하셨어요. 국무회의 때도 각 부처의 여성 승진율이나 취업률, 성차별과 성희롱 문제를 꼼꼼하게 점검하십니다. 공공부문에서 모범을 보여야 민간에도 이런 분위기가 확산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단호해야 할 땐 굉장히 단호하세요. 트릭을 안 쓰시죠. 

농구 선수 출신이시지요. 당시 어떤 선수였습니까. 

서울 무학여중 2학년 때 우연히 농구 감독의 눈에 들어 선수로 발탁됐어요. 운동을 늦게 시작해 처음엔 동료들에게 농구를 배웠는데 특기생으로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에는 주전이 됐어요. 체력이 약했지만 한번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라 농구 연습을 열심히 했거든요. 매일 자고 일어나면 코피를 쏟을 정도였어요. 그렇게 운동을 하며 체력과 근성이 다져졌죠. 어릴 때부터 악착같은 면이 있었어요. 제가 1남 5녀 중 막내딸이었는데, 저를 ‘언니’라 부르던 남동생을 누가 건드리면 쫓아가 팔뚝을 물어서라도 구해왔거든요. 하하하. 지금은 살면서 가장 뚱뚱한 시기지만 농구할 땐 정말 날씬했어요. 농구 하면서 키가 두 해에 걸쳐 17cm나 컸고요. 주변 남학교 학생들에게 인기가 참 많았죠(웃음). 

선수 생활한 것이 정치인이나 지금 장관직을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됩니까. 

전 농구 선수 출신이란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어요. 운동에서는 팀워크가 중요하기 때문에 남을 배려할 줄 알게 되고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끈기와 인내력을 배울 수 있거든요. 한겨울에 남산 팔각정까지 뛰어 올라가면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데, 정상에 올라가면 1분도 안 돼 고드름처럼 얼어요. 그럼 서러워 울고 추워 울면서도 그다음 날 또 뛰어요. 근데 정치도 자신과의 싸움이더라고요. 저를 지지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무리 제가 잘해도 폄하하는 사람이 있거든요. 그래도 그런 아픔이 운동할 때의 육체적 고통보다는 덜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고용노동부는 국민과 가장 밀접한 일자리 문제를 다루고 있어서 아무리 잘해도 100% 만족감을 드리기가 어려워요. 그런데 지난해 말 한 언론사와 서울대 폴랩이 국정 운영에 대한 다섯 가지 항목을 놓고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정부 부처 33개 가운데 고용노동부가 헌법재판소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신뢰를 얻었어요. 이건 제가 선수 시절 배운, ‘나보다 우리’ ‘나보다 힘든 사람들’을 먼저 배려하는 마음이 조직 내에 확산돼서가 아닌가 싶어요. 

1974년 서울신탁은행 실업팀 농구 선수로 입단한 지 3년 만에 은퇴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실업팀에 스카우트됐는데,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무학여고는 공립학교여서 농구선수라도 수업을 모두 마치고 2〜3시간 운동을 했고 방학에 합숙 훈련을 하면서 체력과 팀워크를 키워나갔어요. 그런데 실업팀에서는 밥 먹는 시간을 빼곤 종일 운동만 해야 했어요.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도무지 버티기가 힘들어 일찍 은퇴를 하고 서울신탁은행의 은행원으로 일했어요. 

은행원이 된 후 노동 현장의 성차별 문제를 개선하려고 노력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은 상상이 안 가겠지만 당시에는 은행에 들어갈 때 결혼하면 사직하겠다는 ‘결혼퇴직각서’를 썼어요. 그리고 남자 행원이 신입이어도 5~10년 차 여행원이 보조 역할을 했고요. 나이 많은 여행원들이 신입 남자 행원을 ‘주임님’이라 부르기에 은행은 이런 문화구나, 하며 그럭저럭 지냈어요. 그러다 1980년 노조에서 진행한 여성 조합원 교육에 참가했다가 은행에서 벌어지는 각종 차별에 눈을 뜨게 됐어요. 11년 차 여행원의 월급이 5년 차 남자 행원의 그것보다 적고, 여행원이 승진하려면 일단 ‘전환 고시’라는 것을 통과해 일반 행원이 돼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부당한 차별에 맞서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교육을 받은 후 노조 활동에 관심을 갖다가 1982년 출산 휴가를 갔어요. 

1979년 결혼퇴직제도가 없어지고 이듬해에 결혼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두 달간 출산 휴가를 보내고 복귀했더니 제자리가 없었어요. 당시 제가 지점에서 왕언니였고 굉장히 중요한 여신 업무를 맡고 있었는데 동전을 바꿔주는 창구의 보조를 하게 하더라고요. 그 일을 계기로 노조 활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출산휴직제도부터 도입했어요. 임부를 위한 원피스 스타일의 유니폼과 ‘승진 고시’라는 시험제도도 만들고요. 서울신탁은행의 노조 여성 부장을 거쳐 금융노련 최초의 여성 상임부위원장으로 일하며 20년 가까이 노조에서 다양한 현장 경험을 쌓았죠. 

기억에 남는 성과나 에피소드가 있나요. 

1982년 6월 은행 노조 대의원대회가 있었는데, 당시 제가 출산을 2개월 앞두고 있었어요. 여성 대의원은 3〜4명밖에 되지 않았어요. 거의 만삭인 상태로 수백 명 앞에 나가니 남성들의 야유와 비난이 쏟아졌어요. 그들 앞에 서서 저는 여성들이 겪고 있는 차별적인 급여와 승진 문제에 대해 발언했죠. 그때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해요. 노조 활동 시절 직장 내 남녀 차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뛰어다녔던 일도 잊히지 않네요. 정치권 인사들을 찾아다니며 그 심각성을 알려 1987년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되고, 1989년 동일 가치 노동에 동일 임금을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이 남녀고용평등법에 들어가는 성과가 있었습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 포상을 받기도 했어요.
 
정치권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가 무엇입니까. 

199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새천년민주당 창당 준비를 할 때 신낙균 부총재가 저를 찾아오셨어요. 당시 제가 남녀고용평등 문제로 토론회에 많이 참석하고 밖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하던 때라 인지도가 조금 있었거든요. 그분이 무학여고 선배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신 부총재가 “남녀고용평등법을 만들려고 뛰어다닌 열정으로 국회에 들어와 직접 법을 만들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셔서 새천년민주당 창당 발기인으로 정치에 입문하게 됐죠. 이듬해 16대 총선 때는 비례대표 39번을 받아 떨어지고,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비례대표로 원내에 진입했어요. 여러 시민·사회 단체 등에 투표권을 줘서 1백 96명의 선거인단을 만들 때 출마했는데, 4위를 해서 비례대표 13번을 받아 당선됐습니다. 

취임 이후 장관직을 수행하며 역점을 둔 일이 무엇인지요. 

17대 국회 환경노동위원으로 활동할 때 정말 가슴 아픈 사고를 접했어요. 5월 5일 어린이날 조선업 분야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가족과 놀이공원에 가려고 집을 나서는데 회사에서 ‘현장에 와서 일해주면 좋겠다’는 전화가 와요. 공휴일엔 일당이 많으니까 아이한테 잠깐 다녀온다고 하고 일하러 나간 그분이 철판에 깔려 사망했어요. 그 일로 산업재해 문제에 집중하면서 그 피해자 중에 유독 비정규직 노동자가 많고, 사망이나 중상에 이를 정도로 피해 정도가 심각하다는 걸 느꼈어요. 지금도 1년에 1천 명 정도가 대형 산재로 목숨을 잃어요. 장관에 취임하자마자 중대 산재의 범위와 타워크레인 중대 재해 예방 대책을 발표하고, 안타까운 사고 소식이 들리면 곧바로 현장을 찾아가 신속한 조치와 원인 규명을 주문했어요. 지난해 9월에는 산재를 당한 노동자들의 입증책임 부담을 완화했죠. 앞으로는 산재가 발생했을 때 원청, 발주자 등 모든 주체의 안전보건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과 근로시간 단축 입법이 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일 겁니다. 또 근로시간 단축 입법이 국회에서 조속히 처리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설득하는 데 공을 들였습니다만, 해를 넘기고 말았습니다. 공공 부문이 민간 부문의 마중물 역할을 하도록 ‘공공 부문 비정규직 대책’을 발표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 안정과 처우 개선을 단계적으로 추진하고 있고요.


김영주 장관은 “최근 실시된 국정 운영 관련 여론조사에서 고용노동부가 정부 부처 33곳 중 헌법재판소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신뢰를 얻었다”며 뿌듯해 했다.

김영주 장관은 “최근 실시된 국정 운영 관련 여론조사에서 고용노동부가 정부 부처 33곳 중 헌법재판소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신뢰를 얻었다”며 뿌듯해 했다.

지난 5개월 동안 장관으로서 기억에 남는 활동 한두 가지를 말씀해주십시오. 

취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STX 조선해양의 하청업체 노동자가 폭발 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사고 현장을 방문했을 때가 기억에 남아요. 노동자의 생명을 지키는 소임을 맡고 있는 장관으로서 너무나 가슴 아프고 큰 책임감을 느끼게 한 사고였죠. 산업 현장의 안전이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에 직결되는 만큼, 올해는 더는 그런 사고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실효성 있는 정책을 추진할 겁니다. 그리고 지난해 9월 전국 노동 현장 10곳에 ‘현장노동청’을 마련하고 담당 공무원과 노무사가 민원을 듣고 상담을 해주도록 했는데, 17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국민들로부터 6천2백 건이 넘는 제안·진정과 노동 상담이 들어 왔어요. 연간 고용노동부로 접수되는 국민 제안 건수의 3~4배 수준이죠. 열린 마음으로 검토해 국민 제안의 66%를 정책에 반영하고, 진정 건은 82%를 조속하게 해결하는 성과를 냈어요. 

한국과 독일의 합자회사인 만도헬라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모두 정규직이 되도록 도운 일과 1호 민원이던 ‘한 식품 회사의 부당한 근로 조건과 임금 체불 문제’를 단번에 해결한 일이 대표적이죠. 

SPC 파리바게뜨 직접 고용 시정 조치도 사회적으로 큰 화제가 됐었죠(고용노동부는 지난해 9월 파리바게뜨에 불법 파견 판정을 내리고 제빵 기사 5천3백여 명을 본사가 직접 고용하라고 지시했다. 협력 업체 소속 가맹점 제빵 기사가 고용 관계도 없는 파리바게뜨 본사의 상시적인 지시를 받는 등 사실상 ‘위장 도급’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경우는 파견법을 위반한 사례죠. 제빵 기사는 본사의 위탁업체가 파리바게뜨 가맹점에 파견하도록 돼 있는데 위탁 업체는 채용하는 모습만 보여주고 실질적인 면접은 본사가 다 하게 했어요. 본사가 제빵 기사의 출근 시간과 승진에까지 부당하게 간섭하고요. 그 문제가 잘 합의가 돼서 어제(1월 11일) 비정규직 제빵 기사들이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됐어요. 그 덕분에 제빵 기사는 앞으로 위탁 업체에 주던 수수료를 떼이지 않아 급여가 14.7% 올라요. 그동안 본사 직원만 가능했던 휴가 등의 후생 복지도 누릴 수 있게 됐고요. 

여성의 경력 단절이 심각합니다. 해법이 있습니까. 

여성 경력 단절의 가장 큰 원인은 출산·육아 문제예요. 기혼 여성 중 20% 이상이 직장에 복귀하지 못하고 경력 단절이 되고 있어요. 한번 경력이 단절되면, 남녀 노동자 간 임금 격차가 확대되고 비정규직이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정부가 여성의 경력이 단절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중요해요. 여성가족부에서도 노력하고 있지만 직장에서 벌어지는 일인 만큼, 고용노동부가 책임감을 갖고 경력 단절이 발생되지 않도록 적극 노력하겠습니다. 무엇보다 여성들이 출산·육아 걱정 없이 편안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작년에 밤낮으로 노력을 기울여 확보한 예산이 바로 이 부분이었어요. 노동자들의 자녀를 위한 직장 어린이집 설치·운영은 지금까지 기업에 많이 의존해왔잖아요. 그러다 보니 중소기업 노동자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출산·육아로 인한 고용 불안에 가장 취약하고 소외돼 있는 것이 현실이에요. 그래서 국가와 지자체가 설치·운영하는 거점형 공공 직장어린이집을 올해 시범 운영해 중소기업의 저소득 맞벌이 노동자 자녀가 최우선으로 수혜를 볼 수 있도록 할 계획이에요. 좋은 성과를 내서 앞으로 더 많은 지역에 공공 직장어린이집이 확대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새해 들어 고용노동부가 6개 부처와 합동으로 내놓은 ‘여성 일자리 대책’의 요지는 무엇입니까. 

일자리야말로 여성들에게 최고의 복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승진이나 임금 차별을 없애고 아이를 낳으면 국가에서 일정 부분 키워준다면 여성들이 남성 못지않은 경제력을 가질 수 있을 거라고 봐요. 그래서 지난해 12월 26일, 현장노동청 등을 통해 접수된 의견이나 여성 단체 등의 생생한 현장 목소리를 담아 관계 부처 합동으로 여성 일자리 대책을 마련했어요. 우선, 직장에 만연돼 있는 성차별적인 관행을 없애 차별 없는 일자리 환경을 조성하려고 합니다. 그동안 정부의 출산·육아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있던 중소기업·비정규직 노동자 등 도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하고, 부모들이 가장 선호하는 양질의 보육 시설인 직장어린이집을 활성화해 경력 단절을 예방하고자 해요. 또 세제 지원 등을 통해 기업의 경력 단절 여성의 재고용을 촉진하고, 가사·돌봄 등으로 분야별 일자리 창출 기회를 확대함으로써 불가피하게 경력이 단절된 여성의 재취업을 지원할 계획이에요. 

육아로 고충을 겪은 경험이 있는지요. 

시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그 덕분에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서 고충을 겪는 일은 없었던 것 같아요(1980년, 2세 연상의 민긍기 창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와 결혼한 김 장관은 슬하에 딸 하나를 두고 있다). 

남편과는 어떻게 만났습니까. 

남편은 사실 사촌 오빠의 친구예요. 키도 180cm가 넘어 체육과 교수냐는 말을 들을 정도인데 운동을 정말 못해요. 근데 운동경기를 보는 걸 좋아해 농구 선수 시절 제 팬이었어요. 제 경기가 있을 때마다 경기장에 응원을 왔죠. 오빠의 친구여서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됐고 편안하게 연애했어요.


김 장관의 서강대 대학원 졸업식 기념사진. 김 장관의 오른쪽 두 어르신은 양가 어머니, 맨 왼쪽은 남편 민긍기 창원대 교수다.

김 장관의 서강대 대학원 졸업식 기념사진. 김 장관의 오른쪽 두 어르신은 양가 어머니, 맨 왼쪽은 남편 민긍기 창원대 교수다.

민 교수는 농구 선수 시절 김 장관의 팬이었다.

민 교수는 농구 선수 시절 김 장관의 팬이었다.

워킹맘으로서 가장 힘든 시기는 언제였나요. 

어머니 말씀이, 딸아이가 어릴 때 저와 비슷한 헤어스타일의 여성을 보면 ‘엄마’라 부르며 따라다녔대요. 그 말을 들었을 때 굉장히 가슴이 아팠어요. 게다가 하나뿐인 딸아이의 유치원 입학식과 졸업식에도 가보지 못했어요. 그리고 딸이 고등학교 1학년 때 힘든 일이 있었는데 전혀 내색을 안 해서 그 사실을 몰랐어요. 나중에 알았을 때 엄마로서 마음이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질 정도로 아팠죠. 딸은 지금 과거의 일을 다 떨쳐내고 잘 지내요. 일하는 엄마를 많이 이해해주고요. 


지난해 장미 대선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함께 유세를 하고 있는 김영주 장관(오른쪽). 당시 김 장관은 문 후보의 선대위 서울시당을 이끌었다.

지난해 장미 대선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함께 유세를 하고 있는 김영주 장관(오른쪽). 당시 김 장관은 문 후보의 선대위 서울시당을 이끌었다.

청년 실업률이 통계 집계를 시작한 1999년 이래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집계된 15~29세 실업률은 전년 동기 대비 0.1%포인트 늘어난 9.2%로 청년 실업자 수만 39만 5천 명에 달했습니다. 정부 차원의 해결책이 마련돼 있는지요. 

우리 청년들을 보면 참 마음이 무겁고 안타까워요. 20년 전부터 지속되어온 청년 실업 문제는 정말 풀기 어려운 과제라고 생각해요. 특히 최근 청년들의 실업률이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나 이번 겨울이 청년들에게 더 춥게 느껴질 것 같아요. 정부는 지금 일자리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청년 고용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요. 청년구직수당을 도입해 취업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있고, 중소기업에 취업한 청년들이 2년 동안 3백만 원을 저축하면 1천6백만 원의 목돈을 마련할 수 있도록 돕는 ‘청년내일채움공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성장 유망업종의 중소기업은 청년 3명을 채용할 경우 한 명의 임금을 3년간 지원받을 수 있고요. 올해 약 3조 원에 이르는 청년 일자리 예산으로 이러한 지원을 확대해나갈 겁니다. 또 현재 청년 일자리 사업이 현장 수요에 맞게 이뤄지는지 점검하며 청년들이 느끼는 고충을 반영한 ‘청년 일자리 대책’을 준비하고 있어요. 이를 위해 매주 청년유니온 등과 회의를 진행해요. 2월 중 대책을 발표하려고 합니다. 청년 일자리는 청년 개인의 미래와 삶의 질을 결정하기도 하지만, 국가의 경제 성장 잠재력과 직결된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곧 봄이 오는데, 우리 청년들도 원하는 일자리를 얻어 봄날의 청춘을 즐길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이 시대의 청춘과 여성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뭔가요. 


흑수저가 금수저가 될 수 없는 시대라고들 하는데, 저는 아직 기회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를 보세요. 저는 우리 사회 비주류의 길을 걸어왔어요. 운동을 홀대하던 시절에 농구 선수로 뛰었어요. 성차별이 만연하고 노동 환경이 척박한 곳에서 일해야 했어요. 게다가 40대에 방송통신대를 졸업하고 50대에 뒤늦게 대학원을 다녔어요. 그럼에도 고용노동부 최초의 여성 장관이 되지 않았습니까. 학벌도, 연고도 내세울 게 없는 저를 이 자리에 있게 한 것은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고 깨달으며 배우고 익힌 ‘전문성’이라고 봐요. 비주류로 살아온 제 인생이 고뇌하는 청춘과 여성들에게 희망의 마중물이 되면 좋겠어요. 청년과 여성이 낡은 사회가 만든 높은 장벽을 보고 주눅 들거나 지레 겁먹지 말고 의지를 갖고 자신의 길을 펼쳐나가기를 응원합니다.


photographer 조영철 기자 designer 최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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