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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여의도에서 김상혁

editor 김지은

입력 2018.01.04 14:28:12

원조 꽃미남 밴드 클릭비, 그리고 음주 사고. 십수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김상혁을 따라다니는 꼬리표는 여전히, 무수히 많다. 평생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쯤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마냥 주저앉아 인생을 낭비할 수만은 없다. 여전히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도전해보고 싶다. 사업가로, 방송인으로 인생 제2막을 설계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다시 여의도에서 김상혁
“안녕하세요! 클릭비입니다.” 

“현재 몇 명 들어와 있나요?” “열다섯 명입니다. 하하.” 

어딘지 모르게 어색해진 표정과 몸짓, 소파에 옹기종기 모여앉은 네 명의 남자가 저마다 손에 쥔 휴대전화를 힐긋거리다 이내 카메라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클릭비를 그리워하는 분들에게 지금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는 그들, 이제는 서른을 훌쩍 넘긴 클릭비의 멤버들이다. 2017년 12월 3일, 이들이 SNS를 통해 진행하고 있는 웹 예능 ‘클릭비의 월차’ 촬영 현장이 MBC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를 통해 공개되면서, 그들에 관해 잊고 지냈던 기억들이 하나둘 되살아났다. 

‘클릭비의 월차’는 클릭비 멤버들이 각자의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소중한 친구들과 여행을 떠난다는 콘셉트다.
 
1999년 데뷔와 동시에 숱한 화제를 몰고 왔던 원조 꽃미남 밴드, 갓 스물을 넘긴 패기 가득한 이 남자들에게 거칠 것은 없어 보였다. 일곱 명의 멤버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던 이가 보컬과 베이스 기타를 맡은 김상혁(35)이었다. 그의 때 묻지 않은 솔직함과 풋풋함, 어눌한 듯 거침없이 쏟아내는 입담은 신선함을 넘어 충격에 가까웠다. 흔히 말하는 ‘요즘 젊은 애들’의 특징을 오밀조밀 쫀쫀하게 버무려놓은 듯한 모양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인기에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스케줄에 떠밀려 다녔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도 없었지만, 그런 것들이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 알 필요조차 없었던 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2005년 음주 사고로 돌이킬 수 없는 터널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그랬다. 

‘술을 마셨지만 음주 운전은 하지 않았다.’ 

그가 운영하는 육회 주점에는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던 문구가 큼지막하게 써져 있다. 딱히 자랑할 만한 일도 아닌, 오히려 지우고 싶기만 한 과거를 새삼스레 적어둔 이유는 무얼까. 

“저한텐 정말 지우고 싶은 과거 중 하나죠. 하지만 그게 저 혼자 지운다고 해서 지워지는 건 아니더라고요. 지금도 비슷한 변명을 하시는 분들이 나타날 때마다 제가 한 이야기가 강제소환되곤 해요. 어쩌면 제가 평생 안고 가야 하는 짐이기도 하겠죠. 하지만 앞으로의 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철없던 김상혁이 어떻게 해나가는지 지켜봐 주셨으면 하는 마음도 있어요. 저에겐 결코 웃어넘길 수 없는 뼈아픈 일이지만 아무 생각 없이 들른 손님들께서는 한 번쯤 웃을 수도 있는 문구일 거 같고, 음주 운전하지 말라는 메시지도 전할 수 있을 테니까요.” 

사고가 뺑소니였나 아니었나, 음주 사고였나 아니었나를 두고 여전히 논란이 분분하지만, 사연이 어찌 되었건 그의 발언은 대중의 공분을 샀다. “술을 마신 후이긴 했지만, 음주 운전에 걸릴 정도의 수치는 아니라는 뜻이었다”는 뒤늦은 해명은 약이 되지 못했다. “현장에서 신분을 밝히고 피해자에게 사과를 했으나 멱살을 잡혀 자리를 빠져나왔다”는 변명 같은 해명도 사고에 대한 적절한 대처로는 인정받지 못했다. 대중이 거는 기대와 사랑이 너무 컸던 탓일 수도 있겠다. 착하고 솔직한 것이 매력이었던 그가 음주 운전을 했고, 앞뒤가 맞지 않는 말로 변명을 한다 생각한 대중은 그에게 보낸 애정만큼이나 큰 실망과 배신감에 등을 돌렸다.


대중과 소통하는 행복, 포기했지만 놓지는 못해

“처음에는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시간만 허비했던 것 같아요. 자책하고 또 자책하면서. 무얼 해도 비난을 받을 거 같으니까 겁이 났던 거예요. 그런데 가만히 있다고 해서 그것이 곧 반성이고 자숙인 건 아니잖아요.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게 되었어요. 자책만 하고 있는 건, 제가 그렇게 망가져 있는 동안에도 여전히 저를 지켜봐 주고 힘이 되어주려 한 사람들에게 누가 되는 일이더라고요.”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어머니의 사업 실패였다. 많은 것을 잃고서야 찾아온 간절함. 더 이상 무작정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는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꼬인 실타래를 푸는 것부터가 너무 어려웠지만, 조심스럽게 용기를 냈다. 

처음부터 모든 사업이 잘되었던 것은 아니다. 이런저런 실패를 경험하기도 하면서 소소하게 자리를 잡은 것이 지금의 수제 맥주 피자펍과 육회주점, 그리고 맞춤 전문 여행사다. 

“제가 멘탈이 망가져 아무것도 못 하고 있을 때도 엄마는 별말씀 없이 그저 ‘술 조심하라’고만 하셨어요. 누군가의 거창한 명대사 한마디 때문에 삶이 통째로 바뀌거나 그러진 않았어요. 제 인생은 드라마가 아니니까. 하지만 분명한 건 제가 열심히 살아야겠다, 다짐했던 이유 중 가장 큰 부분이 어머니셨어요.” 

사업을 시작하면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돈보다 ‘일을 하고 있다’는 성취감, 그리고 사람이다. 사고 이후 꾸준히 봉사활동을 펼치며 자숙의 시간을 가졌지만, 그가 바라던 방송 복귀의 꿈 만큼은 좀처럼 이뤄지지 못했다. 기회가 찾아올 때마다 괜한 희망을 가졌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돌아서기를 수차례, 가뜩이나 움츠러들었던 마음은 더 작고 초라해졌다. 그랬기에 그를 믿고 함께해준 사업 파트너들이 더 고맙고 소중하다. 

“뭔가 막연하기만 했던 때, 나 혼자였으면 시작도 못 했을 일들을 함께해준 동지 같은 사람들이에요. 열심히 노력한다 해도 그동안 허비한 긴 시간을 모두 메울 수는 없겠죠. 하지만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비로소 제가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일하고 있구나, 사회 구성원으로 다시 살아갈 수 있겠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기도 했고요.” 

사업이 안정되면서 그에게는 또 다른 꿈이 생겼다. 

요식업계에서 차별화한 좋은 브랜드를 만드는 것. 그의 롤모델은 백종원이다. 

“백종원 씨의 음식점 하면 딱 떠오르는 브랜드 이미지가 있잖아요. 저렴하면서도 맛있는, 가성비 좋은 음식점? 제가 생각하는 가게의 콘셉트는 좀 더 트렌디한 느낌이에요. 맥줏집은 많지만 여기서만 맛볼 수 있는 수제 맥주와 피자가 있어서 더 생각나는 집? 무엇보다 가게가 가까이 모여 있으면 운영하기도 편하고, 저만의 브랜드 같은 느낌도 낼 수 있고 그러지 않을까요?” 

더 궁극적으로는, ‘김상혁이 하는 가게라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신뢰할 만한 이미지를 쌓아 올리는 것이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꽤나 성공적이다. 

최근에는 방송 출연도 조금 늘었다. 2017년 12월 14일 김상혁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이번 주 방송 스케줄 많아서 좋다. 3개 했음. 인터뷰까지 4개네. 옛날엔 하루에 적으면 4개였는데. 

그래도 너무 감사합니다. 관계자 여러분들’이라는 글을 게재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현재 채널A ‘황금나침반’, tvN ‘나의 영어 사춘기’ 등에 출연하고 있으며 Mnet ‘너의 목소리가 보여’ 시즌5 촬영에도 합류할 예정이다. 

“예전에는 매니저가 ‘찍고 와’ 그러면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카메라 앞에 서고 그랬어요. 어릴 때 엄마가 ‘학교 다녀와 ’그러면 ‘그래, 엄마가 학교 다녀오라고 하셨으니 공부도 열심히 하고 친구들이랑 사이좋게 지내야지’ 이런 생각 없이 그냥 학교에 간 것처럼요. 그땐 방송도 일상이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그때의 10분의 1도 방송을 안 하고 비중도 작지만 매 순간 즐겁고 열심히 하려 해요. 기회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감사하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물론 과장되고 가식적인 모습을 보여드리려는 건 아니에요. 꾸미지 않은 12년 전, 20대 초반의 솔직한 제 모습을 좋아해 주셨으니까 이제는 30대 중반의 솔직한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드리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요.”

그는 인터넷 댓글을 많이 보는 편이 아니다. 예전엔 아예 들여다보지 않았는데 요즘엔 그나마 조금 나아졌다. 갑자기 자신의 이름이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뜨면 화들짝 놀란 가슴에 무섭고 두렵기도 했고, 한동안은 자신에 관한 기사가 떠도 아무런 댓글조차 달리지 않아 슬펐던 적도 있다. 그러다 이제는 관심이 없으면 댓글조차 달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막연히 깨닫게 된 듯하다. 때로 악플조차 감사하고 소중할 때가 있다. 

어차피 악플이 달린다고 해서 딱히 억울한 마음이 드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가 저지른 잘못에 대한 당연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상기하게 될 뿐이다. 12년의 긴 시간은 그를 여물게 하고 성숙하게 했다. 이만하면 다시 대중 앞에 설 마음의 준비는 다 된 듯하다. 

“조금씩 저를 다시 봐주시는 분들이 생기면서 저도 제 모습을 찾게 되고, 용기를 얻게 된 거 같아요. 소통하는 즐거움도 알게 되었고요. ‘아, 나는 어쩔 수 없는 연예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연예인이라고 해서 대접을 받고 싶다는 의미가 아니에요. 단지 내가 해야 하는 역할이 그런 것이구나, 생각하게 되는 거죠.”
 
그의 이런 모습을 가장 좋아해 주는 사람은 역시 그의 어머니다. 

정작 당신 아들에겐 특별히 잘한다, 못한다 말하지 않으면서도 방송에 아들이 나올 때마다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 상혁이 나온다. 방송 좀 봐” 자랑을 하곤 하신다. 아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이 마냥 기쁘고 기특해서다. 

‘클릭비의 월차’는 바이럴 마케팅 관련 사업을 하고 있는 노민혁이 아이디어를 냈고, 당장에 일정이 맞는 김상혁과 노민혁, 우연석, 강후가 함께했다. “누군가에게는 추억을, 누군가에게는 힐링을 가져다주는 프로그램”이라는 그의 설명처럼 방송 초기 긴가민가하며 호기심을 보이던 팬들도 이제는 하나둘 옛 추억을 떠올리며 집중하기 시작했다. 

멤버들은 당장은 아니더라도 프로그램이 성장해가면서 TV 방송으로도 공개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조심스레 내비쳤다. 

지난 2015년 콘서트를 마지막으로 좀처럼 한자리에 모일 기회를 갖지 못하던 멤버들의 관계도 이번 촬영을 계기로 좀 더 돈독해졌다. 당장은 네 명만이 촬영하고 있지만, 각자의 사정으로 촬영에 참여하지 못한 하현곤, 유호석, 오종혁도 함께하고픈 마음만큼은 모두 같다는 것이 김상혁의 전언이다. 

“2019년이 데뷔 20주년 되는 해거든요. 그때에 맞춰 콘서트든 뭐든 해보지 않을까 싶어요. 팬들에게 매번 기다려달라, 기다려달라 부탁만 해오던 터라 멤버들 사이에서도 이제는 ‘기다려달라고 말하는 것조차 미안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으니까요.”


이제는 책임감을 보여줘야 할 때

서른을 훌쩍 넘어 중반으로 접어든 나이. ‘성공’을 이야기하기엔 이르지만, 그가 사회의 일원으로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이제는 좀 더 안정적인 삶에 욕심이 나지 않을까 싶어 결혼에 대해 물었다. 

“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그동안 여자친구를 만날 상황이 되지 못했던 게 사실이에요. 연애를 하게 되면 어쨌든 상대에게 마음을 쏟고 신경을 많이 써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할 걸 아니까 아예 만나지 않았던 거고요. 물론 결혼이 모든 준비가 완벽하게 되었을 때만 할 수 있는 거라곤 생각하지 않아요. 준비가 된 상태면 좋지만 그 전에 결혼할 수도 있고, 그렇다면 서로가 으쌰으쌰 하면서 힘을 내 더 잘될 수도 있을 테니까요. 그런 점에서 저는 결혼이나 남녀 관계의 기본은 의리인 것 같아요. 부모님이 돌아가신다 해도 남아 있게 되는, 형제자매가 각자의 가정을 꾸린 후에도 오롯이 내 가족으로 남게 되는 사람이 배우자니까. 정말 서로를 영혼의 동반자, 솔메이트라 생각할 만큼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다면,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그땐 결혼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는 더 이상 뒤만 보고 살아가지 않는다. 누구보다 빠르고 혹독했던 인생의 경험, 후회가 남겨졌다 해도 열심히 힘차게 걸어가야 할 앞날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말로는 전할 수 없는 못다 한 이야기들, 서른다섯 살의 김상혁이 보여줄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해본다.“


director 정희순 photographer 지호영 기자 designer 김영화


여성동아 2018년 1월 64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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