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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킴이라는 패션 판타지

editor 안미은 기자

입력 2018.03.07 14:10:57

민주킴이라는 패션 판타지
2015년 영국 런던에서 ‘민주킴(MINJUKIM)’ 첫 컬렉션을 가진 뒤 한국으로 돌아와 삼청동에 자리를 잡았다. 해외에서 데뷔해 한국에 돌아와 정착하는 건 꽤 드문 이력 아닌가. 

패션을 처음 시작한 곳이 한국이다. 중·고등학교 시절을 뉴질랜드에서 보내고 한국의 디자인 전문 교육기관인 사디(SADI)에서 3년간 공부한 다음 벨기에로 날아갔다. 앤트워프 왕립예술학교를 다니면서 여러 콘테스트에 수상해 이름을 알렸고, 운 좋게도 컬렉션 기회가 빨리 찾아왔다. 컬렉션을 치르면서 브랜드를 위해 한 곳에 정착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주저 없이 한국행을 택했다. 

한국에 와보니 좋은가. 

해외에 오래 살아도 이방인은 어디까지나 이방인이다. 한국은 내 집같이 포근하다. 사디에서 공부할 때 인연이 된 패턴 선생님을 다시 만나 작업하면서 한국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선생님과는 오프닝 세레머니와의 협업 프로젝트를 통해 전부터 합을 맞춰온 사이라 호흡이 잘 맞는다. 내 옷의 방향성을 가장 잘 이해하시는 분이다. 벨기에에 있을 땐 드리스 반 노튼 출신의 유명 패턴사와 샘플링 작업을 했는데, 지금보다 두 배는 더 힘들었다. 영어권 국가가 아니다 보니 언어적인 한계도 있고. 

반면 외국에 머물고 싶은 마음은 없었나. 런던, 파리, 뉴욕 등 세계적 패션 도시에서 서울로 베이스를 옮기면서 중심에서 멀어지는 기분이 들지 않았을까. 

매 시즌 파리에서 쇼룸을 하고 있어서 그런가? 활동하는 데 큰 차이는 없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앤트워프 때부터 친하게 지낸 실력파 친구들과 크루들을 자주 만나지는 못한다는 거다. 

사디에서 3년, 앤트워프에서 4년, 패션만 7년을 공부한 셈이다. 패션이 정말 운명처럼 느껴졌나 보다. 

그런 건 아니고, 원래 꿈은 만화가였다. 패션을 시작하게 된 건 순전히 부모님의 권유에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이미 오클랜드 대학교 회화과에 합격한 상태였다. 그런데 부모님께선 내가 뉴질랜드에 정착해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봐 겁이 나셨나 보다. 수능 없이 응시할 수 있는 디자인 전문기관이 있다면서 사디를 추천하셨다. 패션을 잘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3년을 보냈다. 그러다 벨기에 앤트워프에 가면서 확신을 가졌다. 패션이 아트와 만나면 이렇게 재미있어질 수도 있구나 하고. 


민주킴이라는 패션 판타지
민주킴이라는 패션 판타지
앤트워프에서 정체성을 찾았다고 할 수 있겠다. 국내와 해외는 교육 방식에서 어떤 차이가 있나. 

접근 방식부터 다르다. 각자 장단점이 있는데, 사디에선 디자인, 패터닝, 소잉 같은 기술적인 부분을 가르친다. 기본기를 다지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앤트워프는 기술적인 것보단 좀 더 아트적인 시각을 원한다. 그래서 소잉을 잘하는 학생이 드문데, 사디에서 배운 실력으로 ‘소잉 천재’가 될 수 있었다. 

그래픽의 귀재 아닌가? 민주킴! 하면 떠오르는 패턴이 있다. 디자인을 할 때 패턴 개발에 가장 신경 쓰는 편인가. 

패턴보단 컬러와 소재다. 그래서 그래픽이 중요하다. 그래픽을 다룰 줄 알아야 소재를 개발하고 패턴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아이디어는 일기장에서 나온다. 

이번 2018 S/S 컬렉션은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의 시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들었다. 회화적인 터치가 느껴지는 패턴과 나른하고 바스락거리는 소재들, 풍성한 실루엣 같은 것이 한 편의 시처럼 어우러졌다. 

보들레르의 시 ‘만물 조응’을 읽으면서 머릿속으로 풍경 하나가 떠올랐다. 그곳에 사는 여자 아이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컬렉션의 시작이었다. 매 시즌 그렇게 작업한다. 캐릭터를 만들고 이야기와 살을 붙여 나가는 방식으로. 마치 게임 ‘심즈’처럼, 내가 만든 세상에 주인공을 툭 하고 던져놓는다. 

독특하게도 프레젠테이션을 서울 을지로 ‘커피한약방’에서 진행했다. 굉장히 묘한 분위기였다. 

해외 바이어들의 반응이 예상보다 더 좋았다. DDP를 벗어나 어느 작은 골목에 위치한 빵집 같은 데서 프레젠테이션을 한다고 하니까, 더 신비롭게 다가왔나 보다. 옷보다 커피한약방부터 찍는 사람들이 많더라(웃음). 커피한약방 프레젠테이션은 친언니의 아이디어다. 동양적인 분위기의 이번 S/S 컬렉션과 잘 어우러졌다. 언니는 신세계에서 VMD로 7년간 일한 경험이 있다. 지금은 민주킴 옷을 예쁘게 포장해서 상품화하는 일을 하고 있고. 

해외 바이어들은 한국의 신진 디자이너들에게 기대하는 부분이 명확하게 있더라. 젊고 신선해야 한다는. 어떻게 생각하나. 

아무래도 K팝 문화가 있다 보니 젊은 친구들이 가볍게 즐길 수 있는 트렌디한 옷을 원한다. ‘힙’하다는 표현이 적절하겠다. 이런 힙한 문화가 여러 분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개인적으론 아쉬운 부분이 있다. 너무 한 가지 스타일에 치중돼 개성 강한 디자이너들이 설 자리가 없다. 대중이 좀 더 다양한 스타일을 추구할 수 있도록, 민주킴이 그런 자리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하지 않을까. 

그럼 민주킴은 어떤 연령대의 사람들이 입어줬으면 하나. 

20대 후반부터 끝까지? 실제로 또래 친구들과 어머니는 물론 교수님까지 내 옷을 즐겨 입는다. 다양한 연령층을 아우르기 위해선 소재나 실루엣에 진중해야 한다. 그게 무너지면 민주킴이 가지고 있는 귀여운 디자인 요소들이 유치하게 변해버린다. 드리스 반 노튼처럼 20대부터 시작해 나이 들어가면서까지 입는 브랜드로 키우고 싶다. 

‘2013 H&M 디자인 어워드’ 대상, ‘LVMH 프라이즈’ 세미파이널리스트, 오프닝 세레모니 도시 프로젝트, 디즈니와의 협업, 걸 그룹 ‘레드벨벳’의 스타일링 디렉팅까지 너무 노련해서일까. 오죽하면 3년 차 브랜드임에도 민주킴을 중년 브랜드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화려한 이력이 부담스러울 때는 없나. 

그런 건 별로 없다. 운이 좋았던 거라고 생각하니까. 학생 때부터 컬렉션을 시작했고, 해외 매스컴을 타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브랜드와의 협업이 이뤄졌다. 3년 동안 총 일곱 시즌을 보냈으니 마냥 어리지도 않다. 지금은 브랜드를 성숙하게 다듬어야 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요즘 시대엔 디자이너들에게 많은 능력을 요구한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있나. 

실력은 기본이고, 자기를 꾸미고 내세울 줄도 알아야 한다. 웹사이트 디자인과 룩 북 작업, SNS까지 모두 잘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면에선 조금 무식해야 한다. 겁 없이 덤빌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패션에만 머물지 않고 아트, 리빙, 인테리어 등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을 해보는 게 중요하다. 이런 활동이 영감으로 이어지고 더 재밌는 일을 가져다준다. 

다음 인터뷰이는 누가 되면 좋겠나. 

‘부리(Bourie)’의 은혜 언니. 내가 생각할 때 국내에서 패턴을 가장 잘 가지고 노는 디자이너다. 너무 잘해서 가끔 무서울 정도다.


#minjukim
#김민주
앤트워프 왕립예술학교 출신 디자이너. 학생 때 이미 한국인 최초로 ‘2013 H&M 디자인 어워드’ 대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다. ‘오프닝 세레머니’ ‘디즈니’ 등 국제 기업과의 콜래보레이션은 학생 때부터 그를 따라다니는 수식어. 2015년 영국 런던에서 첫 컬렉션을 가진 뒤 한국과 파리를 오가며 매 시즌 새로운 컬렉션으로 국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photographer 지호영 기자 designer 최정미
사진제공 민주킴 제품협찬 민주킴 헤어 윤성호 메이크업 이아영


여성동아 2018년 3월 6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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