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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겹살 20%↑, 냉면 1만원 ‘미친 물가’ 된 이유

문영훈 기자

2022. 05. 21

4월 소비자물가지수가 13년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올해 물가는 계속 오를 것”이라 전망한다. 지난해 10월 미국에서 시작한 물류 대란부터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까지, 바다 건너에서 벌어진 일이 ‘밥상 물가’ 상승으로 이어진 과정을 살펴봤다.

“밀가루 한 포대(20㎏)가 1만원이나 올랐어요. 한 통(18L)에 3만원도 안 하던 식용유는 이제는 6만원을 달라고 하네요.”

5월 17일 서울 서대문구 영천시장에서 39년째 꽈배기를 파는 윤영섭(66) 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한 달 전 사회적 거리두기 전면 해제로 시장을 찾는 이들은 늘었지만 결국 손에 쥐는 돈은 비슷하다. 윤 씨는 “가격을 올리고 싶어도 가게를 오래 찾아준 손님들 때문에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며 “뉴스 보면 인도네시아는 팜유를, 인도는 밀 수출을 금지했다는데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5월 3일 통계청이 발표한 4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4.8% 상승했다. 이는 2008년 10월(4.8%) 이후 13년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글로벌 공급 대란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각종 외부 요인이 작용했다. 정부는 물가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두겠다지만, 전문가들은 “올해 물가는 계속해서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한다.

“월급 빼고 다 올랐다”

5월 17일 서울 서대문구 한 중형마트의 식용유 매대. ‘식용유 대란’ 우려가 커지자 농림축산식품부는 “인도네시아 팜유 수출 금지로 인해 일시적으로 수요가 늘어난 것일뿐 식용유 공급에는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5월 17일 서울 서대문구 한 중형마트의 식용유 매대. ‘식용유 대란’ 우려가 커지자 농림축산식품부는 “인도네시아 팜유 수출 금지로 인해 일시적으로 수요가 늘어난 것일뿐 식용유 공급에는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통계청이 발표한 물가지수 중 눈에 띄는 것은 전년 동월 대비 5.7% 상승률을 보인 생활물가지수다. 전체 460개 품목 가운데 구입 빈도가 높고 지출 비중이 커 가격 변동을 민감하게 느끼는 141개 품목으로 구성된 항목이다. 국민이 실제 느끼는 ‘체감 물가’인 셈. 상승폭도 점점 가팔라진다. 지난해 같은 달 대비 생활물가지수 상승률은 1·2월 4.1%였지만 3월 5%로 오른 뒤 4월 5.7%를 기록했다. 소비자들은 허리띠를 졸라매는 수밖에 없다.

“월급 빼고는 계속 오른다. 전에는 마트를 수시로 다녔는데 생활비를 절약하려고 필요한 게 생길 때 동네 슈퍼를 이용한다. 가급적 새로 구입하기보다 냉장고에 남은 식재료부터 처리하려고 한다. 기껏해야 몇천원 차이지만 기름값이라도 아끼려고 앱으로 검색해 휘발유를 저렴하게 파는 주유소를 찾아가는 게 습관이 됐다.”



경기 용인시에 거주하는 김혜정(56) 씨의 말이다. 그는 “10만원어치를 사도 먹을 게 없다”고 덧붙였다. 그의 이야기대로 1년 사이 장바구니물가는 크게 올랐다. 축산물품질평가원 유통정보에 따르면 5월 18일 기준 삼겹살 1㎏당 가격은 2만8290원으로 지난해 같은 날(2만3740원)에 비해 19.2% 올랐다. 1년 사이 닭(육계)은 11.8%, 수입 소고기(미국산 갈비)는 무려 77.8% 비싸졌다. 농수산물도 마찬가지다. 산물유통정보(KAMIS)를 보면 5월 18일 기준 양배추 1포기는 1년 사이 53%(1633원), 명태(냉동) 1마리당 가격은 30.2%(771원) 올랐다.

식재료 가격 상승은 음식 가격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4월 기준(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 종합포털) 자장면 가격은 6146원으로 1년 전에 비해 14.1%(761원) 비싸졌다. 처음 1만원 선을 돌파한 냉면은 9.5%, 김치찌개는 5.7%, 칼국수는 10.8%의 가격상승률을 보였다. 영천시장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임모(57) 씨도 5월부터 냉면 가격을 1000원 올렸다. 7000원 하던 냉면은 8000원이 됐다. 임 씨는 “채소 등 부재료 값이 전부 올랐다”며 “손님이 줄까 걱정되지만 가게를 운영하려면 어쩔 수 없는 결정”이라고 말했다.

직장인도 호주머니 사정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서울 광화문으로 출퇴근하는 6년 차 직장인 권모(30) 씨는 “입사할 때만 해도 1만5000원으로 점심에 커피까지 해결할 수 있었는데 이제 2만원은 잡아야 한다”며 “반면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점심값은 5000원으로 전혀 오르지 않았다. 이 돈으로는 아이스아메리카노만 겨우 마실 수 있다”고 말했다.

지속되는 물가 상승은 가계에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이는 전체 소비 지출에서 식비 지출이 차지하는 비율을 나타내는 엥겔지수를 보면 알 수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이 3월 4일 발표한 ‘2021년 국민계정으로 살펴본 가계소비의 특징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11%대를 유지하던 엥겔지수는 2020년 12.85%로 껑충 뛰어올랐다. 지난해 엥겔지수는 12.86%로 여전히 12% 후반대에 머물고 있다. 이는 2000년 이후 21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물류 대란에 우크라이나 침공까지

물가는 왜 이렇게 가파르게 올랐을까. 물가 상승의 원인은 대내적 요인과 대외적 요인으로 나뉜다. 대내적 요인으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엔데믹(감염병 주기적 유행) 기대로 인한 소비 수요 증가가 있다. 롯데·신세계·현대 등 ‘빅 3’ 백화점 1분기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전년 대비 큰 폭으로 커진 것이 이를 방증한다.

여기에 대외적 요인이 겹쳤다. 미국발(發) ‘물류 대란’이 그 시작이다. 2년 전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유행) 선언 이후 수요가 줄며 전 세계 공급망은 크게 약해졌다. 지난해 하반기 세계 경제가 회복 추이를 보이며 살아난 수요를 공급이 따라잡지 못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로 택시 승객이 늘어 밤마다 택시 잡기 전쟁이 치러지는 상황이 지난해 10월부터 전 세계 물류 시장에 벌어진 것.

물류 대란은 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을 끌어올렸다. 2021년 6월 1일 배럴당 67.72달러였던 두바이유는 10월 11일 80달러 선을 돌파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발표한 곡물 수입단가지수는 6분기 연속 상승세다. 2021년 1분기 100.6을 기록한 식용 곡물 수입단가지수는 4분기 139.6을 기록했다. 사료용 곡물 수입단가지수 역시 99.8에서 135.6으로 뛰었다. 이는 2015년 평균을 100으로 놓고 비교한 수치다. 유가·곡물 가격 상승은 시차를 두고 공산품 가격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2월 24일(현지 시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원자재 가격 상승에 기름을 부었다. 3월 8일 두바이유 배럴당 가격은 123.7달러까지 치솟았다. 전 세계 밀 수출량의 29%를 차지하는 두 국가 간 전쟁에 밀가루를 비롯한 곡물 가격도 급등세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집계하는 세계 식량가격지수는 지난 3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세계 곡물 시장이 요동치자 식량 창고 역할을 하는 국가에서 수출 금지 조치가 나오기 시작했다. 자국 시장부터 안정화하기 위해서다. 4월 28일(현지 시간) 인도네시아 정부는 팜유를, 5월 13일(현지 시간) 인도 정부는 밀 수출을 막았다. 갖은 악재가 포개지자 소비자들의 마음도 들썩인다. 최근 ‘식용유 대란’이 그 사례다. 온라인쇼핑몰과 대형마트 등에서는 1인당 판매 개수를 제한하기도 했다. 서울 서대문구 한 중형 마트에서 공산품을 담당하는 A 씨는 “대형마트처럼 1인당 개수 제한을 두고 있지는 않지만 재고량을 계속 점검 중”이라고 말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5월 18일 식용유 5개 공급업체와 식용유 수급 상황 점검 회의를 열고 공급망 안정화 방안을 논의했다.

“물가 더 오른다”

5월 16일 서울 한 대형마트를 찾은 시민이 밀가루 매대를 바라보고 있다.

5월 16일 서울 한 대형마트를 찾은 시민이 밀가루 매대를 바라보고 있다.

5월 10일 새로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시작부터 어려운 과제를 떠안게 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식 다음 날 열린 첫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물가가 제일 문제”라며 “물가 상승 원인을 파악하고 원인에 따른 억제 대책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통화당국은 금리 인상 카드를 꺼내 들었다. 5월 16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우리나라도 앞으로 기준금리를 0.5%p 인상하는 ‘빅스텝’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금리 인상으로 경기가 냉각되더라도 물가를 잡는 게 우선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부와 통화당국의 노력에도 물가를 잡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유가 상승 등으로 발생하는 생산자물가 상승이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전부 연계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원유·곡물 등 원자재 가격 인상이 공산품 가격에 완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강 교수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파괴된 곡창지대가 넓으면 넓을수록 곡물 가격 상승이 장기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문제는 글로벌 공급망”이라며 “코로나19로 망가진 공급망이 아직 회복 단계에 있는 데다 중국의 봉쇄정책으로 그 시간이 더 오래 걸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물가 안정을 위한 노력과 동시에 취약계층 보호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물가가 오르면 소득 대비 소비 비중이 큰 저소득층부터 타격을 받는다. 우 교수는 “유류세 인하뿐 아니라 바우처 지급 등 취약계층을 위한 다양한 복지정책을 검토해야 한다”며 “앞으로 두 세 번 더 위기가 찾아올 것을 대비해 재정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 기회를 통해 식량 수입국을 다변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은 연간 1700만t의 곡물을 수입하는 세계 7위의 곡물 수입국이다. 곡물 자급률은 19.3%(FAO 2020년 기준)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곡물 가격이 계속 오르면 다른 국가에서도 수출 제한 조치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며 “이번 기회에 정부가 선제적으로 새로운 수입 통로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미친물가 #물류대란 #여성동아

사진 문영훈 기자 게티이미지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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