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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군인은 여성 청소년에게 위로받아야 하나

글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2022. 01. 20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남은 ‘군대’는 질문의 가능성을 막는다. 군대에 가야 한다고 하니 가고, 위문편지를 써야 한다니 쓴다. 낡은 군사문화로 착취와 차별을 정당화하며 시스템은 유지된다.

국가는 ‘국가를 지키는 사람’을 징집하면서 그들의 안전을 보장하지도, 적절한 임금으로 보상을 하지도 않는다. 충분한 보상 대신 안보에 대해 말할 자격 있는 ‘진짜 국민’으로 승인한다. 지키는 사람과 지킴을 받는 여성, 장애인 등 사이의 위계를 만들고 차별을 정당화한다. 그리고 여성은 군인 사기를 북돋는 수단으로 동원된다.

최근 발생한 위문편지를 둘러싼 논란은 이러한 현실을 잘 보여준다. 1월 11일 한 장병이 서울 한 여자고등학생으로부터 받은 위문편지를 온라인에 공개했다. 편지에는 조롱으로 느낄 수 있는 표현이 포함돼 있었다. 편지를 쓴 학생 신상 정보가 온라인에 퍼지며 도 넘는 비난이 이어졌다. 봉사활동을 빌미로 학생들에게 위문편지를 쓰게 하는 것이 맞느냐는 지적도 잇따랐다. 여고의 단체 위문편지 쓰기를 금지해달라는 내용의 글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등록돼 1월 18일 기준 14만 명의 동의를 받았다.

군인은 왜 여성으로부터 위로받아야 하는가. 여성에게 위문편지를 쓰라고 요구하는 것은 여성을 위로를 수행하는 돌봄 제공자로, 군대에 끌려갈 수밖에 없는 남성을 돌봄 수혜자로 보는 성역할 고정관념에 근거를 두고 있다. 경찰을 비롯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는 다른 직군 사람을 우리는 여성들의 위문편지나 공연 등의 방식으로 위로하지 않는다. 오직 군인에게만 이런 방식이 동원된다는 건, 달리 말하면 우리 사회가 그만큼 군인에게 적절한 대우를 해주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 몫은 여성들에게 떠넘겨 놓은 상태다. 여성들에게 고마워해야 할 역할을 부여한 것이다.


스쿨미투 이후 학교는 달라졌나

위문편지 논란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 내용 일부.

위문편지 논란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 내용 일부.

마음으로 고마워하는 걸 넘어 여성 청소년들에게 ‘진심이 가득 담긴 편지’를 써주길 바라고 장기 자랑을 준비해 군대 위문공연을 와주길 바란다. 강제 징병 대상이 아닌 여성이, 병역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남성을 위해 그 정도는 해도 된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번 사건 관련 온라인 글에서 ‘몇 분 투자해 편지 쓰고 군대 안 갈 수 있다면 몇 통이라도 쓰겠다’ 같은 반응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유다.

문제가 발생한 학교는 이번 논란에 대해 “위문편지 쓰기는 1961년부터 이어온 행사”라며 ‘전통’을 내세웠다. “국군 장병들께 감사의 의미를 전달하면서 통일과 안보의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다”는 ‘교육적 취지’라고 강조했다. “위문편지 중 일부 부적절한 표현이 행사의 본래 취지와 의미를 심각하게 왜곡해 유감”이라며 “국군장병 위문의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덧붙였다. 한 학생이 쓴 편지 내용에 대해 사과하고 있을 뿐 군인을 위한 위문 활동이 교육이며 봉사의 일환이라는 인식을 유지한 것이다.



오랫동안 유지됐다고 해서 다 전통으로 보고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교육 당국은 그 행사가 왜 시작됐는지, 무엇이 문제인지를 살펴봐야 한다. 학교 측은 봉사활동 점수 한 시간을 빌미로 위문편지 쓰기를 사실상 강제했다고 한다. 강제로 편지를 쓰면 감사하는 마음이 생길까. 그것을 교육이나 봉사라고 부를 수 있을까.

편지 내용의 부적절한 표현이 해당 행사의 취지와 의미를 왜곡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여성 청소년의 편지로 군인의 사기를 진작시키겠다는 취지 자체가 문제다. 심지어 학교 측은 과거 군인들이 위문편지를 보낸 학생을 만나겠다고 학교나 집으로 찾아오고, 심한 경우 스토킹을 하는 사례가 있었다는 걸 인지하면서도 이 행사를 지속했다. 상냥한 편지 한 통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는 여성 청소년들에게 이 행사는 어떤 의미일까.

자신이 느끼는 차별, 소수자 탓해선 안돼

입길에 오른 위문편지를 쓰게 한 학교에서는 2018년 학생이 교사의 성추행을 폭로한 스쿨미투 운동이 있었다. 전국적인 스쿨미투 운동은 학내 교사와 학생 사이 권력 및 역할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불평등에 대한 저항이다. 더불어 젠더와 나이 차로 발생하는 권력 문제,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 등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엮여 발생한 사회현상이다. 이번 일도 스쿨미투 발생 원인이 별반 다르지 않다. 학내에 존재하는 가부장적이고 위계적인 문화를 다시 한번 직면하게 한 사건이다. 이 사건을 통해 학교 현장은 스쿨미투 이후에도 문제의 근본 원인을 고민하고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 ‘젠더 갈등’이라는 단어가 유행하고 있다. 성차별과 성폭력에 저항하며 목소리를 내는 여성이 많아지면서 이에 대한 반발로 “남성이 여성보다 더 힘들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요즘 젠더 갈등은 ‘청년 세대 사이에서 여성과 남성 간의 갈등이 심각하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물론 남성도 살기 힘들고 차별을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성별로 인한 차별은 아니다.

남성들이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어려움으로 가장 크게 성토하는 것은 군대 복무와 일자리, 주거 문제 등과 연관돼 있다. 더 나아가 노동시간과 산업재해에 관한 문제다. 어느 하나 여성이 남성을 차별하거나 폭력적으로 대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 그래서 성차별이라고 할 수 없다. 오히려 자본과 국가에 의한 착취나 차별, 폭력에 관한 문제다.

내가 경험하고 있는 억울하고 부당한 일에 대해 분노하고 그것을 해결하고자 하는 에너지로 승화하는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이러한 분노 표출 방향이 사회적 소수자를 향해서는 안 된다. 자신이 경험하는 차별과 착취의 원인을 소수자에게 전가하고 그들에 대한 온오프라인 폭력으로 억울함을 해소하려고 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에서 사회복지학 석사 과정을 밟았다. 학부 시절 ‘편견의 심리학’을 공부하며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한국다양성연구소를 설립해 다양성 관련 교육 활동을 하고 있다. 억압받는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차별받지 않는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꿈이다.



사진 게티이미지 
사진제공 네이버 뉴스,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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