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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라가 우리 사회에 남긴 것들

EDITOR 김지영 기자

2020. 01. 07

또 하나의 별이 졌다. 글로벌 아이돌 스타로 화려한 삶을 살았던 구하라가 신변을 비관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측근들이 들려준 그녀의 안타까운 죽음 뒤에 가려진 이야기와 이를 계기로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를 짚어봤다.

인기 걸 그룹 카라 출신 가수 겸 배우 구하라(29)가 지난 11월 24일 세상을 떠났다. 이날 오후 자택에서 숨져 있는 그녀를 가사도우미가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하면서 이 사실이 알려졌다. 경찰에 따르면 사건 현장에서는 범죄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았다. 대신 탁자 위에서 신변을 비관하는 내용의 구하라 자필 메모가 나왔다. 경찰은 이를 단서로 고인의 사망 원인을 신변 비관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고인이 삶을 비관하게 된 데는 2016년 카라 해체 이후 달라진 입지와 과도한 악플, 전 남자친구에 대한 미온적인 처벌, 절친 설리 사망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어릴 때부터 악바리, 전 남친과의 사건 이후 재기 위해 노력해

구하라는 원래 자신에게 닥친 고비에 쉽게 무너지는 사람이 아니라고 측근들은 입을 모은다. 구하라를 데뷔할 때부터 지켜본 한 연예계 인사 A씨는 “하라는 오디션을 보고 2008년 강지영과 함께 카라의 새 멤버로 영입됐다. 뒤늦게 합류해 어릴 때부터 팀에 누가 되지 않으려고 악바리처럼 뭐든 열심히 했다. 예능 프로에 나가서도 카라를 알리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았다”며 “구하라가 합류한 후 카라가 유명해지고 일본 진출에도 성공해 팬들 사이에서 ‘카라를 구한 구하라’로 통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인사 B씨는 “뭐든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고, 주변 사람에게도 정말 잘했다. 소속사를 옮긴 후에도 예전 스태프들과 회사 사람들에게 모두 선물을 돌릴 정도로 통이 크고 정이 많았다”고 기억했다. 

측근들의 증언에 따르면 구하라는 매사에 적극적이었다. 가수 겸 배우로 홀로서기를 시작한 후 기대만큼 일이 잘 풀리지 않았지만 좌절하기보다 노래와 연기 연습에 더욱 매진해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려고 노력했다. 또한 2018년 9월 전 남자친구 최모 씨의 이른바 ‘리벤지 포르노 협박 사건’으로 힘든 시간을 보낸 이후에도 일본에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녀의 측근 C씨는 “하라는 전 남자친구와의 사건 이후 재기하려고 엄청 많은 노력을 했다. 한국에서의 활동이 쉽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일본으로 다시 가서 광고 출연 계약을 하고 여러 가지 일을 잡아놓은 상태였다. 일본 매니지먼트사와도 계약을 한 걸로 안다”며 “카라의 멤버였던 D씨가 최근까지 하라를 만났는데 전혀 (자살) 낌새가 없었다고 하더라. 그런 상황에서 하라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 주변 사람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C씨는 “하라가 우울증으로 잠을 못 자 병원에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극단적인 선택을 할 만큼) 그렇게 나약한 아이가 아니다. 설리가 떠난 후 나쁜 생각을 할까 봐 걱정됐지만 오히려 설리 몫까지 잘 살겠다고 방송에서도 밝혔고 그걸 계기로 마음을 다잡은 측면도 있어서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며 몹시 안타까워했다.

디지털 성폭력 처벌 강화, 아이돌 육성 시스템 개선 시급

구하라는 우리 사회의 불의와 악의에 정면으로 맞선 흔치 않은 스타이기도 하다. 자신을 성관계 동영상으로 협박한 전 남자친구를 고소한 사건뿐만 아니라 지난해 6월 자신의 SNS를 통해 악플과의 전면전을 예고한 일, ‘정준영 몰카’ 사건을 취재하는 기자에게 도움을 준 일 등이 모두 그런 사례다. 하지만 그녀가 자신의 연예 생명을 걸고 수면 위로 끌어올린 문제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구하라와 다투던 중 “성관계 동영상을 유포하겠다”며 협박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던 그녀의 전 남자친구 최씨는 지난해 8월 재물손괴, 상해, 협박, 강요 등의 죄목으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지만 리벤지 포르노 관련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 때문에 최근 디지털 성폭력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자신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찍힌 성관계 영상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피해 여성은 평생 고통과 상처를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익명의 그림자 뒤에 숨어 마녀사냥을 일삼는 악플러에 대한 처벌도 보다 엄격해질 필요가 있다.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은 존중돼야 하지만 타인을 악의적으로 비방하는 댓글과 이를 유포하는 행위로 인해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갈수록 늘고 있어서다. 한 정신과 전문의는 “악플에 시달려 우울증을 앓는 유명인이 적지 않다. 특히 연예인들은 이미지를 먹고사는 부류다 보니 억울한 일이 있어도 풀지 못하고 쉬쉬하려고만 하는데 아무리 멘탈이 강해도 그 상황을 방치하면 약으로도 치유하기가 힘들다”며 “자신의 속 얘기를 터놓고 할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바른 생활만 하도록 훈육하는 아이돌 시스템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이돌에 대한 연구를 오랫동안 해온 한 대중문화평론가는 “아이돌 가수들은 10대에 연예기획사에 연습생으로 들어가 순결하고 성실하고 온순한 생활을 하도록 강요받는다. 이런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면 바로 아웃되기 때문에 자기감정을 표현하는 데 익숙지 않고 대중의 반응을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또한 자아가 성숙하지 않은 청소년기부터 일반적인 사회와 단절된 환경에서 생활해 인기가 조금만 떨어져도 큰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며 “연습생들에게 회초리만 들 게 아니라 인격과 정서가 나이에 맞게 성숙할 수 있도록 도우려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도 넘는 보도 경쟁 자제해야

연예인의 사망 사건에 대한 지나친 보도 경쟁도 문제로 지적됐다. 정부는 대중이 친밀감을 느끼는 연예인의 자살 경위를 자세히 보도해 베르테르 효과가 나타나는 것을 방지할 목적으로 자살보도 권고기준을 통해 자살 방법·수단을 명시하거나 유서 내용을 언급하는 부분을 제재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설리 사망 당시 망자의 집이 보도돼 언론이 크게 질타를 받은 바 있다. 그러고 나서 한 달여 뒤 구하라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빈소 풀 원칙’을 지키자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빈소 풀 원칙은 2011년 5월 23일 송지선 아나운서의 사망 사건을 계기로 세워졌다. 이날 송 아나운서의 자살 소식이 전해지며 뜨거운 취재 경쟁이 일었고 나흘 뒤 SG워너비 출신 가수 채동하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연예인 조문객을 찍지 말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이때부터 모든 매체 사진기자는 ‘빈소 풀 취재를 제외하고 유가족, 조문객을 취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왔지만, 최근 다시 연예인의 사망 사건에 대한 보도 경쟁이 과열됐다. 구하라가 우리 사회에 던진 숙제를 잘 풀어내는 건 남은 자들의 몫임을 잊어선 안 되겠다.

사진 동아일보DB 뉴시스 뉴스1 디자인 최정미
사진제공 구하라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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