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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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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게, 이서진

EDITOR_FASHION 한여진 기자 EDITOR_FEATURE 조윤

2019. 10. 27

데뷔 20년 차 배우는 여전히 새로운 연기에 도전하고, 낯선 이들과 만나 함께 호흡하는 법을 배워간다. 천천히, 자연스럽게 이서진이 나아가는 방법.



니트 풀오버, 블랙 팬츠 모두 폴스미스.

니트 풀오버, 블랙 팬츠 모두 폴스미스.

‘여성동아’ 11월호 커버스토리 촬영 현장에서 마주한 배우 이서진(48)을 관통하는 단어는 ‘자연스러움’이었다. 그는 부러 움직임이 큰 포즈나 과장된 표정을 짓지 않았다. 창을 통해 비치는 햇살을 응시하며 미소를 지어 보이거나 의상에 따라 적당히 그것이 돋보일 수 있는 약간의 몸짓을 섞으면 카메라가 그를 따라가는 식이었다. 

돌이켜보면 ‘삼시세끼’ ‘꽃보다 할배’ 등 관찰 예능을 통해 보여준 툴툴거리면서도 뒤에선 제 할 일 다 하고 주변 사람까지 챙기는 그의 ‘츤데레’적 면모 역시 그렇다. 이서진은 방송이라고 해서 억지로 모든 상황을 긍정하거나 섣불리 친절부터 베풀고 보는 대신 천천히 상황에 적응해갔고 말보다는 행동으로 사람을 대했다. 

얼마 전 종영한 SBS 육아 예능 ‘리틀 포레스트’에 그가 출연한다고 했을 때 의구심이 든 것도 사실이지만, 도시의 아이들이 시골 마을에서 흙을 밟고 뛰놀며 살아보게 하자는 방송 취지를 상기하면 누구보다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그에게 제격인 프로그램이 아니었을까. 그는 올해 초 방영한 OCN 추적 스릴러 드라마 ‘트랩’에서 기존의 멜로 배우로서의 이미지와 전혀 다른 사이코패스 인물을 연기한 데 대해서도 “자연스러운 행보”였다고 부연한다. 50대를 목전에 둔 배우에겐 새로운 장르, 캐릭터에의 도전이 당연한 것이라고 말이다. 어느새 신체의 일부로 자리 잡은 듯한 그 특유의 미소가 내내 함께한 이서진과의 대화.

화이트 셔츠, 브라운 팬츠, 베이지 카디건 모두 아크네스튜디오. 화이트슈즈 반스.

화이트 셔츠, 브라운 팬츠, 베이지 카디건 모두 아크네스튜디오. 화이트슈즈 반스.

3년 연속 ‘여성동아’ 창간 기념호의 커버맨이 돼주셨어요. ‘꽃보다 할배’ 등 예능을 함께한 나영석 PD나 영화 ‘완벽한 타인’, 드라마 ‘다모’ 등을 연출한 이재규 감독 등 한 제작진과 오랫동안 작업을 같이한 걸 보면 평소 관계를 깊이 맺는 스타일인 듯해요. 

성격이 잘 맞고 작품까지 잘되면 계속 보는 거죠. 촬영을 하다 보면 다들 친해질 수밖에 없어요. 일부러 누구와 작업을 해야겠다 생각하고 하는 건 아니고 자연스럽게 계속 관계를 맺게 되는 이들이 있죠. 선후배, 동료들과 여럿이 함께하는 작품을 특히 많이 한 것 같은데 역시 일부러 택한 건 아니었지만 좋은 분들과 같이 일하는 건 정말 행운이었어요. 



‘리틀 포레스트’를 통해 처음으로 육아 예능을 해본 소감이 궁금해요. 

아이들과 함께 지낼 일이 없으니 새로웠죠. 이렇게 오랜 시간 아이들과 지내본 게 처음이에요. 잘할 자신이 없어 출연을 안 하려고 했는데 (이)승기가 자꾸 같이 하자고 하는 바람에(웃음)…. 방송이 끝난 지금도 제가 잘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저보다 같이 출연한 승기, (박)나래, (정)소민이가 고생했죠. 

아이들과 친해지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방송이니 친한 척을 할 수도 있지만 워낙 그런 걸 못하는 성격이에요. 정말 친해지기까지 기다렸죠. 아무래도 다른 출연진과는 나이 차이도 많이 나고 아이들을 보는 시각이 달랐어요. 승기, 나래, 소민이는 프로그램의 취지에 맞게 정말 자연 속 유치원 선생님 같았다면 저는 그저 아이들이 원하는 걸 다 들어주는 할아버지 역할이랄까요. 허허. 


브라운 셔츠, 블랙 팬츠, 체크 롱재킷, 슈즈 모두 폴스미스.

브라운 셔츠, 블랙 팬츠, 체크 롱재킷, 슈즈 모두 폴스미스.

방송을 보면서 이서진 씨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 궁금해졌어요. 

요즘 아이들은 참 행복하죠. 모든 게 풍요로운 세상이잖아요. 물론 어릴 때부터 영어며 이것저것 배우느라 학원을 여러 군데 다니는 등 치열하게 사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지만요. 제가 자란 1970년대는 모든 게 풍요롭지 못했어요. 우리나라는 88 서울올림픽 이후로 사정이 많이 좋아진 거죠. 그래도 실컷 놀고 공부는 안 해도 돼 좋았어요. 

바람직한 어른의 모습, 교육 방법에 대한 고민도 했을 법해요. 

아이들이 숲속에 있는 동안만큼은 하고 싶은 대로 다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밖에선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잔소리를 하는 사람이 많을 테니까요. 음식도 먹고 싶다는 것 다 주고 먹기 싫다고 하면 억지로 먹이지 않았죠. 저는 아이들은 최대한 방목시키는 게 좋다고 봐요. 프로그램 제작진이 아이들을 더 자유롭게 놔두지 못한 게 아쉬움으로 남아요. 아이들과 게임을 하거나 이런 것도 더 줄였어야 하지 않나 싶죠. 


화이트 셔츠, 브라운 팬츠, 베이지 카디건 모두 아크네스튜디오.

화이트 셔츠, 브라운 팬츠, 베이지 카디건 모두 아크네스튜디오.

배우로서는 지난해 개봉한 영화 ‘완벽한 타인’에 이어 올 초 방영한 드라마 ‘트랩’까지 이전 출연작들과는 전혀 다른 장르의 흥미로운 캐릭터를 연기했어요. 새로운 도전은 어땠나요. 

‘완벽한 타인’은 그동안 했던 작품 중 가장 편했어요. 한 달 동안 거의 한 세트장에서만 계속 촬영했으니까요. 캐릭터도 실제 제 모습과 가장 비슷했죠. 바람둥이라는 것 말고 말투나 이런 거요(웃음). ‘트랩’은 이재규 감독이 총괄제작을 맡았는데, 10년 전부터 감독님께 이중인격자 역할 같은 걸 해보고 싶다고 자주 말했어요. 그런데 국내에 장르물이 많지 않을 때라 기회가 없었죠. 낮에는 성직자, 밤에는 정의를 심판하러 다니는 양면적인 캐릭터를 자주 머릿속에 그려봤던 터라 사이코패스 강우현이 그렇게 낯설지는 않았어요. 

작품을 고를 때 굉장히 신중한 걸로 아는데, 해보고 싶은 작품이나 역할이 있나요. 

까다롭게 작품을 고르다 보니 출연한 작품 숫자가 적죠. 이제는 주인공 할 나이도 지난 것 같고 뭘 꼭 해봐야겠다 하는 건 없어요. 다만 이젠 이런저런 모험을 해도 괜찮을 나이라고 봐요. 대중이 저를 잘 모르는데 악역을 맡으면 실제로 그런 이미지가 굳어질 수도 있지만 이제 제 이미지는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데다 연기로 그걸 굳이 바꿔야 할 필요도 없고요. 

‘엘리트’ ‘모범생’ ‘까칠함 속의 부드러움’ 등 대중에게 각인된 배우 이서진의 이미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엘리트라고 생각해본 적 없어요. 모범생도 아니고요. 저희 어머니께서 들으시면 깜짝 놀라실 이야기네요. 하하. 까칠하긴 하죠. 표현이 거친 것도 있고요. 어릴 때부터 가족들이 겉으로 표현을 잘 안 하는 편이었어요. 지금도 애정 표현을 하는 건 어색하고요. 그런 환경이 성격에 영향을 많이 미쳤죠. 꼭 드러나게 표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마음을 통해 전해지는 게 더 중요하죠. 표현을 안 했을 땐 모르다가 마음을 알게 됐을 때 받는 느낌이 더 강하잖아요. 굳이 말로 마음을 전부 표현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화이트 셔츠, 팬츠, 재킷, 슈즈 모두 프라다.

화이트 셔츠, 팬츠, 재킷, 슈즈 모두 프라다.

데뷔 20주년을 맞은 소감은 어떤가요. 

‘꽃보다 할배’를 함께한 선생님들의 경력에 비하면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이죠. 선생님들은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연기만 하신 분들이에요. 그분들과 오래 함께해서 그런지 연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부끄럽고요. 한편으론 선생님들이 배우 활동 외적으로 삶을 즐기지 못하고 지금도 일밖에 모르시는 게 안타깝기도 해요. 그분들은 일할 때 가장 행복해하시는 듯하지만 저는 일만 하면서 살진 못할 것 같아요. 배우가 아닌 개인으로서 하고 싶은 것도 다 하면서 충분히 인생을 즐기고 싶어요. 

이서진 씨는 나이 듦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세월의 끈을 잡고 안 놓으려고 하면 추해진다고 생각해요. 주름이 생기면 생기는 대로, 나이가 들면 드나 보다 생각해야죠. 다만 건강은 잘 챙기면서요. 아침에 일어나면 멀쩡하던 곳이 아플 때가 있는데, 그럴 때 나이가 든 걸 느끼거든요. 젊은 친구들과 경쟁하고 싶은 생각도 없어요. 제 나이에 즐길 수 있는 걸 하면서 살아야죠. 외국에 나가 새로운 걸 보고 느끼는 걸 좋아해요. 특별한 일이 없을 땐 운동을 하며 지내고요. 저녁에 지인들과 술 한잔 먹고, 적당히 스트레스 풀면서 살고 있어요. 별것 없죠(웃음).

기획 김명희 기자 사진 김영준 디자인 김영화
제품협찬 반스 아크네스튜디오 폴스미스 프라다 헤어 성효진(에이바이봄) 메이크업 조해영(에이바이봄) 스타일리스트 권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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