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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interview #craftsman

‘부자 명장’ 김영모·김영훈

“가업을 이어준 아들 덕분에 외롭지 않습니다”

EDITOR 허주희

입력 2019.08.08 17:00:01

대한민국 제과 명장 1호인 아버지를 이어 아들은 한국인 최초로 프랑스 공식 아이스제과 명장이 되었다. 서울 김영모과자점의 김영모 대표와 아들 김영훈 실장의 이야기다. 국내와 해외에서 나란히 명장의 반열에 오른 이들, ‘부자 명장’을 만났다.
‘부자 명장’ 김영모·김영훈
어떤 분야든 ‘최고’의 반열에 오른 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서로에게 자극이 되는 선의의 경쟁자이자 협력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아버지와 아들 관계라면 더할 나위 없이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고받았을 것이다. 

서울 김영모과자점의 김영모(66) 대표와 김영훈(38) 실장은 ‘부자 명장’이라 불린다. 아버지와 아들이 나란히 국내외에서 ‘명장’ 칭호를 받았기 때문이다. 부자가 함께 명장에 오른 것은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드문 사례다. 1세대 제과 기능장 아버지는 한국에서, 2세대 제과 기술자 아들은 해외에서 명장 칭호를 얻었다. 

제과제빵 분야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장인인 아버지 김영모 대표는 노동부가 선정한 기능한국인(제과 1호)이자 명장(제빵 6호)이다. 아버지를 보고 자란 둘째 아들 김영훈 실장은 일찌감치 프랑스로 제과 유학을 떠나 숙련 기술자가 되었고, 지난해 ‘프랑스 공인 명장(Meilleur Ouvrier de France, 이하 MOF)’이 되었다. 30대의 젊은 나이에, 동양인으로는 최초로 제과 종주국에서 명장의 반열에 올랐기에 그 의미가 남다르다. 

세대를 넘어 같은 길을 걷는 선후배이자 막역한 조언자, 서로에게 든든한 존재인 김영모 대표와 김영훈 실장. 부자가 나란히 앉아 함께하는 인터뷰는 일순간 진지하면서도 시종일관 유쾌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고 했던가. 김영모 대표는 김영훈 실장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일찌감치 ‘떡잎부터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한다. 



“초등학교 3학년인 아이가 ‘빵을 만들겠다’고 해서 놀랐지요. 10세밖에 안 된 녀석이 하는 말이라 처음엔 곧이듣지 않았어요. 자기가 한 말을 얼마나 지키려나 싶어 방학 때 심부름을 종종 시켰어요. 하얀색 위생복을 입히니 옷이 커서 무릎까지 내려오더라고요. 매장에 있다 보면 친구와 엄마들이 빵을 사러 오잖아요. 창피해할 수도 있는데 영훈이는 오히려 당당하더라고요. 친구의 옆구리를 툭 치며 ‘나 어때? 멋있지?’ 하면서 자랑스럽게 말하는 거예요. 위생복을 벗어놓거나 감춰놓지도 않고 입은 그대로 주방과 매장을 왔다 갔다 하는 아이를 보면서 ‘얘는 앞으로 이 일을 하면 잘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10세 아이가 결국 약속을 지키더라고요. 그 아이가 지금까지 잘 버텨줘서 대견합니다.”


“빵을 만들겠다”는 10세 아들, 약속을 지키다

‘부자 명장’ 김영모·김영훈
김영훈 실장은 “어린 시절 놀이터가 제과점이었다”고 했다. 

“자라온 환경이 빵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어렴풋이 ‘나도 아버지처럼 빵을 만드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방학이 되면 주방에서 놀이하듯이 일하는 것이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김영모 대표는 “어린 아들이 외국에서 말 못 할 어려움을 많이 겪었지만 잘 견뎌냈다”며 옆에 있는 아들을 지그시 바라봤다. 

“아이가 중학생 때 영국에 가서 영어부터 배우고, 이후 프랑스에서도 불어를 공부하느라 1년 이상 고생을 했어요. 저도 혼자 부딪혀가며 한 단계 한 단계 제과 기술을 익혔는데, 얘도 혼자 타국에서 어학과 제과를 동시에 배우며 어려움을 극복해간 거죠. 아버지와 아들이 자라온 과정은 다르지만 10대 때부터 둘 다 제과 기술을 배우면서 일하고, 부딪히고 극복하며 성장해왔다는 점에서 비슷한 부분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아버지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김영훈 실장이 나직하게 말을 받았다. 

“저보다도 아버지가 훨씬 더 힘드셨을 겁니다. 그 시절 혼자서 모든 어려움을 다 극복해가며 새 기술을 개발한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잖아요.” 

아들은 온 종일 좁은 주방에서 빵을 만들며 고생하던 젊은 시절의 아버지를 떠올리면서 안쓰러워하고, 아버지는 어린 나이에 먼 타국에서 어려운 외국어를 배우고 인종차별까지 겪는 등 온갖 난관을 극복해온 아들을 안쓰러워한다. 

아버지는 아들에 대해 말할 때면 눈빛이 빛나고 얼굴 가득 미소가 번진다. 자신의 이야기보다 아들 이야기를 할 때 신이 나서 목소리가 커졌고 자주 웃음을 터뜨렸다. 이야기에 따라 아들의 호칭도 바꿔갔다. ‘아이’ ‘영훈이’ ‘아들’ ‘아드님’에서 이번에는 ‘명장님’이다. 

“만약 명장님이 가업을 잇지 않았다면 제가 많이 외로웠겠지요. 제가 이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이 굉장히 강해요. 예전부터 김영모과자점을 가업으로 잇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그 소망을 이룬 셈이죠. 만약 자식 중에 아무도 제빵 일을 하지 않았다면 정말 외롭지 않았을까 싶어요.”


4일간 40시간에 걸친 결승전

지난해 MOF 출전 당시 김영훈 
실장의 모습(오른쪽 위)과 올해 5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MOF 시상식 참석 모습. 당시 김 실장은 마크롱 대통령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해 MOF 출전 당시 김영훈 실장의 모습(오른쪽 위)과 올해 5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MOF 시상식 참석 모습. 당시 김 실장은 마크롱 대통령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명장 아버지에 이은 명장 아들의 탄생은 지난 2018년 11월, 프랑스에서 낭보가 전해지며 알려졌다. 어쩌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보다 더 어려운 시험을 통과해야 하고 세계 곳곳에서 온 쟁쟁한 경쟁자를 물리쳐야 한다. 한 치의 실수도 용납 안 되고 결과도 예상할 수 없으며, 최대한 본인의 실력과 역량을 끄집어내 철옹성 같은 심사의 벽을 뚫어야 한다. 세계 최고의 장인이자 명장이 되는 관문, 바로 ‘MOF’다. 

1924년에 시작돼 역사가 길고 위상이 높은 MOF는 프랑스 정부가 기술 장인을 육성하기 위해 4년에 한 번 개최하는 ‘명장경연대회’이다. 또 다른 의미로 ‘프랑스 국가 지정 최고 장인’을 말한다. 2백여 전문 직업 종사자 가운데 세계 최고의 장인을 가리는데, 특히 제빵·제과·요리 분야의 경쟁이 치열하다. 김영훈 실장은 두 번째 MOF 도전에서 우승해 제과 분야 최고의 기술자가 되었다. 프랑스 자국민도 얻기 어렵다는 MOF 타이틀을 젊은 한국인이 동양인 최초, 외국인 최초로 따낸 것이다. 

“MOF는 선발 과정이 매우 철저하고 까다로워요. 대회 6개월 전에 주제를 발표하는데, 응시자는 주제에 맞춰 논문을 쓰고 논문 발표도 준비하면서 작품을 구상합니다. 저는 대회에서 ‘어린왕자’를 주제로 아이스크림, 아이스 카빙 등을 이용해 다양한 제품과 작품을 만들었어요. 결승전은 총 4일 동안 40시간에 걸쳐 이뤄집니다. 각 과정마다 꼼꼼히 심사하고 응시자 한 사람 한 사람을 매우 엄격하게 평가해요. 과정마다 논문을 검토하는 심사위원, 제작 경로를 평가하는 심사위원, 시식을 하는 심사위원이 따로 있을 정도죠. 이렇듯 총 8명의 심사위원이 과정별로 나누어서 철저하게 심사합니다.” 

김영훈 실장은 “MOF에서는 단지 실력과 결과물만 보는 것이 아니라 논문 검토, 논문 발표, 작업 과정, 대처 능력, 인성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올해 5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MOF 시상식에 김영훈 실장은 부모와 함께 다녀왔다. 시상식은 파리 소르본대학교에서 열렸고, 이후 엘리제궁에서 진행한 축하연에서는 마크롱 대통령이 명장들을 격려하고 축하 연설을 했다. 축하연에서 마크롱 대통령과 짧은 대화를 나눈 김 실장은 그와 함께 사진을 찍어 기념으로 남겨두었다. 

김영모 대표는 “한국인이 MOF에서 우승했다는 사실에 프랑스 사람들도 깜짝 놀랐다”면서 “자국민도 매우 어려워하는 MOF가 되었으니, 아무래도 한국을 바라보는 프랑스인의 시각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빵을 만들었지만, 빵은 오늘의 그를 만들었다!’ 김영모 대표의 인생을 한마디로 압축하는 말이다. 반세기에 이르는 긴 세월을 빵과 함께해온 김 대표는 자수성가한 CEO이기도 하다. 17세 때부터 수없이 많은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기술을 익혔고, 유명 제과점의 공장장을 거쳐 1982년 마침내 자신의 이름을 내건 김영모과자점을 열었다. 서울 서초동 19.8㎡(6평)짜리 점포를 시작으로 김영모과자점은 현재 서울 도곡타워점을 비롯해 강남과 수도권에서 직영점 8곳을 운영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빵을 만든다’는 김영모 대표의 신념과 열정, 투혼이 현대인의 까다로운 입맛을 사로잡았고 오늘날 김영모과자점의 성공 신화를 썼다. 이제는 유럽이나 일본의 빵집처럼 수백 년 대를 이어가는 가족 기업을 꿈꾼다. 김 대표가 2005년 펴낸 ‘빵 굽는 CEO’는 지금도 1년에 1천 권 이상 팔릴 정도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다른 듯 닮은 두 사람의 ‘장인의 길’

‘부자 명장’ 김영모·김영훈
일반적으로 ‘장인’ ‘명장’은 일생을 한 분야에 매진해 공식적으로 기술력을 인정받은 이들이다. 한 분야만 올곧이 파고들어 그 분야의 최고 전문가가 되는 것이기에 그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 그런데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누구나 명장이 되는 것은 아니다. 명장은 어떤 자질을 갖춰야 할까. 

김영모 대표는 “기본적으로 전문성과 실력, 인성을 갖추고 끊임없이 제품을 개발하며 연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면서 “나아가 업계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기여하며, 사회에 봉사하고 공헌하는 것이 명장의 자질이자 덕목”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한 분야에서 뛰어난 실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위의 덕목을 갖춘 기능인을 명장으로 선발한다. 프랑스 같은 나라는 인성을 기본으로 빼어난 실력을 가진 전도유망한 기술자를 명장으로 선발한다. 궁극적으로 두 나라에서 장인이 의미하는 바는 크게 다르지 않다. 

“단지 한 분야에서 일을 오래 했다고 장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장인은 자기 직업에 대한 정체성이 분명하고 사명감이 투철해야 합니다. ‘꼭 해내고 말겠다’는 신념과 열정으로 작업 시 고도의 몰입과 집중력을 발휘해 최상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장인이며, 이러한 사명감으로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하는 것이 ‘장인 정신’이라 생각합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김영훈 실장은 “제 생각도 아버지와 비슷하다”면서 “무언가를 시작했으면 스스로 마음에 들 때까지 계속 붙잡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제과 기술자가 빵을 만들 때 ‘이 정도면 됐어’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맛있는 빵이 될까’를 스스로 끊임없이 질문하고 고민해서 본인과 소비자 모두를 만족시키는 최상의 제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러한 마음가짐과 자세가 장인 정신이 아닐까요. 그저 적당한 선에서 만족하다가 멈춘다면 거기까지가 그 사람의 수준이 되는 것입니다.” 

부자 명장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국내와 해외를 넘나드는 제과 이야기로 밤을 꼬박 새울 기세다. 그만큼 자긍심과 열정이 남달랐다. 아버지와 아들이 걸어온 길은 다른 듯하면서 닮아 있다. 앞으로도 부자가 함께 걸어갈 길, 그 길 위에서 ‘가족 기업’이라는 꿈을 함께 펼쳐갈 것이기에 두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부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동아 2019년 8월 6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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