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영화 ‘범죄도시’에서 악랄한 조선족 조직폭력배 위성락을 소름 끼치도록 연기해 그해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진선규(42)는 시상식장에서 “중국인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낸 뒤, 영화 속 모습과는 다르게 내내 오열하며 힘든 시절 도움을 준 고향 친구들의 이름을 한 명씩 읊는 등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모습을 보였다. 이런 상반된 모습은 ‘실제 그는 어떤 사람일까’ 하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다시 한 번 그의 이름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고, 이후 연극으로 시작한 15년 무명 배우로서의 이력이 자연스레 알려지며 탄탄한 연기력의 이유도 설명이 됐다. 그런데 1월 23일 개봉한 신작 ‘극한직업’을 보면 ‘이 배우가 표현할 수 있는 캐릭터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사실 이건 의문을 가장한 감탄과 기대에 가깝다.
‘극한직업’은 마약 범죄 조직을 소탕하기 위해 5명의 마약반 형사들이 치킨집을 위장 창업했다 맛집으로 소문이 나며 겪게 되는 에피소드를 다룬 코믹 액션 수사극이다. 여기서 진선규가 맡은 역할은 사건 해결보다 사고 치기에 바쁜 ‘마형사’로, 몸 개그와 애드리브를 담당하는 코믹극의 중심 추다. 살벌하게 무서운 조폭이 아무런 이물감 없이 웃기는 형사로 관객에게 다가설 수 있는 걸 보면 그 양극 사이에 존재할 수 있는 무수한 장르와 캐릭터를 그가 앞으로 어떻게 표현할지 기대감을 갖게 된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만난 배우 역시 이 영화를 선택하게 된 이유에 대해 “‘범죄도시’와 전혀 다른 캐릭터를 보여주고 싶어서”라고 설명했다.
악역은 처음이던 그가 ‘범죄도시’에서 악역 전문 배우인 양 연기한 것과 마찬가지로 ‘극한직업’에서도 코미디 연기가 처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과장된 액션과 익살스런 표정, 이병헌 감독 특유의 ‘말맛’ 대사를 차지게 연기한다. 그러나 이 수줍음 많은 배우의 대답은 그저 감독이 시키는 대로 표현했다는 것.
“연극에서 코믹 연기는 해봤지만 영화는 처음이에요. 처음부터 끝까지 한 호흡으로 공연하는 연극은 중간에 실수를 해도 이게 재미있는 요소가 되기도 하는데 ‘레디 액션!’ 하는 순간 단발적으로 탁 치고 빠져야 하는 영화에서의 코미디 연기는 어려웠어요. 스스로 확신이 없어 감독님께 ‘이렇게 해도 되냐’ 하고 물으면 ‘분명 재미있을 거예요’라며 용기를 주셨어요. 아직 코미디 연기는 배우고 적응해야 할 게 많다고 생각해 무조건 감독님 지시만 따랐어요. 처음으로 맡는 큰 역할이라 힘들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잘해낼까 고민했죠. ‘범죄도시’를 촬영할 때처럼 ‘어떻게 하면 욕을 차지게 할까?’ ‘어떻게 더 무서운 표정을 짓지?’ 같은 무거운 생각을 안 해도 돼서 좋았어요(웃음). 이전에 해보지 못한 경험이라 짜릿했죠.”
전혀 다른 장르의 두 영화 사이에도 ‘액션’이라는 공통점은 있다. 눈코 뜰 새 없는 빠른 전개와 몰아치는 대사로 관객의 폭소를 끊임없이 자아내는 ‘극한직업’은 사실 정통 액션 영화 못지않은 고난도 액션을 선보이는 영화다. 진선규가 맡은 마형사는 유도 선수 출신으로 업어치기를 필살기로 범죄자들을 소탕한다. ‘범죄도시’의 액션을 “투닥거리는 것”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진선규는 “상대를 붙들어 넘기는 게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무에타이가 특기인 장형사 역의 이하늬, 아무리 맞아도 죽지 않는다는 설정의 수사반장 역의 류승룡 등 주연 배우들이 참여한 온라인 채팅방에선 촬영 후 “죽겠다”는 하소연이 빈번하게 나왔다는 후일담도 전했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영화를 위해 그가 액션 스쿨과 더불어 요리 학원까지 다녔다는 사실. 마약반의 치킨집 위장 창업이 대박 맛집으로 거듭나는 데는 마형사의 절대 미각과 갈비 집을 운영하는 손맛 좋은 집안 내력이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는 내용 때문이다. 빛의 속도로 닭을 손질하고 바삭하게 기름에 튀겨내 능숙한 솜씨로 양념까지 버무리는 화려한 손 기술은 가히 또 다른 액션이라 할 만하다. 진선규는 “요리 학원에 다니며 닭을 발골하는 방법을 배우고 매일 3마리씩 사 와 집에서 연습한 게 총 30마리나 된다”면서 “이제는 튀긴 닭마저 맨손으로 정확히 16조각으로 분해할 수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 합격해 고향인 경남 진해에서 가방 세 개 싸 들고 서울에 올라왔어요. 아무 연고가 없는 상태에서 물어물어 서울서 도서관 사서를 하신다는 외삼촌 친구분에게 신세를 졌다가, 또 6촌 형수님이 서울에 계시다고 해 3개월을 얹혀살다가 하는 식으로 봇짐장수처럼 옮겨 다녔어요. 밤 9시부터 다음날 새벽 5시까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늘 제정신이 아니었죠. 정말 ‘미친놈’이었어요. 그걸 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일주일 동안 한숨도 못 자 지하철에서 송장처럼 쓰러지기도 하고, 사정을 모르는 교수님들로부터는 ‘쟤는 안되겠다’라면서 욕을 듣기도 했어요. 군대 제대 후 3개월 동안 일해서 얻은 보증금 2백만원에 월세 15만원짜리 지하 방이 서울에서 마련한 첫 집이에요. 다들 절 보면 왠지 도와주고 싶다며 ‘짠규’라고 불러요. 하하.”
2000년 연극 ‘보이첵’으로 데뷔한 진선규는 2004년 영화 ‘안녕, 아리’를 시작으로 스크린으로 활동 반경을 넓혔지만 이후에도 이름 없는 배우로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쌀이 떨어졌다는 아내의 말에 좌절하기보다 오히려 ‘연기를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10년이 넘는 시간을 버텼고, 끝내 연기력 하나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지금까지 배우로서의 진선규를 담금질한 동력은 뭘까. 그는 이런 질문을 받으면 죽기 전까지 똑같은 대답을 할 거라며 말을 이었다.
“제대 후 복학하고 만난 친구들과 연극을 했어요. 졸업하기 전 작품을 하나 만들었는데 그때 ‘연극이 이렇게 즐거운 거야?’ ‘상대방하고 호흡을 맞추는 게 이렇게 재미있네!’ 하는 생각이 들었죠. 유명하고 훌륭한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그저 친구들이랑 모여 그렇게 노는 게 재미있었던 거예요. 2004년에 ‘공연배달서비스 간다’라는 극단을 만들어 다양한 작품을 실험하면서 대학로에서 조금씩 인정받기 시작했죠. 그렇게 15년이 흐른 거예요. 그때 만난 동료들이 없었다면 많이 좌절하고 ‘왜 내가 이걸 하고 있지?’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저는 특별한 재능도 없고 아주 부족한 사람인데 절 도와주는 이들이 있으면 저도 모르게 점점 나은 사람이 돼요. 즐거워하는 걸 다 할 수 있게 허락해준 아내에게 실망을 주면 안 된다는 마음도 저를 버티게 해주고요.”
“마형사가 사고를 치면 다른 형사들이 그걸 받아주면서 제 캐릭터가 사는 거예요. 다섯 인물의 말투와 캐릭터가 다 다른데 그게 어우러질 수 있었던 건 배우들이 서로 믿고 상대의 연기를 받아줬기 때문이에요. 내 연기를 잘하는 건 당연하고 상대방 연기를 잘 받아줄 때 서로에게 좋은 자극이 되죠.”
마흔이 넘어 배우로서 새롭게 쓰게 된 그의 이력서는 올해 들어 더 빼곡하게 채워질 예정이다. 2019년 한 해에만 벌써 ‘사바하’ ‘퍼펙트 맨’ ‘암전’ ‘롱 리브 더 킹’ 등 네 편의 영화가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그야말로 ‘진선규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그는 “주변에서 ‘물 들어왔어. 이제 노 저어라’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면서도 “막무가내로 노를 젓다가는 뺑뺑 돌기만 한다”며 겸손한 모습이었다. “달라진 건 작은 역할에서 큰 역할을 맡게 된 것뿐”, 그리고 “후배들에게 카드를 주며 맛있는 것 맘껏 사 먹으라 할 수 있는 것뿐”이라고 한다.
“물이 들어올 때는 노를 저을 게 아니라 지도를 펴고 내가 갈 길을 다시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말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작품을 하면서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것들을 이어가야죠. 또 제가 가진 배의 크기도 다시 살펴봐야 해요. 좋은 동료들이 함께 탈 수 있도록 큰 배를 만드는 게 지금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무엇이든 연기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는 조니 뎁이 표현한 ‘가위손’ 같은 판타지 장르 속 강렬한 인물을 연기해보고 싶다고 했다. 실제 자신의 성격과 다른, ‘나를 없애는 인물’을 연기할 때 희열을 느낀다는 설명이다. 수줍음 많은 현실의 모습과 영화 속 거침없는 캐릭터의 간극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배우 진선규. “영화를 통해 많은 이들이 행복하시길 바란다”는 진심은 스크린 안과 밖에서 모두 유효하다.
기획 김명희 기자 디자인 최정미
사진제공 CJ엔터테인먼트 홍필름
‘극한직업’은 마약 범죄 조직을 소탕하기 위해 5명의 마약반 형사들이 치킨집을 위장 창업했다 맛집으로 소문이 나며 겪게 되는 에피소드를 다룬 코믹 액션 수사극이다. 여기서 진선규가 맡은 역할은 사건 해결보다 사고 치기에 바쁜 ‘마형사’로, 몸 개그와 애드리브를 담당하는 코믹극의 중심 추다. 살벌하게 무서운 조폭이 아무런 이물감 없이 웃기는 형사로 관객에게 다가설 수 있는 걸 보면 그 양극 사이에 존재할 수 있는 무수한 장르와 캐릭터를 그가 앞으로 어떻게 표현할지 기대감을 갖게 된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만난 배우 역시 이 영화를 선택하게 된 이유에 대해 “‘범죄도시’와 전혀 다른 캐릭터를 보여주고 싶어서”라고 설명했다.
이번에는 마약반 사고뭉치 형사
“‘범죄도시’는 제 생애 최고의 작품이고 위성락은 최고의 역할이었죠. 여기에 또 다른 대표작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었어요. 영화적으로 다른 느낌의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죠. 사실 ‘범죄도시’로 각인된 이미지가 너무 강하다 보니 비슷한 역할의 시나리오가 많이 들어왔어요. 하지만 그때만큼 악역을 매력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울 거라는 저 스스로의 우려가 있었어요. 비슷한 것만 표현하다 보면 고갈될 때가 있으니 제 안에 잠재돼 있는 다른 것들을 하나씩 표현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었죠.”악역은 처음이던 그가 ‘범죄도시’에서 악역 전문 배우인 양 연기한 것과 마찬가지로 ‘극한직업’에서도 코미디 연기가 처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과장된 액션과 익살스런 표정, 이병헌 감독 특유의 ‘말맛’ 대사를 차지게 연기한다. 그러나 이 수줍음 많은 배우의 대답은 그저 감독이 시키는 대로 표현했다는 것.
“연극에서 코믹 연기는 해봤지만 영화는 처음이에요. 처음부터 끝까지 한 호흡으로 공연하는 연극은 중간에 실수를 해도 이게 재미있는 요소가 되기도 하는데 ‘레디 액션!’ 하는 순간 단발적으로 탁 치고 빠져야 하는 영화에서의 코미디 연기는 어려웠어요. 스스로 확신이 없어 감독님께 ‘이렇게 해도 되냐’ 하고 물으면 ‘분명 재미있을 거예요’라며 용기를 주셨어요. 아직 코미디 연기는 배우고 적응해야 할 게 많다고 생각해 무조건 감독님 지시만 따랐어요. 처음으로 맡는 큰 역할이라 힘들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잘해낼까 고민했죠. ‘범죄도시’를 촬영할 때처럼 ‘어떻게 하면 욕을 차지게 할까?’ ‘어떻게 더 무서운 표정을 짓지?’ 같은 무거운 생각을 안 해도 돼서 좋았어요(웃음). 이전에 해보지 못한 경험이라 짜릿했죠.”
전혀 다른 장르의 두 영화 사이에도 ‘액션’이라는 공통점은 있다. 눈코 뜰 새 없는 빠른 전개와 몰아치는 대사로 관객의 폭소를 끊임없이 자아내는 ‘극한직업’은 사실 정통 액션 영화 못지않은 고난도 액션을 선보이는 영화다. 진선규가 맡은 마형사는 유도 선수 출신으로 업어치기를 필살기로 범죄자들을 소탕한다. ‘범죄도시’의 액션을 “투닥거리는 것”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진선규는 “상대를 붙들어 넘기는 게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무에타이가 특기인 장형사 역의 이하늬, 아무리 맞아도 죽지 않는다는 설정의 수사반장 역의 류승룡 등 주연 배우들이 참여한 온라인 채팅방에선 촬영 후 “죽겠다”는 하소연이 빈번하게 나왔다는 후일담도 전했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영화를 위해 그가 액션 스쿨과 더불어 요리 학원까지 다녔다는 사실. 마약반의 치킨집 위장 창업이 대박 맛집으로 거듭나는 데는 마형사의 절대 미각과 갈비 집을 운영하는 손맛 좋은 집안 내력이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는 내용 때문이다. 빛의 속도로 닭을 손질하고 바삭하게 기름에 튀겨내 능숙한 솜씨로 양념까지 버무리는 화려한 손 기술은 가히 또 다른 액션이라 할 만하다. 진선규는 “요리 학원에 다니며 닭을 발골하는 방법을 배우고 매일 3마리씩 사 와 집에서 연습한 게 총 30마리나 된다”면서 “이제는 튀긴 닭마저 맨손으로 정확히 16조각으로 분해할 수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짠규’ 별명 얻게 한 무명 배우라는 극한 직업
닭 발골법까지 배워야 하는 배우야말로 정말 극한 직업이 아닐까. 이내 오랜 무명 배우 생활을 청산하고 시나리오를 제 손으로 고를 수 있게 된 배우의 뒤늦은 성취가 떠오른다. 그간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실제로 극한 직업을 경험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특유의 해맑은 미소와 함께 자신의 별명이 “짠규(짠내 나는 선규)”라고 답했다.“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 합격해 고향인 경남 진해에서 가방 세 개 싸 들고 서울에 올라왔어요. 아무 연고가 없는 상태에서 물어물어 서울서 도서관 사서를 하신다는 외삼촌 친구분에게 신세를 졌다가, 또 6촌 형수님이 서울에 계시다고 해 3개월을 얹혀살다가 하는 식으로 봇짐장수처럼 옮겨 다녔어요. 밤 9시부터 다음날 새벽 5시까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늘 제정신이 아니었죠. 정말 ‘미친놈’이었어요. 그걸 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일주일 동안 한숨도 못 자 지하철에서 송장처럼 쓰러지기도 하고, 사정을 모르는 교수님들로부터는 ‘쟤는 안되겠다’라면서 욕을 듣기도 했어요. 군대 제대 후 3개월 동안 일해서 얻은 보증금 2백만원에 월세 15만원짜리 지하 방이 서울에서 마련한 첫 집이에요. 다들 절 보면 왠지 도와주고 싶다며 ‘짠규’라고 불러요. 하하.”
2000년 연극 ‘보이첵’으로 데뷔한 진선규는 2004년 영화 ‘안녕, 아리’를 시작으로 스크린으로 활동 반경을 넓혔지만 이후에도 이름 없는 배우로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쌀이 떨어졌다는 아내의 말에 좌절하기보다 오히려 ‘연기를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10년이 넘는 시간을 버텼고, 끝내 연기력 하나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지금까지 배우로서의 진선규를 담금질한 동력은 뭘까. 그는 이런 질문을 받으면 죽기 전까지 똑같은 대답을 할 거라며 말을 이었다.
“제대 후 복학하고 만난 친구들과 연극을 했어요. 졸업하기 전 작품을 하나 만들었는데 그때 ‘연극이 이렇게 즐거운 거야?’ ‘상대방하고 호흡을 맞추는 게 이렇게 재미있네!’ 하는 생각이 들었죠. 유명하고 훌륭한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그저 친구들이랑 모여 그렇게 노는 게 재미있었던 거예요. 2004년에 ‘공연배달서비스 간다’라는 극단을 만들어 다양한 작품을 실험하면서 대학로에서 조금씩 인정받기 시작했죠. 그렇게 15년이 흐른 거예요. 그때 만난 동료들이 없었다면 많이 좌절하고 ‘왜 내가 이걸 하고 있지?’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저는 특별한 재능도 없고 아주 부족한 사람인데 절 도와주는 이들이 있으면 저도 모르게 점점 나은 사람이 돼요. 즐거워하는 걸 다 할 수 있게 허락해준 아내에게 실망을 주면 안 된다는 마음도 저를 버티게 해주고요.”
물 들어올 때 ‘지도를 펴는’ 배우
좋은 인생의 척도를 곁에 좋은 사람들을 두는 것이라 여기는 배우. 그의 연기 철학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이번 영화는 그의 연기 철학이 그대로 반영된 작품이다. ‘극한직업’은 그를 비롯해 류승룡, 이하늬, 이동휘, 공명 등 한 팀인 다섯 명의 마약반 형사가 주인공인 영화로 인물 간 케미스트리가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코미디 장르인 만큼 동시에 인물 각자의 개성 강한 캐릭터도 확실히 드러나야 한다. 두 가지 과제를 한 번에 수행해야 하는 것이 버겁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는 배우들이 자신과 같은 철학을 공유하는 덕에 수월하게 작업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다섯 명의 배우가 가진 공통의 연기 철학은 ‘다른 배우의 연기를 잘 받아주는 것’이다.“마형사가 사고를 치면 다른 형사들이 그걸 받아주면서 제 캐릭터가 사는 거예요. 다섯 인물의 말투와 캐릭터가 다 다른데 그게 어우러질 수 있었던 건 배우들이 서로 믿고 상대의 연기를 받아줬기 때문이에요. 내 연기를 잘하는 건 당연하고 상대방 연기를 잘 받아줄 때 서로에게 좋은 자극이 되죠.”
마흔이 넘어 배우로서 새롭게 쓰게 된 그의 이력서는 올해 들어 더 빼곡하게 채워질 예정이다. 2019년 한 해에만 벌써 ‘사바하’ ‘퍼펙트 맨’ ‘암전’ ‘롱 리브 더 킹’ 등 네 편의 영화가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그야말로 ‘진선규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그는 “주변에서 ‘물 들어왔어. 이제 노 저어라’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면서도 “막무가내로 노를 젓다가는 뺑뺑 돌기만 한다”며 겸손한 모습이었다. “달라진 건 작은 역할에서 큰 역할을 맡게 된 것뿐”, 그리고 “후배들에게 카드를 주며 맛있는 것 맘껏 사 먹으라 할 수 있는 것뿐”이라고 한다.
“물이 들어올 때는 노를 저을 게 아니라 지도를 펴고 내가 갈 길을 다시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말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작품을 하면서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것들을 이어가야죠. 또 제가 가진 배의 크기도 다시 살펴봐야 해요. 좋은 동료들이 함께 탈 수 있도록 큰 배를 만드는 게 지금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무엇이든 연기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는 조니 뎁이 표현한 ‘가위손’ 같은 판타지 장르 속 강렬한 인물을 연기해보고 싶다고 했다. 실제 자신의 성격과 다른, ‘나를 없애는 인물’을 연기할 때 희열을 느낀다는 설명이다. 수줍음 많은 현실의 모습과 영화 속 거침없는 캐릭터의 간극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배우 진선규. “영화를 통해 많은 이들이 행복하시길 바란다”는 진심은 스크린 안과 밖에서 모두 유효하다.
기획 김명희 기자 디자인 최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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