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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세종 열정의 온도

editor 김지영 기자

입력 2018.01.11 14:39:15

태권도 국가대표에서 배우로 꿈을 바꾼 건 양세종의 인생에서 ‘신의 한 수’였다. 물론 데뷔 1년 만에 주연급 배우로 비상한 데는 가족과도 연락을 끊은 채 골방에서 촛불을 켜놓고 연기 연습을 한 지독한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양세종 열정의 온도
배우가 매 작품에서 새로운 캐릭터에 도전해 흠잡을 데 없이 연기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한 작품 안에서 1인 2역을 서로 다른 색깔로 표현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어려운 일을 신인 배우 양세종(26)이 해냈다. 그것도 지난 1년 동안. 

그는 2016년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이에 앞서 촬영을 마친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는 이듬해 방영됐다. 이 작품에서 시대를 넘나드는 1인 2역을 선보인 그는 2017년 여름 판타지 스릴러 ‘듀얼’에선 상반된 인격을 가진 쌍둥이 복제 인간을 연기하며 선과 악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프랑스 유학파 셰프 온정선으로 출연해 운명의 상대인 연상의 방송작가 이현수(서현진)와 결혼에 골인하는 드라마 ‘사랑의 온도’는 그의 또 다른 감성을 보여준 작품이다. 

한 여자만 바라보고 ‘밀당’할 줄도 모르는 진정한 사랑꾼의 그것이랄까. 

지난 1년여 동안 팔색조처럼 캐릭터를 바꾸며 쉴 새 없이 달려온 그를 한 해의 끝자락에 만났다. ‘사랑의 온도’가 끝난 지 엿새 만이었다. 

지난 엿새 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데뷔 후 계속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다 보니 양세종의 시간이 너무 없었더라고요. 저를 돌아보며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매일 새벽 편한 복장에 이어폰을 끼고 목적지 없이 걸었어요. 어느 정도 정리가 됐다 싶으면 집으로 돌아와 샤워하고, 향수 뿌려놓고 잠자리에 들었죠. 그동안 못 마신 와인도 마시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연락도 하고요. 작품에 들어가면 끝날 때까지 캐릭터에 빠져 있어서 연락이 와도 회신을 못 하거든요. 

‘사임당 빛의 일기’를 찍을 때부터 ‘골방 작업’을 해왔는데, 그때는 모든 사람과 연락을 안 해요. 부모님이나‘절친’들하고도요. 그러던 제가 촬영이 끝나고 3개월 뒤에 연락해도 받아주니 감사할 뿐이죠. 

‘골방 작업’이 뭔가요. 

작품에 임할 땐 연기에 집중할 수 있는 최적화된 집을 구해요. 너무 커도 안 되고, 시선이 분산돼도 안 돼요. 문 왼편에 있는 샤워실을 빼고 통로가 일자로 한눈에 들어와야 해요. 그게 하나의 골방인 셈이죠. 골방 가운데 양초 네 개를 세워놓으면 무대처럼 쓸 수 있어요. 그 집에 있는 건 양초와 TV, 전신 거울, 침대가 전부예요. 작품에 들어가면 골방에서 연기 연습을 하다가 촬영이 끝나면 본가로 돌아가죠. 

연기 연습을 본가에서는 못 하나요. 

집에 있으면 편하니까 집중도 안 되고 연습도 잘 안 하게 되더라고요. 다행히 제가 혼자 있는 걸 너무 좋아해요. 외로움 조차도요. 골방 작업은 제 오랜 습관이기도 해요. 고3 때부터 연기 학원을 다녔는데, 한 친구가 “한밤중에 스탠드 하나만 켜놓고 감정의 흐름대로 움직여본다”고 자기의 연기연습 방법을 말해주더라고요. 당시 저희 가족이 살던 집에 천장이 유리창으로 돼 있고 가운데 육각기둥에 거울이 달린 다락방이 있었어요. 거기서 스탠드 대신 양초를 켜놓고 은은하게 퍼지는 빛을 받으며 저도 그 친구처럼 감정의 흐름대로 따라가는 식으로 연기 연습을 하게 됐죠. 

어릴 때부터 배우를 꿈꿨나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5학년 때까지 미국에서 살다 한국에 왔어요. 제가 애들하고 마냥 뛰어놀았더니 엄마가 운동이나 하라고 해서 중2 때부터 태권도장에 다녔어요. 형들이랑 저녁 늦게까지 운동하는 게 재미있어서 평일에는 체대 입시를 준비하고 주말에는 책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죠. 그러다 고2 때 학교에서 친구들과 단체 관람한 ‘스노우드롭’이 제 인생을 바꿔놓았어요. 생애 첫 연극 관람이었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무대 위에서 배우들이 말과 행위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그 자체에 매료돼 배우의 꿈을 키우게 됐죠.(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재수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연기과에 12학번으로 입학했다) 

운동 경험이 배우 생활에 도움이 되는지요. 

근성이나 선후배 관계를 다지는 데 많은 도움이 돼요. 마침 제가 다니던 도장이 무도와 예의를 매우 중시하는 곳이었거든요.

지난 1년간 인기가 급상승했는데 실감하고 있나요. 

주위의 시선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편이에요. 지금도 대중목욕탕을 이용하고 외출할 때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아요. 며칠 전에도 평소처럼 트레이닝복에 롱 패딩 점퍼를 입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횡단보도 앞에 서 있었는데 어떤 여자분이 다가와 사진을 찍자고 하더라고요. 그분 말고도 행인들 대부분이 저를 알아보는 것 같았어요. 그런 느낌이 든 건 처음이에요. 

‘사랑의 온도’의 온정선과 닮은 점을 꼽는다면요. 

솔직한 면모요. 말하기 곤란한 건 차라리 코멘트를 안 할지언정, 제 생각을 에둘러 표현하진 않아요. 상대가 어르신이어도 누가 봐도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실수를 하면 참지 않고 그 자리에서 말해요. 왜 이렇게 살게 됐냐면, 언제 죽을지 모르잖아요(웃음). 

실제로도 온정선의 상대역 이현수 같은 여성상을 좋아하나요. 

이현수가 정말 현실에 존재하는 인물이면 바로 직진합니다. 자신에게 닥친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내는 인물이고, 작은 일에도 감사한 마음을 갖는 점이 참 멋져요. 그런 사람이 드물잖아요. 전 성격 좋은 여자가 좋아요. 비주얼은 그다지 중요시하지 않아요. 풍기는 느낌이나 매력을 가장 중시하죠. 하지만 지금은 연애를 못 해요. 작품에 들어가면 연락 못 하는 사람을 이해하고 감당해줄 여성은 없을 거예요. 

마지막 연애를 한 게 언제인가요. 

‘사임당 빛의 일기’를 찍으면서 여자친구와 멀어졌어요. 촬영하는 동안 제가 연락을 안 해서요.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에 이해해주리라 믿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연락을 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게 후회스러워요. 그때는 연기에 대한 생각뿐이었어요. 오죽하면 은행 카드를 어디에 뒀는지 기억이 안 나 얼마 전까지 입출금 통장을 들고 다녔다니까요(웃음). 

작품에 빠지는 습관이 앞으로 개선될 수 있을까요. 


제 나름대로 노력을 해봤는데 당장 개선하기는 힘들 것 같아요. 촬영이 없는 날 다만 몇 시간이라도 여유가 생겨 부모님과 친한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다음 날 연기에 집중이 아예 안 돼서 애를 먹었거든요. 일상과 작품을 잘 분리시키는 선배를 보면 정말 부러워요. 

건강관리에도 신경을 쓰고 있나요. 

중3 때부터 고1 때까지 책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영화와 소설, 만화책을 많이 봤어요. 되게 신기한 건, 죽음에 관한 영화들이 기억에 남더라고요. 그 작품들을 보면서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너무 강하게 박혀서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자’는 좌우명을 갖게 됐죠. 제게 좋은 멘토가 돼준 스승들도 그런 주의였고요. 체력은 좀 타고난 편이에요. 잘 지치지 않거든요. 평소 정기적으로 운동을 하고 있진 않지만, 캐릭터에 맞게 몸을 만들어야 할 땐 헬스클럽에 가요. 수양한다는 마음으로 거기 있는 기구들을 하나씩 이용해 체력을 단련하죠. 

죽기 전에 꼭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다면요. 

무엇보다 어머니께서 정말 행복하길 바라요. 그리고 저는 좋은 짝을 만나고 싶어요. 제가 좋은 사람이 되면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요. 세 번째 소망은 자식 낳아서 어머니와 가족이 다 같이 한 공간에서 행복하게 지내는 거예요.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이 남다른 것 같아요. 

아버지는 굉장히 호탕하시고, 어머니는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성격이세요. 말수가 거의 없는 편이고요. 제가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도 어머니가 딱 한 마디 하셨어요. “할 거면 이를 악물고 하라”고요. 그 말을 되새기며 저도 버티고 어머니도 옆에서 저를 묵묵히 지켜봐 주셨어요. 몇 년을 그렇게 외아들인 저를 위해 많은 희생을 감수하셨죠(어느새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내 감정을 추스르며 그가 말을 이어갔다). 앞으로 어머니가 많이 웃으시면 좋겠어요. 

당분간 쉬고 싶겠어요. 다음 계획은 뭔가요. 

2017년까지 계속 달려왔기 때문에 잠시 쉬면서 숨 고르기를 하고 싶기도 했어요. 근데 막상 좋은 작품을 만나면 ‘쉬는 건 다음에도 할 수 있잖아’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를 필요로 하는 작품이 있다는 것, 그래서 그 작품에 선택되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에요. 특별히 고집하는 장르도 없고 앞으로 해보고 싶은 인물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그동안 들어온 대본들을 읽고 있어요.


양세종 열정의 온도
designer 박경옥 사진제공 굳피플


여성동아 2018년 1월 64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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