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규리는 스무 살에 데뷔했다. 소녀는 이제 성숙한 여인이 됐다. 멜로와 코미디, 미스터리, 호러 장르까지 청춘을 쏟아낸 배우의 필모그래피엔 굵직한 선이 그려졌다. 문득 그에게 처음 카메라 앞에 선 스무 살 시절을 연기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흔들리는 눈빛과 떨리는 입술, 골똘히 생각에 잠긴 얼굴. 소녀가 된 김규리는 자신만의 온도로 주변을 녹이기 시작했다. 뜨거운 것 같다가도 차갑고, 차가운 것 같다가도 뜨거운 극히 다른 온도 변화. 예측할 수 없는 전개. 우리는 함께 청춘을 부유하고 있었다. 간혹 카메라 셔터 소리가 스튜디오 천장에 부딪혀 울렸다. 컷이 끝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서른아홉 김규리로 돌아와 유쾌한 웃음을 건넨다.
헤어웨어 화보는 처음일 거다. 어떤 스타일이 어울릴지 몰라 여러 개를 준비했다. 개인적으로 씨크릿우먼 S/S 컬렉션 제품인 투 톤 헤어가 잘 어울리더라. 물론 다 예쁘지만.
편안해서 좀 놀랐다. 실제 모발로 만들어 그런지 머릿결도 부드럽더라. 옷에 따라 스타일을 한 순간에 바꿀 수 있어서 촬영도 더 빨리 끝난 것 같다.
▼ 변신해보니 어떤가.
재미있다. 배우는 변신하는 직업이다. 변신에는 용기가 필요하고. 그런데 정작 자신에게 용기를 낼 기회는 별로 없었다. 휴식기엔 웬만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머리를 자르거나 염색도 잘 안 한다. 어떤 배역이 들어올지 모르니까. 이렇게 즐겁게 기다리는 방법도 있는 건데. 스스로를 너무 구속했나 싶다.
▼ 휴식기엔 주로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나.
자전거를 탄다. 예쁘게 포장된 도로를 달리는 자전거 말고, 높은 턱도 거뜬히 뛰어넘을 수 있는 산악자전거. 아마 내가 MTB 1세대일 거다. 여럿이 무리 지어 달리는 라이딩 여행도 가끔씩 즐긴다. 자전거는 내가 해본 운동 중 가장 효율적인 전신 운동이다. 꾸준히 타면 살찔 틈이 없다.
▼ 변신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주말드라마 〈우리 갑순이〉에선 애 둘 낳고 이혼해 친정에 얹혀사는 허다혜로 분했다. 욕 많이 먹었겠다.
허다혜는 남들이 체면 차리느라 하지 못하는 말을 직설적으로 다 하는 캐릭터다. 욕을 안 하면 오히려 그게 이상한 거지. 욕 먹는 게 좋았다면 믿으려나? 사람들은 누구나 가슴속에 화를 품고 살지 않나. 대중들의 해우소가 되고 싶었다.
▼ 드라마에서 술 취한 신이 많더라. 망가지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나.
딱히 부담감은 없었다. 일부러 더 망가지도록 연출했으면 했지. 직업이 노래방 도우미지 않나. 머리는 헝클어트리고, 립스틱은 번지게 하고. 스타일리스트와 상의해서 이것저것 아이디어를 많이 냈는데, 반응이 좋았다. 몇 신 안 되던 캐릭터가 점점 비중이 커졌다.
▼ 열성이 대단하다. 이런 배우라면 감독에게 사랑 듬뿍 받겠다.
모든 감독이 그렇겠지만 현장에서 자상하게 챙겨주신다.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안부 문자가 온다.
▼ 연기 철학도 뚜렷할 것 같다.
꼭 그렇지도 않다. 연기를 특별하게 생각 안 하는 게 철학이랄까. 연기는 삶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그린 삶이 누군가에게 일상의 위로가 되면 더 좋겠고. 그래서 자연스러운 연기를 할 때가 어렵다. 책임이 막중하거든.
▼ 소녀로 데뷔해 어느덧 여인이 됐다. 배우로서 터닝 포인트가 된 지점이 있나.
음… 작품은 아니지만, 스무 살 때 잡지 〈휘가로〉 표지 모델로 데뷔한 거? 당시에는 잡지가 배우 등용문이었다. 모델 데뷔 이후 드라마 〈학교〉로 배우 신고식을 치렀는데 카메라 앞에서 덜덜 떨다가 왔다, 어쩐지 분한 기분이 들더라. 누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는 치기가 솟구쳤다. 같은 해 영화 〈여고괴담〉을 찍으면서 그게 열정이란 걸 깨달았다. 두 작품 모두 배우 생활의 시작이 된 고마운 작품이다.
▼ 식상한 질문이겠지만, 기억에 남는 작품 하나만 꼽아달라. 대중은 이런 게 궁금하거든.
다 기억에 남는다. 기억력이 되게 좋거든. 하하. 지금 떠오르는 건 임권택 감독님과 함께한 영화 〈하류인생〉. 그때가 스물다섯 살이었는데, 어머니가 지병으로 돌아가셨다. 발인한 다음 날이 영화 크랭크인 날이었다. 슬픔을 추스를 새도 없이 작품에 들어갔다. 촬영하는 6개월 동안 매일 촬영장에 갔다. 촬영이 있고 없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작품을 잘 해내고 나면 씩씩하게 어머니를 보내드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상실감은 천천히 찾아오더라. 많이 방황했던 시기다.
▼ 한동안 작품에서 볼 수 없었지. 상실감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깊이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규리 씨를 다시 일으켜준 것 역시 작품인가.
어떻게 알았지? 방황하던 청춘을 제자리로 돌려놓은 게 바로 영화 〈미인도〉다. 영화를 찍으면서 화가 신윤복의 삶에 푹 빠져들었다. 그때 처음 한국화를 배웠다. 그림을 그리면서 많은 치유를 받았다.
▼ 한국화 실력이 전문가 못지않던데? 예전에 바자회에서 직접 그린 한국화 부채를 기부하는 걸 봤다. 연기를 하면서 재능을 발견하는 건 짜릿한 경험이겠다.
아직 공부하는 단계라 이런 말 들으면 부끄럽다. 〈미인도〉를 촬영할 때 인연을 맺은 한국화 선생님들이 지금도 가르쳐주신다. 화선지는 최고로 예민한 종이지 않나. 오로지 농담 조절만으로 내밀한 선을 표현해야 한다. 마음을 가다듬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작업이다. 이만한 좋은 정신 수양이 없고. 언젠가는 전시회를 열 수도 있겠지.
▼ 〈내 앞에 봄이 와 있다〉란 책도 펴냈던데? 게다가 예능 프로그램 〈댄싱 위드 더 스타〉에서 수준급 춤 실력을 보인 바 있다. 이 정도면 예술가라고 불러야겠다.
그렇게 봐주면 고맙다. 나는 이 시대의 예술가들을 사랑한다. 스치는 바람에도 쓸쓸함을 느끼는 그들의 연약한 피부가 좋다. 그래서 나도 깨어 있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한다. 연기든, 그림이든, 춤이든, 어떤 방식으로든 내 감정을 드러낼 줄 아는 게 중요하다.
▼ 그렇게 해서 끝끝내 얻고 싶은 게 뭔가.
행복? 그냥 다들 즐거워지길 바란다. 가만히 있어도 괴로운 시국 아닌가. 이렇게 평소 안 하던 파격적인 헤어스타일로 주변 사람들을 놀래주기도 하고. 신명나게 살고 싶다. 작품 활동도 왕성하게 하면서. 아! 개인적인 소망으로는 올해가 가기 전에 다시 한 번 무대에 올라 신나게 춤을 춰보고 싶다.
▼ 의외로 작품보다 먼저 〈쇼 미 더 머니〉 〈복면가왕〉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만날 수 있겠는데?
하하. 밀레니엄 시절엔 보일러 슈트에 탱크톱 입고 걸스 힙합을 흉내내고 다녔다. 어쩌면 내 안에 힙합의 피가 흐르고 있는 지도(웃음). 〈복면가왕〉에서 섭외 전화가 여러 번 왔는데, 내가 나가면 누구라도 금방 눈치챌 거 같아서 거절했다. 특히 봉선이! 남을 속이는 건 정말 못하겠다.
제작지원 씨크릿우먼
사진 김외밀(청년사진관)
디자인 김영화
제품협찬 더스튜디오케이(070-8630-7655) 미스지컬렉션(02-548-9026) 세컨플로어(02-3467-8625) 슈콤마보니(1588-7667) 스튜디오톰보이(02-3475-6335) 에탐(02-551-5707) 지컷(02-3467-8595) YCH(02-798-6202)
헤어 김귀애
메이크업 이영
스타일리스트 엄지훈
문의 씨크릿우먼(1599-1625)
헤어웨어 화보는 처음일 거다. 어떤 스타일이 어울릴지 몰라 여러 개를 준비했다. 개인적으로 씨크릿우먼 S/S 컬렉션 제품인 투 톤 헤어가 잘 어울리더라. 물론 다 예쁘지만.
편안해서 좀 놀랐다. 실제 모발로 만들어 그런지 머릿결도 부드럽더라. 옷에 따라 스타일을 한 순간에 바꿀 수 있어서 촬영도 더 빨리 끝난 것 같다.
▼ 변신해보니 어떤가.
재미있다. 배우는 변신하는 직업이다. 변신에는 용기가 필요하고. 그런데 정작 자신에게 용기를 낼 기회는 별로 없었다. 휴식기엔 웬만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머리를 자르거나 염색도 잘 안 한다. 어떤 배역이 들어올지 모르니까. 이렇게 즐겁게 기다리는 방법도 있는 건데. 스스로를 너무 구속했나 싶다.
▼ 휴식기엔 주로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나.
자전거를 탄다. 예쁘게 포장된 도로를 달리는 자전거 말고, 높은 턱도 거뜬히 뛰어넘을 수 있는 산악자전거. 아마 내가 MTB 1세대일 거다. 여럿이 무리 지어 달리는 라이딩 여행도 가끔씩 즐긴다. 자전거는 내가 해본 운동 중 가장 효율적인 전신 운동이다. 꾸준히 타면 살찔 틈이 없다.
▼ 변신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주말드라마 〈우리 갑순이〉에선 애 둘 낳고 이혼해 친정에 얹혀사는 허다혜로 분했다. 욕 많이 먹었겠다.
허다혜는 남들이 체면 차리느라 하지 못하는 말을 직설적으로 다 하는 캐릭터다. 욕을 안 하면 오히려 그게 이상한 거지. 욕 먹는 게 좋았다면 믿으려나? 사람들은 누구나 가슴속에 화를 품고 살지 않나. 대중들의 해우소가 되고 싶었다.
▼ 드라마에서 술 취한 신이 많더라. 망가지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나.
딱히 부담감은 없었다. 일부러 더 망가지도록 연출했으면 했지. 직업이 노래방 도우미지 않나. 머리는 헝클어트리고, 립스틱은 번지게 하고. 스타일리스트와 상의해서 이것저것 아이디어를 많이 냈는데, 반응이 좋았다. 몇 신 안 되던 캐릭터가 점점 비중이 커졌다.
▼ 열성이 대단하다. 이런 배우라면 감독에게 사랑 듬뿍 받겠다.
모든 감독이 그렇겠지만 현장에서 자상하게 챙겨주신다.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안부 문자가 온다.
▼ 연기 철학도 뚜렷할 것 같다.
꼭 그렇지도 않다. 연기를 특별하게 생각 안 하는 게 철학이랄까. 연기는 삶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그린 삶이 누군가에게 일상의 위로가 되면 더 좋겠고. 그래서 자연스러운 연기를 할 때가 어렵다. 책임이 막중하거든.
▼ 소녀로 데뷔해 어느덧 여인이 됐다. 배우로서 터닝 포인트가 된 지점이 있나.
음… 작품은 아니지만, 스무 살 때 잡지 〈휘가로〉 표지 모델로 데뷔한 거? 당시에는 잡지가 배우 등용문이었다. 모델 데뷔 이후 드라마 〈학교〉로 배우 신고식을 치렀는데 카메라 앞에서 덜덜 떨다가 왔다, 어쩐지 분한 기분이 들더라. 누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는 치기가 솟구쳤다. 같은 해 영화 〈여고괴담〉을 찍으면서 그게 열정이란 걸 깨달았다. 두 작품 모두 배우 생활의 시작이 된 고마운 작품이다.
▼ 식상한 질문이겠지만, 기억에 남는 작품 하나만 꼽아달라. 대중은 이런 게 궁금하거든.
다 기억에 남는다. 기억력이 되게 좋거든. 하하. 지금 떠오르는 건 임권택 감독님과 함께한 영화 〈하류인생〉. 그때가 스물다섯 살이었는데, 어머니가 지병으로 돌아가셨다. 발인한 다음 날이 영화 크랭크인 날이었다. 슬픔을 추스를 새도 없이 작품에 들어갔다. 촬영하는 6개월 동안 매일 촬영장에 갔다. 촬영이 있고 없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작품을 잘 해내고 나면 씩씩하게 어머니를 보내드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상실감은 천천히 찾아오더라. 많이 방황했던 시기다.
▼ 한동안 작품에서 볼 수 없었지. 상실감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깊이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규리 씨를 다시 일으켜준 것 역시 작품인가.
어떻게 알았지? 방황하던 청춘을 제자리로 돌려놓은 게 바로 영화 〈미인도〉다. 영화를 찍으면서 화가 신윤복의 삶에 푹 빠져들었다. 그때 처음 한국화를 배웠다. 그림을 그리면서 많은 치유를 받았다.
▼ 한국화 실력이 전문가 못지않던데? 예전에 바자회에서 직접 그린 한국화 부채를 기부하는 걸 봤다. 연기를 하면서 재능을 발견하는 건 짜릿한 경험이겠다.
아직 공부하는 단계라 이런 말 들으면 부끄럽다. 〈미인도〉를 촬영할 때 인연을 맺은 한국화 선생님들이 지금도 가르쳐주신다. 화선지는 최고로 예민한 종이지 않나. 오로지 농담 조절만으로 내밀한 선을 표현해야 한다. 마음을 가다듬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작업이다. 이만한 좋은 정신 수양이 없고. 언젠가는 전시회를 열 수도 있겠지.
▼ 〈내 앞에 봄이 와 있다〉란 책도 펴냈던데? 게다가 예능 프로그램 〈댄싱 위드 더 스타〉에서 수준급 춤 실력을 보인 바 있다. 이 정도면 예술가라고 불러야겠다.
그렇게 봐주면 고맙다. 나는 이 시대의 예술가들을 사랑한다. 스치는 바람에도 쓸쓸함을 느끼는 그들의 연약한 피부가 좋다. 그래서 나도 깨어 있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한다. 연기든, 그림이든, 춤이든, 어떤 방식으로든 내 감정을 드러낼 줄 아는 게 중요하다.
▼ 그렇게 해서 끝끝내 얻고 싶은 게 뭔가.
행복? 그냥 다들 즐거워지길 바란다. 가만히 있어도 괴로운 시국 아닌가. 이렇게 평소 안 하던 파격적인 헤어스타일로 주변 사람들을 놀래주기도 하고. 신명나게 살고 싶다. 작품 활동도 왕성하게 하면서. 아! 개인적인 소망으로는 올해가 가기 전에 다시 한 번 무대에 올라 신나게 춤을 춰보고 싶다.
▼ 의외로 작품보다 먼저 〈쇼 미 더 머니〉 〈복면가왕〉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만날 수 있겠는데?
하하. 밀레니엄 시절엔 보일러 슈트에 탱크톱 입고 걸스 힙합을 흉내내고 다녔다. 어쩌면 내 안에 힙합의 피가 흐르고 있는 지도(웃음). 〈복면가왕〉에서 섭외 전화가 여러 번 왔는데, 내가 나가면 누구라도 금방 눈치챌 거 같아서 거절했다. 특히 봉선이! 남을 속이는 건 정말 못하겠다.
제작지원 씨크릿우먼
사진 김외밀(청년사진관)
디자인 김영화
제품협찬 더스튜디오케이(070-8630-7655) 미스지컬렉션(02-548-9026) 세컨플로어(02-3467-8625) 슈콤마보니(1588-7667) 스튜디오톰보이(02-3475-6335) 에탐(02-551-5707) 지컷(02-3467-8595) YCH(02-798-6202)
헤어 김귀애
메이크업 이영
스타일리스트 엄지훈
문의 씨크릿우먼(1599-1625)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