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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연이라는 이름의 아우라

EDITOR 김지영 기자

입력 2019.05.02 17:00:02

영화 ‘생일’은 문득 일상이 재미없다는 생각에 빠져 있던 그의 삶을 감사함으로 채워줬다고 한다. 이 선물 같은 영화에 배우이자 엄마인 전도연이 바치는 헌사.
전도연이라는 이름의 아우라
섬세한 감정을 살려내는 탁월한 연기력으로 독보적인 존재감을 각인시켜온 전도연(46)이 최근 또 한 편의 작품으로 이 시대 대표 배우임을 보여주었다. 4월 3일 개봉된, 세월호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생일’이 그것. 

극 중 전도연은 친구 같고 남편 같던 아들 수호를 떠나보낸 마트 계산원 순남으로 분한다. 순남은 딸 예솔을 키우며 아들을 잃은 상처를 담담하게 견뎌내는 강한 엄마지만 나날이 커져가는 아들을 향한 그리움을 어쩌지 못해 한밤중 아파트가 떠나갈 듯 오열을 터뜨리기도 한다. 수호를 가슴에 묻은 후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지 못하던 그는 수년 만에 해외에서 돌아온 남편(설경구)과 세월호 가족들, 수호의 친구들과 함께 아들을 추억하는 생일 파티를 열면서 비로소 엉켜 있던 복잡한 감정들을 뜨거운 눈물로 풀어낸다. 

전도연의, 전도연에 의한, 전도연을 위한 영화라고 해도 좋을 만큼 그의 연기가 돋보이는 ‘생일’은 개봉 2주째인 4월 17일 현재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고 있다. 영화 ‘남과 여’ 이후 3년 만의 복귀작인 데다 그 자신도 한 아이의 엄마이기에 이번 작품에 임하는 마음가짐이 남달랐을 배우를 화창한 봄날에 만났다. 2007년 서울대 출신의 사업가 강시규 씨와 결혼해 2009년 딸을 낳은 그는 여전히 동안의 미모를 간직하고 있다.


전도연이라는 이름의 아우라
목은 나이를 속일 수 없다는데 주름이 하나도 없어요. 비결이 있을 것 같아요. 

술을 덜 마시고 규칙적인 생활을 꾸준히 하면서 제 자신을 가꾸려고 노력한 덕분일 거예요. 제 생활의 기준이 아이에게 맞춰져 있다 보니 규칙적이 될 수밖에 없더라고요. 예전에는 사람들과 술 마시며 영화 얘기 하는 걸 좋아했는데 언제부턴가 그러려면 굉장한 노력이 필요하더라고요. 약속을 잡기 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고요. 일할 때 빼고는 뭘 해도 재미가 없기에 집순이로 지냈더니 저도 모르게 게을러져 한동안 운동을 거의 하지 못했어요. 이렇게 지내선 안 될 것 같아 요즘은 운동도 다시 열심히 하고, 마사지도 엄마와 함께 꼬박꼬박 받고 있어요. 거울을 보면 제 모습이 예전 같지 않아 슬플 때도 있는데 인터뷰를 위해 찍은 사진이 실물보다 너무 잘 나와 깜짝 놀랐어요. 하하하. 

‘생일’을 본 소감은 어땠어요. 


영화 촬영이 지난해 3월 시작돼 7월에 끝났어요. 찍은 지 좀 돼서 개봉 날짜가 잡힌 후 감독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완성되지 않은 가편집본을 먼저 접했어요. 그러고 나서 감독님이 “왜 아무 얘기 안 해요?”라고 묻기에 “순남이 유령 같아요”라고 한마디 했어요. 언론시사회 때도 영화를 제대로 감상할 수 없었어요. 제 작품을 볼 때는 늘 그러는 것 같아요. 



언론시사회를 끝까지 보지 않고 나가더군요. 

눈물이 터져 나와 생일 신까진 못 보겠더라고요. 배우들이 다 모인 전체 리딩 때도 생일 신은 건너뛰었거든요. 눈물바다가 될 것 같아서요. 이어질 기자간담회를 위해 마음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했어요. 

처음에는 출연 제의를 고사했다고 들었어요. 다시 마음을 바꾸게 된 계기가 뭔가요. 

이종언 감독님이 저를 염두에 두고 썼다는 영화 대본이 세월호 유가족 이야기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부터 부담스러웠어요. 그분들의 감정을 연기로 표현한다는 자체도 어려운 일이었고요. 게다가 대본을 읽고 펑펑 울었어요. 영화 ‘밀양’에서 제가 연기한 엄마 신애가 생각나더군요. 

그 작품을 하고 나서 다시는 아이 엄마 역할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거든요. 그런 역할이 정말 많이 들어왔지만 다 거절했고요. 대본을 본 제 주변 사람들도 하나같이 꺼이꺼이 울면서 하지 말라고 했어요. “감정적으로 너무 힘들 거고, 영화 외적인 면으로도 상처 받고 힘들 것 같다”면서요. 그런 여러 이유로 처음엔 출연을 고사했는데 이후에도 감독님과 제가 느낀 감정들을 계속 공유했어요. 누군가가 이 이야기를 잘 그려주길 바랐거든요. 그렇게 애매하게 작품에 걸쳐 있다 한 지인의 말에 용기를 얻었어요. “도연아, 그냥 해. 네가 연기하는 모습을 너무 보고 싶고, 잘할 수 있을 거야. 네가 잘하는 것을 하면서 새로운 도전도 하면 되잖니?”라고 말해줬거든요. 어쩌면 그 말을 누군가가 해주길 기다렸는지도 몰라요. 출연을 결정했을 때 이미 순남이라는 인물 안에 제가 깊이 들어가 있었거든요. 

촬영이 진행된 4개월여 동안 순남의 감정선을 어떻게 유지했나요. 

뭐든 강요하면 하기 싫어지는 스타일이라 촬영할 때 제 자신을 들볶지 않아요. 힘들고 중요한 신이 있을 때는 그 생각을 안 해요. 대사만 잊어버리지 않게 달달 외우고 카메라 앞에 섰을 때는 스스로에게 맡겨요. 촬영에 몰입했을 때 느껴지는 만큼만 연기하자는 주의예요. 


전도연이라는 이름의 아우라
캐릭터의 영향을 안 받는 스타일인가요. 

힘든 신을 찍거나 힘든 역을 맡으면 좀 예민해지기는 하지만 촬영을 끝낸 뒤 인물에서 빠져나오느라 애먹은 적은 없었어요. 감정적으로 힘들어서 휴식이 필요했던 적도 없고요. 

지난 20여 년 동안 여러 대표작을 탄생시켰어요.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 궁금해요. 

시나리오인 것 같아요. 영화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스스로 공감이 가는지, 안 가는지를 먼저 살피거든요. 그러고 나서 출연하기로 결정했으면 제 앞에 난관이 닥쳐도 계속 직진해요. 연기할 때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죠. 마음이 끌리면 일단 부딪혀보고 나중에 뒷수습하는 타입이랄까요. 찜찜하거나 불편한 감정이 남아 있는 걸 가장 싫어해요. 

2001년 설경구 씨와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영화에 남녀 주인공으로 출연했어요. 18년 만에 스크린에서 재회한 소감은요. 

그동안 자주는 아니더라도 사석에서 가끔 만났기 때문에 18년이 지난 게 실감이 안 나요. 카메라 앞에서 호흡을 맞출 때도 어제 만난 것처럼 익숙했어요. 알고 지낸 지 오래 돼서 같이 있으면 남매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서로 챙겨주지 않는 남매요. 하하하. 


전도연이라는 이름의 아우라
이번 영화를 찍고 나니 어떤 기분이 드나요. 

이 이야기를 외면해 처음엔 미안함을 안고 촬영을 시작했는데 이제 무거운 돌덩이 하나 정도는 내려놓은 느낌이에요. 출연하지 않았으면 후회했을 것 같아요. 지금도 말 한마디가 또 다른 피해와 오해를 낳을까 봐 조심스럽지만 많은 분들이 이 이야기를 알면 좋겠어요. 영화를 보고 나서 관객들이 “힘들었어. 엄청 울었어. 근데 봐야 할 것 같아. 따뜻하고, 집에 내 가족이 있다는 게 감사해!”라고 말할 것 같아요. 지금의 힘듦을 감사함으로 바꿀 수 있는 영화거든요. 

본인은 무엇에 감사하게 됐나요. 

한동안 ‘사는 게 왜 이렇게 재미가 없지? 1백 세 시대라고 하는데 이렇게 재미없게 살아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든 적이 있어요. ‘뭘 하면 즐거울까? 어떻게 하면 내가 행복할까?’라는 물음을 제 자신에게 던지니 재미없다는 생각이 앞으로는 더 많이 들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이 영화를 찍으면서 그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바뀌었어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에 대해 항상 감사하며 살자’로요. 

그 덕분일까요. 지금은 사는 게 재미있어 보여요. 


‘배우로서 나를 필요로 하는 이들이 있고, 딸이 있고, 가정이 있고, 남편도 있는데 내가 불평불만을 가지면 벌 받지. 이렇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라는 생각이 드니 제가 가진 모든 것과 매사에 감사하게 되더라고요. ‘이렇게 곱게 잘 늙고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야! 그리고 저녁에 아이랑 같이 밥을 먹고, 아이가 아무 일 없이 집에 들어와 내 옆에서 잠드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이야!’ 하고요. 저도 사람인지라 이런 생각을 놓칠 때도 있지만 항상 그런 마음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요. 

엄마로서나 배우로서나 열심히 살고 있는 본인에게 주고 싶은 선물은 뭔가요. 

많은 분들이 ‘생일’을 봐주시는 것이 제겐 좋은 선물이 될 것 같아요. 이 영화를 보는 자체가 관객들에게도 좋은 선물이 될 겁니다.


디자인 김영화
사진제공 매니지먼트숲 NEW




여성동아 2019년 5월 6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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