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쌍둥이 자매가 문·이과 전교 1등을 나란히 차지하면서 시작된 ‘숙명여고 시험문제 유출 의혹’은 11월 12일 경찰이 업무방해 혐의로 아버지인 전 교무부장 A씨를 구속, 쌍둥이 자매를 불구속 기소의견으로 송치하면서 일단락됐다. 경찰은 “쌍둥이 아빠인 전 교무부장이 딸들을 위해 다섯 차례에 걸쳐 시험문제를 유출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으며 두 딸 역시 시험문제 유출의 공범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학부모들은 자퇴 처리가 너무 성급하지 않느냐고 항의했으나 당시 학교 측은 “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통해 영장을 발부한 것이 범죄행위가 소명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는 법적 자문을 바탕으로 했다”면서, “수개월간 본 사건을 조사해온 수사기관 및 그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존중해 내린 결정”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 사실이 또다시 여론을 악화시키자 사법 처리 결과가 나오기 전 퇴학 결정을 내린 것이다.
A씨의 시험문제 유출 혐의에 대해 최근 경찰이 제시한 증거는 차고 넘친다. 쌍둥이 자매의 집을 압수수색한 결과 일부 과목의 시험문제 답이 적힌 손 글씨 메모가 있었고, 쌍둥이 동생 휴대전화에 남아 있는 각종 디지털 정보를 분석한 결과 실제로 출제된 영어 시험의 일부 답안이 적힌 메모가 나왔다. 게다가 휴대전화에서 발견된 영어 시험 정답 메모는 2학년 1학기 기말고사 3일 전 작성된 것으로 조사됐다. 해당 문제는 ‘보기’에 주어진 단어와 구문을 배열해 문장을 완성해야 했는데, 휴대전화에는 순서에 딱 맞는 완성형 문장의 정답이 있었다. 또 시험 전 답을 외어 시험지를 받자마자 적은 듯 쌍둥이 자매의 시험지에는 작은 글씨로 답이 적혀 있었다. 경찰은 이외에도 1학년 1학기 기말고사와 2학기 중간고사에서 각각 1과목, 2학년 1학기 기말고사 2과목 시험지에 객관식과 주관식 정답이 깨알 같은 글씨로 적힌 것을 발견했다. 게다가 쌍둥이가 답안 목록을 잘 외우려고 키워드를 만들어둔 흔적도 있었다고 한다. 또 다른 핵심 증거는 이과생인 동생의 수상한 오답이었다. 동생은 화학 시험 서술형 문제에 답을 ‘10:11’이라고 적어 냈는데 이는 출제·편집 과정에서 잘못된, 정정 전 답으로 이를 적어 낸 학생은 동생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의 행동도 의심을 샀다. 2학년 1학기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직전에 시험지가 보관된 금고 주변에서 야근했고, 시험문제 유출 의혹이 불거지자 자택 컴퓨터를 교체한 뒤 송곳으로 하드디스크를 훼손한 정황도 있었다.
현재 당사자들은 범행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쌍둥이들의 변호를 맡은 최영(법무법인 오현) 변호사는 “대법원의 확정 판결이 나기도 전에 내린 결정은 무죄추정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반발하고 나섰다. 또 경찰의 수사 결과 발표에 대해 A4 용지 11장에 달하는 반박문을 내며 반격했다. 주된 내용은 ‘경찰이 밝힌 ‘정황’들은 충분히 반박할 수 있고, 결국 혐의를 입증할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는 것이다. 우선 답을 적은 메모들에 대해서는 ‘채점과 공부용이며, 답을 다 알았더라면 만점을 맞았어야 하는데 만점이 아닌 과목도 있다’고 반박했다. 또 내신 향상에 비해 모의고사 성적이 하락한 것에 대해서는 ‘모의고사와 내신 성적은 충분히 차이가 날 수 있으며, 9월에 치러진 모의고사에서는 성적이 좋았다(언니는 국어 1등급, 수학 2등급, 영어 1등급, 한국사 1등급, 사회탐구 1등급. 동생은 국어 2등급, 수학 3등급, 영어 1등급, 한국사 1등급, 과학탐구 3·4등급)’고 밝혔다. 컴퓨터 교체할 때 하드디스크를 송곳으로 훼손한 것에 대해서는 “노트북이 고장 나 폐기했고, 개인정보 우려로 훼손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내신 성적과 관련해 문제가 불거진 것은 비단 이번뿐만이 아니다. 지난 10월에는 광주광역시에서 고등학교 행정실장이 시험지를 빼돌려 복사한 뒤 학부모에게 건네 실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1993년에는 정답 표를 관리하던 장학사가 이를 유출해 반 꼴찌였던 친구의 아이를 전국 1등으로 만든 사건도 있었다.
내신 성적과 학교생활기록부가 바로 입시(수시 전형)로 직결되는 상황에서 이런 문제가 잇따르다 보니 공교육에 대한 학부모의 불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입시생 자녀를 둔 김유진 씨는 “전국적으로 조사를 확대해보면 분명히 이 같은 정황이 더 많이 나올 것”이라면서, “강남에서 일어난 일이라 이 정도로 이슈화됐지만, 솔직히 학교에서 몇 명이 짜고 시험을 조작하면 누가 알겠냐”고 분개했다.
인천의 한 공립 고등학교 교사 최모 씨는 “교무부장은 전 학년의 모든 시험지를 다 볼 수 있다”면서, “마음만 먹으면 시험지 유출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인천에서도 몇 년 전 영어 교사가 본인 조카에게 시험지를 유출해서, 그 학생을 퇴학 처리하고 내신 산정을 다시 했다”면서 “이번 사건은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교육부는 지난 11월 17일, 고등학교 교원은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 배치되지 않도록 원칙적으로 금지하겠다고 밝히고 “교육부가 교육청에 (상피제를) 권고하면 교육청이 자체적으로 인사 규정을 고쳐 내년 3월 1일자 인사에 적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다만, 농산어촌 등 부모와 자녀가 같은 학교에 다니는 것이 불가피한 경우에는 부모가 자녀와 관련한 평가 업무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관리하겠다고 했다. 문제는 사립학교다. 교육부는 사립학교 교사의 자녀가 부모가 재직 중인 학교에 입학할 경우 교사를 같은 학교법인 내 다른 학교로 보내거나 공립학교 교사와 1:1로 자리를 바꾸는 방안, 기간제 교사로 대체하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이다.
쌍둥이 자매와 A씨의 사법 처리 결과에도 관심이 쏠린다. 형법상 업무방해죄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백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돼 있다. 법조계 인사들은 지금까지 나온 증거만으로도 이들 부녀가 유죄 판결을 피하기는 힘들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시험문제 유출에 대한 직접증거보다는 정황 증거가 대부분이어서 향후 재판에 변수로 작용할 소지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기획 김지영 기자 사진 동아일보 사진DB파트 뉴시스 뉴스1 디자인 이지은
경찰 발표 “다섯 차례에 걸쳐 문제 유출”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건 초기 이를 수수방관하던 학교에서는 급기야 쌍둥이 자매의 퇴학 조치와 성적 0점 처리에 나섰다. 애초 학교 측은 쌍둥이 자매가 제출한 자퇴 서류를 서둘러 처리하려고 했다. 쌍둥이가 자퇴하면 자퇴 직전 학기(2학년 1학기)까지 받은 성적을 들고 다른 학교에 편입할 수 있다. 이 경우 다른 숙명여고 학생들 성적은 변함이 없다. 반면 학교에서 선도위원회를 열어 ‘성적 부정행위’로 퇴학 징계를 내리면 쌍둥이 성적은 모두 0점 처리되고, 다른 학생들의 성적은 재산정된다. 쌍둥이의 타 학교 편입도 불가하다.이 때문에 학부모들은 자퇴 처리가 너무 성급하지 않느냐고 항의했으나 당시 학교 측은 “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통해 영장을 발부한 것이 범죄행위가 소명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는 법적 자문을 바탕으로 했다”면서, “수개월간 본 사건을 조사해온 수사기관 및 그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존중해 내린 결정”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 사실이 또다시 여론을 악화시키자 사법 처리 결과가 나오기 전 퇴학 결정을 내린 것이다.
A씨의 시험문제 유출 혐의에 대해 최근 경찰이 제시한 증거는 차고 넘친다. 쌍둥이 자매의 집을 압수수색한 결과 일부 과목의 시험문제 답이 적힌 손 글씨 메모가 있었고, 쌍둥이 동생 휴대전화에 남아 있는 각종 디지털 정보를 분석한 결과 실제로 출제된 영어 시험의 일부 답안이 적힌 메모가 나왔다. 게다가 휴대전화에서 발견된 영어 시험 정답 메모는 2학년 1학기 기말고사 3일 전 작성된 것으로 조사됐다. 해당 문제는 ‘보기’에 주어진 단어와 구문을 배열해 문장을 완성해야 했는데, 휴대전화에는 순서에 딱 맞는 완성형 문장의 정답이 있었다. 또 시험 전 답을 외어 시험지를 받자마자 적은 듯 쌍둥이 자매의 시험지에는 작은 글씨로 답이 적혀 있었다. 경찰은 이외에도 1학년 1학기 기말고사와 2학기 중간고사에서 각각 1과목, 2학년 1학기 기말고사 2과목 시험지에 객관식과 주관식 정답이 깨알 같은 글씨로 적힌 것을 발견했다. 게다가 쌍둥이가 답안 목록을 잘 외우려고 키워드를 만들어둔 흔적도 있었다고 한다. 또 다른 핵심 증거는 이과생인 동생의 수상한 오답이었다. 동생은 화학 시험 서술형 문제에 답을 ‘10:11’이라고 적어 냈는데 이는 출제·편집 과정에서 잘못된, 정정 전 답으로 이를 적어 낸 학생은 동생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의 행동도 의심을 샀다. 2학년 1학기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직전에 시험지가 보관된 금고 주변에서 야근했고, 시험문제 유출 의혹이 불거지자 자택 컴퓨터를 교체한 뒤 송곳으로 하드디스크를 훼손한 정황도 있었다.
현재 당사자들은 범행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쌍둥이들의 변호를 맡은 최영(법무법인 오현) 변호사는 “대법원의 확정 판결이 나기도 전에 내린 결정은 무죄추정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반발하고 나섰다. 또 경찰의 수사 결과 발표에 대해 A4 용지 11장에 달하는 반박문을 내며 반격했다. 주된 내용은 ‘경찰이 밝힌 ‘정황’들은 충분히 반박할 수 있고, 결국 혐의를 입증할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는 것이다. 우선 답을 적은 메모들에 대해서는 ‘채점과 공부용이며, 답을 다 알았더라면 만점을 맞았어야 하는데 만점이 아닌 과목도 있다’고 반박했다. 또 내신 향상에 비해 모의고사 성적이 하락한 것에 대해서는 ‘모의고사와 내신 성적은 충분히 차이가 날 수 있으며, 9월에 치러진 모의고사에서는 성적이 좋았다(언니는 국어 1등급, 수학 2등급, 영어 1등급, 한국사 1등급, 사회탐구 1등급. 동생은 국어 2등급, 수학 3등급, 영어 1등급, 한국사 1등급, 과학탐구 3·4등급)’고 밝혔다. 컴퓨터 교체할 때 하드디스크를 송곳으로 훼손한 것에 대해서는 “노트북이 고장 나 폐기했고, 개인정보 우려로 훼손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내신 성적 중심의 수시 전형에 대한 학부모 불신 커져
숙명여고 교무부장 A씨(앞줄 오른쪽)가 11월 6일 시험문제 유출 혐의로 구속되기 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출석하는 모습. 경찰이 A씨와 쌍둥이 딸들에게서 압수한 기록물(왼쪽 사진).
내신 성적과 학교생활기록부가 바로 입시(수시 전형)로 직결되는 상황에서 이런 문제가 잇따르다 보니 공교육에 대한 학부모의 불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입시생 자녀를 둔 김유진 씨는 “전국적으로 조사를 확대해보면 분명히 이 같은 정황이 더 많이 나올 것”이라면서, “강남에서 일어난 일이라 이 정도로 이슈화됐지만, 솔직히 학교에서 몇 명이 짜고 시험을 조작하면 누가 알겠냐”고 분개했다.
인천의 한 공립 고등학교 교사 최모 씨는 “교무부장은 전 학년의 모든 시험지를 다 볼 수 있다”면서, “마음만 먹으면 시험지 유출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인천에서도 몇 년 전 영어 교사가 본인 조카에게 시험지를 유출해서, 그 학생을 퇴학 처리하고 내신 산정을 다시 했다”면서 “이번 사건은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교육부는 지난 11월 17일, 고등학교 교원은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 배치되지 않도록 원칙적으로 금지하겠다고 밝히고 “교육부가 교육청에 (상피제를) 권고하면 교육청이 자체적으로 인사 규정을 고쳐 내년 3월 1일자 인사에 적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다만, 농산어촌 등 부모와 자녀가 같은 학교에 다니는 것이 불가피한 경우에는 부모가 자녀와 관련한 평가 업무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관리하겠다고 했다. 문제는 사립학교다. 교육부는 사립학교 교사의 자녀가 부모가 재직 중인 학교에 입학할 경우 교사를 같은 학교법인 내 다른 학교로 보내거나 공립학교 교사와 1:1로 자리를 바꾸는 방안, 기간제 교사로 대체하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이다.
쌍둥이 자매와 A씨의 사법 처리 결과에도 관심이 쏠린다. 형법상 업무방해죄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백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돼 있다. 법조계 인사들은 지금까지 나온 증거만으로도 이들 부녀가 유죄 판결을 피하기는 힘들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시험문제 유출에 대한 직접증거보다는 정황 증거가 대부분이어서 향후 재판에 변수로 작용할 소지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기획 김지영 기자 사진 동아일보 사진DB파트 뉴시스 뉴스1 디자인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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