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 성 소피아 성당.
폭풍 같은 잡지 마감을 마치고 힐링이 필요하던 차, 여행지로 터키를 고른 건 지극히 충동적인 선택이었다. 마침 쓰지 못한 휴가가 남아 있었고, 연휴가 겹쳐 조금 길게 쉴 기회였다. 그러던 중 ‘3일 후 출발’한다는 터키 여행 상품이 눈에 띄었다.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데 고민은 없었다. 인천~이스탄불 직항 편을 이용하면 약 11시간 걸리는 곳에 ‘형제의 나라’가 있었다. 공항에 내릴 때부터 형제의 배려가 시작됐다. 우리나라와 사증면제협정을 체결한 덕에 관광 목적으로 90일 이내 방문 시에는 비자가 필요 없었다. 서울과의 시차는 7시간. 시곗바늘을 앞당기고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했다.
여행 전에 이것저것 뒤져보는 편이지만 급하게 오느라 터키 여행 정보 공유 카페에서 현지 날씨를 검색한 것이 사전 준비의 전부였다. 9월 말의 날씨는 서울과 비슷했지만 지중해의 뜨거운 태양 빛을 막아줄 모자와 선글라스, 선크림 없이는 새카맣게 탈 것 같았다. 피부가 쩍쩍 갈라지는 건조한 느낌이 싫다면 보습 크림도 준비해야 한다. 신선한 토마토와 오이, 사워크림이 곁들여진 현지식은 맛있었지만, 입에 맞지 않을까 불안하다면 튜브 용기에 담긴 고추장이나 김을 약간 챙기면 될 것 같다.
3 4 그랜드 바자르. 5 톱카프 궁전 입구.
터키의 중심 이스탄불
백지 상태로 온 여행이다 보니 귀를 활짝 열고 며칠 굶은 사람처럼 들리는 이야기를 흡수하기에 바빴다. 현지 안내자가 “주변에 터키 여행 다녀와서 나빴다고 하는 사람 못 봤죠?”라고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그게 왜 그런 줄 아세요? 다들 어떤 나라인지 잘 모르고 왔다가 ‘여기에 이런 게 있었어?’라며 잔뜩 놀라고 가거든요”하고는 씩 웃었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바다인 마르마라해에서 흑해에 이르는 보스포러스 해협을 끼고 유럽과 아시아의 길목에 자리한 이스탄불은 많은 이들이 터키의 수도라고 여길 정도로 경제적, 사회적 영향력이 큰 도시다. 지금도 모든 국제항공이 이스탄불을 거치는 것은 물론 정치를 제외한 전 분야에서 터키의 중심 노릇을 하고 있다.
1609~1616년에 건축된 ‘술탄 아흐메드 모스크’는 건물을 지으라고 명령한 술탄 아흐메드 1세의 이름을 딴 모스크로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이다. 당시 성 소피아 성당이 이슬람 모스크로 사용되고 있었지만, 늘 소피아 성당이 그리스인의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던 터키인들은 그것을 능가하는 모스크를 맞은편에 세우고자 했다. 내부 벽면이 청색 타일로 장식돼 있어 블루 모스크라고도 널리 알려졌다.
‘성 소피아 성당’은 비잔틴 제국의 가톨릭 성당으로 360년경 콘스탄티누스 대제 시절 지어졌으나 후에 지진으로 소실됐다. 현재의 건물은 537년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에 의해 건립됐을 당시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1천여 명의 목수와 1만여 명의 노동자가 동원돼 6년여 만에 완공된 이 성당은 세계 건축사에서 8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힌다. 537년부터 1452년까지 916년 동안 성당으로 쓰이던 이곳은 1453년 오스만튀르크의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 점령 후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돼 477년 동안 쓰였다. 건물 안에 초기 기독교 성화와 이슬람교 장식물이 공존해 이색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56m 높이의 거대한 중앙 돔이 4개의 소형 돔으로 연결된 이 성당은 비잔틴 건축물의 정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톱카프 궁전’은 1453년 오스만 제국의 제7대 술탄 마흐메드 2세가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하고 세운 궁전으로 벽 길이 5㎞에 면적 70만㎡의 거대한 위용을 자랑한다. 입장하려면 검문검색대를 통과해야 한다. 궁전 내 총 4개의 정원이 있고 곳곳에 도자기와 보석, 무기, 의복 등이 전시돼 있다. 사도 요한의 두개골과 손, 모세의 지팡이와 요셉의 두건, 다윗의 칼 등도 볼 수 있어 종교를 가진 여행객이라면 뜻 깊은 시간이 될 것이다.
터키의 전통 특산품과 기념품을 파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실내 시장 ‘그랜드 바자르’ 구경도 빼놓을 수 없다. 비잔틴 시대부터 동서양 교역의 중심지였던 곳이다. 돔으로 천장이 덮여 있는데, 터키어로 ‘덮여 있는 시장’이라는 뜻에서 카파르 차르쉬라 불린다. 면적 3만700㎡에 미로처럼 이어진 60여 개의 좁은 골목 사이사이 5천여 개의 점포가 들어서 있다. 보석과 가죽, 카펫, 향신료, 도자기 등 공예품과 특산품 구경하는 재미도, 흥정하는 재미도 쏠쏠한 곳이다.
청색 타일로 내부를 꾸민 술탄 아흐메드 모스크.
한국전쟁의 기억 앙카라
터키 수도 앙카라에 있는 한국공원.
1923년 신생 터키 공화국의 수도가 된 앙카라는 구시가와 신시가로 나뉘는데, 시장을 중심으로 가옥이 밀집한 구시가에는 사원과 박물관이 자리해 있다. 도시계획에 의해 조성된 신시가는 한결 정연한 모습으로 근대적 건축물과 앙카라대, 관공서, 오페라 하우스 등이 있다. 서울은 중국 타이베이에 이어 1971년 앙카라와 자매결연을 맺었다.
이곳에는 한국 관광객이라면 반드시 들르는 곳이 있다. 바로 1971년 한국전쟁에 파병됐다 세상을 뜬 터키인들을 기리기 위해 문을 연 ‘한국공원’이다. 공원 중앙에 신원이 확인된 전사자 7백65명의 이름이 쓰인 9m 높이의 4층 석탑이 세워져 있다. 위령비를 살펴보면 군인들의 사망 시기가 적혀 있는데, 대부분이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 불과해 숙연한 기분이 든다.
달의 표면 같은 카파도키아
인류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로 약 3백만 년 전 대규모의 화산 폭발과 지진을 겪은 뒤 풍화작용을 거쳐 지금처럼 특이한 모습을 하게 됐다. 유럽으로 가는 주요 길목이었던 탓에 페르시아 제국부터 알렉산더 제국, 로마와 비잔틴 제국, 셀주크튀르크,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공격을 받았다. 마치 달 표면처럼 보이는 이곳은 영화 ‘스타워즈’의 우주 계곡 장면이 촬영된 장소이자, 만화 ‘개구쟁이 스머프’의 작가에게 영감을 준 곳이다. 기암괴석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동틀 녘 시작하는 열기구 투어를 신청하면 된다. 한 번 타는 데 업체마다 가격이 달라 10만~20만원 정도 예상해야 하지만 그 가치를 한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한편 열강의 침략을 피해 카파도키아 주민들은 땅속에 굴을 뚫고 지하 도시를 만들었다. 이런 지하 도시는 로마 제국의 종교 박해를 피해 숨어든 초기 그리스도 교인들의 거주지로도 쓰였다. ‘데린쿠유 지하도시’는 터키 내 지하도시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다. 입구와 통로가 좁은 이유는 적군이 빠르게 침입할 수 없게 하기 위함이다. 건물 8층 높이(85m)를 내려가니 예배당부터 침실과 부엌, 식당과 창고, 식품 저장고 등 다양한 시설이 있던 공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최대 5만 명까지 수용할 수 있었던 데린쿠유에서 현재 일반에 공개된 부분은 전체의 10분의 1도 안 된다고 한다.
여러 문명이 교차하는 안탈리아
안탈리아만에 동서로 길게 뻗은 항구도시로, 여러 제국이 점령하면서 다양한 유적들이 남아 있는 곳이다. 고대 헬레니즘과 비잔틴 유적, 로마 시대 유적인 하드리아누스의 문, 셀주크 왕조의 이슬람 사원, 오스만 제국의 건축물 등이 남아 있다.
오스만튀르크 성곽도시의 전형인 ‘칼레이치 구시가지’는 도보로 2시간 정도면 둘러볼 수 있는 아담한 규모다. 로마와 오스만튀르크 시대 건축물이 어우러져 운치를 자아낸다. ‘악마의 눈’을 상징하는 터키의 기념품 나자르 본죽과 색색의 도자기, 카펫 등을 파는 기념품점과 레스토랑, 카페들이 골목 사이사이 숨어 있는데, 마치 시대를 거슬러온 듯한 느낌을 준다.
안탈리아 성벽.
하얀 목화의 성 파묵칼레
파묵칼레는 기이하고 아름다운 자연과 유서 깊은 고대도시 유적이 어우러진 곳이다. 로마 시대부터 신경통과 피부병 등의 치료에 효험이 있는 온천으로 유명했으며 유럽인들이 일부러 온천 관광을 올 정도. 로마 시대에는 여러 황제와 고관들이 이곳을 찾았는데 하얀 결정체가 대지의 경사면을 온통 뒤덮은 장관을 감상하면서 심신 치료를 겸할 수 있는 최고의 휴양지였기 때문이다. 석회 성분을 다량 함유한 온천수가 수세기 동안 흘러내리며 계단식 논 형태의 온천을 만들었는데, 새하얀 언덕이 목화송이를 쌓아둔 것 같아 ‘파묵칼레’라는 이름이 붙었다. ‘파묵’은 터키어로 목화, ‘칼레’는 성을 뜻한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 조심스레 발을 담가보았더니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딱 좋은 온도였다. 돌로 된 바닥을 밟으니 지압 효과까지, 일석이조였다.
이곳의 언덕에 고대 히에라폴리스라는 도시가 있었다. B.C. 2세기경 페르가몬 왕국에 의해 세워져 오랫동안 번성하던 도시는 이곳을 정복한 로마인에 의해 ‘신성한 도시’라 불렸다. 그리스어로 신성함이 ‘히에로스’다. 히에라폴리스는 로마에 이어 비잔틴 제국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여전히 번성했고, 11세기 후반 셀주크튀르크족 룸셀주크 왕조의 지배를 받으면서 파묵칼레라는 지금의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지금은 폐허뿐이지만 로마 시대 1만5천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의 원형극장부터 공동묘지, 배수로와 온·냉욕실에 귀빈실까지 갖춘 온천욕장, 신전 일부와 돌기둥이 남아 화려했던 시절을 짐작하게 해준다.
로마 제국의 위용 에페소스
이오니아계 그리스인이 B.C. 11세기경 세운 도시로 아르테미스 신전이 건설된 B.C. 3세기경 황금기를 이뤘다. 아르테미스 신전 외에도 그리스·로마 시대의 유적과 원형 경기장, 도서관 등이 발굴됐다. 성 바울이 편지를 보낸 곳으로도 알려졌다. 초기 교회 유적이 많이 남아 있어 기독교인들의 성지 순례 코스에서도 빠지지 않는 곳이라고.
이곳의 ‘하드리아누스 신전’은 로마의 5현제로 꼽히는 하드리아누스에게 바친 신전으로 아치형 처마에 정교한 메두사와 운명의 여신 테티스가 새겨져 있다. 돌기둥이 늘어선 대리석 길을 따라 내려가면 ‘셀수스 도서관’이 나온다. 지금은 일부 원형만 남았지만, 그것만으로도 당시 1만2천 권의 장서를 보유한 로마 제국 최대 도서관의 위용을 짐작할 수 있다. 2만5천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극장은 헬레니즘 시대부터 존재하던 극장을 로마 시대에 개축한 것으로, 지금도 이곳에서 음악회가 열린다.
1 에페소스 전경. 2 하드리아누스 신전. 3 20세기 초에 건립된 당시 로마 제국 최대 도서관이었던 셀수스 도서관.
◆ 터키에서 이것만은 꼭 먹자!
아이란 요구르트에 물을 희석해 만든 시큼한 터키 전통 음료. 걸쭉한 요구르트에 시원한 물이나 탄산수를 섞어 묽게 만든 후 소금 간을 하거나 허브를 첨가하면 완성. 더운 여름에 갈증을 해소하고 숙면을 도와준다. 처음 마실 때보다 나중에 생각나는 맛이었다.
돈두르마 “쫀득쫀득! 맛있는 아이스크림!” 관광지를 지날 때마다 용케 한국인인 걸 알아보고 이렇게 외치는 판매상 때문에 저절로 지갑에 손이 갔다. 긴 쇠막대기에 조밀한 질감의 아이스크림을 매달아 장난치며 애간장을 녹이니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돈두르마는 터키어로 아이스크림이다.
차이 여행 중에 식당부터 카페까지 어디서든 작은 유리잔에 담긴 따뜻한 붉은 차를 마시는 터키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뭔지 너무 궁금해서 사 먹어보니 터키 홍차 차이였다. 터키인들은 이 차를 하루에도 대여섯 잔씩 마신다. 텁텁하지 않아 식사 후 입가심에 그만이었다. 터키 커피도 유명한데, 맛과 향이 진해서 프랜차이즈 커피에 익숙한 입에는 꽤 씁쓸했다.
케밥 중국·프랑스 요리와 함께 세계 3대 요리로 꼽히는 터키 요리 중에서도 대표 격이다. 원뜻은 ‘꼬챙이에 끼워 불에 구운 고기’. 케밥은 종류가 수백 가지지만, 대표적인 건 숯불 회전구이인 되네르 케밥, 진흙 통구이인 쿠유 케밥, 꼬치구이인 쉬시 케밥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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