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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 같은 그곳, 나가사키를 만나다

글&사진·구희언 기자

2013. 09. 03

직장 다니랴 집안일하랴 바쁘게 지내다 얻은 짧은 휴가, 멀리 다녀오기엔 시간이 부족하고 국내에만 머물기에는 아쉽다면 비행기로 1시간 반 거리 일본 나가사키에서 힐링과 퓨전 문화의 진수를 체험해보자. 2박 3일 알뜰한 코스로 여러분을 안내한다.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 같은 그곳, 나가사키를 만나다

1 산자락에서 수증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운젠 지옥.



MBC 예능 프로그램 ‘우리 결혼했어요’ 시즌4에서 우월한 비주얼 커플로 사랑받는 정진운과 고준희가 신혼여행을 떠난 일본 나가사키. 일본 전통 여관인 료칸에서 온천욕을 즐기고 네덜란드풍 정원에서 하트 스톤을 찾으며 달달함을 과시한 두 사람을 보며 문득 나가사키가 궁금해졌다.
우리에게는 짬뽕으로 더 유명한 나가사키 현은 일본 규수 지방의 대표적인 항구 도시다. 예부터 해외 교류 창구 기능을 담당해 1571년 일본 최초로 포르투갈, 네덜란드 등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생활, 음식, 건축양식 등 문화 전반에 유럽과 중국 문화의 색채가 짙게 배어 있다. 일본 최초로 가톨릭이 전파된 곳이기도 하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천주교 금지령에 따라 순교한 선교인과 일본 천주교 신자를 추모하는 순교 기념관이 있을 정도로 순교지로도 유명하다. 이 때문에 성지 순례하듯 나가사키를 찾는 이들도 많다. 마침 진에어에서 직항 노선을 신규 취항했다는 소식을 듣고 주저 없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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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나가사키의 관광 명소에는 대부분 한글로 된 간판과 안내서가 있어 초보자도 안심할 수 있다. 3 마을 안 수로를 따라 비단잉어가 헤엄친다.



첫째 날, 제대로 힐링하다
나가사키 공항에 내리자 후끈하고 습한 기운이 온몸을 감쌌다. 서울이 덥다 덥다 했지만 나가사키만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2박 3일의 일정을 마치고 인천공항에 내렸을 때 따가운 햇볕을 받으면서도 ‘이 정도면 시원하네’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니 말이다. 섬이다 보니 일기예보가 맞지 않을 때가 많았다. 일정 내내 흐리고 비가 온다는 예보를 보고 갔지만 실제로는 땡볕 아래 땀을 흘렸다. 이것이 한여름 나가사키의 기후 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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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분화한 운젠다케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는 운젠다케 재해기념관.





공항에서 차를 타고 ‘물의 마을’로 불리는 시마바라 시의 ‘잉어가 헤엄치는 마을’로 이동했다. 시마바라는 나가사키 현 남동부에 있는 시마바라 반도 동쪽 끝에 위치한다. 이곳은 물이 풍부해 마을 곳곳에서 지하수가 흘러나오고, 중심부의 수로에는 잉어가 헤엄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수년 전 도쿄를 방문했을 때 간판만 일본어일 뿐 서울 같다는 느낌을 받은 것과 달리, 이곳은 번잡하지 않은 시골에 온 듯 편안하다. 곳곳에 한글로 쓰인 표지판이 보이고, 한글로 된 지도와 안내서가 비치돼 있어 나 홀로 여행도 무리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짜’ 없기로 유명한 일본이지만 무료로 체험할 수 있는 것도 있었다. 현에서 운영하는 쉼터에서는 비단잉어들이 노니는 풍경을 감상하며 차를 마시거나 간자라시(하얀 경단에 시럽을 뿌려 먹는 음식)를 즉석에서 만들어 먹을 수도 있었다. 이 모든 것은 방문객에게 무료로 제공된다. 구석구석 구경하다 보니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에 나올 법한 장소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유럽 같지만 아시아, 아시아 같지만 유럽 같은 국적 불명의 풍경 말이다.
점심에는 시마바라의 향토 음식인 구조니를 맛봤다. 산과 바다에서 나는 신선한 재료와 쫀득한 떡을 넣고 끓인 음식으로, 깔끔한 국물에 재료의 식감이 살아 있다. 우리의 떡국과 비슷하다고 할까.
다음 이동 장소는 ‘운젠다케 재해기념관’. 이 기념관은 꽤 신선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로 치면 산사태나 지진이 나서 사상자가 많았던 사건을 기념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 기념관은 시마바라 반도 중앙에 있는 운젠다케의 주봉 후겐다케가 1990년 11월 2백여 년 만에 분화한 이래 그에 관한 정보를 모아둔 곳으로 일본의 유일한 ‘화산 체험 박물관’으로 꼽힌다. 박물관 중앙 유리 바닥을 통해 2분 30초마다 한 차례씩 불이 들어오고 용암이 흘러가는 것을 표현한 구조물이 인상적이었다. 4D로 화산이 분출하는 광경도 체험할 수 있었다. 한국어 음성 가이드도 비치돼 있어, 해당 전시물의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된다.
이어 숙소인 규슈 호텔이 있는 운젠 시로 이동했다. 일본 여행에서 온천욕이 빠질 수 없지 않은가. 이리저리 걸어다니며 부어오른 발을 온천물에 담그기 전 ‘운젠 지옥’을 둘러봤다. 이름의 ‘지옥’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지옥이 맞다. 유황 연기가 피어오르고 증기와 열기가 주위를 감싸는 풍경이 지옥을 연상시켜 붙은 이름이다. 자욱한 수증기와 함께 유황 특유의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온천수의 지글지글 끓는 소리가 참새 지저귀는 소리 같은 참새 지옥부터, 지옥에 떨어진 인간들의 아우성이 들린다는 대규환 지옥까지 30여 개의 지옥에 얽힌 각각의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숙소에서는 방문객을 상대로 무료로 진행하는 기모노 체험을 할 수 있었다. 기모노 차림으로 일본식 식사를 한 뒤 온천물에 몸을 담그자 비로소 머릿속에서 힐링이라는 글자가 완성되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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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온천에서는 바다를 보며 족욕을 즐기고 즉석에서 온천수에 음식을 익혀 먹을 수 있다.



둘째 날, 퓨전 문화의 진수를 맛보다
이튿날 오전, 바닷가 근처로 차를 몰았다. 수증기가 자욱한 가운데 온천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팻말에는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닮은 캐릭터가 온천에 몸을 담그고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일본에서 가장 긴 족탕(105m)이 있는 오바마 온천이다. 오바마 대통령과는 아무 관련이 없지만 이름이 같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뜨뜻한 물에 발을 담그고 나무 기둥에 기대 바다를 응시하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다. 게다가 무료라는 사실. 족욕을 즐기는 동안 문어부터 당근, 감자와 고구마 등 해산물과 식재료를 온천수에 익혀 먹을 수 있었다. 채소나 해산물을 직접 챙겨왔다면 추가 비용을 받지 않는다. 여행 내내 식비와 숙박비를 제외하면 실제로 쓴 돈이 그리 많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1910년부터 현재까지 운행 중인 나가사키의 명물 노면전차를 타고 차이나타운으로 향했다. 목표는 짬뽕이었다. 나가사키 시의 차이나타운은 요코하마, 고베와 더불어 일본 3대 차이나타운 중 하나로 꼽힌다. 동서남북 입구에 중화문이 세워져 있고, 곳곳에 중화요리점이 있었다. 다른 차이나타운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곳의 짬뽕은 1899년 시카이로(四海樓)란 중국집에서 중국인이 개발한 메뉴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우리가 먹는 빨갛고 매콤한 짬뽕과는 외견부터 달랐다. 육류의 뼈로 우려낸 국물에 해산물과 채소가 많이 들어가 진하고 깊은 맛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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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가사키의 차이나타운은 다른 곳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알찬 볼거리가 있다. 2 나가사키표 짬뽕은 진한 국물의 깊은 맛이 일품. 3 네덜란드풍으로 꾸며진 글로버 정원.



배를 두둑이 채우고 도착한 곳은 나가사키 항이 내려다보이는 미나미야마테 언덕에 자리 잡은 화려한 서양식 정원인 ‘글로버 정원’. 정원의 중심에 1859년 나가사키 시에 무역회사를 세운 영국 무역가 토머스 글로버의 저택이 자리해 있었다. 오페라 ‘나비부인’의 주인공을 맡은 미우라 다마키와 작곡가 푸치니의 동상도 볼 수 있었다. 관광객들은 정원 바닥을 살피며 무언가를 열심히 찾고 있었다. 이곳에 숨겨진 세 개의 하트 스톤을 찾으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이야기 때문이었다. 덩달아 열심히 돌아다닌 끝에 정원 입구와 벤치 근처에서 하트 스톤을 발견했다. 마지막 하트 스톤의 위치는 재미를 위해 비밀로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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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오우라 천주당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고딕 양식의 성당이다.



정원 구경을 마치고 10분쯤 걸어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고딕 양식의 성당인 오우라 천주당을 찾았다. 일본 최초의 순교자 26명을 기리고자 1864년 프랑스 신부가 만든 성당으로 현재 일본 국보로도 지정돼 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경건함이 느껴지는 이곳은 국보 지정 이후에는 미사가 진행되지 않는다고 한다.
저녁 메뉴는 나가사키 퓨전 식문화의 정수인 도루코 라이스. 1950년대 볶음밥 위에 치킨가스를 얹거나, 스파게티를 조합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던 요리사들의 실험 정신이 만든 퓨전 요리로, 볶음밥과 돈가스, 스파게티를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메뉴다. 후식으로는 사카모토 료마(일본 에도 시대에 근대화를 이끈 인물)의 얼굴 모양으로 라테 아트를 한 커피로 여유를 더했다.
나가사키에서의 마지막 밤이니 야경을 보기로 했다. 이곳의 야경은 일본 3대 야경에 이어 세계 3대 야경이라 할 만큼 아름답기로 정평이 나 있다. 하지만 이날은 아쉽게도 안개가 자욱해 야경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다.
나가사키에 오면 꼭 맛봐야 할 음식이 세 가지 있다고 한다. 짬뽕과 도루코 라이스, 그리고 카스텔라다. 짧은 여정을 뒤로하고 공항에서 후쿠사야 카스텔라를 샀다. 다른 브랜드보다 가격이 비쌌지만 현지 사람들은 이곳 제품만 먹을 정도로 호평이라는 현지 가이드의 말에 자연스럽게 손이 갔다. 한국으로 돌아와 포근한 빵에 설탕이 자글자글하게 밴 카스텔라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추억을 상기시키는 ‘그리운 맛’이었다.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 같은 그곳, 나가사키를 만나다

1 도루코 라이스는 나가사키의 퓨전 식문화를 잘 보여주는 메뉴다. 2 후식으로 맛본 커피. 사카모토 료마를 비롯해 다양한 동물 캐릭터를 그려준다.



나가사키, 어떻게 갈까?
인천공항에서 나가사키로 바로 갈 수 있는 노선이 있다. 진에어(대표 마원, www.jinair.com)는 7월 24일 인천-나가사키 정기 노선을 주 3회 스케줄로 신규 취항했다. 수요일과 금요일은 오전 8시 30분 인천 출발~오전 9시 50분 나가사키 도착 항공편과 오전 10시 50분 나가사키 출발~오후 12시 15분 인천 도착 스케줄로 운항한다. 일요일에는 오후 5시 10분 인천 출발~오후 6시 30분 나가사키 도착 항공편과 오후 7시 30분 나가사키 출발~오후 8시 55분 인천 도착 스케줄로 평일과 다르게 운항한다.

여행 정보는 어디서 얻지?
아이폰과 안드로이드폰에서 나가사키 관광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받을 수 있다. 용량이 커 와이파이가 되는 곳에서 받기를 추천한다. 받은 후에는 추가적인 데이터가 나가지 않아 휴대전화 로밍을 하지 않고도 현지에서 활용할 수 있다. 나가사키, 사세보, 쓰시마 지역 등 각 지역 관광 정보, 할인 쿠폰을 비롯해 일본 출입국 카드 작성 요령, 일본어 회화, 규슈 교통 정보 등 다양한 정보를 사진 자료와 함께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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