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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교육 점집 탐방기

진학 족집게 VS 엄마들의 힐링

글·허운주 자유기고가 | 사진·문형일 기자, REX 제공

입력 2013.05.31 13:53:00

요즘 학부모들 사이에서 교육 전문 점집이 화제다. 한 번 가본 사람이 입소문을 내고, 다녀온 뒤 자녀가 중·고교 입시나 대학 입시에 성공하면 ‘정말 맞다’고 소문이 더해지는 식이다. 예약자가 너무 많아 3개월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교육 점집, 정말 신빙성이 있을까.
강남 교육 점집 탐방기


5월 중순 중·고등학교 아이들의 중간고사가 끝났다. 시험 전에는 아이들이, 후에는 엄마들의 스트레스가 크다. 아이들은 노래방도 가고, PC방도 가고, 수다도 떨면서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푼다. 하지만 시험 뒷바라지에 봄이 가는 줄도 몰랐던 엄마들은 어떻게 중간고사 후유증을 이겨낼까.
점집이 새해를 앞두고 북적인다는 말은 옛말이다. 가장 북적이는 때는 중간고사나 대학 수시원서 접수를 앞두고 있는 5, 6월이라는 것. 이런 점집들이 서울 변두리에 자리 잡고 있을 것이라는 예상도 빗나갔다. 카운슬링이라는 간판을 붙이고 서울 강남구 오피스촌 안에서 성행하고 있다.

점집 대신 카운슬링, 대기자 줄이어
지난 2월 새해 아이들의 신수가 궁금했던 김수미(42·가명) 씨는 오전 10시 10분 수소문 끝에 정·재계 며느리들이 자주 간다는 서울 강남의 한 점집에 전화를 걸었다. 경쾌한 음악 소리와 함께 기계음이 들린다.
“안녕하세요. ○○○ 카운슬링입니다. 상담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입니다. 주말과 공휴일에는 상담을 하지 않습니다.”
난생처음 해보는 전화라 떨렸다. 하지만 가족 모임 때마다 시누이와 동서들의 자식 자랑을 생각하면 머리가 아팠다. 연결음이 끝나자 통화 중이란다. 아이 성적도 바닥이고, 오전 일찍 전화를 했건만 벌써부터 통화 중이라니 마음 복잡한 아줌마들이 많은가 보다. 30분쯤 통화를 시도하다 드디어 연결이 됐다.
“아이들 상담을 좀 하려고 하는데요. 예약을 해야 하나요?”
사무적인 목소리가 들려온다.
“한 명당 5만원이에요. 예약은 5월 4일 오후 2시 40분에 가능해요. 미리 계좌로 입금하셔야 예약이 됩니다.”
당장 고민이 태산인데 5월 4일이라면 너무 늦다. 게다가 중간고사 기간이 아닌가. 김씨는 가슴이 철렁했다.
“제가 급해서 그러는데요. 좀 더 빨리는 안 될까요?”
“안 돼요. 모두 다 급하다고 하면 저희는 어떡해요. 오실 거면 계좌에 입금하시고 전화 주세요. 아이의 귀 보이는 사진도 가지고 오셔야 해요.”
일단 “알겠다”라고 대답을 한 후 전화를 끊었다. 점 보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건가. 소개한 사람들이 적어도 4개월은 기다려야 한다고 했는데 그보다는 짧다. 다행인 걸까. 고민 끝에 김씨는 초등학교 5학년과 3학년, 두 아들 상담 비용 10만원을 입금했다.
김씨는 예약 날짜에 맞춰 점집을 찾았다. 14평 남짓한 공간에 방 1개. 대기 공간에는 ‘ㄷ’자 모양으로 소파가 배치돼 있고 상담할 엄마들이 수첩을 꺼내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다. 상담은 옆쪽 방에서 이뤄졌다. 대기하고 있는 엄마들 얼굴에는 불안과 초조가 오간다. 한 사람이 상담하는 시간은 대략 30분. 혼자 온 사람은 드물고 함께 오거나 따라온 사람이 있다. 교육 전문 점집이라 그런지 처음에는 어색하게 앉아 있다가 이내 가벼운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뭘 물어봐야 하죠?”
“문과에 가야 할지, 이과에 가는 게 좋을지, 아이 성향과 어떤 학교에 진학하면 좋을지 물어보려고요.”
“학교 선생님 이름을 알려주면 아이와 궁합도 봐준대요.”
슬금슬금 점집에 대한 정보가 오가기 시작하며 서로 메모도 한다. 다들 어떻게 알고 왔을까.
“입소문이죠. 학교 모임에 나갔더니 이야기하더라고요. 여기서 찍어준 대학에 붙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정계 거물 며느리는 VIP여서 학원 옮길 때도 이곳 상담을 받고 옮긴대요.”
엄마들은 점집 단골이라는 정치인, 연예인, 기업인의 이름을 나열한다. 모두 알 만한 사람들이다. 엄마들 연령대도 다양하다. 초등, 중등, 고등 학부모로 나눠져 있다.
“요즘은 3, 4학년 때부터 영어인지 수학인지 정해야 하기 때문에 아이 성향을 물어보러 왔어요.” (김미숙·초등 4학년 학부모)
“저희 아이는 6학년이에요. 국제중-외고를 가야 할지 일반중을 선택해야 할지 정하려고요.”(박정자·초등 6년 학부모)
“고1이에요. 이과를 가려면 수학 진도를 쭉 빼야 하는데 아이가 문과 이과 중간인 것 같은데 선생님께 한번 여쭤보고 결정하려고요.”(오영숙·고1 학부모)

강남 교육 점집 탐방기


“수시 지원할 학교를 찍어준대요. 점괘대로 할 건 아니지만 참고는 하려고요.”(김미애·고3 학부모)
당황스럽다. 점집에서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얻어 갈 수 있을까. 또 맞을 확률은 얼마나 되는 것일까. 설마 이곳에서 정해주는 답을 가지고 아이의 진학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겠지? ‘교육 점집’이 유명세를 탄 것은 대략 5, 6년 전부터라고 한다.
“원래 점집이라는 곳이 좀 음습하고 무섭잖아요. 깃발 같은 것도 꽂아두고…. 그런데 교육 점집은 상담하는 분위기예요. 여기 선생님은 영국과 미국 대학 학과까지 줄줄 꿰고 있대요.”(김미애)
처음에는 유학생을 상대로 진학 학교를 상담해 주었다. 웬만한 엄마들도 잘 모르는 대학과 학과를 줄줄 꿰자 이내 소문이 났다. 입소문을 타고 국내 대학 수시가 활성화되자 학과 찍어주기로 유명세를 떨쳤다. 최근에는 국제중 진학까지.
“안녕하세요?”
질문을 정리해놓은 메모지를 들고 상담실에 들어섰다. 초등 3학년 아이의 사진을 보여줬더니 물어보지도 않은 말을 한다. 역술가는 사주 없이 사진에 드러난 아이의 관상만으로 카운슬링을 한다고 했다.
“똑똑하고 영리해. 기가 세니 국제중에 보내면 될 것 같아.”
평범하기 짝이 없는 아이인데도, 일단 기분은 좋다. 그런데 사주도 알려주지 않았는데 사진만 보고 어떻게 알까. 그래서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아이가 다른 과목에 비해 영어 성적이 별로예요. 공부도 썩 잘하는 편도 아니고….”
“두고 보면 알아. 외국에도 자주 나가고 한국에 있을 아이는 아니야.”
잠깐 무엇을 더 질문해야 할지 고민이다. 역술가가 생각지도 못한 국제중에 외국도 자주 나간다고 하지 않는가.
“직업은 외교관이 좋아. 대학교수도 좋겠네.”
이쯤 되면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다. 역술가가 더 질문할 게 있느냐고 묻는다. 퍼뜩 떠오르지 않아 우물쭈물하자 툭 한마디 던진다.
“그런데 왜 이리 아이만 보면 짠한 거야?”
갑자기 마음이 울컥해진다. 실제로 워킹맘이라 아이를 보면 늘 미안한 마음이 들던 터였다. 마음을 정말 꿰뚫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아이가 정말 국제중에 간다는 것인가.



성격은 맞히는데 장래는 글쎄…
문을 닫고 나오자 모든 시선이 그에게 쏠린다. 다들 점괘가 얼마나 맞았는지 궁금해하는 눈빛이다. 상담을 마친 후 초등 5학년, 3학년 아들 형제를 둔 김수미 씨와 중학교 2학년, 초등 5학년 아들을 둔 임지영 씨가 찻집에서 점집 리뷰를 열었다. 임씨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첫째는 과학고를 준비하고, 둘째는 고집이 센데 나중에 큰 기업을 한다고 해요.”
김수미 씨가 거든다.
“도자기 만드는 일을 가업으로 하고 있는데, 아이들 중 아무도 뒤를 잇지 않겠다고 하네요. 지금은 첫째가 둘째보다 공부는 좀 나은데 나중에 중학교 가면 둘째가 더 잘한다고 하고….”
점집에 들어가기 전에는 궁금한 것도 많고 적을 것도 많을 것 같았는데 사실 듣고 온 내용은 별것 없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안다. 한두 달 안에도 아이들에게 수많은 변화가 생긴다는 것을.
“사실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넉 달이나 기다려서 겨우 믿거나 말거나 하는 이야기나 듣고 앉아서 수다나 떨고.”(김수미)
“아이를 키우면서 하루에 열두 번도 넘게 내가 잘 키우고 있는 것인지, 이 아이의 미래를 제대로 열어주고 있는 것인지 두려울 때가 많아요. 점집에서 들은 말이 맞든 아니든 적어도 1, 2년 후의 일이니까 중요하지 않고. 다만 누군가가 아이의 운명을 이야기해주면 또 그게 괜찮으면 지금 상황이 위로가 되는 것 같아요.”(임지영)
“학부모 커뮤니티에도 가보고, 선생님 상담도 하고, 전문가도 만나지만 모든 것이 나와 아이가 열심히 해야 하는 것투성이에요. 아이 교육에 열성적인 엄마들을 따라가지 못해 무슨 큰 잘못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매일 불안해요. 하지만 믿거나 말거나지만 아이의 미래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듣고 오면 용기가 생겨요. 엄마들이 점집을 찾는 이유는 지금 맞고 안 맞고가 중요해서가 아니라 그냥 지금 아이와 내가 다시 시작해볼 용기를 얻는 것 같아요.”(김수미)

강남 교육 점집 탐방기


교육을 위한 용기를 점집에서 얻는다는 것이다. 서글픈 현실이다. 그런데 용기를 얻는 데는 신뢰도가 작용한다. 얼마나 맞을까.
“성격이나 성향은 맞히는 것 같아요. 둘째가 고집이 세고 정말 게으른데 딱 맞히더라고요.”(임지영)
임씨의 말에 김씨가 반론을 제기한다.
“아니라고 하면 또 겉으론 그래도 속으로는 고집이 있다고 이야기할지도 몰라요.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죠.”(김수미)
이처럼 꼭 들어맞는 것도 아닌 점집이 학부모들로 문전성시인 것은 왜일까. 연세신경정신과 손석한 원장은 교육 전문 점집을 만들어낸 건 부모들의 불안이라고 말한다.
“불안한 마음을 역학에 기대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어요. 정신의학적으로 피암시성이 강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점집에서 동쪽으로 가라, 혹은 무슨 대학에 붙는다는 말을 들으면 자기 암시를 거는 것이죠. 동쪽으로 가면 좋다, 대학에 꼭 붙는다와 같은 것이죠. 이게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지는 피그말리온 효과를 내는 경우가 있어요. 하지만 피암시성 때문에 그런 것보다 대부분은 자기 노력의 결과로 이루어집니다.”
손 원장은 불안한 미래에 대한 예측을 위해 점집을 찾는다면 현재 닥친 문제에 대해서는 정신과를 주로 찾는다고 말했다.
“점집에는 초·중·고 부모들이 많이 간다고 하는데 정신과 치료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고등학생이 압도적입니다. 가장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죠. 시험 전날 배가 아프거나 짜증을 내는 아이들은 정상적 범주에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극도의 불안 증세를 보이면 병원을 방문하게 되죠.”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누구나 한 번씩은 시험을 망치는 경험을 한다. 이때 겪은 충격으로 시험만 닥치면 잠을 자지 못하고, 심할 경우에는 책도 제대로 읽지 못하게 된다.
“책 내용이 독해가 되지 않으니 또다시 시험을 망치게 되는 것이죠. 이유는 다양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마음 때문입니다.”
손 원장은 안타깝게도 이런 학생의 수가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일시적인 경우에는 상담 치료로 가능하지만 약물 치료를 병행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결국, 자기 자신에게 달렸다
열심히 꾸준히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것을 아이도 학부모도 잘 안다. 하지만 입시 제도는 너무 자주 바뀌고 잘하는 아이는 너무 많아 보인다. 저만치 아이의 손을 잡고 달려가는 부모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렇지 못한 엄마들은 좌절한다. 점집을 찾지 않은 엄마들은 학습 코칭 전문가들의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사실 아이가 스스로 목표를 깨치고 열심히 하면 성적은 나아지기 마련이에요. 문제는 사소한 일에도 일희일비하는 엄마들의 불안감이죠.”
자기주도학습 전문가 이지은 씨의 말이다. 요즘 아이들은 모두 열심히 공부하고 학원도 다닌다. 그런데도 성적이 부모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면 불안해진다는 것. 이것은 아이와 부모가 공통으로 겪는 문제다.
“상담의 결과는 언제나 같습니다. 아이가 스스로 해야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죠. 요즘 아이들은 화장실 가는 시간조차 계획해주는 엄마 밑에서 자라기 때문에 자신이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지를 잊고 있을 때가 많아요.”
자기주도학습법이나 학원 선택 등에 관한 조언을 듣고 돌아가는 학부모들의 모습은 대체로 들어올 때보다 한결 밝아 보인다. 왜일까.
“불안감이 해소됐기 때문이죠. 학부모 상담을 하다 보면 아이가 공부를 안 해서 오는 경우는 드물고, 열심히 공부하는데 성적이 안 나온다는 고민이 압도적으로 많아요. 아이 문제라 남에게 털어놓기도 쉽지 않아요. 하지만 코칭 상담을 하다 보면 이런 고민을 하는 부모들이 나 말고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은근히 안심합니다. 모두가 겪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죠.”
사교육이 성행하는 만큼 엄마들의 불안도 더 커지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엄마들의 고민 탈출구는 그렇게 많지 않다. 브런치, 역학 카운슬링, 학습 코칭 등 다양한 이름 속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모두 엄마들의 불안이 내재돼 있다.
일상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은 불안의 원인으로 사랑 결핍, 속물 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을 꼽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치며 살아가는 불안은 현대인에게 일상적인 것일 수도 있다. 우리 삶은 불안을 떨쳐내고, 새로운 불안을 맞아들이고, 또다시 그것을 떨쳐내는 과정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그는 불안을 달래는 해법으로 철학·예술·정치·종교·보헤미안을 들었다. 사실 엄마들을 힘들게 하는 불안 요소들은 엄밀하게 말하면 아직 닥치지 않은 미래에 대한 쓸데없는 걱정일 수 있다. 이럴 때일수록 한발 물러나서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산책하고, 음악을 듣고, 그림을 감상하는 행복한 엄마가 되는 것이 아이의 미래를 위해 더 나은 선택일 수도 있다.

여성동아 2013년 6월 59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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