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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만에 가수 활동 재개한 가수 박일준

“좀 더 잘해드리지 못해 후회가 남지만 임종을 지켰다는 사실로 위안 삼고 있어요”

기획·김명희 기자 / 글·장옥경‘자유기고가’ / 사진·박해윤 기자

입력 2005.09.13 09:57:00

최근 13년 만에 가수 활동을 재개한 박일준은 지난 8월 중순 장모상을 당하고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지난 23년 동안 장모를 모시고 살며 친어머니 이상의 정을 나눠왔기 때문. 병석에서도 사위 잘되기만을 빌었던 장모를 떠나보낸 그가 애틋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13년 만에 가수 활동 재개한 가수 박일준

누구에게나 인생의 희비가 있지만 가수 박일준(52)에게 지난 8월은 기쁨과 슬픔이 극명하게 교차된 달이었다.
기쁨을 먼저 소개하자면 무려 13년 만에 가수 활동을 다시 시작한 것이며 슬픔은 친어머니 이상으로 믿고 따른 장모 김영춘씨(76)가 노환으로 별세한 것이다. 그동안 잊혀진 가수로 살았던 그가 새 음반으로 팬들에게 돌아온다는 소식을 알린 지 불과 10여일 만에 벌어진 일이다.
“결혼 후 줄곧 장모님과 함께 살았어요. 그러다 장모님이 거동이 불편하시고 당뇨로 고생하시면서 아내가 집에서 혈당을 체크하고 관리하기가 힘들어 지난해 4월부터 집에서 멀지 않은 노인병원으로 옮겨 보살펴드렸어요. 일주일에 서너 번씩 들러서 뵙곤 했는데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시더니 의식을 잃은 지 하루 만에 돌아가셨어요.”
그는 아직 장모를 잃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했다.
“낳아주신 어머니는 세 살 이후로 생사를 알지 못하고, 길러주신 어머니는 78년 연탄가스 중독으로 돌아가셨기 때문에 장모님을 친어머니처럼 여기고 살았어요. 좀 더 잘해드리지 못한 후회가 남지만 임종을 지켰다는 사실로 겨우 위안을 삼고 있어요.”
지금은 혼혈아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져 MBC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 출연했던 다니엘 헤니는 국제화의 상징이 됐다. 그러나 그가 자라고 활동하던 시대는 그렇지 못했다. 1977년 ‘언체인드 멜로디’ 번안곡인 ‘오! 진아’가 히트하며 이름 석 자를 알렸지만, 그는 자랄 때는 물론 사회생활을 하며 무수한 상처를 받아야 했다.
‘남들과 다른’ 것에 대해 유난히 경직된 사고를 가지고 있던 우리 사회는 그의 얼굴색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그는 어린 시절 놀림을 견디지 못해 툭하면 동네 아이들과 싸우고, 분하고 억울함에 가쁜 숨을 몰아쉬던 기억이 남아 있다고 한다. 지천명(知天命)을 넘기며 이제는 옛일을 담담히 말할 수 있게 됐지만 기억 한편에 여전히 아픔이 있다며 가족사를 들려준다.
13년 만에 가수 활동 재개한 가수 박일준

“저는 낳아주신 어머니 복은 없었지만, 그래도 길러주신 어머니 복은 있었어요. 친어머니와 길러주신 어머니는 친자매처럼 지내는 사이였어요. 오갈 데 없는 미혼모였던 친어머니를 설득해 저를 낳게 한 분도 바로 양어머니셨죠.”
친어머니는 그를 낳기는 했지만 기를 수 있는 형편은 아니었다고 한다.
“친어머니는 혼혈아를 낳은 후 주변의 시선을 견디기 힘들었는지 저를 고아원에 버렸어요. 양어머니가 어떻게 수소문을 했는지 어느 날 저를 찾아오셨어요. 지금도 그때가 생각나요. ‘개똥아’ 하고 달려오시는 어머니가 너무 반가워 ‘엄마’ 하고 달려들어 품에 안겼어요. 제 어릴 적 이름이 개똥이었거든요. 마침 자식이 없던 어머니는 저를 데려다가 친아들처럼 키워주셨죠.”

“낳아주신 어머니는 저를 버렸지만 양어머니는 사랑으로 키워주셨어요”
양모에 대한 고마운 마음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가슴속 깊이 파고든다고 한다.
“저도 남매를 둔 아버지입니다. 부모가 돼봐야 부모 마음을 안다고 돌이켜보면 양어머니는 참 대단하신 분이었어요. 제 모습이 이상하니까 남들이 예사로 ‘깜둥이, 깜둥이’ 하며 놀렸는데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과 저 대신 싸우셨어요. 또 혼혈아 티가 덜나게 하려고 항상 제 머리를 빡빡 깎아주셨죠.”

13년 만에 가수 활동 재개한 가수 박일준

친모에게 버림받는 등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낸 박일준은 자식들에게 만큼은 단란한 가정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한다. 아들 형우(24)와 아내 임경애씨(52), 딸 혜나(22).


하지만 어머니에게 못되게 굴었던 때도 많았다고 말하는 그. 철이 없어서 사람들이 놀리면 가만히 있지 못하고 주먹을 휘두르거나 냉대받은 울분을 어머니에게 풀기도 했다고 한다.
“양어머니가 계셔서 그래도 설움을 많이 삭일 수 있었지요. 그런데 제가 막 가수로 활동을 하며 얼굴을 알리기 직전에 어머니, 아버지 두 분이 한날한시에 연탄가스 중독으로 돌아가셨어요. 효도 한번 제대로 못 받고 돌아가셨지요.”
유명해지면서 혼혈의 설움을 어느 정도 잊을 수 있었던 그는 결혼을 앞두고 또 한번의 시련을 겪어야 했다. 처가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혔던 것.
“막내 처제만 빼고 모든 식구들이 반대를 했어요. 한 처남은 손가락으로 커피를 찍어서 ‘누나, 누나가 저 사람과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이렇게 된다’고 말을 하기도 했어요. 장모님 역시 고개를 저으셔서 결혼 허락을 받으려고 아내의 집을 많이 들락거렸어요.”
처제만이 그의 편이 되어, 장모를 이해시키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그들 부부는 고전적인 방법을 쓰기로 했다.
“어떻게든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덜컥 임신부터 했어요. 그때도 장모님은 아이를 지우라고 하셨어요. 하는 수 없이 아내는 장모님을 따라 병원에 갔는데 하늘이 도왔는지 마침 의사가 몇 시간 자리를 비워서 수술을 못하고 그냥 돌아왔어요. 그때 낳은 아이가 큰아들 형우예요.”
82년 결혼 후 그는 장모를 모시고 살면서 그간의 앙금을 풀고 친어머니와 아들 같은 정을 나누게 됐다고 한다.
“장모님은 형우를 끔찍이 아끼셨어요. ‘하마터면 나 때문에 세상 빛을 못 볼 뻔한 아이’라는 미안함이 있으셨던 거지요. 형우가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자 장모님은 본인이 직접 뒷바라지를 하겠다며 따라나서 9년간 미국에 계시다 오기도 하셨어요.”
그는 장모에 대한 기억이 아직 곳곳에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한다.
“음식 솜씨가 좋으셨는데 특히 김치 맛이 일품이었어요. 장모님 김치만큼 맛있는 김치를 못 봤으니까요. 매년 장모님이 김장을 담그시면 제가 마당에 김장독을 파묻곤 했는데 올해는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겠네요.”

“장모님은 9년 동안 외국에서 뒷바라지할 정도로 외손자 사랑이 각별하셨어요”
13년 만에 가수 활동 재개한 가수 박일준

‘아가씨’ ‘잘 가요’ 등의 히트곡을 가진 그는 92년 7집 앨범 발매 이후 불운을 겪어야 했다. 동업자와 함께 서울 논현동에 레스토랑을 냈으나 금전문제와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잠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노래만 부를 줄 알았지 세상을 잘 몰랐다는 그는 이후 일이 잘 안 풀려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정식으로 앨범을 내지 못했을 뿐 밤업소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음악생활은 꾸준히 해왔다고 한다.
“2, 3개월에 한 번씩은 뉴욕에서 열리는 한인행사에도 참석하고 그랬어요. 그러다 이번에 친구가 곡을 들고와 적극 권유해서 앨범 준비를 하게 됐어요.”
아내에게도 알리지 않고 봄부터 준비했다는 그의 앨범은 9월 중순 발매된다.
“앨범 제작은 물론 홍보까지 모든 과정을 혼자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생했어요. ‘가수 박일준’이라고 인사하면 ‘누구냐’고 되묻는 사람도 많았거든요.”
그는 너무 오랜만이라 쑥스럽기도 했지만 용기를 내서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무엇보다 다시 음악을 하게 돼 즐겁고 신이 나요. 아내도 덩달아 스케줄을 챙겨주며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있어요. 이번 앨범을 통해 ‘가수 박일준’을 다시 기억해주신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

여성동아 2005년 9월 5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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