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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유학 가지 않고 영어 잘하는 법’

3년간 미국 초등학교 ESL 교사로 근무한 홍현주 박사가 일러주는

■ 기획·구미화 기자 ■ 글·장옥경‘자유기고가’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05.03.30 18:41:00

요즘 초등학생, 중학생 때부터 어학연수나 조기유학을 떠나는 붐이 일고 있다.
그러나 외국에 나가지 않고도 유학을 다녀온 것 이상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홍현주 박사는 영어교육학 박사이자 3년간 미국 초등학교에서 ESL 교사로 근무했던 경력을 토대로 구체적인 학습법을 일러준다.
‘조기유학 가지 않고 영어 잘하는 법’

자녀를 둔 부모라면 누구나 조기유학 문제를 놓고 고민을 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수천 만원에 이르는 비용을 생각하면 한숨부터 나오는 것이 현실. 그런데 조기유학을 보내지 않고도 제대로 영어공부를 하면 조기유학 이상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주장하는 영어교육 전문가가 있다. 부산 경성대학교 영문과 초빙교수이며 서울대학교에서 교양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홍현주씨(42).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동시통역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꼭 외국을 다녀와야 영어를 잘할 수 있냐’고 묻는데 제 대답은 단호하게 ‘아니요’에요.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영어도사’들 대부분이 유학파가 아닌 것만 봐도 그렇죠. 저 역시 마찬가지예요. 누가 저더러 미국에 다녀와서 영어를 잘하게 된 거 아니냐고 하면 정말 억울해요. 서른여덟 살에 미국에 건너가 3년간 머문 게 전부거든요. 그전까지 짧은 영어 단락이나 얇은 영어책을 통째로 외우며 공부해서 박사가 됐고,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칠 수 있었던 거죠. 외국에서 1~2년 머물며 영어를 완벽하게 습득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그가 조기유학이나 해외 영어연수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는 건 3년간 미국에서 지내며 조기유학의 한계를 직접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홍씨는 미국 고교 영어 및 초·중·고 ESL 교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어 2001년부터 3년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채플힐 대학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at Chapel Hill) 교육대학원에서 박사 후 과정을 이수하며 초등학교에서 ESL 교사로 근무했다. ESL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생들을 위한 특별반으로 미국으로 유학 온 외국 학생들 대부분이 ESL에 등록해 본수업을 따라가는데 필요한 영어를 습득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홍씨에 따르면 한국 유학생들이 대개 1~2년 머물다 다시 본국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잘 아는 미국 ESL 교사들은 되도록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고, 재미 위주로 수업을 진행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유년기에 1년 남짓 영어권 국가에서 학교를 다녔다면 친구들과 대화하는 데 필요한 영어는 그럭저럭 구사합니다. 유학을 보낸 목적이 그 정도였다면 성공했다고 볼 수 있죠. 하지만 문제는 어린이가 구사하는 영어에는 한계가 있다는 겁니다. 학교에서 되풀이해 쓰는 단순 표현으로는 살아가면서 부닥치게 되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거든요.”
홍씨는 “현대인에게 요구되는 영어 실력은 전공 분야에 필요한 새로운 정보를 찾아 읽고, 업무상 문제가 생겼을 때 영문으로 신속하게 편지를 작성하는 정도의 수준이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영어 읽기와 쓰기 실력이 중시된다”고 말한다. 때문에 영어 회화를 무난하게 하는 유학생들도 귀국해서 다시 영어학원에 다니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영어에 관한 한 책 한 권으로 영어 통달하는 기적 일어나지 않아
“영어학습은 첫째도, 둘째도 ‘오래달리기’예요. 유학을 다녀온다고 해서 영어공부와 완전히 이별할 수는 없죠. 유학을 가서도, 그리고 다녀와서도 영어공부를 계속해야 해요. 그렇다면 같은 비용으로 국내에서 더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지 않겠어요?”
그는 최근 국내 영어교육 환경이 자신이 공부할 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아졌다며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유학을 가지 않고도 충분히 영어를 잘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누구나 영어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는데다 우수한 영어교육 전문가들이 무척 많아졌다는 것.

‘조기유학 가지 않고 영어 잘하는 법’

미국에서 교사로 일했던 홍현주 박사는 굳이 외국에 나가지 않고도 국내에서 충분히 영어실력을 키울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몇 십분 만에 귀가 뚫리고, 책 한 권으로 영어에 통달하는 기적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영어를 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영어는 마라톤’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태권도, 피아노, 수학 실력이 단시일에 느는 걸 본 적이 있냐”고 물으며 영어공부도 단계별로 학습계획을 잘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학령기 이전은 사물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인지하고 국어 단어를 습득하게 되는 시기예요. 이 시기에는 읽기, 말하기를 강요하지 말고 비디오나 오디오를 이용해 소리로 영어와 친숙하게 하는 것이 좋아요.”
그림이 단순하고 3~4단어로 된 짧은 문장이 반복되는 영어동화를 여러 번 듣게 해주는 것도 방법이라고 한다.
“그림책은 ‘I like the cat.’ ‘I like the dog.’ ‘I like the elephant.’ 하는 식으로 한두 단어만 바뀐 비슷한 문장이 여러 번 나오거나 같은 문장이 반복돼 문장을 쉽게 익히고, 어휘력을 쌓을 수 있도록 계획된 걸로 고르는 게 좋아요.”
그런데 이런 책들의 경우 대부분 외국에서 출판돼 ‘해적’ ‘갈고리’ ‘(외눈박이용) 눈가리개’ 등 우리 문화와 동떨어진 단어들이 자주 나오는 게 흠이라고 한다. 홍씨는 “아무리 그림을 보고 단어를 외워도 일상생활에서 접할 일이 없으면 곧 잊어버리게 된다”며 “유아의 경우 구문이나 단어를 주입시키기보다 그림을 활용해 다양한 문장을 많이 들려주는 게 낫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I like the cat.’이 있는 페이지를 놓고 고양이 그림을 가리키며 “What is this?” “Is this a cat or a dog?” “What color is the cat?” “Is it yellow or gray?” 같은 문장을 들려줄 수 있다는 것. 인쇄되어 있는 문장만 읽지 말고 그림과 연관된 다양한 문장을 들려주라는 얘기다. 홍씨는 “의문문을 들려주더라도 굳이 대답을 강요하지 말고, 엄마가 혼자서 묻고 대답하는 소리를 들으며 자연스럽게 따라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아이가 만약 질문을 듣고 ‘Cat’ ‘Gray’ 하며 단어로 대답하면 엄마는 “Yes, it is a cat.” “Yes, it is gray.” 하는 식으로 문장을 만들어 답변을 강화시켜주어야 한다고.
그러나 아이에게 반드시 영어 문자를 기억하게 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다만 아이가 문자에 관심을 보이면 알파벳을 가르쳐주는데 목소리를 달리해서 대문자와 소문자를 동시에 가르치는 것이 좋다고. 이를테면 어른 목소리로 ‘A, B, C…’를 읽고, 아기 목소리로 ‘a, b, c…’를 읽어서 대문자와 소문자를 구분하도록 하는 것. 문자 인식이 빠른 아이라면 단어를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읽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한다. 그런 다음 “Can you find the word cat?” “Point to it.” 하면서 단어 찾기를 게임처럼 진행해볼 수 있다고. 이때 반드시 알파벳을 알아야만 단어를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아이들은 고양이 그림이 하나의 상징이듯 ‘cat’이라는 단어 역시 글자 세 개가 합쳐진 하나의 상징으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는 간단한 문장은 이해하지만 반응 속도가 빠르지는 않아요. 대화에 초점을 두면 회화 교재가 되고, 묘사나 서술을 중심으로 보면 작문 교재가 되는 영어 동화책을 선택하는 것이 좋아요. 학년이 높아질수록 주제, 구성, 갈등, 해결 등을 이해하는 훈련을 시켜야 하고요.”

‘조기유학 가지 않고 영어 잘하는 법’

긴 문장을 단어별로 토막내어 순서 맞추기 게임을 하면 어휘력과 영어 어순을 동시에 익힐 수 있다고 한다.


아이의 영어 수준이 낮다고 너무 단순한 책을 고르면 오히려 흥미를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고 한다. 영어공부를 시작한 지 1~2년쯤 되면 아이들은 인사말을 비롯한 쉬운 단어와 간단한 지시문을 이해하는데 반응 속도가 느려 늘 하는 말만 되풀이해 영어를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
“미국 교사들이 한국에서 온 1~3학년 초등학생들에게 유아용 책을 주며 읽도록 하는 것을 많이 봤어요. 아이들은 대부분 금세 흥미를 잃고 딴짓을 해요. 책을 보며 정보를 얻고, 인물의 심리까지 파악하는 아이들의 능력을 과소평가한 거죠.”
초등학교 저학년은 단어와 표현 익히고 고학년은 작가의 의도 파악해야
그렇다고 아이들이 심리묘사나 추상적 표현이 나열된 영어책을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홍씨는 “아이들이 알고 있는 지식이 영어로 쓰인 책이 가장 무난하다”며 “ESL 수업을 할 때 1학년에게는 타이타닉호 침몰에 관한 책을, 2·3학년 아이들에게는 공룡 뼈 발굴 과정이나 축구를 소재로 한 책을 읽어줬을 때 아이들이 무척 재미있어 했다”고 말했다. 어려운 단어도 들어 있고, 쪽수도 적지 않았지만 아이들이 책을 빌려달라고 할 정도였다고.
아이들에게 영어책을 읽도록 할 때 ‘작품의 구성이나 작가의 의도 등을 알게 할 것인가’와 ‘특정 부분을 집중 공략해 영어 단어와 표현을 익히게 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게 되는데,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이라면 후자 쪽에 비중을 두는 게 좋다고 한다.
“미국의 영어교사들, 우리로 치면 국어교사인 셈인데, 시중에 나와 있는 고전이나 창작동화로 수업을 해요. 교과서가 있지만 다양한 작품을 읽는 것이 가장 좋은 영어 교육법이라고 생각해 교과서만 가르치는 경우는 없어요.”
읽기를 강조하는 그는 초등학교 고학년에게는 “기승전결이 있는 책이 적합하다”고 말한다. 어린이 추리소설 시리즈 정도면 무난하다고. 이런 작품을 읽을 때는 사건의 발단이 무엇인지, 문제가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되었는지, 작가의 의도나 책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데 what, where, when, who로 시작되는, 단순히 사실을 확인하는 질문보다 why나 how가 들어가는 의문문으로 아이들에게 생각할 기회를 주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러나 갑자기 이런 문제에 대답을 하기는 어려우므로 짧은 문단, 쉬운 책을 읽을 때부터 꾸준히 질문하고 답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고.
“내용이 긴 책을 읽을 때는 간단하게 도식을 그리고, 핵심 단어나 문장을 채워넣어 아이가 줄거리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어요. 또 책을 읽는 중간중간에 내용과 관련된 아이의 경험을 말하게 하는 것도 좋은 교수법이죠. 가령 친구와 다투는 장면이나 가족이 여행을 가는 장면을 읽고 나면, 책에 나오는 단어를 써서 자신의 경험을 말하게 하는 것이죠. 자신의 경험과 연관지은 내용은 기억에 오래 남거든요.”
책을 읽다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홍씨는 “대부분 한두 문단을 읽고 나서 되짚어 읽으면 그 뜻을 알 수 있다”며 그러나 “아이가 계속해서 이야기 흐름을 이해하지 못할 때는 단어의 뜻을 설명해줘 독서를 원활하게 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새로운 장(chapter)을 시작하기 전에 핵심 단어를 미리 알려주는 것도 효과적인 독서법이라고 한다. 자주 쓰이는 단어는 미리 학습해 정확하게 기억해야 하지만 그 외에 모르는 단어가 나올 때는 문맥으로 추측하게 해야 한다고. 그는 영어 동화책을 회화 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기유학 가지 않고 영어 잘하는 법’

미국 초등학교에서 ESL 교사로 근무할 당시 모습.


“어린이용 책은 대화로 이뤄진 부분이 많아서 회화를 익히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아요. 표현이 어린이 수준에 맞는데다 줄거리가 있어서 아이들이 어떤 상황에 쓰이는 말인지 잘 기억할 수 있거든요.”
장(chapter)마다 대화 부분만 모아서 ‘나만의 회화책’이나 연극 대본을 만들어보게 하는 것도 영어 실력을 향상시키는 좋은 방법이라고 한다.
홍씨는 아이의 읽기 실력이 어느 정도 쌓이면 영어 동화책의 반복되는 구문을 받아쓰게 하는 것으로 쓰기 공부를 시작해볼 것을 권했다. 문장을 받아쓰기할 때는 굳이 문법을 설명하려 하지 말고, 쓰거나 말할 때 복수형(-s)이나 과거형(-ed)을 나타내는 철자에 밑줄 치거나 색깔 펜으로 돋보이게 해 자연스럽게 공통점을 인식하게 하는 수준이 적당하다고 한다. 또한 이야기에 등장한 단어를 미리 제시해주고 그 단어가 들어간 문장을 기억해 쓰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여성동아 2005년 4월 4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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