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막을 내린 MBC ‘토크쇼 임성훈과 함께’에는 연예인도, 리포터도 아닌 한 남자가 여러 스타를 인터뷰하는 코너가 있었다. 방송 작가 김일중씨(36)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진행하는 ‘작가 김일중이 만난 스타’가 바로 그것.
무대 뒤에서 일하는 여느 작가들과 달리 그가 카메라 앞에 설 수 있었던 건 그동안 참여한 토크쇼마다 최고 인기를 누렸기 때문. 그는 지금까지 ‘이홍렬 쇼’를 비롯해 ‘이승연의 세이세이세이’ ‘김혜수 플러스 유’ 등의 히트작을 만들어냈다.
그가 토크쇼 대본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만난 연예인만 1천여 명. 얼마 전엔 MBC ‘9시 뉴스데스크’를 진행하는 김주하 앵커와 뉴스 스튜디오에 나란히 앉아 인터뷰를 진행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실제로 만난 김주하 앵커는 반듯한 이미지와 달리 ‘빈틈’이 많은 털털한 성격의 소유자였다고.
그는 연세대 국문과 3학년이던 91년 SBS 코미디 작가 공모를 통해 공채 작가 1기로 정식 데뷔했다. 작가 데뷔 후 ‘코미디 전망대’ ‘웃으며 삽시다’ 등 주로 코미디 프로의 대본을 썼던 그는 우연한 기회에 ‘토크쇼’ 전문 작가로 방향을 바꿨다.
“코미디 구성 작가로 바쁘게 지내던 중, 문득 어디로든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하고 있던 프로그램들을 정리하고 무작정 일본으로 향했죠.”
어학원에 다니며 일본어도 배우고 여행도 즐기며 자유롭게 생활하던 그는 한 일본 잡지사에서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인터뷰를 하다 보니 어린 시절이 떠올랐어요. 중학교 때 비디오 카메라를 사서 그걸 들고 가족과 친구들을 닥치는 대로 인터뷰했거든요. 심지어 어머니께 첫사랑에 대해 짓궂은 질문을 해서 어머니 눈가를 촉촉하게 만들어버린 적도 있었죠(웃음).”
그렇게 1년여 시간을 보내고 귀국하자 그에게 ‘새로운 기회’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홍렬 쇼’ 팀에서 작가로 참여해 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해왔어요. 일본에서 했던 인터뷰 아르바이트가 우연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토크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행자의 순발력. 그러나 진행자가 순발력을 발휘하며 토크쇼가 매끄럽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작가의 섬세한 준비 작업이 필요하다고 한다.
때문에 토크쇼 작가는 진행자의 특색을 빨리 파악하고, 의도적으로라도 친구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눈빛만 봐도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뭐가 필요한지를 알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홍렬이 형하고는 정말 손발이 척척 맞았어요. 워낙 충분한 시간을 두고 꼼꼼히 준비한 이유도 있지만 제작진과 진행자가 마음이 정말 잘 통했죠. (이)승연이하고도 자주 연락해요. 힘들 때 서로 위로해주기도 하고요.”
‘김혜수 플러스 유’의 김혜수와는 첫 방송을 타기 전 평생 잊지 못할 일을 겪으며 급속하게 가까워졌다고 한다. ‘김혜수 플러스 유’는 ‘이승연의 세이세이세이’가 갑자기 막을 내리면서 급박하게 준비된 프로그램. 베테랑 연기자이기는 하지만 톱스타로서 질문을 받는 데 익숙한 김혜수가 게스트에게 질문을 하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역할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지 마음이 놓이지 않는 제작진을 대표해 그는 첫 녹화를 앞둔 주말, 지방에서 영화 촬영 중인 김혜수를 만나러 갔다.
“밤새 호텔방에 앉아서 이야기를 했어요. 토크쇼의 특색에 대해 설명하고, 프로그램에 대한 서로의 의견을 나누었죠.”
김일중씨는 그동안 이홍렬, 이승연, 김용만, 신동엽 등 여러 톱스타들과 함께 토크쇼를 만들었다.
밤을 꼬박 새우고 난 월요일 아침 7시, 그는 호텔에서 나와 다시 서울로 향하기 위해 운전대를 잡았다. 그때 갑자기 휴대전화 벨이 울렸고, 그는 아버지의 부음을 들었다.
김혜수는 첫 녹화를 마치고 그를 찾아와 위로했고, 이 일을 계기로 두 사람은 프로그램이 종영될 때까지 좋은 호흡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김혜수 플러스 유’ 첫 녹화 앞두고 김혜수와 밤새 토론하느라 아버지 임종 놓쳐
지금 그는 SBS ‘김용만 신동엽의 즐겨찾기’에 참여하고 있다. ‘김용만 신동엽의 즐겨찾기’는 두 진행자가 게스트와 함께 특별한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노래를 만들어 콘서트 대결을 펼치는 이색 토크쇼. 국내 최고의 ‘입담꾼’ 김용만과 신동엽을 내세운 만큼 기획 단계부터 화제가 됐지만 작가 입장에선 오히려 높은 기대치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크다고 털어놓았다.
“너무 친한 친구(신동엽)랑 함께 해야 하는 거라 처음엔 좀 망설였어요. 일이라는 게 냉정함을 필요로 하는 부분이 많은데 너무 친하다보면 차마 말을 못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생기잖아요.”
신동엽과 그는 단순히 진행자와 작가의 관계가 아니다. 두 사람의 인연은 10년도 더 거슬러 올라간다.
“제가 라디오 프로 ‘신애라, 최선규의 기쁜 우리 젊은 날’의 구성 작가로 일할 때였어요. 대학 개그 동아리가 나와서 콩트를 하는 코너가 있었는데, 그때 출연자 중 유난히 눈에 띄는 친구가 있었어요. 그 사람이 바로 신동엽이었죠.”
아직 다듬어지진 않았지만 온몸 가득 흐르는 상대의 끼와 열정을 감지한 두 사람은 지금껏 둘도 없는 술친구로 지내고 있다.
“나이는 저보다 두 살 어리지만, 가끔 형처럼 느껴질 때도 있을 만큼 속이 깊고 예의 바른 친구예요. 유명한 사람들과 어울리면서도 늘 소외된 사람들을 향한 관심과 애정을 잃지 않고, 무엇보다도 인간 관계를 소중히 여기거든요.”
그는 기회가 된다면 신동엽과 함께 일반인을 초대해 잔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정통 토크쇼를 진행해보고 싶다고 한다.
“무질서하게 분포되어 있던 한 사람의 인생이 질문과 대답을 거듭하면서 어떤 ‘질서’를 갖게 하는 하나의 예술 작업이 바로 토크쇼”라고 말하는 김일중씨. 방송 작가로 활동한 지 벌써 14년째에 접어들었지만 토크쇼에 대한 그의 열정 만큼은 처음 시작할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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