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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exclusive #interview

예술과 사랑이 세상을 바꾼다 낸시랭의 고백

editor 김지영 기자

2018. 01. 25

도발적이고 독특한 예술 세계로 유명한 팝 아티스트 낸시랭이 최근에는 결혼으로 화제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의 결혼 상대는 왕진진 위한 컬렉션 회장. 낸시랭을 직접 만나 두 사람의 첫 만남부터 앞으로의 계획 등을 듣는 자리에 왕 회장도 깜짝 방문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팝 아티스트 낸시랭(39 · 본명 박혜령) 하면 그가 어깨에 얹고 다니는 고양이 인형 ‘코코샤넬’이나 로봇몸체에 순수한 어린아이의 얼굴과 날개를 가진 모습을 표현한 대표적인 연작 ‘터부요기니’를 떠올리는 이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결혼으로 화제와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그는 지난해 12월 27일 자신의 SNS에 한 남성과 함께 찍은 혼인신고 인증샷을 올리며 결혼 사실을 알렸다. 일부 언론을 통해서는 남편이 1971년생으로 마카오 출신의 문화 사업가 왕진진 위한컬렉션 회장이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이런 그녀의 발표에 의문을 제기하는 언론 보도들이 잇달았다. 그의 본명은 전준주로 1980년생에 전남 강진 출신이고, 교도소 복역 전력과 사실혼 관계인 여성이 있으며, 고 장자연 사건에도 관련이 있는 인물이라고 보도된 것이다. 또한 각종 사기와 횡령 혐의로 여러 소송이 진행 중이라는 보도도 이어졌다. 

이에 낸시랭 부부는 12월 30일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들의 입장을 밝히는 시간을 가졌으나 현재까지도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여성동아’는 다자 확인이 필요한 왕씨의 개인사에 관한 인터뷰는 현재 진행 중인 법정 싸움이 끝난 뒤 하기로 하고, 낸시랭을 만나 두 사람의 러브 스토리를 듣기로 했다. 1월 17일 오후 2시 서울 서대문구 동아일보 스튜디오를 찾은 낸시랭의 곁에는 남편 왕씨도 있었다. “다음 일정 때문에 함께 움직여야 한다”고 했다. 왕씨는 낸시랭의 사진 촬영이 진행되는 내내 휴대전화 카메라로 연신 그녀의 모습을 찍었다. 그 이유를 묻자 그는 “애기(왕씨가 낸시랭을 부르는 애칭)와 함께하는 소중한 매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요”라고 말했다. 다음은 낸시랭과 주고받은 문답이다. 

그동안 도발적이고 독창적인 아티스트라는 평가를 받아왔어요. 

홍익대학교에서 학사·석사학위를 받았는데 그때도 저를 독특하게 보는 사람이 많았어요. 또래 미대생과 달리 새로운 예술적 시도를 많이 했거든요.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석사학위 청구전을 열기 전에 인사동 덕원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가졌고,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초대받지 않은 꿈과 갈등, 터부요기니’라는 제목의 퍼포먼스 작품을 처음 선보여 좋은 평가를 받았죠. 저는 그렇게 새로운 도전을 거듭하면 국내 미술계의 보수적인 문화가 바뀔 줄 알았어요. 근데 그건 너무 큰 욕심이더라고요. 하지만 지금도 아티스트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어요. 아트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파워이자 긍정적인 영향력라고 생각해요. 

홍익대에 다닐 때 유명인사였다고 들었어요. 

그때는 물감 묻은 패딩을 입고 다녀야 아티스트로 여겼는데 저는 명품에 모피를 두른 화려한 차림으로 다녀 놀기 좋아하는 날라리로 보였을 거예요. 아티스트로서 저를 인정해주는 친구도 많았지만 시기, 질투를 하는 학생도 많았고요. 

국적이 미국이더군요. 

아빠는 국적이 한국이고, 엄마는 미국 시민권자여서 미국에서 태어난 저는 자동으로 이중 국적이 됐어요. 엄마는 사업을 하며 25년 가까이 미국에서 사셨는데, 제가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암 투병을 하시다 2009년 돌아가셨어요. 아빠는 사실 돌아가신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저와 엄마를 떠나신 거였고요.

교육비와 병원비를 감당하기가 만만치 않았을 것 같아요.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는 (서울 강남구) 압구정 현대아파트에서 살면서 호사를 누렸어요. 그런데 대학교 4학년 때 엄마 사업이 망해서 대학원 때는 완전히 파산을 했어요. 이후엔 제가 가장 노릇을 할 수밖에 없었죠. 

2013년 ‘신동아’와의 인터뷰를 보니 어머니를 여의고 3년 동안 공황장애를 겪었더군요. 

이 세상이 한순간에 사라진 것 같았어요. 무남독녀 외동딸이다 보니 홀로 남겨진 기분을 견디기가 힘들었어요.

그 인터뷰에서 “완전한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 서로 가치관이 같고 인생을 함께할 수 있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고 했어요. 남편 왕진진 씨가 그런 분인가요. 

물론이에요. 오랜만에 우연히 다시 만났을 때 인생을 함께해도 좋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두 분이 어떻게 처음 만났나요. 

대학교 2학년 때 홍대 인근 클럽에서 처음 만났어요. 그렇게 말하면 클럽에서 놀다 만난 이미지로 비칠까 봐 그동안 이 얘기를 안 했어요. 그때 제가 술에 취해 있었는데 ‘오빠(낸시랭이 남편을 부르는 호칭)’가 다가와 말을 걸었어요. “참 멋있는 분이시다”라고요. 그래서 제가 “저, 아세요?” 했어요. 오빠는 제 첫인상이 강렬했대요. 이런 말 하긴 쑥스럽지만, 한국적인 분위기면서도 군계일학처럼 튀는 사람이었대요. 그런 모습에 끌렸지만 적극 대시를 하면 되레 망신당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고 하더군요. ‘이런 사람이 친구면 좋겠다’ 하는 마음으로요. 오빠는 친구가 별로 없거든요. 

그날이 1일인가요. 

사귄 건 아니고 그때부터 저희의 인연이 시작됐죠. 그 후 다른 클럽에서도 여러 번 만나며 서로 호감을 갖게 됐거든요. 

그때도 저는 남편을 “오빠”라 불렀어요. 오빠는 저를 “혜령아”나 “낸시야”라고 부르고요. 서로 휴대전화 번호와 이름을 알고 있었지만 마음을 표현하진 못했어요. 그러다 연락이 끊겨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교도소에 있었던 거예요. 오빠의 지인에게 그 얘기를 듣고 교도소로 찾아가 접견을 신청했죠. 근데 오빠가 저를 만나기를 거부했어요. 왜 그랬냐고 물어봤더니 오빠도 제가 보고 싶었지만 그때는 수감 중인 자신의 모습을 보이기 싫었대요. 제가 부디 좋은 사람을 만나 잘 살기를 바랐다고 하더라고요. 이후 저는 그냥 제 삶을 살았어요. 연락도 다시 끊겼고요. 

이후 두 사람은 언제 다시 만났나요. 

지난해 11월에요. 전시 관련 미팅을 하러 갔는데 그 자리에 여러 관계자와 함께 오빠도 있었어요. 그저 놀라웠어요. 

그동안 종종 그리웠거든요. 그런 사람을 뜻밖의 장소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니까 이건 하나님이 맺어준 인연이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오빠도 저와 같은 마음이었다고 해요. 저를 향한 마음이 늘 한결같았기 때문에 ‘이젠 절대 후회하는 상황을 만들면 안 되겠다. 다시 내가 우물쭈물하면 이 사람을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대요. 하지만 처음에는 저에 대한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하고 “내가 널 친동생 이상으로 생각하고 있으니 친오빠처럼 여겨라. 그럼 내가 지켜주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지금 사귀는 사람은 있고?” 하고 물었어요. 나중에 알게 됐는데 저를 다시 만났을 때 가장 궁금했던 게 ‘남자친구가 있나?’였대요. 그걸 바로 물어보면 제가 당황스러워할 것 같아서 에둘러 그렇게 얘기했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사귀는 사람이 없다”고 했더니 며칠 뒤 오빠에게서 만나자고 연락이 왔어요. “친오빠처럼 여기라는 말은 실수였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요.

왕진진 씨가 그날 무슨 말을 하던가요. 

오빠가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왜 연락이 끊겼는지 자기 얘기를 다 했어요. 제 앞에서 무릎을 꿇지는 않았지만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고백성사를 하는 심정으로 말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더니 ‘사귀자’가 아니라 “같이 가자. 하나님께서 시간을 허락해주시는 그날까지”라고 프러포즈를 했죠. 그래서 저도 “우리가 평생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느냐”고 했더니 “당연히 그렇다”고 했고요. 이미 서로 마음이 통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인연을 받아들였어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시 만나게 해주신 걸 보면 이건 운명이라고 생각됐어요. 그걸 거스를 수 없었어요. 오빠도 마찬가지였을 거라고 생각해요. 

만난 지 두 달도 안 돼 혼인신고를 한 이유는요. 

오빠와 비즈니스 관계였던 사람이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협박해 가만있을 수 없었어요. 제 SNS 계정에까지 들어와 ‘나는 왕진진 와이프다! 낸시랭 너를 간통으로 고소하겠다! 불륜을 세상에 알려 망신살 뻗치게 해주겠다! ’는 댓글을 남겼거든요. 법적 조치를 하기에 앞서 오빠와의 관계를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을 것 같아 서로 상의 하에 혼인신고를 한 거예요. 그 전에 이미 저희는 결혼하기로 약속했거든요. 

혼인신고 할 때 누가 증인을 맡았는지요. 

신랑 쪽에선 오빠를 키워주신 어머니가, 제 쪽은 17년간 같이 사신 아주머니가 증인으로 나서주셨어요. 

결혼식은 언제 올릴 계획인가요. 

아직 날짜를 정하진 않았지만 마카오에 있는 오빠의 친어머니, 큰누나, 여동생과 상의해 올해 안에 올릴 계획이에요. 오빠의 친아버지는 돌아가셨거든요. 여기 제 지인들이 다 있으니까 한국에서 파티 형식으로 연회를 하고, 본식은 마카오에 가서 하려고 해요. 랑유 김정아 디자이너가 웨딩드레스를 만들어주시기로 했어요. 

남편의 친어머니도 만나봤나요. 

대면한 적은 없어요. 영상 통화가 아닌 유선 전화로 인사를 나눴어요. 오빠를 낳아주신 아버지는 한국인, 어머니는 중국인이세요. 어머니가 여러 나라말을 할 줄 아셔서 저와 통화할 땐 한국어로 얘기했어요. 

혼인신고를 한 것이 후회되진 않나요. 

전혀요. 너무 감사하죠. 저희는 진실로 사랑하고 여러분들처럼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그래서 악성 루머를 막고자 기자회견을 했는데 그동안 언론에서 남의 결혼을 축복해주기는커녕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너무 많이 넘어왔어요. 공인도 아닌 제 남편의 개인사와 아픈 상처가 만천하에 까발려졌잖아요. 이걸 누가 보상해줄 건가요. 

전과자는 사람도 아닌가요. 사랑하면 안 되나요. 더구나 이걸 3주 넘게 포털 사이트의 메인 기사로 띄우는 건 악의적인 처사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대처할 계획인가요. 

오보를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법적 조치로 강경 대응을 할 겁니다. 우선 거짓 제보를 한 사람들을 고소할 거고, 진위여부와 저희 입장을 확인하지 않고 일방의 얘기를 그대로 사실화한 언론들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책임을 물을 거예요. 

오빠의 억울한 옥살이에 대해서도 별도의 법적 대응을 할 거고요. 오빠는 12년 동안 죗값을 치렀어요. 저는 오빠의 과거를 모두 알고 있고 전혀 개의치 않아요. 이제는 제 선택을 존중해주고 저희를 그냥 내버려두면 좋겠어요. 정말 간절한 바람이에요. 

아티스트로서의 활동 계획도 궁금합니다. 

현재 이화여대 인근의 ‘어반앨리스’라는 곳에서 ‘앨리스의 귀환’이라는 제목으로 저를 포함한 여성 작가 5인의 기획전이 열리고 있어요. 지난해 11월 18일 전시가 오픈됐고 1월 31일까지 진행돼요. 저는 회화랑 영상 작품을 선보이고 있어요. 그리고 올해는 개인전을 가질 계획이에요. 따뜻한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려요.

photographer 조영철 기자 designer 이지은 
메이크업 은비(누에베데훌리오) 헤어 욱진(누에베데훌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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